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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콘서트]조영남 “천재시인 이상과 내 DNA는 같다” -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조영남

이상 시에는 ‘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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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이력과 거침없는 삶의 궤적과는 다르게 ‘북콘서트’라는 무대가 처음이라던 그는, 무대 중앙에 놓인 작은 피아노의 울림을 확인해보겠다며 몇 개의 건반을 눌렀다. 그리고 내친 김에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 직접 곡을 붙여 노래했다.

죽기 전에 재미있는 것들은 다 해본다는 게 버릇처럼 굳어진 듯하다. 운도 따르고 건강도 따라주었다. 이제 생애 막판에 나는, 2010년 올해 이상 탄생 100주년에 맞추어 그의 시 해설서를 쓰고 있다. 이상하게도 이상에 관한 단편적 논문은 넘쳐날 정도로 많지만 재미있고 누구나 알아먹을 만한 해설서는 단 한 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딴짓만 하며 산다, 책을 쓰고 나서」 중 )

7월 27일 저녁, 역삼 1문화센터 3층 대강연장에서 ‘조영남, 시인 이상을 위한 북콘서트’가 열렸다. 이백여 석을 빼곡히 메운 가운데, 피아노와 마이크가 놓여 있는 무대 위로 책의 저자 조영남이 등장했다. 중장년층 독자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이상의 시 보단 가수 조영남의 목소리를 듣고자 찾아온 사람이 많겠거니 짐작했던 필자의 예상은 북콘서트 사이사이에 얹혀진 예리한 질문들로 무색해졌다.

그는 이번에도 책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는 고백으로 모두를 열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시인이고 시였지만, 막상 풀이를 하자니 너무 어려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거 잘못 건드렸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난해해서 알 수가 없었어요. 새벽까지 시를 붙잡고 씨름하다가 자야겠다, 생각이 들 때 쯤에야, 이게 이런 뜻이겠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었죠. 그렇게 숱한 밤을 보냈어요.”

하지만 이런 어려움이 그에게 처음은 아니었다. 매번 책을 집필할 때나, 출판 이후 그에게는 칭찬보다 더 큰 비난이 붙어 다녔다. 그는 책 말미에 이렇게 회고했다.

내 딴 짓 항해의 폭은 꽤나 광활했다. 딴에는 내 생애를 정리한답시고 『놀멘놀멘』이라는 자서전도 써내고, 『어느 날 사랑이』라는 나의 사랑 얘기도 써봤다. 폭풍우 세례도 받았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으면 한 번쯤은 조국을 위해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일념에서 『맞아 죽을 각오로 쓴 100년 만의 친일선언』이란 책을 써서 실제로 맞아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간 일도 그런 것이다. 아!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다. (…) 현실의 벽은 너무나 두터웠다. 한갓 치기 어린 딴짓거리고 취급되고 만 것이다. 폭풍우가 지나간 이후 나의 딴짓거리는 매우 온건해졌다.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딴짓만 하며 산다, 책을 쓰고 나서」 중)


화려한 이력과 거침없는 삶의 궤적과는 다르게 ‘북콘서트’라는 무대가 처음이라던 그는, 무대 중앙에 놓인 작은 피아노의 울림을 확인해보겠다며 몇 개의 건반을 눌렀다. 그리고 내친 김에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 직접 곡을 붙여 노래했다.

조영남, 이상을 쓰다

이상의 시는 그가 쓴 소설이나 산문보다 난해하다. 이 생경한 시 문학을 저자는 무리하게 풀이하려 들지 않는다. 이미 책의 도입부에서 밝혔듯, 다른 평론가의 해석이나 기존 해제를 참고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해설을 시도했다. 그래서 이 해설서에는 주석이 없고, 참고문헌이 없다.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오감도 Ⅱ 시제 1호, 전문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 나는 드디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두 시중에서 가장 위대한 시를 금방 읽었구나.’ 이건 물론 지극히 나 혼자만의 생각인데 나도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알다가 도 모르겠다. (중략) 이상의 소설「날개」, 수필「권태」가 언제나 나를 압도하듯이 시에선 단연 「오감도」「시제1호」의 ‘13인의 아해’가 나를 꼼짝 못하게 한다. 정말 많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이 세상의 넘쳐나는 시 중에서는 ‘13인의 아해’가 등장하는「오감도」가 베스트 중에 베스트로 빼어나보인다. (중략) 현대인의 본질, 현대인의 심리상태를 절묘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내 개인의 본질과 심리상태가 ‘13인의 아해’ 속에 몽땅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p. 198, 199)


