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독서가
고종석은 『여자들』이라는 책에서 그녀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책들이 보여주는 다감함, 날렵함, 섬세함, 유머감각 따위는, 여느 문필가가 쉽게 다다를 수 없는 경지에 있다. 나는 요네하라 마리의 충성스러운 독자다. 생전에 한 번 만나봤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숭배자이기도 하다.”
고종석이 언급한 그 경지는, 그녀가 순전히 책으로 이뤄낸 업적이다. 그녀는 모든 삶의 문제를 독서로 해결한 대단한 독서가였다. 밥을 빨리 먹는다고 참견하는 이는 있어도, 책을 빨리 읽는다고 참견하는 이는 없기에 “하루 평균 일곱 권”을 읽었다. 요네하라 마리는 난소암으로 2006년 작고했다. 죽기 직전 일주일까지 쓴 독서 일기가 잡지에 연재되었다.
◇호기심 대마왕이었던 동시통역가
공산주의 아버지 때문에,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 다녔을 때에도 독서를 통해서 러시아 어를 숙달했고, 이후에 일본으로 돌아와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며, 동시통역사가 되었다. 읽은 만큼 써낸 책도 여러 권이다.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모든 것을 호기심으로 응대했고,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발품, 글품 팔기를 마다하지 않을 만큼 부지런했다. 백과사전을 방불케 할 만큼의 지식과 더불어 문화와 언어의 경계를 파고드는 지적인 사유는 발명(『발명마니아』) 음식(『미식견문록』) 책(『대단한 책』) 상식과 정의(『마녀의 한 다스』) 등등 다양한 문화 코드와 접합해 개성 넘치는 스파크를 튀겨냈다. 그런 그녀, 이번에는 팬티다.
『교양노트』와 『팬티의 인문학』 요네하라 마리의 책 두 권이 새로 나왔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설명해주는 책들이다.
‘멈추지 않는 상상력’ 교양 노트
‘요미우리 신문’에 3년 가까이 연재한 글 중 80편을 추린 에세이다. 원제는 『한낮의 별 하늘』로 태양 빛에 가려져 하늘에서 볼 수 없으나 존재하고 있는 ‘낮별’(올가 베르골츠의 에세이)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그 현실”을 전하고자 쓴 짤막한 글이다.
‘재능의 범위’ ‘삼각관계’ ‘기억과 창조력’ 등 신문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이라, ‘교양노트’라는 지금의 위엄 있는 제목보다 위트 있고 흥미로운 글들이 수두룩하다. 가벼운 글만은 아니다. 단어의 표면, 의미에서는 찾을 수 없는 기원, 숨겨진 이야기를 드러내, 각 해당 소재에 관해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멀티콘센트’가 되어준다. 문학, 사전, 인터넷 검색, 체험 등을 총동원해 일상 소재를 탐구해나가는 요네하라 마리식 ‘지식 노트’인 셈.
“팬티 한 장으로 펼쳐지는 생활상” 팬티 인문학
고종석은 요네하라 마리의 책의 매력으로 “은근히 외설적인 유머감각”을 꼽은 바 있다. 그 감각은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그녀에게 ‘팬티’는 무려 ‘40년 동안 품은 수수께끼’였다. “예수 그리스도 하복부에 걸친 것은 과연 팬티인가? 아담과 이브가 걸친 무화가 나뭇잎은 왜 떨어지지 않을까? 왜 사람들은 성기만큼이나 팬티를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일까?”
이런 기발한 질문들은, 팬티 한 장으로 세계 체제의 변화와 구체적인 생활상까지 포착해낸다. 팬티가 바지처럼 복수형(briefs)으로 쓰인다는 것에서, 당시 팬티가 두 쪽으로 분리된 형태였거나, 두 개로 분리된 것을 하나로 합쳤다는 사실까지 밝혀낸다. 언어에 민감했던 요네하라 마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 팬티 연구는 사람들이 알몸을 가리는 이유, 즉 수치심의 기원까지 파고든다. 일상의 호기심으로 인간과 문화의 본질을 쫒는 그녀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저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