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7월 초, 세계문학상을 받은 두 작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진중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스토리와 시대를 꿰뚫는 발칙한 시선’으로 제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컨설턴트』의 임성순 작가와 ‘뜨거운 감동과 생애 대한 깊은 각성’을 담은 작품으로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내 심장을 쏴라』의 정유정 작가였다. 세계문학상은 한국 장편 문학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굳히며 스타 탄생의 관문으로 확고한 위상을 학보한 문학상인데 제1회 수상작인 김별아 작가의 『미실』을 시작으로 매년 문제작들이 수상되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올해로 제7회를 맞는 세계문학상은 현재 응모작을 공모하고 있으며 당선작이 어떤 책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질 만큼, 그간의 수상작들은 하나같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품들이었다.
이날 행사는 예스24와 은행나무 출판사 주최로 진행되었다. 사회는 파워 블로거인 ‘자그니’(이요훈)의 진행으로 열렸고 장소는 상수역 부근 작은 카페 ‘디디다’였다. 이곳엔 아주 작은 무대가 있었고, 넓진 않지만 충분히 그 열기와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사회를 본 ‘자그니’는 황금 같은 주말에 와주셔서 반갑다는 말을 시작으로 ‘북토크’ 콘서트를 시작했다. 첫 무대는 ‘로지피피’의 무대였다. 작사?작곡?편곡까지 혼자서 해내는 이 당찬 가수의 음악은 편안하고 달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곡들이 많아 커플들이 만나는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그동안 누구의 노래인 줄도 모르고 듣기만 했던 나는 이날 ‘로지피피’를 처음 보았다. 내 MP3에도 ‘로지피피’의 노래가 들어있을 정도인 걸 보면 그녀는 이미 인기가수인 셈인데 이번에 정규앨범을 뒤로 미루고 여행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여행을 하고 와서 열심히 노래를 다시 부를 예정이라 했다.
‘로지피피’는 여름을 좋아한다며 「안녕, 여름」을 불러주었다. 팝송을 한 곡 불렀고, 그녀의 히트곡인 「Falling in love」를 앙코르로 받아 살짝 불러주고 내려갔다.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이 너무 좋아 더 불러주었으면 했지만 이날은 ‘로지피피’의 무대가 아니라 작가들의 무대인고로 바로 이어진 작가와의 대화시간.
작가, 자신의 소설을 말하다
작은 무대에 등장하며 연방 웃음을 짓는 두 작가는 마치 말을 맞추고 나온 사람들처럼 서로, 독자들이 자신보다는 상대 작가를 보러온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며 말을 나누었다. 그리고 간단한 인사와 시작한 북토크, 그 첫 번째 질문은 사회자인 ‘자그니’가 했다.
‘이 책의 모티프는 어디에서 얻었는가?’ 두 작가는 질문에 번갈아 답변을 했다.
임성순 작가는 오지랖이 넓어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편이라며 영화나 소설을 읽을 때도 누군가 범죄를 저지르면 ‘저런 식으로 하면 잡히고도 남는데 저 사람은 왜 잡히지도 않고 수배조차 당하지 않는가?’와 같은 생각을 주로 한단다. 그런 걸 보면서 드라마나 영화 같은 죽음이 아니라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면, 어떤 것이 진짜 현실처럼 자연스러울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죽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자살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고
『컨설턴트』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정유정 작가는 좀 오래된 이야길 꺼냈다. 이 소설
『내 심장을 쏴라』는 그녀의 다섯 번째 소설인데 일생에 꼭 써야 할 소설이었다며 15살,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났던 그해의 이야길 들려주었다. 모티프는 그때 얻었단다. 광주광역시에서 남동생이랑 하숙을 하던 작가는 그날의 저녁을 잊지 못하는데 멀리서 들리던 총소리와 쏟아지는 비, 잠을 자야 하는데 잠은 오지 않고, 혹시라도 오늘 나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을까봐 겁도 나고 떨리기도 해서 밤을 샐 수도 없었단다. 잠을 자기 위해서는 어려운 책을 읽으면 잠이 올까, 싶은 마음에 책을 골랐는데 그 책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였다. 한데 방안 창문 밑 이불 속에서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고 말았다. 책에 집중하느라 총소리도 비도 멎은 것도 몰랐던 것. 더구나 마지막에 책을 덮자 그 감동과 함께 새벽의 푸른빛과 총소리의 공포에서 이제 벗어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엉엉 울고 말았단다. 그때 정유정 작가는 반드시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그가 느꼈던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작가. 그리고 간호 학생으로 정신병동에 실습을 나갔다가 만났던 한 환자로부터 생긴 질문,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서 이 소설이 시작되었다.
