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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옆 사람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닌가 묻는 영화” - <경계도시2> 홍형숙 감독

‘송두율이 진짜 간첩이냐,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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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유예로 석방되고, 송두율 교수가 독일로 출국한 이후 7년, 감독이 이 영화를 내놓기까지 7년이 걸렸다. 감독에게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러닝타임 100분에 담기지 않은, 400개 분량의 촬영 테이프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이게 다큐멘터리라니…… 진짜 무섭다

‘경계도시’ 혹은 ‘송두율’을 검색했더니 이런 질문이 떴다. “경계도시에 나오는 송두율 씨가 누군가요? 송두율 씨가 뭘 잘못했나요?” 나 역시 <경계도시2>를 보기 전에, 그 영화평을 보고는 그런 비슷한 질문을 띄우기도 한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 없이 쓰윽, 이 영화를 내밀고 싶다. 일단 보라고. 보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송두율뿐이 아니더라. 대한민국, 이 땅의 현실이더라.

송두율은 하버마스의 제자로 독일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강의해 온 저명한 학자다. 정치, 경제, 철학, 문화를 두루 포괄하는 그의 저작들은 국내외 진보학계와 청년들에게 귀감이 되어 왔다. 그런 그가 유신독재 반대 투쟁으로 박정희 정부에 의해 반정부 인사로 분류되어 입국이 금지된다. 선친의 임종 때에도 그는 멀리서 가슴만 쓸어내려야 했다. 이 과정 속에서 남북의 화해를 위해 북한을 방문하고, 통일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 몇 번의 입국 무산 과정 끝에 드디어 2003년 9월 민주화운동기념사협회 초청으로 37년 만에 귀국길에 오른다.

이 소식을 들은 홍형숙 감독, <경계도시1> 후속편을 계획한다. <경계도시1>에서 송 교수가 입국을 시도하다 좌절하는 과정을 담았다면, <경계도시2>는 3주간 체류하는 송교수를 따라다니며, 그의 눈에 비친 변화된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려 했다. 과연 지금의 한국 사회는 경계인 학자를 안아줄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입국 첫날부터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귀국 열흘 만에 송두율은 ‘해방 이후 최대 거물간첩’으로 낙인찍혀 구속되기에 이른다.

영화 속에서 많은 기자들은 쉴 새 없이 물어댄다. ‘송두율이 진짜 간첩이냐, 아니냐?’ 만약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당신도 궁금할 테다. 허나 영화를 봤다면, 아마도 이렇게 물을 테다. 한국 사회, 이거 진짜 괜찮은 걸까? 언론이, 사회가 한 사람을 작정하고 몰아가는 풍경을 보고 있자면, 핵심은 놓치고 기삿거리만 날름거리고 있는 기자들을 보고 있자면,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좌우 빨갱이라는 이름표만 보고 달려들어 몰매 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무섭다. 영화평은 이걸로도 족하다. 벌써부터 팔다리, 등에 끈적이게 달라붙는 더위마저 한 방에 날려버릴 만큼, 오싹하게 할 만큼 무서운 영화다. 그런데 이게 다큐멘터리라는 거다. 정말 무섭다. 그런 의미에서, 올 여름 한 번 더 재개봉, 주장하는 바다.

가만, 실제로 현장에서 카메라 들었던 감독님, 얼마나 무서웠을까.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카메라로 그 충격과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여기에 감독의 내레이션이 더해져 그날의 정황이 좀더 또렷하게 포착된다. “송두율을 담으려 했지만, 더 이상 주인공은 송두율이 아니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사회가 되었다.” 감독의 결연한 코멘트와 함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송두율을 둘러싼 우리들의 모습들. 누군가는 거울을 보는 듯해 내내 불편했다 했고, 7년이 지난 사회 역시 달라진 것이 없어 안타깝다 했다.

집행유예로 석방되고, 송두율 교수가 독일로 출국한 이후 7년, 감독이 이 영화를 내놓기까지 7년이 걸렸다. 감독에게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러닝타임 100분에 담기지 않은, 400개 분량의 촬영 테이프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인터뷰 장소에 나온 홍형숙 감독님의 인상은 단단했다. 형형한 눈빛이 아직도 떠오른다. 질문마다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갔는데, 마치 오랫동안 여러 번 질문을 받고 대답해온 사람의 대답 같았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촬영이 끝나고 개봉하기까지 7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편집을 하는 7년은 어떤 시간이었나요?

“2003년부터 1년 동안 촬영을 하고 6년 정도 편집을 했어요. 사건이라는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온 후에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당시의 상황을 거리 두고 생각하면서, 사건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어요.”

