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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노무현, 지금의 환멸을 참고 견디는 방법 - 『운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방문단

이제, 당신이 노무현이다.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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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틀 뒤, 5월 25일. 대한문 앞에 마련된 시민 분향소를 친구와 함께 찾았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와중에 한 여성이 울고 있는 모습을 봤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준 가장 큰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왜였을까.

#1. <김제동 쇼>가 무산됐다. 시쳇말로, 이를 방영키로 했던 엠넷(Mnet)은 깨방정만 떤 꼴이다. 첫 방송이 시청자를 만나기도 전에, 프로그램 하차라니. 하 수상한 시절이라 그런가. 음악 전문채널도 코미디를 한다. 이런 놀라운 퓨전을 봤나. 역시 섞고 비비고 혼합하는 것이 시대적 조류인가 보다, 라고 하면 비아냥임을 눈치 채겠지.

엠넷처럼 에둘러 삽질하는 말, 않겠다. 엠넷의 작태. 너무 속 보이는 정치적 행동이다. 지가 무슨 ‘공영MB방송’이라도 된단 말인가. 외압? 그런 것 없다고 믿는다. 알아서 기지 않았을까, 나는 속단(!)한다. 그들이 앞서 방송을 미룬 것에 대해 해명이랍시고 했더라. 순수 음악채널이라서 정치적으로 해석될 소지를 없애려고 했다고.

순.수.한. 음.악.방.송. 그 변명, 참 졸렬하다. 자신들은 정치적이지 않다는 말인가 본데, 더욱 가증스럽다. 당대의 음악은 시대와 사회를 어떻게든 반영한다. 이는 정치와 분리돼 생각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건 음악을 모르는, 예술을 모르는 저능아적 혹은 무뇌아적 발언이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많은 뛰어난 예술작품은 예술가가 살고 있는 사회와 교감하면서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음악채널은 마땅히 사회와 교감하면서 더 넓은 사회와 만날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더 심각한 건, 시청자들을 ‘졸(卒)’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정치적이지 않다, 정치에 관심 없다는 말이 더 정치적임은, 쥐구멍에 숨어든 쥐도 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온전하게 거짓이다. 되레, 정치적 부담 때문에 방영을 못하겠다는 식으로 솔직하게 말했으면, ‘그래, 니들이 무슨 힘이 있겠니’ 하면서 엠넷을 위해 미력하나마 싸워줄 용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작태라면 곤란하다. 앞으로 ‘엠넷방정’이라고 불러주겠다.

김제동 씨 소속사인 다음기획 김영준 대표는 프로그램 하차와 관련, “첫 방송의 연기와 연이은 녹화 취소에는 김제동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사회 문제가 주된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또 외압설에는 선을 그었다. 허나, 이런 말도 남겼다. “판단은 대중들이 하고, 대중들은 충분히 현명하며, 대중들의 힘을 믿는다.”

나는 그 추도식에 함께했다. 김제동 씨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했던 이유로 추정되는. 사회자 김제동 씨는 하늘도 터트린 울음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우산도 없었다. 우비도 없었다. 눈이 작아서 빗물이 덜 들어갈 테니, 그것이 다행이랄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였던 5월 23일의 김해 봉하마을.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추도하는 행사에 사회를 보는 셀러브리티의 모습. 나는 그것을 ‘정치적’이라는 수사로 규정하기보다, ‘사회적’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사회적 동물’인데, 그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택과 행동을 한 셈이다. 옳거나 그른 것도 아니요, 맞거나 틀린 것도 아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일. 그가 아니라면, ‘국민MC’라는 타이틀을 지닌 유재석이나 강호동이 했어야 마땅한 일. 전직 대통령의 서거 추도식에 사회 맡는 것을 부담스러워해야 하는 것이 과연 정상인가. 이 사회의 지지와 관심을 받는 셀러브리티의 의무이자 책임이 아닐까.

이날 김제동 씨는 말했다. “정치인 노무현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우리와 발을 맞춰주고 눈높이를 맞춰주던, 어깨를 맞춰주던 동반자를 기억합니다.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쉽지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와 발 맞춰주고 어깨를 받쳐주는 동반자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 동반자를 그립니다. 어떠한 보답도 바라지 않습니다. 모든 마음들을 이곳에 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 말을 곱씹어보라. 그저 추도다. 애틋함이 담긴 추도. 대체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졸렬한 것들. 그렇게 자신이 없었단 말인가. “투표로 말하라”고 했던 김제동 씨의 말이 두려웠나. 그 말은 투표를 독려하는 것 아닌가. 어릴 때부터 민주 시민이라면 투표를 꼭 하라던 어른들 말씀 그대로 전한 것 아닌가. 그런데, 잘렸다. 지상파부터 시작하더니, 케이블까지, 전파가 아주 미쳐 날뛴다. 말할 권리도 뺐더니, 이젠 볼 권리도 박탈한다. 나는 환멸한다.