두 작가는
작품 구상에 관한 질문에서
“저는, 그냥…… 글쎄요. 그런 것 같아요. ‘찾아봐야지’ 해서 떠오르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세상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르는 것 같아요. 또 그걸 구체적으로 쓰는 일이 중요하고, 시간도 많이 들죠. 그래서 그걸 끝까지 써 나가기 위해서는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꼭 있어야 해요. 그건 스토리일 수도 있고, 어떤 장면에 대한 묘사일 수도 있고, 기억의 재구성일 수도 있는데 그것에 대해 굉장히 간절할 때 쓰고 싶은 의지가 부여되는 것 같아요.”라고 임성순 작가는 말했다. 이어 정유정 작가도 비슷한 말을 했다.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길 좋아해요.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환경이나 교육보다는 태생적이고 성격이라는 생각이 강한데,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 사람의 존재를 규명하는 것이라 생각하죠.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워 놓고 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 사람들로 하게끔 구현하게 하는 것, 그러한 방식을 주로 모티프로 해요. 모티프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데 꿈을 꾸거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혹은 전단지를 보다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 꼭 수첩에 메모를 하죠. 어떤 아이디어가 반짝해서 나오는 건 아니므로 임성순 작가의 말처럼 무엇보다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해요. 그게 없으면 글이란 쓸 필요성이 없을 것이며 그래서 속수무책이 되겠죠.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소설이 될 거예요.”
그래서 작가인가보다. 디자이너들처럼 머리를 짜내어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 이런 말을 세상에 좀 해야 해!’하는 필요성이 느껴지면 바로 글이 써지는 거라고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두 작가는 자신들의 작품을 간단하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정유정 작가는
『내 심장을 쏴라』가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해 그린 책이라 했고, 임성순 작가는 짧게 이야기하면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와 그걸 용인하는 사람들의 자기합리화를 그린 이야기가
『컨설턴트』라고 했다.
임성순 작가의
『컨설턴트』는
“현대인의 익명성과 자본주의가 타인에게 가하는 폭력을 이야기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회사’라는 거대한 구조는 곧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개인의 삶을 지배하며 거기에 속한 구성원은 무력하게 모든 걸 ‘받아들이거나 체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컨설턴트’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구조조정을 뜻하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구조조정은 바로 죽음이다. 죽음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유도하는 킬러로 등장하는 주인공에게 어느 날 옛날 애인을 컨설턴트 하라는 명령이 내려오고 그가 계획한 죽음과 다른 죽음으로 죽은 애인을 보며 주인공은 이 모든 것이 회사의 음모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책은 다양한 상징으로 가득하며 작품 전반에 시니컬한 유머와 부조리한 현실을 비웃는다.
반면에 정유정 작가의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원에 갇힌 두 남자의 탈출기로써
“우리를 옥죄는 운명에 맞서 새로운 인생을 향해 끝없이 탈출을 꿈꾸고 시도하는 두 젊은이의 치열한 분투기”를 그린 작품이다. 소설을 쓰다보면 타협이 안 되는 선택을 할 때가 있는데 독자의 공감이냐, 빠른 전개냐 하는 것이라 했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상황에서 겹칠 수는 없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데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의 경우는 처음부터 정신없이 흥미를 유도하지만
『내 심장을 쏴라』는 앞부분이 지루하게 전개된다. 주인공은 이해하기 힘든 4차원이고 그런 정신을 가진 인간 세계의 주인공을 이해하기 위해 주인공의 눈으로 보고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다 보니 의도적으로 앞부분이 지루해진 것이다. 해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의 쓸데없는 이야기가 의학적으론 있어야 할 복선이어서 앞부분이 지루해졌으므로 그걸 알고 읽으면 독자들이 그 지루함을 조금 참을 수는 있을 거라고 했다.
두 작가에게
작품의 영화화에 대해 물었다. 임성순 작가는 업계에 몸을 담았던 사람으로서(그는 영화
<챔피언>편집부에서 일할 정도로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일단
『컨설턴트』는 영화화 하지 못할 것이라 했다. 뚜렷하지 않은 캐릭터와 영화화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정유정 작가는 예전에 어느 기사를 보니 영화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했다. 영화는 서사가 있어야 가능하다며 서사라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문학과 소설이 서사였지만 그게 현대로 오면서 문학은 그걸 벗어던졌고, 소설의 서사는 영화가 가져갔다. 만약 정유정 작가의 소설이 영화화 된다면 그건 아마도 서사적인 것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임성순 작가와는 다르게
『내 심장을 쏴라』는 이미 영화화 판권이 팔려 언젠가는 영화로도 나올 예정이다.
