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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칼린 “사랑한다면, 이 만큼은 해야 하지 않을까?” - 『그냥』강연회

“죽기 전에 스타워즈에 나오는 것처럼 다른 세상을 여행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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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에 있던 박칼린은 어느 날, TV화면 속에 불쑥 등장했다.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거기서도 박칼린은 예능인이 아닌 음악 감독이었다.

『그냥』 과거를 정리하다 보니, 미래도 정리된 기분

브라운관 속 모 CF에서 박칼린이 말한다. “함께 가실래요?”

박칼린의 이미지를 잘 차용한 ‘신뢰’ 콘셉의 CF. 그녀의 눈빛은 믿음직스럽다. 그건 결코 그가 화면 속에서 그런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언제나 한 길을 걸어온 사람, 그리고 여전히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믿음직한 눈빛을 갖고 있다. 그가 많은 이들에게 ‘멘토’로 불리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테다.

무대 뒤에 있던 박칼린은 어느 날, TV화면 속에 불쑥 등장했다.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거기서도 박칼린은 예능인이 아닌 음악 감독이었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끝난 지금, 그녀는 원래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가, 연출가로 보폭을 넓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전과 달라진 것은, 그 행보에 주목하는 눈이 많아진 것.

이를 증명하듯 박칼린의 일상과 자신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 『그냥』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물론 그만큼 오래 전부터 공들여 작업한 책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이달에는 그녀가 꼽은 팝페라, 뮤지컬곡, 유명 합창단 음악을 수록한 앨범 <칼린 셀렉츠 : 박칼린이 선택한 음악들>이 출시되기도 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일이 쑥스러운 거잖아요. 그래서 주변에 직접 드린 사람도 없어요. 그래도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책을 쓰면서 예전 생각과 지나온 것들을 정리하다 보니까 미래도 정리된 기분이었어요. 음반도 마찬가지고요. 기록이 되니까, 영원히 남는 건데, 이것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고 왜 남아야 하는 건지, 저 스스로에게도 정리가 되더라고요.”


이병률이 묻고, 박칼린이 답하다


지난 해 12월 24일 막을 올린 뮤지컬 <아이다>가 진행 중에 있어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박칼린. 『그냥』을 통해 박칼린에 대해 더 알게 된 독자들, 더 알고 싶은 독자들을 공연이 진행되는 성남 아트센터 근처 성남 상공회의소로 초대를 받았다.

이 책이 나온 출판사 달의 대표이자, 시인 이병률이 사회를 맡았다. 그가 박칼린에게 질문했고, 그녀가 대답했다.

박칼린의 어린시절을 들으며, 지금껏 봐왔던 모습이 아닌 또 다른 박칼린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창 작업 중인 뮤지컬 작업을 설명할 때는, 금세 프로페셔널한 직업적 면모를 보?다. 더불어 그녀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면도 엿볼 수 있었다.

최근 <무릎팍 도사>에 출현해 논란(?)을 일으킨 그녀의 사랑 이야기도 털어놓았는데, 사랑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생각을 들으며, 그녀의 신념과 가치관을 짐작해 보기도 했다. 결국 그가 사랑하는 일, 사랑하는 삶의 이야기. 짧고도 길었던 이날의 이야기. 미처 함께 하지 못한 채널예스 독자 분들을 위해, 여기, 그녀의 목소리를 옮긴다.

어린 시절,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내성적인 칼린이었다


성장배경이 궁금하다. 어떻게 자랐기에 이렇게 리더십, 카리스마,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나. 어렸을 때는 어떤 칼린이었나?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내가 나 자신에게 질문이 많아진다. 입 속에는 영어와 한국말이 돌아다니고, 학교는 중국학교를 다녔고, 이 나라에 있다 저 나라에 있는 등 굉장히 많은 것이 섞여 있는 환경 속에서 자랐다.

어릴 때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나만의 세상 속에 살고 있었고, 그땐 지금보다 훨씬 똑똑했던 것 같다. 늘 사람들을 구경했고, 감정으로만 살았다. 안 믿기겠지만……. 정말 말없이 살았다!(웃음)”


이웃들이 보기엔 박칼린이라는 아이 속에, 아이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 앉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듬직하고 속이 깊은. 어렸을 때 이것저것 혼재된 환경 속에서, 왜 나는 다른가, 억울한 마음이 들진 않았나?