#2. 1년여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틀 뒤, 5월 25일. 대한문 앞에 마련된 시민 분향소를 친구와 함께 찾았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와중에 한 여성이 울고 있는 모습을 봤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준 가장 큰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왜였을까. 그렇지 않아도 슬픔 가득한 내 마음에 불을 질렀다. 슬픔이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며칠 뒤 나는 경남 산청의 ‘대안기술센터’를 찾았다. ‘적정기술(대안기술)’로 자전거발전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며칠 동안 새벽까지 자전거발전기를 낑낑대며 만들었다. 어느 날 새벽, 발전기 제작을 마치고, 동료들에게 말을 꺼냈다. 봉하마을에 가자고. 장례식 마지막 날이었을 게다. 한 시간을 내달려 도달했다. 거기에도 노 전 대통령이 있었다.



새벽의 시간에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헌화를 했고, 자원봉사자들이 마련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받았다. 故 이문구 선생님을 생각하며 썼다는 나희덕 시인의 ‘국밥 한 그릇’이 떠올랐다. “잘 비워낸 한 생애가 천천히 식어가는 동안/ 그가 마지막으로 건네는 국밥 한 그릇을/ 눈물도 없이 먹어치웠다.” 유시민 씨가 노사모 회원들과 술 한잔을 나누는 모습도 봤다. 불콰한 얼굴의 유시민 씨는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목소리는 하이톤으로 올라가 있었던 기억. 1년 전, 봉하는 그렇게 슬픔과 애도가 가득한 공간이었다.

또한 그들 노사모. “노사모는 내가 검찰에 소환되어 봉하 집을 나설 때 버스 앞에 노란 국화 꽃잎을 뿌려 주었다. 피의자로 조사를 받은 그 긴 시간 내내 검찰청사 앞에서 노란풍선을 들고 기다려 주었다. 노무현을 버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끝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내 말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그것이 노사모였다.”(p.167)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하늘은 추적추적 비를 뿌리고 있었다. 하늘도 슬퍼하는구나,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했다. 『운명이다』(노무현 저/노무현재단?유시민 공편|돌베개 펴냄) 출간에 맞춰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 방문단’이 떴다. 아침 이른 시각, 빗속을 뚫고 추모 방문단이 간다. 44명. 인천에서 택시비 4만5,000원을 써가면서 오신 분도 있었다. 과연 이들에게 ‘노무현’은 무엇이기에


노무현에 대한 추억. 노무현에 대한 생각. 노무현을 찾아가는 우리들의 자세.

“제2, 제3의 노무현 대통령을 만드는 힘이 됐으면 좋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삶의 진정성을 실천한 사람이 아닐까.”
“책을 읽고 생전에 지지하고 응원하지 못한 데 대해 후회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20대였으나 소중한 분을 잃고 뒤늦게 깨달은, 각성한 시민이 됐다.”
“재임 중 좋게 생각 안 했다. 언론에 나온 것이 다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재임 시절 여러 아쉬운 점이 있으나, 치열하게 민주주의를 위해 살아왔는데, 정작 민주주의 때문에 피해를 본 분이 아닐까 싶다. 재임 중 지지하지 못한 회한도 있고…….”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훌륭한 분이라고 알고 있었다. 조중동 등 악의 무리가 만들어낸 ‘노무현 때문이다’가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지 적극 알리지 못해 미안하고, 돌아가실 때 자책감으로 힘들어서 매일 대한문에 나갔다. 생전에 못 뵌 게 안타깝고 소환되실 때 편지라도 보냈어야 했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교사인데, 아이들에게 노무현 사상과 철학을 알리고 있다. (서거 이후) 사실 지금까지 안정이 안 됐다. 아직까지 내겐 애도기간이다.”
“예비교육자로서, 아이들이 이익 아닌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
“살아남은 자의 몫을 다짐하고자 왔다.”
“기억해야 할 것을 꼭 기억하기 위해서 왔다.”

그리고 뭣보다, 에둘러 말하지 않는 고등학교 2학년의 당찬 이 한마디.

