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아주 쉽게 정리한다면 결국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보장받기를 원하는 그 권리들을 다른 사람들도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올바른 덕목입니다.(p.88)
인권과 영화가 만나, 뒤섞이면서 이야기를 나눈 책,
『불편해도 괜찮아』(김두식 지음/국가인권위원회 기획|창비 펴냄)는 인권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집안에서 왕 대접을 받고 싶은 남편은, 아내를 여왕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황금률이다. 아내를 시녀 부리듯 하면, 그 남편은 결코 왕이 되지 못한다. 같은 하인에 불과할 뿐이다.
여름 햇살 뜨거웠던, 지난 8월11일, 서울 홍대부근 상상마당. 인권을 응원하는 자리가 열렸다.
『불편해도 괜찮아』 출간기념 독자와의 만남. 여성이 주도권을 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채널예스 인터뷰
<“여성이 주도권을 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자 김두식 교수와
<은하해방전선>을 연출했고, <육상 소녀>(가제)를 만들고 있는 윤성호 감독이 대담자로 자리했다. 뭣보다 많은 독자들이 ‘함께 해서 괜찮은’ 자리에 초대됐다.
독자들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 두 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수상작인 <불한당들>(2007, 장훈 감독)과 깜짝 상영작 <우익청년 윤성호>(2004, 윤성호 감독). 웃음을 버무리면서 무겁지 않게 접근했지만, 기저에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영화들. 영화로 후끈 달궈진 분위기, 두 사람의 이야기가 뒤를 이었다.
김두식과 윤성호, 자기 고백으로 콘텐츠를 채우다
우선 이날 상영된 두 편의 영화에 모두 나온 윤성호 감독에게 출연과 연출 동기 등을 물었다. 우선, <불한당들>의 윤성호.
“장훈 감독이 단편을 만드는데 출연해 달라고 하더라. 사건의 중요한 역할보다는 운반하는 역할이었다. 입만 살아서 내가 연기하면 딱 맞을 거라고 해서 출연했다.(웃음) 2006년 추석에 찍었고, 그해 월드컵을 배경으로 했다.”
그렇다면 연출과 주연을 함께 한 <우익청년 윤성호>는?
“2004년 영화를 시작해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송두율 교수가 한국에 입국하면서 국가보안법이 화제가 됐던 시절이었다. 당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여론전쟁에서 밀렸다. 민주화운동협의체에서 여러 사람에게 독립영화 옴니버스를 제안했다. 김경만(<학습된 두려움과 과대망상>), 최진성(<Catch Me If You Can>) 감독 등이 좌편향 같아서 구색 갖추기로 중간쯤 되는, 중도우파인 사람도 넣고 싶었나보다. 나는 사회적 발언에 신경 쓰거나 책무를 느낀 사람은 아니고.(웃음) 그때 공부하면서 이런 식의 문제가 있구나, 하는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얘기했다.”
이어 김두식 교수의 감상평.
“<우익청년 윤성호>는 훌륭한 작품.” 짝짝짝. 이어진 약간은 짓궂고 핵심(?)을 찌르는 질문.
“반공웅변대회에 나간 소년 시절의 회고가 나온다. 1987년 소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15년 후에 첫 섹스를 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진짜 2002년이 첫 섹스였나?(웃음) 영화를 보면, 안 해도 되는 자기고백이 계속 나온다. 누가 묻지도 않는데, ‘난 우익이에요, 우익이에요’라고 하면서.(웃음) 또 영화에 간간히 나오는 게, 기독교적 배경이다. 과도한 자기고백은 사실 자기방어이기도 하다. 자기가 약점이라 생각하는 걸 보여줌으로써 살아남으려는 고도의 전술인데, 기독교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의 고도의 전술이다.(웃음)”
트위터(@ysimock) 자기소개가 한때, ‘생긴 건 유재석 같아도 성격은 박명수’였다는 윤 감독도 깜짝.
“책(『불편해도 괜찮아』) 소개하는 자리인줄 알았더니, 예리하다.(웃음)” <우익청년 윤성호>가 자기 고백적 성격을 띤 것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영화도 늦게 시작한 마당에,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콘텐츠가 뭘까, 생각해보니 바로 나. 옴니버스 참여를 결정한 윤 감독.
그런데 막상 참여를 결정하고 보니, 갸우뚱.
“끼 많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분들이 많아서 감화를 받았는데, 의문도 들더라. 국가보안법프로젝트에서도 이미 합의된 사람들끼리 ‘으쌰으쌰’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팔아먹을 수 있는 콘텐츠를 고민했다.(웃음) 중산층에서 원만히 자라서 ‘노멀함’을 가진 나를 전시하는 것이었다. 그런 방법이 정치적으로 계몽의 수단으로 꽤 먹힌다.(웃음)”
김두식 교수도, 자신의 얘기를 한다는 측면에서는 비슷하다.
