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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 황제, 벌써 데뷔 20년

신승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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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대중가요의 주류는 댄스 음악이지만 우리의 정서에 깊이 색인되어 있는 한 서린 마음을 대변하는 것은 명실상부 발라드다. 그 중심엔 신승훈 그가 있다.

신승훈 20년이다. 현재 한국 대중가요의 주류는 댄스 음악이지만 우리의 정서에 깊이 색인되어 있는 한 서린 마음을 대변하는 것은 명실상부 발라드다. 그 중심엔 신승훈 그가 있다. 이미 ‘발라드의 황태자’라는 칭호가 당연하고 무색할 정도지만 다른 어떠한 형용으로 표현되기 또한 어렵다. 이제는 국민가수라는 자긍심과 그 만큼의 기대를 떠안은 그를 만나 지난 20년을 회고해보고 근황을 들어봤다. 서울 청담동의 카페에서 2시간여 진행된 인터뷰는 활기차고 동시에 진지했으며 20년을 음악에 몸담은 가수가 아닌 앞으로의 또 다른 20년을 내다보는 역동적인 꿈틀거림의 ‘신인’을 만난 듯 했다.


데뷔 했던 20년 전에도 이렇게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나.

“못했죠. 우선 가요계가 격변하던 시기였고, 마침 유재하 선배님과 김현식 선배님이 돌아가시니까 갈팡질팡했죠. 그전에는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거든요. 김현식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공연도 많이 하시고 주위 뮤지션들에게까지 남자다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신 전설로 남아 계셨거든요. 그런 분들을 보면서 지금에 와서 후배들에게 잘해주는 법을 배웠던 것 같아요.”

20년을 채웠다는 것에 주위의 반응은 어떻던가. 특히 선배 아티스트들에게서.

“제가 앨범을 마스터링한지 얼마 안 되었어요. 그런데도 김수현 드라마 작가님께서 이번에 쇼케이스를 했다는 소식을 들으셨는지 휴대폰 문자로 ‘눈부셨던 20년, 또 20년을 더해서 찬란하게 보내시길’이라고 격려해주시더라고요. 김수현 작가님께서 예전부터 저에게 관심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작년에는 심지어 공연에 직접 오시기도 했고요.”

조용필씨 반응은 어떨 것 같나. 신승훈의 롤 모델이기도 한데.

“워낙 바쁘신 상태라 아직 대화를 나눠보지는 못했어요. 얼마 전까지도 외국에 계셨고. 축하한다는 말을 꼭 받아내려고요.(웃음) 하지만 이러실 걸요. “그래? 그거밖에 안됐어?”(웃음)”

트리뷰트 앨범이라는 의미 깊은 기획을 추진했다. 시작은 어떻게 되었나.

“먼저 엠넷 쪽에서 추진해보자는 연락이 왔었어요. 엠넷에는 MKMF(Mnet Asian Music Awards)를 지금까지 이어오며 음악의 측면에서 강자라고 할 수 있는 홍수현 PD 같은 분들이 있거든요. 그런 PD들과 술자리를 가지면 아무래도 음악 채널이어서 그랬는지 신승훈 데뷔 20주년인데 그냥 이대로 보내야 하겠냐고 말하더라고요. 대화의 물꼬도 롤링 스톤즈였고요. 형님도 이런 것 꼭 하셔야된다고. 처음부터 긍정적인 자세는 아니었어요. 트리뷰트는 왠지 오래 했으니까 ‘이제는 쉬시라’는 느낌이 있는데, 저는 아직도 긴장하며 음악하고 싶은데 달갑지는 않았죠. 데뷔 30년 정도면 모를까, 20주년이라고 종지부를 찍는 듯한 이벤트는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어차피 한번은 짚고 건너야 할 징검다리이지 않나.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남들이나 후배들이 한 번도 제 곡을 부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어요. 그래서 다양한 스타일을 가진 후배들, 다비치나 슈프림 팀 같은 친구들과 접촉하기 시작했죠. 트렌디한 가요를 하는 후배, 미국의 팝 적인 스타일을 하는 후배들, 힙합 스타일의 후배들, 이런 식으로요. 또 좋은 실력을 가진 후배들을 조명 받게 하고도 싶었어요. 예를 들어 이번에 알리와 나비와 같이 노래를 부른 탐탐의 경우에는 원래 알앤비를 하는 친구이고 보이스가 워낙 좋은 친구에요. 하지만 데뷔 무대 딱 한번 하고 교통사고를 당해서 쇄골 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육 개월 동안 방송을 못했던 친구라 아쉬움이 컸죠. 걸 그룹 중에도 노래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너무 퍼포먼스 위주의 무대만 부각되다보니 아쉬움이 커요.”

