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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예술세계 ‘플럭서스’를 아시나요? - 『플럭서스 예술혁명』 전선자

존 케이지, 백남준, 요제프 보이스. 세 사람의 예술 세계의 공통 모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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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럭서스(Fluxus). 귀에 약간 익은 단어라면, 뮤지션에 대한 관심이 크거나, 뮤직레이블에 관심을 가진 경우일 수 있다. 이승렬, 클래지콰이, 윈터플레이, W 등 실력파 뮤지션들의 집합소, 플럭서스가 떠오를 테니까.

플럭서스(Fluxus). 귀에 약간 익은 단어라면, 뮤지션에 대한 관심이 크거나, 뮤직레이블에 관심을 가진 경우일 수 있다. 이승렬, 클래지콰이, 윈터플레이, W 등 실력파 뮤지션들의 집합소, 플럭서스가 떠오를 테니까. 나는 백남준보다 음악기획사 플럭서스를 통해 플럭서스라는 이름을 먼저 접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플럭서스라는 이름을 기획사 명칭으로 정했을까. 이유가 있을 터. 플럭서스는 쉽게 말해, 흐름이다. 끊임없는 변화. 그러니까, 고이지 않겠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존의 음악을 넘어선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 그것은 현대 예술사에서 플럭서스가 일군 성과다. 기존의 예술을 넘어서 본질주의 미학에 저항하겠다는 의지.

백남준을 비롯해 미국 음악가 존 케이지, 독일 미술작가 요셉 보이스가 그랬다. 물론 더 많은 예술가들이 있었지만, 『플럭서스 예술혁명』(조정환?전선자?김진호 지음|갈무리 펴냄)은 주로 그들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백남준은 비결정성과 변동성의 미학을 미디어를 통해 실현했으며, 케이지는 우연과 침묵, 소음을 통해 서구음악을 지배하던 구성주의적 전통에 저항했다. 보이스는 죽은 토끼의 심장을 걸어 놓은 후 에릭 사티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 예술적 행위에서 상황과 환경을 복원했다.

대체 그것이 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플럭서스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라면 삶과 예술의 결합이다. 삶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 플럭서스는 미술에서 출발한 뒤, 콘서트, 이벤트, 미디어, 출판 등을 아우르는 전반적인 예술운동이 됐다. 허나 플럭서스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야기된 것이라면 자본과 결합한 엘리트 예술과의 공모가 그것이다.

2011년, 플럭서스 예술가였던 백남준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됐다. 플럭서스 운동도 50년의 세월을 관통했으며, 플럭서스를 처음 주창한 조지 마키우나스의 탄생 70주년이다. 『플럭서스 예술혁명』은 그런 시기에 맞춰 플럭서스 예술운동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플럭서스의 면모를 살짝 엿보자면, 지난 1월 5주기를 맞이했던 백남준의 작품을 오는 15일부터 서울역 앞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스퀘어 전면의 미디어캔버스를 통해 작품이 상영된다.

한편 지난달 26일, 서울 동교동 ‘다중지성의 정원(www.daziwon.net)’에서 플럭서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플럭서스 예술혁명』의 저자 특별 강연회. 공저인 전선자 선생은 이날, 플럭서스 예술운동의 의미?역사와 주요 활동가들의 예술적 모색과 활동을 전했다.

플럭서스란 무엇인가


플럭서스라는 명칭을 어디선가 들어봤다면, 그것은 ‘백남준’이라는 이름에서 기인했을 가능성도 있다. 2008년 9월 ‘백남준 아트센터’가 개관 전시를 하면서 플럭서스가 예술분야와 관계된다는 사실이 조금 알려진 것.

그러나 플럭서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계기는 마련되지 않던 차, 2010년 초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벨기에 서적을 번역한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를 출간했다.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책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이 책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은 백남준에 대한 오판과 편견을 어느 정도 바로 잡게 해줬고, 백남준학을 연구하려면 플럭서스를 제대로 알아야한다는 것을 깨우쳐 줬다. 왜냐하면 플럭서스는 ? 시대의 흐름을 대변해 주는 예술인들의 사유이자 실천이었기 때문이다. 국내 연구자들도 플럭서스에 대한 심화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고, 이 책도 그런 연장선상이다.”

