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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지 않은 작가의 순수한 단편 소설집 - 박민규『더블』

“한 달에 3주는 춘천의 집필실에서 오로지 읽고 쓰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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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성실한 작가다. “한 달에 3주는 춘천의 집필실에서 오로지 읽고 쓰기만” 하는 그는 “오로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방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습관의 힘”밖에 없다고 말한다.


『더블』은 뭐라도 된 느낌이 싫은 복면 작가의 선물집”

『더블』
LP판처럼 구성된 두 권의 단편집이다. LP시절의 <더블앨범>의 로망으로 실제 LP판 같은 사이즈를 구현하려 하였으나, 현실의 벽에 좌초. 기존의 소설집보다 가로 길이가 길어져 대략 정사각형 모양을 갖추고 있다. “많은 부분을 포기하면서도 꼭, 반드시 넣고 싶었던 것은” 속지였다. “핑크 플로이드와 레드 제플린, 비틀즈와 롤링스톤즈… 그 무수했던 더블 쟈켓의 아트웍 속에는 반드시, 꼭, 한 장의 속지가 들어 있었”기에. 박민규는 두 권의 책 사이에 ‘속지’를 넣었다. 수록곡 리스트와 가사집처럼 소설의 제목과 한 대목, 그리고 일러스트 화집이 실려 있다.

마치 뭐라도 된 느낌이 싫은
“그냥 글 쓰고, 청소하고, 음식물 쓰레기 버리며 한가히 지내는 것이 좋아요. 마치 내가 뭐라도 된 느낌이 싫어서” 상을 받는 일도 썩 반갑지 않고, 인터뷰도 사절이다. “즉흥적으로 좋을 대로 쓴 글”이 뭐라도 된 느낌이 싫어서인지, 이번에는 “약력이며 추천사, 또 해설 같은 것”도 모두 걷어냈다. 작가 이름과 소설, 뿐이다. 여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은 채 독자는 소설과 단도직입적으로 만난다. 마치 뭐라도 된 느낌이 싫어서, 박민규 작가는 정면으로 승부한다. 맨 얼굴이 아니라, 맨 소설로.

‘블루 데몬’ 복면 작가의
복면 쓴 박민규의 얼굴과 사진이 각각 두 권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멕시코의 전설적인 레슬러 ‘엘 산토와 블루 데몬’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단다. 그는 지난 해 황순원 문학상 수상식 때도 ‘블루 데몬’ 복면을 쓰고 나타났다. 공식 석상에는 으레 커다란 색안경이나 고글을 끼고 나타났다. 사연인즉, 잡지사의 사진기자로 일하는 동안 매체에 대한 낯선 시각을 갖게 되었고, 등단을 하면 평소와 다른 모습의 사진을 찍기로 다짐, 독특한 사진 뒤에 본인은 숨어 살겠다 다짐했다,고.

선물집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나의 전부인 아내”를 위해 쓴 것이라고, 그 밖의 소설 역시 늘 아내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혀 온 박민규 작가. 이번 『더블』에 실린 각 단편은 모두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쓰였다. 누군가란, 이를테면, 부모님, 아서 C 클라크, 사무엘 베케트, 스티븐 호킹, 구글의 창시자 래리 페이지와 서지 브린 등. “왜? 라고 그들이 묻는다면 뭐? 라고 나는 답할 것이다.”


“박민규는 성실하고, 순수하지 않은, 2000년대 최고의 작가”

박민규는 성실하고
그는 성실한 작가다. “한 달에 3주는 춘천의 집필실에서 오로지 읽고 쓰기만” 하는 그는 “오로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방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습관의 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상문학상에 당선되어 쓴 자서전에 그는, 작업실에서 의자 대신 사용하는 휠체어를 공개했다. 말없이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휠체어에 앉아서 그는 쓴다. 산출량도 어마어마하다. 2005년 단편집 『카스테라』 이후 5년 동안 스물 네 편의 단편을 써서 18편을 『더블』에 실었다. 그 사이에 장편집 『핑퐁』(2006)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2009)를 내기도 했다. 지금도 역시 구상을 마친 장편소설 두 권을 동시에 쓰고 있다.

“순수”하지 않은
그가 처음 등단하며 새롭다는 찬사를 쏟아지게 받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제 문학이 이제 변했다고 말했고, 한쪽에서는 그의 독특한 행갈이나 구어체에 가까운 문장을 두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의 문학이 기존의 문학과 달리 ‘순수’하지 않았기 때문. 순수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조까라 마이씽이다’라는, 다소 격한 제목의 글을 잡지에 기고해 화제가 됐었다.

“어디 주소라도 있는 사무실인줄 알았다는” 문단의 ‘근친상간’ 실태와 자꾸만 ‘위기 운운’하는 풍경이 작가를 좀스럽게 만든다는 것. 출간 직전 타 매체의 인터뷰를 통해서 한결같은 그 마음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글은, ‘꼴린 대로 쓸 권리가 있다고’. “욕심이 있다면 지금 크는 애들이 『더블』을 읽고 아무거나 쓰면 되는 거네, 하는 마인드를 가질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순수라는 말에 구애받지 않고.”

2000년대 최고의 작가
최근 <한겨레21>에서 진행된, ‘젊은 평론가가 꼽은 2000년대 최고의 작가’에 박민규는 68명의 지지를 얻으며 첫 번째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함돈균 평론가는 “바야흐로 2000년대는 루저들의 시대다. 아 그런데 이야기는 왜 이렇게 웃긴단 말이냐”라고, 이선우 평론가는 “딱 한 명만 짚으라면, 어쩔 수 없이 박민규”라고 말했다.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자리에서 빚어진 소설, 그러니까 순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력적이었단 얘기. 이효석 문학상(2007), 황순원 문학상(2009), 이상문학상(2010)에 선정되었다.
그리하여 지금 박민규 작가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독자와 평론가들에게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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