걸 그룹 중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시스타에 효린인가? 그 친구가 굉장히 노래를 잘하는데 콘셉트 자체가 퍼포먼스 위주가 되다보니 아쉬웠죠. 충분히 잠재되어 있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많을 텐데 말이죠. 과거에만 해도 박정현부터해서 거미, 화요비 같이 디바의 분위기가 나는 가수들이 있었잖아요.”

감회는 어떤가.

“감회가 새롭다 이런 것은 아닌 것 같고요. 지금도 할 일이 많아서 언제나 ing(진행형) 상황이에요. 그동안 너무 바빴고 정신이 없다보니 내가 놓쳤던 것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눈에 보이더라고요. 음악적이나 인간적으로도요.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들도 못 만났었고요. 가수로서의 20년을 바라보기에도 너무 바빠요. 앞으로의 20년을 더 봐야하니까요.”

매번 한류를 다루는 매체에서 언급되는 떠들썩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티스트의 자세로 2005년부터 일본에서 꾸준히 자기 지분을 쌓아왔다. 성과를 자평한다면.

“저는 원래 7∼8년 정도 바라보고 갔거든요. 비주얼적으로 화려하게 알려지는 방식보다 저는 공연을 통해서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3년 정도는 공연에 매진하며 계속 일본 대중에게 제 노래를 들려줘야 그나마 알려질 수 있어요. 이제는 반응이 서서히 오는 것이 느껴져요. 저는 단순히 신승훈을 좋아한다는 것과 알아간다는 것은 다르다고 봐요. 예전에는 “신승훈 알아요?” 하면 “몰라요”하다가도 “I believe 알아요?”하면 “네, 알아요”라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신승훈 알아요?”하면 “네, 좋아해요”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이제 시작이죠.”

많은 한국 가수들이 진출했지만, 아티스트의 개념으로는 사실상 첫 케이스가 아닌가.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계약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어요. 처음에는 한류 배우들이 인기를 얻다가 지금은 케이팝이라고해서 인기를 얻고 있잖아요. 하지만 제가 처음에 진출했을 때는 레코드점에 가요가 우즈베키스탄 칸 옆에 시디가 있었어요. 분명 한류가 있었지만 거의 배우가 90%이상이었던 것이죠.”

데뷔 이래 많은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궁금증이 있다. 스캔들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인데. 아직 결혼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라는 발언은 수긍이 가지만 그 동안 연애를 못해봤다는 말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저는 이미 2집 때 여러분들에게 힌트를 드렸거든요? 하지만 전 국민들이 그 힌트를 아무도 못 알아채더라고요. “보이지 않게 사랑할거야∼”라고 분명히 약속하고 제 의지를 표명했는데요. 물론 제가 수도승도 아닌 이상 이성에 대한 호감은 있죠. 하지만 저는 스캔들이라는 단어 자체가 싫더라고요. 일반인들은 로맨스고 연예인들은 스캔들 났다고 그러잖아요. 스캔들은 정치 스캔들이 스캔들이지. (웃음) 저도 사람이다 보니 상대방에게 끌리고 반대로 끌림을 당했던 경험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중간에 앨범 활동이 있다 보니 만남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없겠더라고요.”

결혼 생각이 있을 텐데 음악생활이 걸림돌이 되었다는 말인가.

“제가 일본진출하면서 국외로 한 달 정도 있다가 오고 그러는데 어떤 여자가 기다리고 있겠어요. 저는 이제 이성을 만나면 공개를 해야 돼요. 어디서 몰래 만날 수도 없어요. 누구 만난다고 소문나면 무조건 결혼 이야기로 갈걸? ‘신승훈 결혼 임박!’ 이렇게. 저는 상대방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떳떳하게 공개할 수는 있는데 사람일이라는 게 만약에 잘 안 되었을 경우에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세요. “저 여자, 신승훈이랑 사귀었다가 깨진 사람 맞지?” 이런 식으로 평생 지울 수 없는 꼬리표가 될 수도 있잖아요.”

아직도 왜 혼자일까라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겁다.

“<승승장구> 녹화를 했는데 리플들을 보니까 너무 장난 아닌 게 많더라고요. 심지어는 뭐 성 정체성을 거론하고 그러니까. (웃음) 제가 살아가는 삶을 일반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나 봐요. 물론 이해는 해요. 저 스스로가 너무 평범하게 자라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광기가 없으면 그 수많은 대중들을 울릴 수가 없거든요. 일단 무대 위에서는 그들과 기 싸움을 벌여야 하니까요.”