그렇다면, 플럭서스(Fluxus)는 무슨 뜻일까. 라틴어로서, 흐름, 끊임없는 변화, 움직임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이 있듯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리투스는 “만물은 창조의 흐름에서 유전한다”는 만물유전을 설파했고, 이 말에서 플럭서스는 유래했다.

의학에서도 이 용어가 사용되는데, 장내에서 배설물이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곧 장의 건강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흐름이 막히지 않는다’는 의미를 한 예술가가 차용했다. 리투아니아 출신의 미국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조지 마키우나스. 그는 1960년경 전통적 예술형식과 양식에서 벗어난 예술가들의 생각을 알리기 위해 잡지를 구상했는데, 이 잡지의 명칭이 플럭서스였다.

허나 잡지는 재정난으로 발간되지 못했고, 마키우나스는 1961년 뉴욕 메디슨가에 ‘AG’라는 화랑을 열었다. 여기서 전위 음악가, 화가, 시인들의 공동 콘서트를 열었다. 리차드 맥스필드, 잭슨 맥클로우, 헨리 플린트, 딕 히긴스 등이 참여했다. 하지만, 화랑도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다. 마키우나스는 독일로 갈 계획을 세우는데, 백남준과 서신 교환을 통해 자신이 플럭서스라는 이름의 예술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단어는 원래 마키우나스가 뉴욕에서 1960년경 전통적인 예술형식과 양식에서 벗어난 예술가들의 생각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구상했던 잡지의 명칭이었으나, 그 잡지는 발간되지 못했다. 그래서 1962년 비스바덴에서 조직한 첫 공연시리즈 <가장 새로운 음악>에서 이 플럭서스라는 명칭이 맨 먼저 사용되었다. (p.134)

그처럼 미국과 유럽의 실험 예술가들은 상호교류를 하면서 변화에서 새로운 것이 등장할 수 있음을 공유했다. 1962년 초, 독일 비스바덴으로 온 조지 마키우나스는 백남준에게 밝혔던 바와 같이 같은 해 9월, 비스바덴 시립미술관에서 <플럭서스: 가장 새로운 음악의 세계적인 정기 축제 공연>을 가졌다. 이 공연은 뚜렷한 원칙이나 방법론을 내세우지 않았고, 참여한 예술가들도 모였다가 다시 각자의 활동지로 돌아가고 재회하는 등 자유로운 참여 형식을 보였다.

플럭서스(Fluxus, ‘흐름’을 의미하는 라틴어)는 리투아니아 출신 미국인 조지 마키우나스가 1961년 뉴욕에서 발원한 예술운동이다. (p.120)

플럭서스, 꿈틀대는 변화의 기운

“플럭서스는 행위예술의 한 형태다. 엘리트 예술을 반대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1964년 이후 뉴욕 소호에서 예술집단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예술형태를 만들어갔다. 플럭서스는 직선적인 과학과 권위가 만들어놓은 신화를 깨고, 모든 전통개념에서 자유롭고, 창작자와 수용자가 일체가 되길 원했다. 창작자와 수용자가 미래를 사유하며 사회를 변화시키길 바랐다. 변화에서만 새로운 것이 등장할 수 있다며, 변화를 추구한 것이다.”

첫 공식 공연은 플럭서스의 지향점이 잘 드러났다. 전위예술, 문학, 무대 예술 등 다양한 예술매체들이 상호 결합했다. 참가 예술가들은 딕 히긴스, 엘리스 놀즈, 요셉 보이스, 볼프 보스텔, 백남준, 에멧 윌리엄스, 아르투르 쾨프케, 로베르 필리우, 조지 마키오나스 등 9명이었다. 플럭서스 공연은 유럽을 순회했다.

이후 1963년 마키우나스는 뉴욕 소호에 플럭서스 본부를 창설했고, 64년부터 플럭서스라는 이름으로 불린 현상은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플럭서스는 일정한 범주를 정한다거나 목록화되진 않았다. 장르의 경계를 과감히 해체했고,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냈다. 또, 당시 미수례의 주류 속에 안주하고 있던 표현주의나 추상 계열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위한 무한한 가능성의 저장고로도 여겨졌다.

