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여행은 어떤 위로가 되나요? - 『나만 위로할 것』 김동영
노래와 이야기가 흐르는 우리만의 위로 낭독회
2007년, 여행 에세이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로 큰 화제를 몰고 왔던 김동영 작가의 두 번째 책이 아이슬란드에서 달을 거쳐 한국으로 날아왔다.
2007년, 여행 에세이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로 큰 화제를 몰고 왔던 김동영 작가의 두 번째 책이 아이슬란드에서 달을 거쳐 한국으로 날아왔다. 이 날의 낭독회 명칭도 『나만 위로할 것』이라는 ‘이기적인’ 책의 제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래와 이야기가 흐르는 우리만의 위로 낭독회’, 먼저 노래가 흘렀다. 빅뱅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방승철의 기타 연주였다.
독자들과 마주 앉은 작가의 옆에는 이리카페를 운영하는 김상우 씨와 이주용 씨 그리고 가수 하림과 방승철, 양양이 함께 했다. “원래 낭독회는 계획에 없었어요. 이리카페가 아니었다면 이런 자리를 갖지 못했을 거예요. 이리카페가 홍대에 있을 때, 단골이었어요. 방송 작가 시절, 원고를 카페에서 쓰면서 알게 되신 분들이 다 이 자리에 계세요. 스프라이트를 사서 먹지도 않고 작업실로 썼어요. 친구처럼, 가족처럼 응원해주셨던 분들이죠.” 작가는 테이블 끝을 가리키며, “아마 저 자리에서 글을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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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날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거야? 내 집으로 들어와. 너의 안식처가 되어줄게.
대신 뭘 해줘야 하냐고 바보 같은 말 하지 말아. 만약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저 집세 대신
너의 비밀을 세 가지만 알려줘. 그리고 잠시 나랑 같이 머물러. 이 바람이 멈출 때까지만.
그런데 바람이 밤새 불건가 봐. 봄이 저 고개 너머까지 왔다고 하던데 내 방 창에선 봄을
볼 수가 없네. 내 창까지 봄이 오려면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한가 봐.
아마 오늘 밤에는 불어오는 바람에 창문이 삐끄덕거릴지도 몰라. 하지만 걱정 마. 비록
집이 낡긴 했지만 그 무엇도 이곳을 무너뜨리지 못할 테니깐. 어디서 오는 자신감이냐고?
여긴 우리만의 안식처니깐. 우리의 안식처에는 작은 벽난로도 있어. 그러니 춥지 않을 거야.
만약 나무가 떨어져 불씨가 약해지면 너와 나의 이야기들로 다시 불을 지피면 될 테고 그래도
추우면 우린 서로를 껴안은 채 서로의 입김으로 차가워진 손과 발을 녹일 수 있을 거야.
시계가 없어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걱정 마. 우리는 서로의 머리카락이
자란 길이를 재보며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 헤아릴 수 있을 테니깐.
(p.167~168 ‘그대와 기억에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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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은 사람이 자주 오고가는 길은 아니었다. 마을 한쪽 구석에 있는 길은 산 정상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산 정상에는 오래된 산장이 하나 있다고들 했다. 나는 그 길을 따라
산장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넌 사륜구동 오토바이를 타고 흙먼저리를 폴폴 날리며 내려
오는 길이었다. 오후가 막 시작되려고 하는 시간에 우리는 어느 길목에서 마주친 것이다.
워낙 인적이 없는 길이기에 우리가 마주쳤을 때는 인사 대신 작은 미소만 주고받았다.
그런 다음, 다시 갈 길을 가려는데 네가 뒤를 돌아내게 소리쳤다.
“어디로 가는 거야?” (중략)
넌 모르겠지만 이게 여행인지도 몰라. 그래서 꽤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여기까지 온 것
인지도 몰라. 마치 돌과 돌이 부딪혀서 불꽃을 만드는 것 같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데
정말로 굉장한 그 무엇을 만나게 되는 그런……
언젠가 너도 나처럼 먼 길을 떠나게 된다면 길에서 만난 누군가가 ‘거기 가면 아무 것도 없어’
라고 말해도 계속해서 그 길을 가보렴. 그땐 내 고집을 그리고 한 걸음 다가가면 두 걸음씩
세 걸음씩 가까워지는 길들의 풍경을 조금은 이해하게 될지도 몰라.
(p.51~54. ‘이런 게 여행인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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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역에서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버스를 혼자 기다리는 슬픔, 절대 이해 못하는
열차 시간표를 손에 쥐고 내릴 역을 놓칠까봐 두려워하는 슬픔, 배낭 밑에 쑤셔박혀
너덜너덜해진 마종기 시집의 슬픔, 오해 받는 슬픔, 여긴 분명 내가 있을 곳이 아닌데
머물 수 밖에 없는 슬픔, 내 어깨에 올라탄 늙은 유령 같은 음침한 배낭의 슬픔,
내 부족한 영어의 슬픔, 부러져버린 칫솔의 슬픔, 흔들리는 앞니의 슬픔, 어딘가 부엌
에서 훔쳐온 숟가락의 슬픔,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짐짝처럼 눕혀진 내 몸의 슬픔
(p.298 ‘나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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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달콤한 것. 키스는 하고나서보다 안절부절이 더 달달한 법. 품에 안고 나서의 포근함
보다 안기 직전의 싸늘함이 더 설레는 법. 사랑은 하고나서보다 하기 전에 더 가치가 있는 법.
그리고 우리가 하나가 되고나서보다 하나가 되기 전에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 더 진짜인 법.
쉽게 사랑하지 마. 쉽게 받아들이지 마. 쉽게 달아오르지 마. 쉽게 식지도 마.
그냥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서로를 사랑하다 보온병에 담긴 물처럼 서서히 식어가다 비워지는
거지. 그리고 그 빈 보온병에 영원히 우리의 사랑을 우리의 기억을 담아두는 거지.
(p.110. ‘내가 널 사랑할 때’)
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었고, 좀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하며, 좀 더 많은 길을 걷고 싶었다.
그리고 좀 더 멋진 사람이 되는 것.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평범했고 참을 수 없이 무기력했다.
그래도 적당한 때가 온다면 그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한 희망과 함께했다.
어느 날 아무리 학수고대해봤자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과 세상이 그에게 호락호락
그런 걸 선물하지 않을 거라는 세상의 의도를 알게 된 순간, 봄날의 나비처럼 가벼운 소년에서
음이 틀어진 묵직한 피아노 같은 어른이 되어버렸다.
묵직한 피아노가 된 이후, 무기력하고 용기 없는 자신이 불안하고 불행하다 생각해 노트 위에
그동안 원하던 모든 것들을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으며 문장들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어느 순간 길어져 문자가 되었고 문자는 편지가 되었으며 그 편지는
길어져 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책날개, 작가의 프로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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