자기 영역을 이루며 일본 활동을 하면서 제일 즐거웠던 순간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저를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을 때 제일 뿌듯했어요. 일본에서 공연 피날레를 장식하면서 딱 눈을 감고 박수소리를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눈을 떠보니 관객들이 전부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거예요. 웬만한 일본 공연에서는 기립박수가 안 나온대요. 그럼 왜 그랬을까하고 물어보니 저한테는 뭔가 사람을 울컥울컥하게 만드는 이상한 것이 있데요. 한의 정서를 담은 목소리라서 이를 통해 겪은 감동이 박수로는 모자라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거죠.”

일본 이외의 아시안 시장의 성과는 어떤가.

“사실 일본이랑 한국하기에도 바빴어요. 싱가포르나 중국에서 공연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는 있어요. 아시다시피 아시아에서 중국을 제일 먼저 들어갔다가 활동 중간에 일본에서 러브콜이 들어왔던 것이었어요. 일본만 해도 12월에 앨범이 나올 예정이라면 아무리 못해도 9월에는 마스터링을 완료해야하니까 일정이 빡빡할 수밖에 없죠. 그러면 한국 팬들께서는 일본 활동만 하면 “아예 일본 가서 사세요.”라고 투정하세요. 그러면 또 2개월 한국에 있다가고. 그러면서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가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프로모터와도 활동 상의하고. 그래서 요즘 느끼는 점은 음악작업을 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싱어송라이터의 비중을 좀 줄여보는 것도 어떤가 생각해요. 그 곡 잘 쓰는 스티비 원더도 다른 사람 곡을 받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또 문제가 다른 작곡가 후배에게 곡 좀 써달라고 하면 한 3개월 있다가 도저히 못 쓰겠다고 사정을 해요. 저의 노래를 듣고 자랐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부담을 많이 느끼나 봐요. 그런 상황이 되니 차라리 나를 생각하지 말고 그냥 쓰라고 주문해요. 신승훈 스타일이 아닌 곡을 불러보고 싶은 의도도 있고요. 하지만 그래도 못 쓰겠다는 반응에 대비해서 아예 4∼5 곡은 여유분으로 제가 만들어 놓아요.”

이번 20주년 앨범이 프로듀서의 행보를 내딛는 신호탄인 셈인가.

“그렇죠. 이번에 작업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는데 여자가수에게 제 노래가 그렇게 어울릴지 몰랐어요. 다비치가 「두 번 헤어진 일」을 불렀을 때 깜짝 놀랐어요. 개인적인 감탄뿐만 아니라 온라인 차트에서도 1, 2위를 하니까 사람들이 신곡인줄 아나 봐요. 그러다 이 곡이 신승훈 곡이라는 사실을 알고 원곡도 들어보고, 그러면서 이렇게 느낌이 다르네? 라고 발견하고. 기존의 팬 분들은 처음에는 리메이크 앨범에 찬성을 안 하시다가 노래를 들어보고 그나마 선방했네? 라는 반응이세요(웃음) 개인적으로는 앨범 기획을 너무 잘한 것 같아요. 제 노래가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라고 깨달았으니까요.”

참여한 후배가수들의 태도를 듣고 싶다.

“예를 들면 다비치가 나오자마자 음원차트에서 1위를 해버리니까 어떤 팀들은 믹싱을 다시 했어요.(웃음) 경쟁심이 생기더라고요.”

앨범 구성은 어떻게 되나. 8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했다던데.

“CD 1은 제가 부른 13곡이 들어가고요 후배들이 채운 시디 2가 총 7곡으로 채워져서 20곡을 맞췄어요. 20주년에 맞춰서.”

8명의 아티스트인데 1명이 비는데?

“유키 구라모토(倉本 裕基)의 연주곡이 CD1에 수록되었어요. 저녁에 사케 한 잔 드신 뒤에, 아침에 녹음실 잡아드리고 연주 쫙 한 번 하시고 저에게 축하합니다 한마디 인사하시고 가셨죠.”

나머지 7곡은 어떻게 되나

“우선 「엄마야」요. 원곡 스타일은 디스코인데 다른 사람에게 맡긴 것이 있고 「널 위한 이별」도 있고요. 「비상」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사람이 하나 불렀고요. 최근에 나온 축에 있는 곡은 「나비효과」가 있어요. 이 곡은 누가 불렀으면 좋겠다하고 전화했는데 다행히 흔쾌히 승낙해서 무척 잘 나온 곡이 되었죠. 「로미오 & 줄리엣」이랑 「전설 속의 그 누군가처럼」은 이미 공개를 했고요.”