플럭서스에 대한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독일의 토마스 슈미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마키우나스가 뉴욕으로 돌아간 후 곧 이것저것이 뒤섞인 불협화음으로 증발해 버렸다. 플럭서스에 관해 그리 많은 산만한 개념들이나 플럭서스에 실제 참여했든 안 했든 사람마다 플럭서스에서 저마다 다른 것을 찾아냈고, 또 오늘날에는 전혀 엉뚱한 사람들이 플럭서스를 들먹이며 플럭서스와 연관된 것을 주장하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플럭서스는 예술이 오브제화, 대상화하는 것에 대한 투쟁이며 이로 인한 예술적 소외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p.13)

당시 많은 진술에 의하면, 마키우나스는 플럭서스가 사회적이며 반예술적인 관습을 ?표로 한다는 것을 확고히 규정하려고 했다. 반면 플럭서스 공연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플럭서스를 한정하려는 시도에 찬성하지 않았다. 열린 해석을 인정하고자 했다. 이와 관련된 플럭서스 공연전시가 1968년 스위스 베른과 뒤셀도르프에서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친구들이 친구들을 위해 만든 무엇’이었던 공연이었고, 이런 취지는 플럭서스 예술가들이 퍼포먼스를 추진하는데 필요한 원동력이 됐다.

친구들이 함께 만든 플럭서스


앞선 1962년 6월16일 뒤셀도르프 캄머슈필레 극장에서 열린 백남준의 공연이 이를 짐작케 한다. <음악에 있어서 네오-다다>라는 제목의 콘서트에서 백남준은 ‘바이올린 독주’를 했다. 그 퍼포먼스는 바이올린을 천천히 들어 올린 뒤 갑자기 내리쳐 산산이 부쉈다. 콘서트 후 요셉 보이스가 백남준에게 자신이 교수로 있는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에서 공연을 열자고 제안했다. 첫째 날은 백남준의 개인전을, 둘째 날은 플럭서스 그룹전을 열자고.

백남준은 이 영광스러운 제안에 대해 뭐라고 답했을까. 저자에 의하면, 백남준은 8개월 후(1963년3월) 잡혀 있는 첫 개인전 준비로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플럭서스의 정신을 들어 개인전을 거절했다. 즉, 이틀 모두를 플럭서스 공연으로 채우자고 제안했다. 이유는 이랬다. “플럭서스는 모든 구성원이 똑같은 권리를 갖고, 개인의 자아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평등한 단체이니만큼 이틀 밤을 모두 플럭서스에 할애하자.” 보이스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런 제안은 아무에게나 올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백남준은 이 명예로운 기회를 플럭서스 친구들에게 할애했다. 플럭서스 모임의 일원으로서 플럭서스 취지에 맞게 플럭서스 친구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는 백남준의 의지에서 그들이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그들의 예술 활동에 원동력이 됐다. 그들은 돈도, 명성도 없었으며, 기존의 미술계는 그들을 무시했다. 당시의 언론들도 잡다한 소식을 담는 곳에 플럭서스 공연을 언급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엉터리로 기사를 싣곤 했다.

“플럭서스는 서로를 이해하는 예술가 친구들의 모임으로서 서로에게 보여줄 공연을 만드는 행사였다. 쾰른에서 언제나 혼자였던 백남준이 플럭서스 공연으로 친구를 만났고, 보이스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은둔의 작가였는데, 1963년 2월 플럭서스 공연에서 자신의 첫 개인 퍼포먼스를 거침없이 감행했다. 플럭서스 페스티벌은 정말 친구들이 친구들을 위해 만든 무엇이었고, 두 예술가에겐 플럭서스가 예술적으로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게 해준 매개체였다.”

존 케이지의 경우

마르셀 뒤샹은 가시적인 대상에서 해당돼 대상과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비가시적인 관계를 표출하려 애썼다. 미국의 음악가 존 케이지는 뒤샹의 이런 사고와 접목해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다. 그는 재료의 차원에서 하나의 혁신을 이뤘는데, 그가 몰두한 것은 새로운 소리였다.

이에 1938년의 작품 ‘바쿠스의 술잔치’, 1946~1948년의 ‘소나타와 간주곡’ 등에서 건반악기인 피아노를 타악기로 바꾸거나 다른 음식을 내는 악기로 바꿨다. 그것이 ‘조작된 또는 장치된 피아노’였으며, 특이한 장치의 피아노는 현들 사이에 고무, 종이, 나사, 못 등을 끼워 넣어 일종의 타악기관현악단이 내는 음색으로 변형됐다.