“나도 책에 자기 얘기를 많이 한다. 서평 등에서, (나의 한계에 대해) 비판하면, 맞다고 인정하고 그 글을 트위터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날리고 하는 건, ‘매도 내가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느님이 24시간 나를 보고 있다는 기독교적 배경에서 비롯된.(웃음)”
윤 감독의 맞장구.
“어차피 드러날 거, 미리 사람들(의 생각)을 할인시키는 훈련을 하는 것 같다.(웃음)”
그러니까, 책에 그려진 모습은 ‘겸손하게 포장하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중학교 3학년인 딸과 나눈 경험을 덧붙인다. 김 교수의 딸이 책을 읽고는 어느 날, 말하더란다.
“책을 읽으니, 아빠가 내가 알던 것보다 좀 더 훌륭한 사람인 것 같아요.”
딸의 칭찬을 받은 아빠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딸에게 이렇게 말해줬단다.
“그게 활자가 지니는 힘인데, 네가 매일 보는 아빠가 진짜 아빠란다” 책의 힘(!), 활자의 마력(!)을 느낀 김 교수.
“책은 그렇게, 심지어 딸까지도 아빠가 매일 알고 지내던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책을 보면, 내가 겸손하고 자기반성하는 사람 같은데, 실제론 안 그렇다.(웃음) 똑같은 사람이다. 이것도 미리 방어적으로 치고 들어가는 거지?(웃음)”
불편해도 괜찮아, 제목에 대해
사회자가, 질문 대상자가 소수자일 경우, 그것을 바라보는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책 제목에 대해 물었다.
김 교수는
“제목에 불편함을 느끼고 철저하게 주류의 시각으로 바라본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다”고 언급했다.
“책보다 내 자신에 대한 비판 같다. 내 경력을 보면 있어 보이잖나.(웃음) 주류의 편에 있으면서, 이것(인권)도 주류의 시각에서 가져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 같은 거. 그런 면에서 <시사인(IN)>의 양효실 선생님 서평은 정말 훌륭했다. 진짜다. ‘주류가 이젠 불편함의 시각까지도 주류의 것으로 빼앗아가려는가’하는 문제제기였다. 본인도 주류임을 인정하면서, 잘 쓴 서평이더라. 마음으로 공감했다.”
김 교수는 궁극적으로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을 읽으면, ‘불편해도 괜찮다’가 키워드가 된 것은 9개장에서 2~3개다. 이런 표현도 없어지는 게 인권감수성의 궁극적인 목표랄까. 책 전체를 간결하게 잘 담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윤 감독은 책을 어떻게 봤을까.
“우선 재밌게 잘 봤다. 사실 나는 영화라는 매체를 거리를 두고 대상화하는 영화에세이들이 탐탁하지 않았다. 이 책은 영화비평은 아닌 따뜻한 에세이이겠거니 했는데, 김 교수께서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하게 쓰셔서 감화됐다. 영화를 매개로 한 책 가운데 가장 재밌게 읽은 단행본이었다.”
모든 사회문제는 이런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런 헷갈리는 상황에서 기억할 만한 원칙이 바로 ‘의심스러울 때는 약자의 이익으로’ 해석하라는 것입니다. 형사소송법에서 자주 논의되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를 변용한 표현인데, 누구 입장에 서야 할지가 불투명할 때 방향을 정하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p.183)
인권감수성과 영화의 본질
책에는 복근의 전시장이었던 영화
<300>도 언급된다. 사회자의 질문.
“이 영화를 보며 육체적인 쾌감을 느끼면서도, 인종차별적인 요소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인권감수성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서 시선의 동일화, 보는 사람의 동일화가 타자화 시키는 것이 있다면.”
불편함을 느끼느냐, 그렇지 않느냐, 당신의 감수성을 시험하라. 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를 자신과 동일시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레오니다스를 자기와 동일시하면 페르시아 군이나 반역자에 대해 별 문제없이 수용되는데, 다른 시각으로 보면 불편함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묘사되는 검사를 살펴보자.
“검사와 자기를 동일시하다보면 범인이 안 잡히면, 범인을 알 만한 사람을 벽에 밀어붙이고 책을 들이대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이상하게 안 느껴진다. 우리나라 특히 그런 게 많다. 미국적인 시각이다. 유럽 영화를 보면 안 그렇다.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데, 우리는 검찰, 형사 등과 동일시하도록 만드는 영화구조인거 같다. 좀 전에 본 <불한당들>의 경우에도, 등장인물인 윤성호를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김 교수는 특히, <불한당들>을 보면서 자신이 다른 나라에 살면서 ‘이방인’으로서 가졌던 불안과 흥분 등의 기억을 투영했다. 인권감수성, 그것은 세상을 보는 시선, 자신이 쌓아온 체험과도 관련을 맺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서 잘하겠지’ 생각하고 마음을 놓는 순간, 권력의 오남용이 시작됩니다. 당장 나 먹고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남의 일까지 신경 쓰나 생각하고 자꾸 넘어가다보면, 어느새 그 일이 내 문제로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늦지요. 내 문제에 대해 남들이 외면하는 것을 보고 뒤늦게 가슴을 쳐보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인권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누가’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주목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p.261)
많은 할리우드 영화는 이런 시선을 좁게 만든다. 관객의 시선을 단순하게 동일화한다. 내러티브도 자연 단순화된다. 사회자는 이런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다양한 눈높이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독립영화가 아니냐며, 그 힘에 대해 윤 감독의 의견을 구했다.