<3 Waves Of Unexpected Twist>는 현재 교착상태인가.

“모던 록과 알앤비를 시도하고 못했죠.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작업 동안에 후배 싱어송라이터와 처음으로 교류를 많이 했어요. 슈프림 팀(Supreme Team)의 곡을 프로듀싱한 프라이머리(Primary)를 이번 기회에 만나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모던 록뿐만 아니라 전 장르를 구사하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자주 보자고 그랬죠.”

프라이머리를 제외하고 각 곡의 프로듀싱은 직접 한 것인가.

“네. 참여한 후배들의 대다수가 녹음실도 없고 디렉터도 없어서 저랑 황성제랑 같이 앉아서 편곡을 같이 했죠. 제가 보이스 가이드도 해줬고.”

슈퍼스타 K를 본적 있는가.

“네. 한 번도 안 빼놓고 봤어요. 이번에는 ‘시월에 눈내리는 마을’이라는 제 콘서트에서 허각, 존박, 장재인, 강승윤 네 친구가 제 노래를 가지고 노래를 불러요. 엠넷이랑 개인적으로 친분도 있지만 음악채널로 고무적인 일을 했다고 봐요. 지상파 방송조차 긴장할 수 있게 만든 것도 너무 놀라웠고.”

대표 보컬리스트로서 어떻게 들었나. 우승한 허각이나.

“딱 26살의 창법이죠. 그 나이 또래에 경우에는 휘성 같은 친구들이 있어서 그런지 소울적인 감성이 가창에 묻어나는 것이고요. 어렸을 때 들었던 음악들이 자신의 노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죠. 걱정되는 것은 지금 15살 정도의 가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나중에 10년 뒤에 25살이 되면 어떤 음악에 영향을 받은 형태로 성장 할 것인지 에요. 지금은 소울적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 후배들의 멘토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제가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든 게 농담으로 “나도 디지털 음반으로만 해볼까” 그러면 애들이 “형만이라도 제발 좀.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니야?”이래요.(웃음)”


신승훈은 상업적인 광고도 출연해오지 않았다.

“안 할 거예요. 여태까지도 안 해왔고. 그런 것은 있어요. 언젠가는 사회의 환원을 해야 할 때가 오거든요. 만약에 공익적인 의도로 누구를 도와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할 의향이 있죠. 많은 분들이 그런 모습을 보시고 “이제 신승훈도 베푸는 구나.”라고 좋아해주시면 저도 참 훈훈할 것 같아요.”

최근 들어서 유난히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면.

“거의 안 들었어요. 음악을 끊었거든요. 비욘세(Beyonce)가 요즘에 어떤 음악을 했는지 잘 몰라요. 최근에 에미넴(Eminem)과 리한나(Rihanna)가 같이 부른 것을 보고 저거 뭐냐라고 물어보니까 “저걸 형이 몰라요? 요즘 난리난건데.” 그럴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은 음악을 들으면 제가 혼돈에 빠질 것 같아요. 코드 후크송이라고 네 코드 가지고 계속 돌리고 있거든요. 이게 단지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선진국이라고 할 만한 외국도 그럴 정도인데요.”

「애이불비(哀而不悲)」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타이틀곡은 아니었지만 첼로가 부각되는 오케스트라 세션이 묵직한 “매력을 가진 곡이었는데. 신승훈의 음악적 모토인 애이불비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곡이기도 하고.

「애이불비」는 팬들도 돌려놔라고 투쟁하고 있는 노래에요. 왜 홍보를 안 했느냐라고. 김소월 시인께서 표현하신 슬프지만 울지 않는다라는 개념이 바로 제 음악을 대변하는 표현 자체에요. 그런 사상으로 곡을 만들었는데 사실은 그 당시의 트렌드에서 너무 벗어나 있지 않았는가 싶어요.”


공연에서 그 한을 풀어도 좋을 것 같은데.

