대중음악 평론가 나도원의 음악산문집
『결국, 음악』출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가 지난 5월 11일 산울림 소극장에서 열렸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자 음악 웹진 <100 beat>편집위원이기도 한 그는
『결국, 음악』을 통해 걸 그룹과 인디음악을 넘나들며, ‘민중가요에서 시민음악으로’의 변모를 섬세하게 짚어낸다. 북콘서트의 저자가 직접 초대한 네 팀의 색깔 또한 다채로웠다.
오프닝을 장식한 ‘회기동 단편선’은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음악의 관련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오늘 나는」과 「황무지」를 이어 불렀다. 이날 북콘서트 사회를 위해 북노마드 윤동희 대표가 나섰다. 최근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북노마드에서는 ‘결국, 음악’을 해야겠다는 각오로 이 책을 준비했다”고 한다.
도시 체류민의 시간 여행기, 플라스틱 피플
두 번째 밴드는 ‘플라스틱 피플’. 리더 김민규는 레이블 ‘일렉트릭 뮤즈’를 운영하고 있기도 한다. 저자는 ‘플라스틱 피플’의 음악을 일컬어
“섬세하고 서늘하고 좋아하는 초등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상당히 넓다”고 말한다. 1집 <Songbags Of The Plastic People>의 수록된 「야행」과 「전래동화」 그리고 3집
<snap> 수록곡 「커피와 담배」와 「흑백사진」을 차례로 연주했다. 그들의 음악은 어두운 느낌이 들면서도 제목에서부터 동요적인 색채도 묻어난다.
한 쌍 같은 「커피와 담배」의 “저 문을 열면”과 「흑백사진」의 “겨울이 오는 소리”에 감정 변화를 유도하는 코드 전환과 사운드 증폭이 겹쳐진다. 사진작가를 꿈꿨던 음악인과 동반자가 오래된 사진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게 한 「흑백사진」은 “지상의 소리가 하늘로 올라가네”에 이르러 다시 영상이 되면서 순환한다. 슬로코어 스타일의 연주와 한국적인 음성이 강화된 밴드 사운드 위에 몸을 싣는다. “숯 공장 마을”의 “아이들”과 “검정 시냇물”처럼 작고 약하고 잊히는 것들을 향한 마음이 느낌을 흔들어 놓으며 앨범의 막을 내릴 때, 플라스틱 피플은 어떤 경지를 통과하고 있었다. 이 시대는 이런 노래를 원했다. (p.172~173) |
음악이 멈춘 사이 독자들의 질문이 무대 위로 올랐다.
최근 인디밴드의 활약이 늘고 있습니다. 지상파 방송에서 인디밴드들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15년이 넘게 쌓아온 베이스가 있었기 때문에 인디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부에서는 아이돌 음악에 대한 대안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디밴드들이 꼭 방송을 통하지 않아도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는 방안들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방송을 통해서도 화제가 되고 성공할 수도 있겠죠.”
대중음악과 인디음악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한 분을 꼽는다면.
“대중음악 안에 인디음악이 있는 거죠. 한 몸입니다. 주류나 거대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 소규모로 음악을 해나가는 분들을 인디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좋아하는 뮤지션이라면 국내 음악을 오래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어준 한대수 선생님, 고 이영훈 선생님, 그리고 ‘어떤 날’을 꼽아야겠네요.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뮤지션분들도 물론 좋아합니다(웃음).”
책에는 서태지와 장기하를 비교한 꼭지가 있습니다. 과연 서태지에 의해 한국의 문화와 음악이 많이 달라졌다고 봐야할까요?
“많이 달라졌죠(사이). 방송 쪽 시스템이 특히 많이 바뀌었어요. 서태지의 등장으로 인해 음악을 좋아하게 되신 분들도 많습니다. 그 밖에 음악적인 평가는 제 책에 다 들어있습니다(웃음).”
아이돌 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세계 어디를 보나 아이돌은 존재하죠. 한국에서도 당연히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저도 좋아합니다. 소방차, 김완선도 아이돌이었죠. 오늘날에는 ‘아이돌’ 시장의 사이즈가 너무 커져서 아이돌 음악으로 인해 다른 음악이 밀려날 수 있다면,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겠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도 필요하겠습니다. 음악평론가들도 사적인 자리에선 아이돌 이야기 많이 합니다(청중 웃음).”
윤동희 대표는 저자에게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을 편애한다는 소문의 진상을 물었다. 저자도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음악적인 면을 특히 좋아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소녀시대도 역시 좋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허클베리 핀 그리고 스왈로우와 루네
세 번째 밴드는 한국의 인디음악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낸 ‘허클베리 핀’, 이 책에는 ‘허클베리 핀’과 함께 리더인 이기용(‘스왈로우’)에 대한 꼭지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허클베리 핀’의 건반 맡고 있는 ‘루네’의 솔로 앨범에 대한 언급도 놓치지 말자. 저자는 음악을 듣기에 앞서
“에너지 자체를 즐기시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우수 어린 목소리로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내는 이소영은 이 결합에서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허클베리 핀의 어떤 곡에는 가혹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이소영은 자신을 노래에 던져버리는 사람이고, 그런 그가 「사막」 같은 곡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 곡 자체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결과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이기용의 곡과 삐딱하지 않고 정직한 이소영의 노래의 결합은 묘한 긴장을 자아낸다. (p.208) |
저자는 ‘스왈로우’ 음악의 정점이라 꼽히는 <It>을 두고
“세계에 대한 사유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특유의 탐미적 서정을 향해 나아간다”고 평했다. 특히 이날 허클베리 핀의 보컬 이소영이 부른 「두 사람」에 주목했다.
