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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대는 ‘잉여’ 존재로 전락? - 『이것은 청춘이 아닌가』 엄기호

“20대, 누가 나를 잉여라 부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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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새해 맞이 특별 기획으로 YES24에서는 우리 시대 베스트 인문학자 릴레이 특별 강연을 마련했다. 지난 1월 6일 강만길 역사학자의 강의를 시작으로...

2011년 새해 맞이 특별 기획으로 YES24에서는 우리 시대 베스트 인문학자 릴레이 특별 강연을 마련했다. 지난 1월 6일 강만길 역사학자의 강의를 시작으로, 매주 목요일 7시반 정독도서관에서 네 차례 진행된 인문학 릴레이 강연은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에 이어 1월 27일 마지막 주자로 나선 강사는 엄기호 저자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지난 2년간 저자가 덕성여대와 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학생들과 함께 쓰고 토론하고 강의한 내용을 묶은 책이다. 제목에 드러난 대로 이 책은 20대 담론을 다룬다. 지금의 대학생들이 정치와 경제, 가족과 연애, 돈과 소비에 대해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언어로 바라보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대화의 기록이다.

우선, 저자 엄기호를 조금 더 설명해야겠다. 저자는 본인을 “지금 선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겪어 글을 쓰는 정신노동자이자 활동가”라고 소개한다. 세계화를 공부하기 위해 세계를 떠돌다가 필리핀에 있는 국제가톨릭학생운동 사무국에서 일했다. 이후 대안학교와 강단에서 사람을 만나다가 서울시립청소년 직업체험센터 ‘하자’ 글로벌 팀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세대 담론에 관심을 갖게 되고, 많은 학생들과 접한 경험 덕분에 누구보다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세대 담론을 이야기하는 인문학자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거짓말, ‘하면 된다?!’


“여러분, 베짱이처럼 살고 싶나요, 개미처럼 살고 싶나요? 손 들어보세요.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분? 손들어보세요.” 몇몇 소수의 독자가 손을 든다. IMF가 한창일 때, 저자는 여러 학생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그때는 100%였다. 비록 지금 IMF를 겪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여러분처럼 거의 손들지 않는다.”

15년 전만 해도, 위와 같은 질문에 많은 학생들이 “개미처럼 열심히 벌어서 잘 살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요즘엔 베짱이 같이 살고 싶다는 대답이 더 많다. “나이 많은 분들이 보면 통탄할 일일 테다. 이전의 수업시간에 한 학생이 이런 얘길 하더라.”

“나는 열심히 살았다. 하면 된다는 걸 믿었다. 그런데 해도 안되더라.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다. 그래도 안되더라. 나는 아직도 열심히 살고 있는데, 될지 안될지 정말 모르겠다”
이 고백을 들은 한 친구 왈, “나는 배짱이 같이 살겠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속임수가 바로 ‘하면 된다’는 말이다. 나는 해도 안 된다는 걸 초등학교 때부터 깨달았다. 개미처럼 내일에 투자하며 살 생각 없다. 오늘을 열심히 살 거다.” 당신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베짱이에게는 즐길 수 있는 오늘뿐이다. 그에게는 미래란 없다. 당연히 미래 계획 따위는 없다. 이때의 베짱이는 행복할 수 있을까? 오늘만 즐기는 일이, 적어도 며칠 사는 베짱이가 아닌 다음에야 언제까지 즐거울 수 있을까? 엄기호는 20대가 미래를 계획하지 않는 현실을 비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20대의 삶이 더 이상 예측 가능하지 않고, 기획 가능하지 않다. 기획이라는 것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리하는 일이다. 1년 후, 2년 후의 내 모습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예측할 수 있어야 삶을 기획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근 미래를 내다보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유예문화라고 할 수 있다. 유예문화 속에서는 근 미래에 도래할 것, 얻을 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고통을 참고, 즐거움을 유예시킬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더 이상 삶이 예측, 기획 가능하지 않다면, 유예할 수 없게 된다. 내가 가진 것 중에 당장 쾌락이 될 만한 것, 이득이 될 만한 것과 맞바꾸는, 즉각적 교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과연 친구와 연인과 등가 교환으로 관계를 꾸려나갈 수 있을까? 사회와 관계는 즉각적, 등가적 교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오늘을 즐겨라!”라는 자극적이고 쿨해 보이는 구호 뒤에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전제된 것이다. 이렇게 만연되어가는 비유예문화를 두고, 지금의 사회는 20대에게 손가락질 하고 있다. 저자는 왜 이 모든 비난을 20대가 받아야 하나?하는 의문에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40대는 경제성장, 30대는 민주주의, 20대 너넨 뭐냐?