“공연에서 할 거에요. 오케스트라도 써서. 크리스마스 공연과 20주년을 맞아서 진행할 전국투어를 통해서 가장 아쉬웠던 곡들만 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아시다시피 7집까지만 TV 활동을 하고 그 이후로는 거의 안 했어요. 일단 순위프로그램도 거의 없어졌고, 그 이외에는 새벽에 방송하는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프로그램 밖에 없잖아요. 그렇다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을 해야 한다는 ?인데, 그것은 신승훈을 보여주는 것이지, 신승훈 노래가 알려지는 것이 아니거든. 프로그램 끝에 뮤직비디오만 한 30초 틀어주려나?(웃음) 결국에 제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 자체가 콘서트 밖에 없었어요. 공연은 필연적으로 방송에 비해서 메이저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전국 투어하면서 순천 같은 도시 내려가면 관객들이 “요즘 뭐하세요? 쉬시나 봐요.” 이럴 거야. (웃음) 모르지, 서울 공연 정도는 연예가 중계 같은 곳에서 좀 와줄지. 공연 위주 활동을 하게 되면서 저에게 큰 관심이 없으신 분들에게는 제가 활동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죠. 예전에 영광에 비교를 한다면. 그러면서 “활동 좀 하세요.”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저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어요. “그럼 제가 어디를 나갈까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죠.”

라디오를 통한 활동도 가능할 것 같은데.

“라디오도 하긴 했는데 아마 바빠서 못 들으셨을 거예요. 또 간혹 그러세요. “왜 보이지 않는 사랑 같은 노래 안 만드세요?”라고. 그 당시 중학교 2학년 정도 또래에 들었던 분들에게는 지금 객관적으로 더 좋은 노래를 만들어도 절대로 그 때처럼 좋게 안 들릴 거예요. 나이를 먹게 되면서 남자친구도 사귀었다가 헤어지고, 주변의 친구들 이야기도 들으면서 때가 묻게 된 거지. 또 당시처럼 해방의 창구가 노래밖에 없어서 감성이 스펀지처럼 무조건 받아들이던 시대도 아니잖아요. 그런 변화를 간과하고 “감동이 없어요, 노래 이상해요” 그건 아니지. 저도 괴리감을 느껴요. 20년이나 하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저도 당시의 감성을 이제는 못 느끼는데.(웃음) ‘이젠 널 잊어’ 이런 당시의 가사를 지금 저도 “아, 유치해”라고 생각하는데요. 다비치가 부르고 나서 신곡 같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내가 그 곡을 부르면 또 “아, 신승훈이 쓴 곡이네?”라고 느끼는 것 처럼요. 내 목소리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색깔이 너무 진하니까.”


그런 면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신승훈표 발라드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곡이다. 당시에도 음악적인 다양성을 꾀하려는 시도였던 것인가.

“「로미오와 줄리엣」은 “신승훈, 너 댄스곡 못 쓰지?”라는 말에 욱해서 썼던 거죠. 무슨 엄청난 의도를 가지고 탄생한 것이 아니라. 베토벤의 「운명」도 철저한 계획 하에 쓴 것이 아니라 식사하다가 쓰셨을 수도 있었을 것 같고 그래요. 코카콜라 병도 그랬다고 하잖아요. 집에서 아무리 그려도 마음에 드는 병이 안 나오다가 “이만 잡시다”하고 자려하는데 형광등을 끄려는 와이프의 뒷모습을 보고 그린 것이 코카콜라 병이라잖아요.

다양한 느낌을 주고도 싶었죠. 그 때부터 공연에 미쳐있었던 것이죠. 저를 보러오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차가 엄청 막히는데도 오시고, 추운 겨울날 밖에서 8시간 기다렸다가 들어오는 분들에게 “제 노래는 슬픔밖에 없어요. 이거 들으세요.” 그런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을 다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그만큼 한 노래가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좋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그거 하나는 내가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사랑’같은 경우에는 2천만 명이었던 거지.”


오랜 활동 기간 동안 창작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유지 방법이라도 있나.

“솔직히 마흔 살을 넘어 뭐가 생기냐면 관조하게 되어요. 해본 것을 다시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 거지. 축적된 노하우는 장난 아니죠. 10분 안에 뜰만한 가사를 다 쓸 수 있을 정도가 되거든요. 근데 제가 기존에 이미 다 썼으니까 안 쓰는 거고 새로운 모토가 될 장르가 나올 때까지 참는 것이죠. 치기어린 열정으로 결과물을 쏟아내는 열정보다는 남이 뭐라고 하든지 신경 쓰지 않고 관조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낚시터에서 월척 기다리듯이. 저 쪽에서 남들이 뭐 잡았다 하거나 말거나, 저 사람 이상한 것 같아라고 하거나 말거나. 그렇게 기다리다가 하나 큰 거 잡는 기분? 그런데 기다리는 미학에 우리나라에서는 박수를 안 쳐주는 것 같아요. 장인정신이라는 것이 추앙을 못 받고 EBS 교육방송의 프로그램에서야 발견할 수 있는 분위기. 일본 같은 경우에는 3대 떡집이 있으면 매우 경외한단 말이죠. 우리나라 같으면 “저 집은 떡집을 무슨 3대로 하네?”의 차헭인 것이죠.”