21살 때부터 팬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독자는 “‘기인 조영남’이 ‘시인 이상’을 해설하게 된 연유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그 자신도 문청시절 이상의 시를 읽고 이보다 훌륭한 시를 쓸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절필하는 아픔을 겪었다고 말했다.

“저는 이상 시에 대해서 열등의식은 느꼈지만 상처가 되기보다는 매료되었습니다. 이상 시에 ‘뭔가 있다’라는 걸 일찍이 느꼈던 거죠. 이상과 조영남은 DNA가 같은 것 같았다고 봅니다. 이상은 건축을 공부한 수재이죠. 우리 아버지, 큰아버지 모두 목수였어요. 내 피에도 건축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건축과 들어가기 전에 현대미술을 했으니까요. 그리고 이상이 노래를 기가 막히게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렇게 저와 여러 가지 코드가 맞는 셈이죠. 무엇보다 많은 비평서가 있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를 중심으로 풀어낸 책은 없었어요. 나는 광대니까. 광대의 방식으로 썼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말이지요. 단 한 문장도 내가 쓰지 않은 것이 없어요.”

이상은 여러분의 상상 이상이다

“이 책의 내용 중에 이 자리에서 일러둘 부분이 있다”고 운을 뗀 그는, 책을 구성하는 아홉 묶음 중 다섯 번 째 묶음을 가리켰다. “이건 창작입니다.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웃음) 문학평론가가 시비를 걸면 할 말이 없다는 거죠. 보들레르와 랭보. T. S. 앨리엇. 그런 시인들하고, 제 솜씨로 비교를 했는데 그마저도 번역해놓은 시를 가지고 비교를 했습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이상만 저 꼭대기에 있었어요. 독자 여러분께서 동의하실 수 있다면 다행이고, 동의할 수 없다면 치워두시라,(웃음) 말하고 싶습니다.”

그는 이상이야말로 시와 소설 그리고 수필의 영역까지 섭렵한 최고의 작가라고 설명했다. “현대문학에서 이렇게 찬란하게 빛나는 인물이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많은 평론가들이 ‘그 당시 유행이었다.’라는 말에 화가 나서 이렇게 이상 시에 대한 해설서를 내게 되었던 거죠.” 잠시 감회에 젖은 듯 말이 없던 그는 다시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정지용의 「향수」였다. 정지용 시인이 세계에서 으뜸가는 서정시인이라는 걸 아무도 모른다며 아쉬워했다. 노래가 시작됐다. ‘넓은 벌판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이 날의 북콘서트는 막을 내렸다.

오는 9월에는 파주 헤이리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한다. 이번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를 각각 장식했던,「시인 이상을 위한 지상 최대의 장례식」「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등을 포함한 여러 그림이 걸릴 예정이라고 한다. 욕심이 없는 사람의 행보에는 바람처럼 고요한 힘이 실린다. 기인을 자처하는 그의 행보가 주목을 받는 이유이다.

이 책은 나의 유일한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 들어간다. 얼마 전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주연했던 영화 제목인 ‘버킷 리스트’는 사람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말한다. 영화는 담당의사로부터 1년 이내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이 이루고 싶은 꿈의 리스트를 작성해서 실제로 죽기 전까지 그것을 성취해낸다는 얘기인데, 내 경우는 시한부 인생 같은 막다른 장치도 없이 무작정 20대 중반부터 죽기 전까지 이상에 관한 책 한 권은 꼭 쓰고 말겠다는 애매한 결심을 세워놓았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상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머리말」 중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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