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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회] 김혜리의 인터뷰, ‘경이로운 순간’의 기록 - 『진심의 탐닉』 김혜리

같은 인터뷰어의 모습일지라도, 누가 어떻게 조각하고 어떤 색깔로 찍어내느냐에 따라, 판화의 인상은 천양지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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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편의 인터뷰 기사를 모아 놓으니 오히려 사려 깊고 조심스러운 판화가의 모습이 도드라진다. 책 출간을 기념하여, 이번에는 그녀의 진심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씨네 21>에 <아이콘> 코너를 연재하고 있는 진중권 교수의 진행으로, 김혜리 기자의 인터뷰에 관한 진심을 묻고 답하는 대담이 지난 6월 한겨레 신문사 내 청암홀에서 진행되었다.

인터뷰 기사는 마치 판화와 같다. 한 장의 인터뷰에서, 인터뷰어(interviewer)는 그 위에 대상자의 어떤 모습을 볼록하게 새기거나, 불필요한 것들을 파낸다. 판을 정리한 후에는, 제 나름의 색깔을 입혀 종이 혹은 인터넷 지면에 찍어낸다. 독자는 그 그림을 통해 인터뷰이(interviewee)를 상상하게 된다. 같은 인터뷰이의 모습일지라도, 누가 어떻게 조각하고 어떤 색깔로 찍어내느냐에 따라, 판화의 인상은 천양지차다.

<씨네 21>에 <김혜리가 만난 사람>을 연재하는 김혜리 기자는 어떤 판화가인가? 우선, 아주 섬세하고 꼼꼼한 작업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애정 있는 인물 묘사를 보자면, 그녀가 인터뷰이를 얼마나 유심히 살펴보는지 알 수 있다. 대상자의 과거와 현재를 꾀고 있는 질문을 보자면, 그녀가 꽤 오랜 시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터뷰이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기사 속에서 그녀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있다. 인터뷰이 옆에서 이야기를 불러오고, 그에 맞춰 호흡하는 그녀가 어떤 표정으로 앉아 있을지 상상되기도 한다.

2008년 4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영화 주간지 <씨네 21>에 연재했던 <김혜리가 만난 사람, 시즌2> 가운데 스물두 명의 인터뷰를 엮은 책 『진심의 탐닉』이 발간됐다. 스물두 편의 인터뷰 기사를 모아 놓으니 오히려 사려 깊고 조심스러운 판화가의 모습이 도드라진다. 책 출간을 기념하여, 이번에는 그녀의 진심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씨네 21>에 <아이콘> 코너를 연재하고 있는 진중권 교수의 진행으로, 김혜리 기자의 인터뷰에 관한 진심을 묻고 답하는 대담이 지난 6월 한겨레 신문사 내 청암홀에서 진행되었다.

“곁에 두고, 많이 생각해요. 이 사람에게 중요한 건 뭘까.”


그녀는 매번 쑥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문장처럼 조심스럽고 낮은 말투였다. “인터뷰를 왜 하냐고 물으신다면, ‘데스크에서 하라고 하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게 가장 정확한 대답일 거예요.(웃음)” 본업이 인터뷰도 아니었고, <씨네 21> 기자 중에서 인터뷰를 못하는 편에 속했던 자신이 인터뷰 꼭지를 담당하게 된 것은 우연이라는 설명이다.

“<씨네 21>은 비단 영화만 얘기하고자 만들어진 매체는 아니었기 때문에 매체의 필요성과 제 자신의 우연과 맞물려 시작하게 된 일이죠.” 그랬기에 말이 두려웠고, 인터뷰가 겁이 났다. 인터뷰 일정이 잡히면 그 전주부터 잠을 설치고 두려워했단다.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에 신중했고,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섬세한 부분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터.

“‘세계가 이러하다, 인생이 이러하다’라는 말은 언제나 뒤가 미심쩍어요. 그렇게 직접적인 말이 아니라, 뭔가 통해서 이야기하면 안심이 되요. 제 삶을 온전히 고백하는 일은 자신 없지만, 영화를 빗대어 말할 순 있겠죠. 인터뷰도 이 인물을 통해 제가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안심시켰어요.” 진중권 교수는, 그녀를 엄마 같은 인터뷰어라고 말했다. 인터뷰이가 쏟아내는 파편 같은 이야기들을 엄마처럼 보듬어서 제 모습을 복원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떨까?