충분한 음악적 캐리어를 쌓아 온 아티스트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장면은 안 하던 장르에 손을 대는 바람에 대중적인 접점이 멀어지는 사례다.

“보통 이상한 음악을 하고 나면 변명을 해요. “아, 대중들이 나를 몰라주네.” 정말 큰일 날 짓을 하는 거야. 앞서더라도 반걸음 정도 보조를 맞추면서 따라오게 해야지 자기는 두 걸음 앞서놓고 “나를 못 알아주네.” 그건 잘못된 것이죠. 가끔씩 우월감에서 비롯된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아직 대중가수인 것이 자랑스럽거든요. 그런데 클래식하시는 분들 중에 일부는 은근히 대중가요 무시하는 사람이 있어요. 오케스트라와 같이 작업하면서도 신경이 쓰이니까 제가 “거기 피아노분, E플랫 검은 건반 치지마세요”라고 틀린 거 찍어내면 은근히 무시했다가 깜짝 놀라죠. 예전에 「보이지 않는 사랑」때도 초반부에 “이히 리베∼” 불렀던 분도 나중에 학교 가서 혼나고 그랬데요.”

작년에 일본 활동에서 수입 면에서도 호성적을 내었다고 들었는데. 투어 매출이 100억이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전체 매출이 100억이라는 것이고. 제게 돌아오는 순수익은 적어요. (웃음) 70명의 스태프가 있고, 밴드, 오케스트라도 다 가야하는 공연인지라.”

그동안 O.S.T 참여도 활발했다. 이유가 있다면.

“일단은 우리나라 팬들에게 앨범을 못 내주니까 궁금해질 때 한번 씩 해줘야하는 의무가 있어요. 정규앨범은 저에게 굉장한 부담이에요. 앨범을 10장을 냈지만 이는 곧 애를 10명을 낳은 거랑 똑같은 것이에요. 한장 한장 낼 때마다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그러니까 팬들도 “다른 분 곡 받으세요. 그 대신 빨리 내세요.” 당부하시기도 하고. 팬들을 생각하는 점도 이유가 될 수 있겠고, 게다가 몸은 하나인데 뛰어야 할 곳이 너무 많아서 지금 정규 앨범을 준비하면서 공연을 하는 것이 도저히 가능할 수가 없습니다. 그 대안이 O.S.T였죠. 요즘에는 한류 드라마가 있기 때문에 영상을 통해서 신승훈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커요.

그리고 제가 워낙 영화를 좋아해서. 이번에 드라마 <도망자 Plan B>같은 경우에도 곡 작업하기 전에 무조건 필름 보내달라고 했어요. 미리 찍어놓은 것이라도 빨리 보내달라고 요청해요. 필리핀에서 찍어온 것이 있다고 해서 보고 나서 10분 안에 썼거든요. 그랬음에도 <추노>까지 담당했던 실력 있는 <도망자 Plan B> 음악 팀이 한 번 듣고 오케이 했다니까. 아이리스 같은 경우에도 4회인가 5회분을 보고 썼어요. 그런 영상들을 보면 화면 밑에 넘버 돌아가고 감독들이나 보는 버전이거든요. 영상을 봤다 라면 멜로디가 딱 나오는데 아무 것도 못 보면 절대로 구상이 안돼요. 요즘에 어떻게라도 끼워 맞추면 뜨겠지 하는 상업적인 모습도 보이지만 적어도 진정성이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신념이 있어요.”


본인이 운영하고 있는 도로시 뮤직에서 신인 아티스트를 발굴할 가능성은 없는가.

“박진영이나 양현석이 지금 신인들을 키우고 있는데 신승훈은 자체 녹음실도 있음에도 신인을 왜 육성 안 하냐라고 많이들 물어 와요. 이유는 딱하나. 진짜 대박하나. 지금은 이렇게 바쁜데 아이돌 그룹을 어떻게 캐스팅하고 훈련 시켜서 나오게 하냐고요. 아직까지 연습생도 없어요. 하지만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너무 많은 것을 느꼈어요. 지금까지 제 노래는 제가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로 저만 불렀거든요. 이제는 작곡가로서 활동을 할 생각이에요. 제가 쓴 곡을 남에게 한 번도 준적이 없잖아요.”