작가가 되기 전에 시나리오 작가와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졌던 두 작가에게 자신의 작품들은
개인적 경험이 들어간 소설일 것이다. 임성순 작가는
“소설 쓸 때 잘 읽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시나리오는 투자를 받아야 하기에 투자자가 읽었을 때 무조건 재미있고 잘 읽히도록 써야 하기 때문에 늘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게 소설에 투영되었을 수도 있는 것 같고 『컨설턴트』가 술술 잘 읽힌다면 아마도 시나리오를 배웠기에 도움 받은 것 같다.”고 했다. 한때는 간호사였던 정유정 작가는 5년 동안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 일을 했다고 한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이과인데 심리라는 문과적인 일을 했으므로 소설가로서는 축복이었다며 정신과에서 보는 우울과 힘든 여러 가지 상황, 죽음, 인간의 삶과 행동, 연민들이 지금에 와서는 나름대로 경험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작가와 독자가 함께 하는 낭독의 시간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은 후 작가들의 낭독 시간이 있었다. 먼저
『컨설턴트』의 임성순 작가의 낭독이었다. 278쪽에 나오는 부분으로 주인공이 자신이 속해있는 세상에서 도망치기 위해 홍콩까지 갔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부분이다. 돌아와서 자기를 둘러싼 회사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깨닫게 되는 부분인데 이것조차 합리화하게 되며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나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 평범한 비겁함이 날 살아남게 했다. 자랑스러웠다. 너무나 자랑스러워서 점점, 점점, 내 안으로 말려들어가 작은 고치만 남아버릴 것 같았다. 아니, 작은 점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원점으로 돌아왔다.
변명하겠다. 내가 정말 잘하는 것들 중 하나이니까.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었다.”
뒤이어 읽은 정유정 작가의 낭독은 탈출을 원하는 승민의 도움으로 수명이 탈출 후에 산에 올라와 혼자 남은 수명이 느끼는 쓸쓸한 절망의 한 부분이다.
“언덕에는 죽음과도 같은 정적이 흘렀다. 싸늘한 바람이 밤을 몰아왔다. 몸이 떨려왔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격한 떨림이었다. 목과 가슴 사이에선 불처럼 뜨거운 것이 오르내렸다. 그 뜨거운 한기에는 두 개의 이름이 있었다. 자신의 세상을 향해 날아간 자에 대한 ‘경외’, 갈 곳이 없는 자의 ‘절망’. 절벽 끝에 누웠다. 하늘이 까맸다. 별들이 내게 너무도 멀었다.”
아주 짧은 낭독이었지만 자신들의 작품을 딱 한마디로 말해주는 대목들이었다. 이어서 두 번의 낭독이 더 있었고 독자들의 낭독도 있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각자 공감하는 부분이 다르다. 그래서 이런 낭독의 경우, 독자들은 자신들이 공감한 부분을 읽게 되는데, 그걸 듣는 재미 역시 나쁘지 않다. 마지막으로 낭독을 해 준 독자가 읽어준 부분은 정유정 작가의 책이었다. 136쪽, 땅거미가 매우 인상적이라 낭독이 하고 싶었다고 했다.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하늘도, 숲도, 수리호도 온통 먹빛이었다. 땅거미의 먹빛은 동트기 전의 먹빛과 의미가 다르다. 불안을 부르는 빛이었다. 충동을 깨우는 빛이었다. 머리를 낮추고 포복해오는 광기의 그림자였다. 크고 작은 사고, 폭력과 자살 소동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간이 바로 땅거미가 내릴 무렵이었다. 누군가는 약 기운이 힘을 잃는 때라 그렇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다가오는 어둠에 대한 동물적 공포 때문이고 했다. 뭐가 맞는지는 신이나 알 일이었다. 내가 아는 건 나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뿐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불안을 느꼈다. 가볍게 지나가는 날도 있었고, 습격하듯 들이닥치는 날도 있었다. 습격의 날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뭐든 저질러버리거나, 숨거나, 사람들은 그걸 ‘땅거미의 주술’이라 불렀다.”
낭독회가 끝난 후 이날 우연히 참석하게 된 다른 두 작가의 인사가 잠시 있었다.
『완득이』로 유명한 김려령 작가와
『몽구스 크루』의 신여랑 작가가 응원차(!) 들렀다가 무대에 나와 간단한 인사를 하고 내려갔다. 두 작가 모두 자신들을 모르는 독자들이 더 많을 거라 말을 했지만 설마, 책을 읽는 독자라면 그들을 모를 수 없다. 다음엔 그들의 ‘북토크’에도 갈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북토크는 의외로 짧았지만 알찼다. 잘 몰랐던 두 작가를 만나 즐거웠고, 그들의 문학에 대한 열정도 들어 좋았다. 작가란, 다 비슷하다. 언제나 열심히 글을 쓰고 노력한다. 작가상을 받는 것이 그저 운이 좋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그들이 들이는 노력은 그대로 작품에 반영이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세상의 작가들은 모두 존경스럽다. 앞으로 이 두 작가의 글이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