“일단, 만나보면 흥미로울 것 같은 분을 수첩에 적어둬요. TV에 나오거나, 작품이 나올 때 좀더 유심히 보게 되죠. 인상적인 표정이나 음색도 메모해두고요. 사소해 보이는 것도 열쇠가 될 수 있으니 적어놓고, 섭외를 진행합니다. 사전 준비가 필요한 까닭은, 내가 왜 당신을 만나야 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날 이유가 필요하거든요.

생면부지의 사람을 서너 시간씩 이야기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을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껴요. 거절당하면, 제 팔자고요.(웃음) 허락을 받으면, D-Day가 나온 셈이니까, 직업에 따라 창작품, 기존 인터뷰, 제삼자가 해석해 놓은 글들을 다 찾아봐요. 이야기가 겹치지 않아야 하니까요. 사진 같은 걸 책상에 붙여놓기도 해요. 자주 보고 있으면 생각날 때가 있거든요. 그렇게 계속 그 사람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여기에 섬세한 인터뷰의 비밀이 있는 게 아닐런지. 이토록 인터뷰이를 마음에 품고(!) 있다니. 오랫동안 그리고 생각한 흔적이야, 말하지 않아도 현장에서 드러날 것이고, 그런 모습이 인터뷰이의 진심을 열게 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김혜리 기자 역시 미디어를 통해 인터뷰 대상과 첫 대면을 하기 마련. 아무리 그 사람에 대해 연구를 하고, 매체를 통해 알려진 모습을 잘 살펴본다 하더라도, 직접 만났을 때의 인상은 또 다른 것일 테다. 정작 만나보니 다른 모습을 발견했던 적은 없었는지, 진중권 교수가 이어 물었다.

“일차적으로 자료를 읽는 동안, 다른 이미지가 보일 때가 있어요. 그 기사의 테마는 그게 아니었는데 그 행간에 다른 모습이 엿보이는 거죠. ‘그게 더 중요한 게 아닌가’ 혹은 ‘사람들이 이런 모습은 잘 보지 못하는데, 이 사람에겐 중요한 게 아닐까’ 짐작하는 단계가 있어요. 신경민 국장님 같은 경우는 이전에 뵙기에는 합리적인 보수주의자 같다고 생각했어요. 앵커 메이크업을 하고 정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만 봐서 그랬지, 실제로 뵈니까 다르더라고요. 녹차 라떼를 굉장히 좋아하시고요.(웃음) 신념, 철학을 말할 때 외에는 소년 같은 모습이 보였어요.

하정우씨 같은 경우는 워낙 독립영화 작품을 많이 하셔서, 취향도 비주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연기하는 기계 같아요. 후배들을 몰고 다니면서, 조직하고 교통 정리하는, 보스 기질이 있더라고요. <잘알지도 못하면서>를 보면, 말투에 각이 들어가 있어요. 정구호 디자이너는 취향이 고급스럽고, 아름다운데 민감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추한 게 보일 때, 스트레스가 느껴지지 않으세요?’ 물었더니, ‘아름답지 않은 것에는 제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거죠’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인상적이었어요.”


“‘덕분에 나를 알게 됐다’는 말 들을 때, 가장 보람 있어요”


고현정은 김혜리 기자가 쓴 자신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아니, 내가 이렇게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어?”라고 말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진중권 역시 이에 동감했다. 자신 역시 기사를 보고, “아니, 내가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었어?” 놀랐단다. 이어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그녀가 인터뷰이를 미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이상형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인터뷰는 사람의 실루엣을 그리는 일이기 때문에, 인터뷰이를 선정할 때부터 무척 조심해요. 기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사람. 오랫동안 옆에 두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으로 선정하는 데요. 애초부터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인터뷰 과정에서 더욱 조심하는 게 있어요. 너무 좋은 점만 보는 게 아닌가. 부풀리는 게 있지 않은가 경계해요. 정직하게 말하건대 인터뷰이가 하지 않은 이야기를 쓴 적은 없어요. 대신 정리하는 방식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400매 정도의 대화를 60매로 정리할 때, 그 사람이 어떤 말을 진짜 하고 싶어했는지 기억하려고 해요. 그건 표정이나 신호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약간 목소리가 떨렸던 부분이라거나 미세한 표정이 있거든요. 이야기의 본질은 변화시키지 않는 선에서 지방과 수분은 짜내죠. 그래서 읽을 때 정리되어 있고, 내가 말을 잘했다고 느끼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포장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어요.”