세간에 퀸시 존스(Quincy Jones)와 연계하여 미국 진출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 이야기는 2000년부터 있었어요. 「전설속의 누군가처럼」 노래를 듣고 필 콜린스(Phil Collins)랑 같이 연주하는 팀이 접촉을 했던 거죠. 필 콜린스가 에이전시도 운영하고 있는데 연락이 와서 신승훈씨의 곡을 사고 싶다라고 제의를 했었죠. 의아했던 것이 내 노래는 미국정서랑 전혀 안 맞는데 「전설속의 누군가처럼」 그거 한 곡 듣고 그런 스타일의 곡을 쓰는 줄 알았나 봐요. 헭 노래는 정말 파퓰러하다라고 칭찬해주다가 나머지 곡을 들려주니까 “에잉? 신승훈이 왜 이런 음악하지?”라고 궁금해 하기도하고. 지금까지 연락의 끈을 이어오고 있어요.

다른 스타일의 곡, 예를 들면 뉴 에이지 스타일의 곡을 써보기도 하는데 막상 하나 써보면 내가 창피해서 못 주겠는 거야. 하지만 뭔가 내가 생각해도 명곡이 빵 터져서 내가 먹히겠다 싶을 때, 그 때서야 간다는 생각이에요. 「미소속의 비친 그대」도 처음에는 저도 타이틀곡이 될지 몰랐어요. 하지만 반응이 좋게 되니 “어? 나도 곡을 쓸 줄 아네?”라고 자부심을 가지게 되면서 그 이후부터 대중을 슬프게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낀 거죠. 굳이 저 뿐만 아니라 교량의 역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요즘에는 국내에도 팝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니까.”


현재 들어서 눈여겨보았거나 기대되는 보컬이 있다면.

“(반문하며) 혹시 있나요? 예전에는 있었잖아요. 박효신도 그렇고. 휘성도 그렇고. 그렇다고 요즘에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있어요! 그런데 기획사가 먼저 상품으로 가수를 배출하니까 그들이 어떤 능력이 있는지 포장이 된 상태다보니 나와도 모르는 거야. 원래는 초콜릿인데 케이크 상자에 포장되어서 나오니 케이크 상자 안에 초콜릿이 있는지 모르는 거지. 이해는 하죠. 당연히. 일단은 신인으로 나올 때는 기획사의 기획대로 나오되, 경력을 쌓아가면서 숨은 재능들이 나오게 된다면 솔로로도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누구 있나요? 요즘 음악을 듣는 세대들도 없다고 하는데.”

우울한 이야기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들이 좀 더 뜨게 되면 어디 탤런트나 이런 데로 갈까봐 겁나. 그 뒤로부터는 진정한 가수가 아닌 것이잖아요. 엔터테이너라는 개념으로는 좋아. 하지만 10년이 지났을 때에는 이미 직계후배가 없는 것이지. 나중에는 가요계가 다 공중분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도 들고.”

20년 동안 가요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환경의 변화를 몸으로 체감하나.

“집에 시디가 만 오천장이 넘어요. 심지어는 작곡가 김형석 씨도 저에게 물어봐서 “승훈씨, 앨범 뭐 사야 돼?”라고 하면, “이런 건 좋고. 이 앨범은 절대 사지마.” 추천해주는 맛이 있게 돼요. 음악을 많이 듣고 음반을 모으다 보면 그런 게 있단 말이지. 저는 한 번 레코드점 가면 50장씩 사고 그래요. 사고 난 후에 집에 가서 비닐 뜯은 뒤에 1번 트랙 딱 누르는 이런 맛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컴퓨터 한 대에 수억 곡씩 들어가 있잖아요. 시디를 모으면서 축적해온 나만의 비밀이 없어지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너는 이런 곡 모를걸?” 그런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무슨 곡 있다하면 인터넷 바로 뒤지면 나오잖아요. 이런 환경이 전체적으로 음악을 잘 안 듣게 만든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신승훈씨가 이런 노래를 했으면 좋겠다라는 소리를 들으면 너무 좋아요. 반대로 술자리에서 후배들이 오늘은 음악이야기하지 말자라고 했다가 정말 혼난 경우도 있어요. 술자리에서 이야기 안 하면 그런 이야기를 언제 하냐고요. 서로 술 기울이면서 “그거 들어봤어?” 공유하다가 “그거 뭔데? 나 모른다. 알려줘봐” 그러고 메모하고 이렇게 되어야 하는 거지.