“1년 전만 해도 정치에 무관심했는데,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꼴이…….(웃음) 친구를 통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알게 됐다.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기 위해 애쓴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터넷 세상에서 나는 ‘바보 노무현’이 되었다. 유리한 종로를 버리고 또 부산으로 가서 떨어진 미련한 사람. ‘바보 노무현’은 ‘청문회 스타’ 이래 사람들이 붙여 주었던 여러 별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내가 바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다만 눈앞의 이익보다는 멀리 볼 때 가치 있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당장은 손해가 되는 일이 멀리 보면 이익이 될 수가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처럼’ 살면 나라가 잘 될 것이다.”(pp.161~163)


그는 내게 동네 아저씨였다. 그러니까, 이 도시의 한 동네. “부산은 넉넉하고 개방적이어서 젊은이들에게 도전할 기회를 제공하는 도시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부산은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곳이다.”(p.137)

그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 변호사 시절. 같은 동네에 살았다. 또한 같은 반을 하진 않았지만 초등학교 동창의 아버지. 아들 건호. “그를 지켜보면서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 건호를 생각했다. 건호도 몇 년 지나면 대학에 갈 것이다. 그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이 청년과 같은 길을 가라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걸 못 본 체하면서 어떻게든 출세하고 돈 많이 벌어 편하게 살라고 할 것인가? 양심이니 정의니 말은 쉬웠지만, 내 아들한테 고난의 삶을 권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고민해 본 끝에 내린 결론은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이들이 받을지 모르는 고통을 예방하는 길이었다. 아들한테 권하기보다는 아버지인 내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p.83) 그 벚꽃 가로수길이 예쁜 동네. 인권변호사로 자리매김을 하던 시절의 그 동네.



다시 찾아온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를 알려주는 저 바위. 1년 전과 지금에나 변함이 없다. 물론 마냥 그렇기만 할까.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의 눈길을 받았을 것이며, 눈 비 바람 햇빛 등과 얼마나 많은 이야길 나눴을까.


본산입구 삼거리 전부터 차는 잔뜩 밀리고 있었고, 비는 거침없이 내리고 있었다. 곳곳에 세워진 차는 추모식에 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걷고 있었다. 비옷을 입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노무현을 찾은 아이들도 보였다. 노란 풍선. 2002년 대선의 어떤 기억이 모락모락. 나도 모르게, 다섯손가락의 ‘풍선’이 흥얼흥얼. “노란풍선이 하늘을 날면 내 마음에도 아름다운 기억들이 생각나♪/ 내 어릴 적 꿈은 노란 풍선을 타고 하늘 높이 날으는 사람♬”



저렇게도 보고 싶은 사람. 저 간절하고 애틋한 목소리를 두고 어딜 갔을까. 곳곳에 걸린 플랜카드 혹은 다짐이 비를 맞으면서도 펄럭인다.

“조중동과의 외로운 싸움,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더욱 더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영원한 우리 마음의 대통령”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님의 국화꽃 향기에서 희망을 찾겠습니다.”
“당신의 국민이었던 우리가 행복했습니다.”

노무현이 아직 살아있는 이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어디선가 들려온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에 빠진 이 노래. 노무현 앞에선 울려 퍼진다. 임을 위해 그래, 다들 그렇게 행진을 하고 있구나.


생가 부근의 우체통. 빨간색이 아니다. 노란 우체통. 저 노란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어디로 배달이 될까. 저 구름의 저편으로 마음이 전해질까. 아마, 그리될 것이다. 이 우체통은 빨간 우체통이 아니다. 노란 우체통이다.

참으로 어렵고 외로웠을 그에게 편지 한 통. 그리고 노란 우체통에 넣어주시라.

“이라크 파병은 옳지 않은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서 파병한 것이다.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오류의 기록을 역사에 남겨야 하는 대통령 자리, 참으로 어렵고 무거웠다.”(p.245)

“대통령은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가 걸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가 많다. (…) 국민 누구에겐가 억울하고 불행한 일이 생기면 모두가 대통령 잘못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부담감이 놓여 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아홉 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 아닌 것이 없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p.298)


기다린다.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 노무현은 떠났지만, 누군가는 노무현을 기다린다. 추도식장으로 가는 길에서 봤다. “당신을 기다립니다.” 저 짧은 문장에 담긴 마음, 왠지 저릿하다. 당신도 그렇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이주노동자들도 보였고, 저 멀리 산 정상부근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국화를 든 사람들, 바람개비를 돌리는 사람들, “노무현”을 연호하는 사람들. 디지털화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육성도 들렸고, 그의 육성은 아직도 마음을 건드리고 있었다. 부엉이 바위가 보였다.