“다들 20대를 들먹인다. 이 모든 것은 저 밖에 모르는 20대 때문이다. 투표율이 낮으면 20대가 안 했다고 비난. 촛불 시위 때도 왜 10대는 나오는데 20대는 안 나오냐고 비난, 오죽하면 ‘20대 개새끼론’까지 나오나? 이렇게 20대를 희생양으로 삼는 사회는 지금, 무엇에 대한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는 건가?”

이런 사회적 인식 때문에, 사회에서 20대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주체, 함께 삶을 꾸려가는 파트너로 인식되지 못한다. 사회 문제의 원인이자, 설명돼야 하는 대상으로 지목되는 것이다. “진보/보수를 떠나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주체가 될 가능성이 없다. 나는 이 점이 가장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회의 문제를 특정 사회 계층, 특정 세대의 문제로 지목하는 ‘초유의 사건’은 왜 벌어지게 되었을까? 저자는 기성세대가 한국 역사 속에서 갖고 있는 자부심에서 이 문제가 비롯된다고 지목한다. “30대는 말한다. 민주주의? 우리가 해냈다. 40대는 말한다. 경제성장? 우리가 해냈다! 70대도 말한다. 우린 폭탄 맞고도 살아남았다! 그런데 20대, 너희는 뭘 기여하고 있나? 비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과연 이 비난의 초점이 세대에 맞춰질 수 있는가? 과연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은 저 특정 세대들의 전유물인가? “그들은 저렇게 주장하면서, 당대에 대한 책임을 면죄 받으려고 하는 거다. 우리는 과거에 치열하게 살았으니까, 당대는 20대가 책임지라는 거다. 이건 정말 황당한 얘기가 아닌가? 어떤 시대에도, 특정한 세대가 열심히 한다고 사회 문제가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결국 20대를 비난하는 사회의 작동으로, 지금 많은 20대들은 스스로 잉여로 전락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잉여’라고 부르고, 자신의 행동을 ‘잉여짓’이라고 일컬으며 비하한다. “이런 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냐? 주변에 얘도 잉여고, 쟤도 잉여기 때문이다. 결국 20대 담론은, 20대 스스로가 자신이 쓸모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내면화하게끔 만들었다.”

저자는 지금의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데에, 저러한 생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꼬집었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더 이상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의 부를 증식시키는 데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다. 취업난이라고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해 우리나라의 경제는 6% 성장했다. “지금의 경제 성장은 일자리와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의 사회는 예전처럼, 노동력을 재생산시키기 위해 노동력을 훈련시키고, 사회현장에 투여하는 일에 주력하지 않는다.

20대, 영원히 준비되지 않은 영원한 학생으로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20대로 하여금, 스스로가 쓸모 없는 노동력임을 주지시킨다. 이러한 현상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쇼 프로그램이 바로 지난 해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리얼리티 프로그램 ‘슈퍼스타 K’다. 한 명만 살아남는다. 각자의 개성으로 최종결선까지 올라가지만, 심사위원은 각 후보자가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안 되는지 꾸짖기 일쑤다. 그러면 부족함을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탈락의 원인이 1등만 살아남는 구조에 있다고 보는 게 아니라, 내가 프로가 되기에 부족해서 떨어지는 것으로 납득한다. 이런 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제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당신이 뭔데 나를 모독하냐?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몇 년 노력했는지 아냐.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슈퍼스타K의 후보자들과 같은 표정으로 서 있을 거다. 리얼리티 쇼가 현실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리얼리티 쇼가 현실이 된 거다.

그저 그렇게 꾸짖는 기성세대 앞에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만 생각하는 것. 더 이상은 미덕이 아니다. 물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윗사람의 말을 흘려 넘기란 얘기는 아니다. 다만, 무조건 획일적으로 20대를 재단하려는 사회적 시스템 앞에, 자신의 개성은 망각하고 그저 아직 부족하니까 죄송합니다. 참겠습니다, 읊조리지만은 말자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힘들기만 할 때, 그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만 돌리지 말라는 거다.