윤 감독은,
“독립영화도 욕망이 다양해진 거 같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예전이 오히려 독립영화를 정의하기 쉬웠단다. 독재나 검열 등 정치적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울 거리가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독립영화도 다 똑같다고 볼 수 없다. 넓게 말하면 독립적인 방식으로라도 만든 영화,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에 충실한 영화가 독립영화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람을 관찰하고 그것을 이미지에 담아 배열하고 정서를 공유하고자 하는 게 영화다. 그게 매체의 본질이다. 카피가 가능한 속성이 있고. 그러니, 대량유통의 욕망이 끼어들기 좋은 매체지. 이것이 좋다 나쁘다의 문제는 아니다. 스타마케팅이 되고, 관객들에게 마케팅하기 쉬운 그런 것보다 매체의 본질에 충실하고 싶은 것이 독립영화가 되겠지. 영화가 있는데, 상업영화가 있는 거고.”
그러고 보면, 영화가 사람을 관찰하고 이를 다룬다는 매체의 본질은, 곧 인권과도 맥락이 닿는다. 인권과 영화가 함께 다뤄질 수 있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 영화를 보는 관점이 있듯, 사람을 보는 관점이 인권감수성에 영향을 준다. 이날 김두식 교수와 윤성호 감독이 함께 한 이유다.
우주보다 더 귀한 것이 한 사람의 생명입니다. 죽음은 당사자에게 우주의 소멸과 같습니다.… 내 것, 네 것 할 것 없이 인류라는 거대한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사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은 똑같이 고귀한 것입니다. 생명의 귀중함을 인식하는 것은 인권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pp.334~335)
Q&A
(김두식 교수에게) 법을 전공한 것이 영화 보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 또 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법을 전공한데다 기독교가 합쳐져서 규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인권을 위해 싸우는 영화를 봐도, 법을 지키고 있나 아닌가, 법을 지키면서 투쟁 못했을까, 같은 생각을 먼저 한다. 경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원래 그랬던 데다, 법학 전공까지 하니까, 심화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법에 대해서는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웃음) 괴물로 변할 수 있는 국가권력을 통제하려고, 법이 만들어진 거지, 국가가 권력통제를 위해 법을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즉, 법은 국가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법을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우리 정부는 민주적으로 선출되었으므로 안심해도 된다는 생각보다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제가 여러 책에서 강조했다시피 국가는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 국가를 고마운 존재로만 생각하고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곳에서 인권의 유린이 시작됩니다.(p.349)
(김두식 교수에게) 트위터 리스트에 넣어줘서 이 자리에 왔다. 고맙다.(웃음) 나는 비기독교인인데, 이번 책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다룰 때, 그 양심이 종교적 양심에 편중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교적 배경 없이 군사문화나 총, 군대가 싫다는 이유의 병역거부도 받아져야 대체복무도 긍정적으로 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양심적 병역거부는, 역사적으로 종교적인 이유가 출발점이었다. 내 고민도 거기서 출발했다. 총칼로 사람 죽이지 않겠다는 신념이 종교가 아니냐면, 그건 또 아니다. 『평화의 얼굴』이라는 책에 적혀 있다. 독일의 경우, 통일된 다음에는, 병역을 왜 거부하는지 (사유서를) 내야하는데, 친구 글을 복사해서 내도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단계까지 간다. 미국도 종교나 신앙의 경계가 불투명해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도 대체복무를 인정하고 있고.
내가 왜 종교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냐고 하면, 나는 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동감하길 바라고. 그래서 나를 기준으로 쓰다 보니, 종교적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로 읽힌 것이 아닌가 싶다.(웃음)”
(윤성호 감독에게) 독립영화 감독으로서 좋아하는 독립영화나 상업영화가 있다면.
“‘독립영화 감독’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독립 배우’가 말이 안 되는 것처럼.(웃음) 독립적으로 할 말은 해야겠다는 방식의 연출자가 있고, 유통망의 테두리가 아니면 못하겠어, 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다큐 감독을 존경한다. 극영화는 욕망에 포섭돼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비해 다큐는 그렇지 않다. 김동원 감독(<송환> 등)도 존경하고, 경순 감독도 존경한다. 특히 경순 감독은 지행일치(知行一致)라는 말이 어울리는 분이다. <애국자 게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쇼킹패밀리> 등을 연출하셨다. 사람들에게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레드 마리아>를 찍었다.
상업영화에서는 홍상수, 배창호 감독을 좋아한다. 두 분 굉장히 컬러가 다른데도 두 분의 경향이 다 좋다. 두 분 나름의 인간의 건조한 면과 낙관적인 면을 다루는데, 나도 그걸 따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