추도식이 진행됐다.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 틈에서 추도식을 지켜봤다. 김제동 씨가 사회를 봤고, 이해찬 전 총리, 도종환 시인, 명계남 씨, 문성근 씨 등이 무대에 올랐다. 건호도 유가족을 대표해 무대에 올랐다. 아주 오랜만에 눈앞에서 보는 얼굴. 혼자 마음에서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명계남 씨가 옆을 지나갔다. 많이 슬퍼했고, 많이 지쳐 보였다. 나는 배우 명계남을 참 좋아했다. 나는 노무현 지지자가 아녔지만, 노무현을 연호하는 그의 모습도 좋아보였다. 그러나 노무현 없는 명계남은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내 기억이 맞다면,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이희아 씨였다. 지난 2005년 12월 23일 청와대에서 ‘희망콘서트’에서 연주했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희아 씨의 연주를 듣고, “정말 아름답습니다. 환상적입니다”라고 말했다. 이희아 씨는 지난해 서거 직후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진짜 우리 장애인들에게는 아버지이시고, 또 가난하고 정말 소외된 분들을 위해서…… 정말 착하시고 그러셨는데…… 너무나 불쌍하잖아요. 대통령님……,” 올해도 그녀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박석(薄石). 노무현 묘역에는 박석이 있다. 이른바 국민참여박석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마음이다. 조금 전 추도식에서 명계남?문성근 씨가 박석에 박힌 추모글을 읽었는데, 나는 이 말이 가장 가슴에 남았다. “내 마음 속에 망명정부 하나 있어 비바람 부는 날이면 나는 망명합니다. 내 마음 속 대통령에게로. 생애 마지막 날까지도 당신 편입니다. 자연의 한 조각으로 다시 만나길.” 그래, 망명이라도 하고 싶은 지금의 시절이다. 이렇게 비바람 부는 날, 망명지로 떠나자, 우리. 운명이다.


박석 가운데, 가장 눈에 들어왔다.
“국가 없는 세상에 우리 만나요. 임옥상”

존 레논의 <이매진>이 떠올랐다.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국가가 없다고 생각해 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누구를 죽이거나 죽을 필요도 없잖아, 종교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 거기엔 노무현이 있었다. 바보 노무현.


그 집에는 촛불도 있었고, 촛불로 만드는 세상이 있었다. “5월은 노무현입니다.” 누군가에겐 오월이 그렇기도 하리라. 내게도 5월은 아팠다. 13년 전 5월, 세상을 떠난 주호 형. 뺑소니에 치여 죽기 전, 형이 마지막으로 마주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술 한잔 하자는 형의 말을 듣기만 했어도, 아마 형은 그때 그렇게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주호 형, 잘 있소?



노무현의 꿈이 영글어가고 있는 현장. 농부이자 시민이고 싶었던 노무현의 꿈. “봉화산 숲 가꾸기, 화포천 습지 복원, 그리고 봉하 들판 생태농업. 이 세 가지가 주요 사업이었다.”(p.317) 나는 노무현의 꿈을 보고 있다. 대통령보다 농부일 때 더욱 훌륭해 보였던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공익근무(!)를 끝내고, 아홉 시 뉴스와 아침신문을 가슴 졸이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안심, 귀찮고 하기 싫었던 화장과도 안녕,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만지는 일도 안녕. 공익근무가 끝난 것에 그렇게 안도했던 사람.

“나는 대통령을 했지만 정치적 소망을 하나도 성취하지 못했다. 정치를 함으로써 이루려 했던 목표에 비추어보면 처절하게 실패한 사람이다. 정치인으로서는 실패했지만 시민으로 성공해 그 실패를 만회하고 싶었다.”(p.36, 프롤로그 중에서)


- 넌 네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해?
- 그럼, 비웃어도 상관없어…….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면 웃어.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야.
-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 게다가 혼자선 그런 일을 못해.
- 바로 그거야! 난 혼자가 아니야! …… 알겠어? …… 진실이 있고 그것이 중요한 거야! 바로 그거야, 지금 바로 이 순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래, 혼자가 아니다. 그 자리, 44명의 노무현이 있었고, 5만 명의 노무현이 마음을 함께했다.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인지 궁금했던 노무현. “20년 정치인생을 돌아보았다. 마치 물을 가르고 달려온 것 같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p.332)

아마 세상은 더디, 아주 느리게 바뀌겠지만, 혼자가 아니니까, 사람 사는 세상도 올 것이다. 세상의 끔찍함을 목도한 사람들에게 그건, 운명이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노무현만 느낀다고 끝이 아니다. 참여하는 당신이 필요하다. 당신의 행동이 필요하다. 봉하마을을 떠나 돌아가는 길, 고등학교 2학년 윤지상 군의 소감에 우리는 박수를 쳤다. “어리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 정치인이 꿈이다. 여기 있는 분과 함께 나라를 바꾸고 싶다.” 그는 ‘함께’라고 했다. 혼자가 아니다. 세상은 아마 그렇게 바뀔 것이다. 운명이다. 그것이 내가 지금의 환멸을 참고 견디는 방법이다.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사회(세상)에 살고 싶은가.
당신은 그 살고 싶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책 속에서, 노무현 속에서 찾아낸 것이 있다면 실천에 옮기고 있는가.

이제, 당신이 노무현이다.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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