아지트를 주목한다


그런 논리로 결국 우리는 모두 학생이 된다. 우리는 모두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언제까지? 그들이 뽑아주실 때까지. 그때까지는 늘 후보생인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20대에게 ‘사회적인 것’이 완전히 제거되어 버렸다. 내가 하고 있는 일상의 행동이 전혀 사회적인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다.” 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엄기호 저자는, 다음 학기에는 과연 20대가 말하는 잉여짓이 아무런 사회적 가치가 없는지 연구해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자는 지금 아지트를 주목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대안이다. “공동체는 힘이 들어서 못하겠고 그보다 작은 아지트가 생겨나고 있다.” 서로 통하고, 의기투합되고, 선물관계가 형성되는 사람들끼리 소규모로 모이고 있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인 ‘카카오톡’에서는 ‘카카오 아지트’라는 게 생겨났다.

“이 아지트에서는 키보드 워리어들이 그랬듯, 치고 박고 싸우면서 에너지 소비를 할 필요 없는 공간이다. 예전에는 커뮤니티 방에서 와글와글 싸우던 사람들이 다 트위터로 갔다. 트위터는 안 싸워도 된다. 비슷한 생각이면 ‘맞팔’하고, 아니면 ‘언팔’하면 된다.

그런 식으로 나와 언어,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과 접속하는 거다. 이렇게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여전히 우리가 사회적 존재라는 걸 인식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돈과 폭력 밖에 남지 않은 불안의 시대를 견디면서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질문해라, 누가 나를 잉여라 부르는가?


난 50대다. 지금은 예전보다 정말 좋아졌다고 본다. 우리 때보다 폭력도 훨씬 줄어들었고, 사회 인식도 나아졌다. 지금 이 얘긴 너무 과장됐다고 생각된다.

“질서가 있는 사회 속의 폭력이냐는 얘기다. 이전보다 더 폭력적이냐 덜 폭력적이냐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내가 학교 다녔을 때는 더 심했다고들 얘기 한다. 교련시간 때 하도 맞은 기억이 있어서, 고등학교 교련도 이 정도인데 훈련소 가면 정말 죽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을 유지시켜주는 질서라는 게 과연 지금 있는가, 묻고 있는 거다.

지하철을 타다 보면, 서로 탁 부딪칠 때가 많다. ‘아, 죄송합니다’ 지나가면 되는 일인데, 요즘은 부딪치고 나면 서로 죽일 듯이 쳐다본다. 사람들의 분노가 억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한쪽에서 죄송하다고 하면 상대가 오히려 당황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사과를 받아서 급 화해하는 상황인데 이것도 과장된 거다. 별거 아닌 걸로 화를 많이 낸다. 사회에 어느 정도 질서가 유지가 되고 있다면, 벌어지지 않을 법한 일들이 많다. 이런 걸 보면서 우리가 이제 날 것의 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강의를 들으니 인턴 제도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하게 된다.

“지금 대학생이 하고 있는 알바 노동을 보면, 사회가 그들의 노동을 완전한 노동이 아니라, 사회 준비생의 노동이기 때문에 값싸게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학생들은 일 시켜주면, 그 기회를 고마워해야지 않냐는 거다. 결국 내 스스로 저임금을 감당하기 위해 노동자가 아닌, 다른 정체성이 필요한 거다. 그게 바로 학생 정체성이고, 그걸 이용하는 게 인턴제도다.

스스로가 예비 노동자라고 착각 하지 마라. 이미 노동자다. 벌써 여기서부터 착취가 시작되는 거다. 알바는 노동이 아니라 임시적인 일이고, 졸업해야 본격적으로 노동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에게 본격적인 일은 영원히 안 온다는 거다. ‘이미’ 지금 내가 수행하고 있는 이 임시직 노동의 질과 안정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이미 당신은 사회적인 존재다. 이미 나는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노동이 안정화 돼야 하고, 이 노동이 정당화되어야 하는 거다. ‘본격적’이라는 말이 여러분을 그저 견디게 만드는 수사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20대 친구들에게 한 말씀 해준다면?

“늘 강조하는 건 이거다. 우리 아직 안 죽었잖아. 내가 지금 소외되었거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이런 질문을 던져라. 누가 나를 잉여라고 부르는가? 누가 나를 의미 없다고 부르는가? 그게 누구인가? 계속 묻다 보면, 그들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나의 삶을 의미화하고 각자의 삶이 열리는 것 같다. 그렇게 서로 격려하면서 불안한 시대를 잘 건너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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