“어쿠스틱 무드와 서정적인 선율, 밴드의 받쳐줌이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몸을 이룬다. 그림자가 길어지는 계절, 빠른 걸음을 늦추게 하는 노래다. 거미가 몸에서 뽑아낸 실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듯, 다시 그 실로 훌쩍 여행을 떠나듯, ‘그것’은 또 다른 산책의 시작이다(p.215)”
「두 사람」외에도 ‘스왈로우’ 앨범에 수록된 「어디에도 없는 곳」(2집
<Aresco>)과 허클베리 핀 2집
<나를 닮은 사내>의 수록곡 「사막」 그리고 다음 달 발표될 5집 앨범의 「솔트 버드(제목 미정)」를 연주했다.
윤동희 대표는 저자와 ‘스왈로우’와의 인터뷰를 일컬어
“인터뷰 자체도 작품이 된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대화가 무척 좋다고 찬사를 보냈다. 또한 천 페이지에 육박했던 책의 분량을
“자연스럽게 두 번째 책을 계약할 수 있도록” 어쩔 수 없이 줄여야 했음을 고백했다. 허클베리 핀에게 질문이 이어졌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이기용:
“최근 몇 년 동안의 가장 가치 있는 단어는, ‘까만 타이거’란 단어입니다. 음악을 하는 게 너무 좋다는 걸 다시금 깨닫고 있어요. 음악에서 받는 고통들을 음악으로 풀 수밖에 없는 사람인 거죠. 어느 순간 많은 갈등이 사라지면서 음악과의 관계가 마치 ‘오래된 부부’같다는 생각을 해요. 오래 음악을 하려면, 이번 앨범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5집이 저희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다른 걸’ 해야할 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요즘 저의 화두는 5집 ‘까만 타이거’입니다.”
나도원:
“저는 ‘사람’인 거 같습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특히 그렇죠. 비평가라면 외부자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모두가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그렇다고 칭찬만 해서는 안 되겠죠. 비판적 지지자, 입니다.”
한국대중음악이 지금 올바른 길을 가고 있나요. (청중웃음)
이소영:
“(웃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음악이라는 건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중요한 거 같아요. 세상에 한 번 울려 퍼진 음악은 유기체이기 때문에 음악의 행보는 결국 사람이 좌우하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바로 여러분들의 뜻에 달린 것이겠죠.”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 있는 음반 선택이 좋았습니다. 음반 선곡에 기준은 무엇인가요.
나도원:
“첫 번째는 제 몸이 반응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봐요. 마지막 세 번째는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인지를 따져봅니다. 그렇게 세 가지 기준을 만족한 음반들이 선곡이 되는 거죠.”
독보적인 일렉트로닉 밴드, 카프카
네 번째 밴드는 ‘카프카’. 저자는 ‘카프카’를
“독보적인 일렉트로닉 밴드”로 소개했다.
“제가 먼저 음반을 사서 듣고 리뷰를 쓰게 됐고, 그 뒤 페스티벌에서 뵙게 되고, 깜짝 놀랐습니다(청중 웃음)” 실제로 ‘카프카’ 여성 보컬의 짙은 눈 화장과 시니컬한 표정은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도 남았다.
어떤 문화상품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면 효과를 확장시키기 위해 유사한 상품들을 하나로 묶는 ‘카피’를 통해 구매를 자극한다. 이쯤 되면 무엇 자체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게 아니라 ‘카피’가 팔리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트렌드’라고 부른다. 세상이 트렌드에 지배되면서 여기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걷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련되고 진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카프카(Kafka)는 이 길을 가고 있다. (p.232) |
‘카프카’는
“처음에 저희 음악을 듣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고 말한다. ‘음악이 어렵다’, ‘잘 때 못 듣겠다’는 불만 섞인 지적도 받는다고 한다. 저자는 2007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Nothingness>을 일컬어
“매우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음악”이면서도
“통상 실험적이라 칭해지는 음악인들이 사운드에 집중하다 곡을 놓치는 반면에 카프카에게는 ‘노래’가 있다(p.232)”고 평했다.
“저처럼 메이크업하시고 다시 밴드를 하실 생각”은 없는지를 묻는 ‘카프카’의 질문에 저자는
“술을 마시고 나서 그러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몇 번의 밴드생활과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며 합주를 하면서 느꼈던 만족감”에 대해서 회고하며,
“그래서 평론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앞으로도
“좋은 음악을 만드실 수 있도록, 제가 좋은 징검다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카프카’에게 무대를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