저는 두 달 동안 미치면 음악만 듣거든요. 미국 음악 역사를 한번 쑥 훑어봐요. 이 가수가 어떤 가수의 영향을 받았는지 파악을 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예를 들어서 피-펑크(P-Funk)와 또 이 사람들의 펑크와는 뭐가 다른지도 알아보고. 계보를 모르면 절대 음악 할 수 없어요. “아, 「Without you」좋아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좋아요.” 그러고 나서 해리 닐슨(Harry Nilsson) 모르고. 뿌리를 알아야죠. 오리지널이 뭐고 변형된 것이 뭔지 알아야지. 변형된 것만 보고 거기서 또 변형을 하면 결국에는 이상한 것이 나오게 되요. 자꾸 「가잖아」를 가지고 오디션을 보겠다는데 완전 알앤비로 이상하게 꼬아서 부르면 그냥 그 자리에서 가버리라고 해요. 영혼이 없이 테크닉만 있는 것이지. 슈퍼스타 K에서도 꼬집었던 것이 그거에요. 죄다 똑같은 소몰이 창법만 나왔으니까. 그래도 그들을 욕하면 안 돼요. 그들이 중학교 때 나왔던 창법들이 다 그쪽이었기 때문에.”


걸 그룹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나는 좋은데? 좋다는 것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해요. 걸 그룹이 트렌드이고 가요계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너무 잘해. 퍼포먼스를 너무 잘해서 내가 봐도 연습을 너무 많이 했어. 연습도 많이 한 것이 대선배의 눈에 보이는데 욕을 할 수는 없어요. 결국에는 후크 송 트렌드가 온 거죠. 트렌드야 왔다가 가는 것이 트렌드잖아요. 또 다른 껆렌드가 올 것이고 걸 그룹이 뭘 하든 간에 가만있는 이유는 가요계가 너무 바닥이에요. 너무 안 좋아. 보듬어줘도 모자랄 판인 것이죠. 음악 하는 거는 바닥 치면 진짜 올라오기 힘들어요. 한번 바닥에 붙으면 5년 정도 계속 이러고 있어야 돼. 가요계 불황 이야기 나온 것도 꽤 오래되었을 걸요? 한 10년 됐을 걸.

그래도 침체가 있으면 올라가는 게 있어야하는데. 뭐가 나타나든지 간에 보듬어줘야 하는 것이 선배의 도리인 것 같아요. 그나마 걸 그룹 때문에 가요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요. 아마 걸 그룹 없었더라면 배우들 이야기밖에 안했을 걸요. 옛날 같았으면 “이승환 앨범 나왔대.” “그러면 사러가야지” “신승훈은 3월 달에 나온대.” 이런 대화가 가능했는데 요즘은 무슨 묵언수행하면서 음악을 들어. 전화하면서 이야기? 안 해. 공유를 안 해요 좋으면 자기만 알아놓지. 가요계가 이만큼 힘들어진 거예요. 걸 그룹이 맥을 못 추던 시기가 있었어요. “저것들은 무슨 자기가 요정인줄 아나?” 그러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인정을 받잖아요.”


앞으로의 행보를 예상해본다면.

“「Love o'clock」에서 모던 록을 했던 것도 나름의 파격이잖아요. 그런 소품 형식으로 곡을 발표하는 것이 일부러 골든디스크에서 선정 안 되려고 내는 것이에요. 11집을 내기 전까지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어요. 제일 조심스러웠던 반응이 저보고 장르탐험가라고 그러는 거였어요. 안정궤도에 올라왔으면 그러한 스타일로 굳히지, 왜 탐험을 하냐는 말이었죠.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불안한 거야.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예를 들어 일렉트로니카를 하고 싶은데 물론 사람들이 뭐야 그럴 수는 있죠. 하지만 실험정신은 다른 것이 아니에요. 시도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시도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인데. 장르가 특이해질 가능성도 있어요. 더럽게 안 팔릴 수도 있겠지만.(웃음)”

팬들에게 마지막 한 마디 한다면.

“20년 동안 의리를 지켜준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고, 주위를 보니까 처음 좋아했던 친구들이 지금도 가는 것 같아서 너무 고마워요. 앞으로 20년 더 남았으니까 더 긴장해서, 20년 후에 서로들 지긋한 나이가 되면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내 노래가 나왔을 때 추억에 참기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미래의 내 아들이 피아노를 치고 내가 노래를 불렀을 때 “아~ 그때 이런 일이 있었지.”하며 추억에 빠질 수 있는. 히트곡을 더 만들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그 동안 히트곡도 많았잖아요.”


인터뷰 : 임진모, 옥은실, 이종민, 홍혁의
사진 : 김동진
정리 : 옥은실
글 / 2010/10 옥은실(lamet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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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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