“뚜렷하게 기억나는 몇 가지 사건과 감정이 있다. 부산에 머물 때 2층집 적산가옥에 산 적이 있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차가운 돌계단이 있었다. 말괄량이 언니들과 달리, 나는 늘 혼자 지내면서, 계단에 앉아 있었다.

그때 나는 어마어마한 느낌과 감정을 쏟아내고 싶었는데, 어린 나이에 마땅히 뱉을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이런 마음을 이해해 줄 사람도 없어서 마냥 계단에 앉아 누군가 나를 발견해주기만을 기다리던 아이였다. 누가 ‘칼린, 너 왜 그래?’ 물으면, 입을 꾹 닫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에 다시 들어갔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내가 단어를 더 알았더라면, 그런 감정을 쏟아낼 줄 알았더라면, 지금과 다른 길을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일체 말하지 않고 자란 게 도움이 된 건지 되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다.

슬프기는 어마어마하게 슬펐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감정을 표현은 못하겠고. 그래서 내가 그런 감정을 음악에 쏟아 붓거나, 옷감으로 뭔가 만들어보거나 하는 식으로 다른 표현방법을 찾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옆에서 보기에, 칼린 씨는 누구와 같이 있어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지만, 혼자 있을 때 어떤 두려움이나 외로움 없이 잘 지낼 수 있는 사람 같다.

“혼자서 늘 잘 있었다. 언니는 이런 말을 많이 한다. 내 방 문을 벌컥 열고, “너 누구랑 얘기해!” 혼자 있으면 계속 중얼중얼 거린다.(웃음)”

감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느냐는 중요치 않다. 그 무엇은 자기 삶의 표현법일 뿐이지, 우리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어떻게’ 이루느냐가 중요하다. 할 거라면, 살 거라면 가장 뜨거운 곳 그 한가운데에서 가장 뜨겁게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밋밋하게 죽으러 살 바에야 활활 타오르고 싶다.(p.260)

뮤지컬 즐기는 법? 가사에 집중해 보라


연출 쪽으로 행보를 옮긴 것 같다. 처음 연출한 작품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을 본 기억이 나는데, 그때 정말 재미있게 봤다. 음악이 좋아서 작품을 이해하기도, 접근하기도 좋았다. 연출을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런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이제껏 내가 걸어온 길은, 특별히 계기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온 길이었다. 음악이나 뮤지컬을 어떻게 시작했냐고 물으면 답하기 어렵다. 그 전에 이런 일을 했는데, 또 그 이전엔 이런 일을 했었고……하는 식으로, 모든 일이 물 흐르듯 흘러갔고, 나는 잘 저어온 셈이다.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왔던 대표가, ‘너 연출해야 되겠다. 음악만으론 양이 안차는 것 같다.’고 얘기해준 적이 있었다. 연출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는 음악 감독으로 접근할 때부터, ‘저 작품은 언젠가 연출을 해보고 싶다’고 느꼈는데, 기회를 와서 정말 기뻤다.”


이번 작품 <아이다>를 봤다. 연출이라는 건 손이 가는 곳이 정말 많은 일이다. 그 중에도 제일 재미있고, 가장 희열을 느낀 과정은 어떤 일일까?

“내가 제일 즐기는 부분은,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보이는 부분이 아니다. 대본하고 가사 작업이 제일 즐겁다. 어떤 단어를 어떻게 써서, 가장 간략하게 인물의 감정을 전달할까. 이 가사로 여기서 저 감성까지 어떻게 이끌어갈까. 음표에 맞고 재미있는 가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이런 일들인 셈이다.

<아이다>는 지난번에 올려진 공연이기 때문에, 거기서 업그레이드 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크게 바뀐 부분은 없지만, 대사, 가사 몇 군데를 손 봤다. 그런 일만으로도 감정이 증폭되는 재미가 있다. 가사 한 단어를 두고 얼마나 고민하는지 모를 거다. 노트를 보면, 한 음표 아래에 열 개의 단어씩 달려있다.(웃음)”


티가 안 나는 작업이다.