그녀의 인터뷰 풍경이 점차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궁금한 것들이 이어진다. 짧은 시간 동안 깊은 진심을 나눠야 하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그 둘의 거리는 어떻게 만들어 나갈까? 또 인터뷰라는 것이 하고 싶은 말만 나누는 자리가 아닐 텐데,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는 그 순간까지 둘의 관계는 어떻게 유지해나갈까?

“까다로운 질문을 대뜸 하지 않아요. 앉아서 한 시간쯤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벼운 우정이 성립될 때가 있어요. 그때가 인터뷰의 시작인 것 같아요. 저를 보면 아시겠지만, 성격이 소심하잖아요. 이런 질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하면서 어려운 말을 돌려 할 때도 있는데, 차라리 그럴 때는, 신뢰가 성립된 상태에서 심플하게 물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럴 때는 답도 담백하게 나와요.

저는 시작할 때, 미리 말씀을 드려요. ‘말하고 싶지 않은 대목이 있으면, 거절을 하세요. 기사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세요. 혹은 인터뷰 끝나고 돌아가서라도 빼달라고 연락 주세요.’ 이렇게 세 가지로 권고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렇게 요구하시는 분은 별로 없고요. 가능하면 어려운 얘기더라도, 기사와 무관하게 말씀해달라고 할 때도 있죠. A에서 C로 넘어갈 때, 제가 괄호 처리된 B의 내용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차이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과정 자체가 조심스럽게 진행되니, 인터뷰 기사가 난 이후라도, 항의받을 일이 없을 법 하다. 인터뷰 기사가 나간 이후 아쉬운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나요? 진중권 교수의 질문 뿐 아니라, 이후 독자들의 질문에서도 거듭나온 이야기. 그런 적은 없단다. 오히려 “무반응이 가장 차가운 반응”이라고 답했다.

“이전에 김연수 작가는, ‘뭔가 얘기를 더 했어야 했는데 미진한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셨고요. 정성일 선배는, 아픈 말도 했어요. ‘얘길 나누다 보니 당신이 어느새 영화에서 멀리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요. 질문이 마음에 차지 않으셨나 봐요. 제일 기쁘게 다가오는 반응은 이런 거예요. ‘(기사를) 읽고 나니까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말하려던 게 이런 거구나.’ 그때 제일 보람이 있어요.”

“우리 가족 이야기 들어보고 싶어”


이제껏 인터뷰했던 인물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누굴까? 그녀는 유시민 씨를 꼽았다. 아무래도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당시 직후에 진행한 인터뷰라, 상황 자체가 기억에 오래 남았단다. “시국이 하 수상하던 시절, 말이라는 것에 회의를 느끼며 칩거 중이셨어요. 애초에 인터뷰 약속을 받기가 힘들었고, 겨우겨우 약속을 받아낸 상황에서 사건이 벌어졌고요. 차마 전화를 드리지 못하고 문자를 남겼더니 ‘약속한대로 해보자’는 답장이 왔어요. 황망한 마음에 서울역 분향소에 가서 인사를 먼저 드리고, 며칠 뒤 인터뷰를 잡았죠.”

번역가 정영목 씨의 인터뷰도 그녀에게는 인상 깊은 시간으로 남아있다. “만나기 전에는 특정한 이미지가 하나도 없었어요. 작가는 작품을 보고 상상할 수 있지만, 번역가는 그 중간에 숨어 있는 사람이잖아요. 이분의 작업이 내 인터뷰와 유사성이 있구나, 알고 나니까 대화가 더 재미있었어요.” 그렇다면 앞으로 인터뷰하고 싶은, 그녀의 수첩에 적혀있는 인물들은 누구일까? 그녀는 망설임 없이 고우영 선생님을 꼽았다.

“몇 해 전 고우영 선생님이 작고 하셨을 때, 너무 슬펐어요. 인터뷰를 못해서 너무 아쉬운 분이에요. 왜 서두르지 않았을까 후회가 크고요. 이효리 씨도 만나보고 싶어요. 그리고 나중에 나이 들어서는 꼭 저희 가족 인터뷰를 해보고 싶어요. 부모님 이야기가 참 힘든 것 같아요. 별 얘기 아닌데도 아빠, 엄마한테 뭘 물어보려고 하면, 왜 울컥하고 눈물이 핑 도는지! 아빠, 엄마가 어떻게 만났으며 그 사랑은 어디로 갔는지, 이모가 젊었을 때 어떤 일을 겪었는지, 기억이 사라져가기 전에 가족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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