이어 1939년 자동차 브레이크, 통조림통, 조개껍질 등의 오브제들과 동물 소리들이 전통적인 타악기와 함께 사용된 곡들을 선보였다. ‘금속에 의한 첫 번째 구성’, ‘꽃’ 등에서 이런 청각적인 오브제를 사용했다. 또 1942년 전기발전기, 전축, 금속으로 된 롤러 등으로 음악적 악기가 아닌 것으로 소리를 만든 ‘상상적 풍경 3번’을, 1951년에는 12대의 라디오를 조작해서 소리를 만들어낸 ‘상상적 풍경 4번’을 만들어냈다.

“이런 작품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다. 작품들이 악보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임의적인 대강의 지침이 지시돼 있는 정보체계로 존재한다. 재료의 혁신인 음악 영역 밖에 존재하는 소리로 완전히 다른 정보체계? 만드는 음악을 창작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특히 그는 제자에게 주역의 복사본을 선물 받고, 우연성의 개념을 접하게 된다. 그것은 그를 다른 차원의 음악으로 이끌었다. 서양음악의 구조는 음악적 요소들을 인위적으로 구조화한 것인데, 케이지는 인위적으로 구조화된 전략을 내버리는 대신 우연에 의한 음악적 사건의 구성을 주장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침묵 4분 33초’였다. 피아노 뚜껑을 열고 타임워치를 꺼내 4분33초를 기다리다가 그 시간이 지나면 타임워치를 끄고 뚜껑을 닫는 것이었다. 이 행위음악은 음악 영역 밖의 소리, 즉 소음, 잡음, 생활 속의 소리, 정적 등 그 시간에 우연히 일어난 음적인 사건들이 음색이 되어 음악을 이룬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관계들로 이뤄진 새로운 음악의 세계다. 요제프 보이스가 물질과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물질의 정신화를 추구하는 것은, 백남준이 기술과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기술의 인간화를 지향하는 것도 바로 케이지가 먼저 실천했던 자연의 작동방식을 모방하는 일, 즉 ‘우연성의 개념’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1958년 케이지의 강연을 통해 그의 음악세계를 접하고 번개를 맞은 듯 쇼크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 후 고전적 작곡에서 탈피, 가장 새로운 음악인 행위음악에 들어섰고, 1959년 11월 13일 뒤셀도르프에서 가진 데뷔 공연이 <존 케이지에게 경의를 보내며>였다. 백남준은 플럭서스를 거쳐 미디어의 세계로 나아가지만, 초기 시절 받은 영향과 이 영향에서 출발하는 플럭서스 활동은 그의 예술 세계의 저변을 형성해 줬다.

자연에서 출발한 예술세계

존 케이지, 백남준, 요제프 보이스. 세 사람의 예술 세계의 모델은 자연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 무한한 양과 영속적인 변화에 있다는 것이 그들의 사고였다. 플럭서스의 의미처럼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이 지속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이렇게 말했다. “19세기 사람들은 대부분 시각예술로 자신을 표현할 수단을 갖지 못했지만, 카메라의 발명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카메라의 등장은 누구나 시각예술가로 활동하게 있게끔 만들었고, 산업시장과 미술시장의 규모를 바꿔놓은 것은 사람들의 ‘창조하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백남준은 봤다.

요제프 보이스는 1956년부터 제작한 <아우슈비츠에 관한 표명>에서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한 행위예술을 선보였다. 그가 사용한 재료는 물질(기름덩어리, 펠트천 등)이면서도 예술가로부터 정신성을 부여받은 오브제였다. 은둔 예술가였던 그는 1962년 6월 백남준과 만나면서 플럭서스의 활발한 구성원이 됐다.

“이들 실험 작가들은 자연의 작동방식인 순환과 반전, 우연과 필연, 그리고 만물유전을 따랐다. 어떤 원리나 방법론을 내세우지 않고, 인간 경험의 총체성과 결부된 표현을 추구했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상이한 예술매체의 결합인 음악과 시각예술, 무대예술과 시 등을 융합한 ‘통합 양식개념’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이것이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며 플럭서스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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