“사람들은 무대 세트를 보고, ‘와 무대 세트 예쁘다.’하고, 좋은 안무를 보면, ‘안무가 좋다’고 말하지 않고, ‘배우들이 춤을 잘춘다’고 한다. ‘조명 좋다’는 얘기 안하지만, ‘조명 나쁘다’는 얘기는 많이 한다. 좋은 음향은 잘 느껴지지 않지만, 음향이 나쁘면 제일 먼저 거슬리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연기 잘한다. 대사가 재밌다’는 얘기는 해도, 가사가 좋았다는 얘기는 거의 없다. 가사는 배우가 잘 씹을 거리를 주는 일이다. 뮤지컬을 즐길 수 있는 요령 중에 하나는, 가사에 집중해보는 일이다. 그 속에 스토리 전개가 있다.”


종교 같은 사랑, 꼭 한 번 경험해보시길


TV에 나와서,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하던데, 나 역시 그게 궁금하다. 그 연하의 남자…….(웃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종교를 바꿀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 정도면 종교잖나.

“그 정도로 사랑해야 하지 않나? 사랑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알려달라.

“일단 방송에 나온 부분에 대해 할 말이 있다. 방송된 영상은 편집해서 재미있게 만든 부분이 많다. 50분 방송됐지만, 실제로는 서너 시간 촬영했다. 강호동 씨가 ‘사랑하는 사람 있냐’고 묻기에, ‘있다. 예전에 두 명 정도 사랑했었는데, 여전히 사랑한다. 난 쉽게 변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랑이 끝나도 후회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혹시 연하에요?’ 하기에 “이 나이면 다 연하다.(웃음) 법에 안 걸리려면, 연하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게 그렇게 편집된 거다.

사랑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하더라. 내 사랑관이 좀 다른 가 보다. 내 얘기를 안 믿는다. 줄 때 주는 걸로 끝내야 되고, 받는 다는 생각은 없어야 된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해야 하고, 1초의 한 티끌의 의심도 없어야 한다. 나중에 이 사람이랑 결혼을 할 수가 있을까, 없을까? 이런 의심조차 없는, 그런 사람이 있더라. 그런 사랑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다. 상대방은 그걸 몰라도 되고. 그 나머지를 원할 때 그 사랑이 깨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깨지는 거 아녜요? 한 치의 의심이 없어서?

“그걸 쉽게 표현을 하기 위해서, 종교에 빗댄 거다. ‘아, 이 사람이, 이런 감정이 왜이렇게 의심이 들지 않지? 다 주고 싶지? 왜 이렇게 세지? 에너지가 되지? 내 일에 즐거움이 되지? 이런 걸 쉽게 표현하기 위해, 종교가 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그런 사람이 이제껏 두세 명 정도 있었는데, 그만큼의 신선하고 성스러운 감정이 있?라. 두 번 그런 사랑을 느꼈고, 그걸 간직 하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다들 그런 걸 느껴봤으면 좋겠다. 받는 게 아니더라. 모두가 한번 정도는 그런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


우리는 언젠가 죽을 텐데, 만약 세상이 끝날 때, 누군가 한 사람 데려갈 수 있다면 누굴 데려가고 싶나? 그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가는 건가?

“데리고 갈 수 있다고 하면, 정말 지구상에서 없어야 하는 사람을 끌고 가야지. 아니면 지구상에서 너무 큰 아픔과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을 데리고 가고 싶다. 좋은 사람은 남겨 놔야지.”

그런 마지막 순간이 되면 사람은 약해질 대로 약해지니까, 자기가 힘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을 데려가지 않을까 했다. 역시 강한 분 같다. 혹시 앞으로 하고 싶은 일 가운데, 이건 정말 불가능하지만 꼭 해보고 싶은, 그런 일이 있나?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과학이 발달되면 스타워즈에 나오는 것처럼 다른 세상을 여행해보고 싶다. 이 세상과 다른 감정, 오감 아닌 다른 느낌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머릿속에는 못할 것 같은 일만 가득하다. 새로운 색깔을 본다든지, 계속 손을 뻗어 느껴보려고 하고, 감정의 끝을 찾아보고 싶다. 얼마만큼 슬플 수 있는지, 얼마만큼 소리를 지를 수 있는지. 그런 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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