촬영 테이프가 400개에 이를 정도로 분량이 많았다고 했는데, 편집할 때는 어떤 것을 넣었고, 어떤 것을 뺐나요?

“처음에는 송두율 개인을 팔로우하는 기획이었어요. 40여 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철학자, 그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했는데, 사건이 진행되면서 영화의 주인공이 송 교수에서 한국 사회의 현실로 옮겨가게 된 거죠. 편집할 때는 그 부분을 부각시킬 수 있는 내용들을 선택했어요. 해방 이후 최대 거물 간첩으로 낙인찍히는 과정을 보며 ‘이건 개인에 관한 문제로 비춰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오히려 사회가 그를 어떻게 바라보고 안을 수 있는 문제이고, 이런 한국 사회를 보여줄 수 있을 만한 게 뭔지 고민했어요. 나, 그의 친구들, 언론 등의 모습 속에 한국 사회의 여러 면모가 총체적으로 녹아있다고 생각했어요.”

편집하면서, 고민이 많으셨을 텐데요. 마지막까지 고민하게 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장면이었나요?

“많았죠. 그중에 하나는 서강대 철학자 대회에서 박홍 전 총장이 얘기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분이 술도 좋아하고,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세요. 「사랑해 당신을」이라는 노래를 즉석에서 부르시더라고요. 그때 송 교수님에게 나오라고 손짓을 했어요. 송 교수님이 거절하기가 힘드니까, 나가서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사랑해 당신을」을 불렀거든요. 한 분은 극우, 한 분은 또 다른 극의 상징성을 지닌 분들이잖아요. 이 두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사랑해, 당신을……’ 여러 의미를 함축한다 싶어 넣고 싶었는데, 송 교수님 본인께서 어려워하셨어요. 힘들어하셔서 뺐죠.”

사건이 벌어진 후에 8년의 시간이 흘렸습니다. 그 시간차를 극복하기 위해서, 2010년의 관객과 호흡할 지점을 모색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당시의 사건 당사자들이 7년이 흐른 후에 나타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궁금해지죠. 이런 영화라면 당연히 그때 그 사람들의 인터뷰나 의견이 있을 법하다고 짐작하시잖아요. 저도 그걸 염두에 두고 취재를 했는데 고민되더라고요. 영화에 어떤 인터뷰를 담을 것인가.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 자칫하면, 주관적인 회고의 기록이 될 텐데, 그러면 이 영화가 당시 사건으로만 국한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게 가장 피하고 싶었던 방향이고요. 그보다는, 당시 제가 느꼈던 감성과 이성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전개하면, 2010년의 관객들과도 호흡하기 쉽지 않을까 생각했죠.”

재독학자 송두율이 37년 만에 귀국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죽어도 좋아>의 김명화 프로듀서, <10억>의 류제훈 촬영감독, <싸움의 기술>의 임재수 촬영감독,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의 홍종경 촬영감독 등 드림팀을 꾸려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작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설득해서 촬영을 감행했나요?

“극영화의 촬영감독들, 프로듀서들, 베테랑이 모인 팀이었는데, 사실 그들도 다큐멘터리는 처음이었던 거예요. 좌충우돌 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 데다 사건이 예측불허로 진행되다 보니 파란만장한 시행착오를 겪었죠. 드라마 같은 경우는, 감독의 디렉션에 의해 카메라가 조정되는데 다큐는 그렇지 않잖아요. 카메라는 촬영 현장에서 감독인 셈인데, 상황이 어려워지자 당혹해 하더라고요.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우선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버텨내자.’ 거의 짧게 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24시간 카메라를 풀 가동했어요.”

조심스럽게 묻습니다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걱정스러우면서도 한편 감독으로서 도전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혼란한 정국이 감독 개인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그때 그런 얘기들이 있었어요. 상황을 지켜보던 선생님들이 우스갯소리로, ‘오, 홍 감독만 좋겠어.’ 모든 사람들이 곤경에 빠져 있지만, 이 예측불허의 상황을 제대로 찍어내기만 하면, 감독은 대박일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할 정도로 상황이 혼란스러웠거든요. 그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이걸 포기해야 되는 건 아닐까? 과연 나중에라도 완성해낼 수 있을까? 어떤 얘길 할 수 있을까?’ 그때 프로듀서이자 남편이 한 가지만 생각하라더라고요. ‘이런 상황에 놓여 있게 된 것이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또 다른 기회일수 있지 않냐’고. 그 얘기를 듣고, 차분한 마음으로 머릿속을 비우고 촬영했어요.”

내레이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튀는 목소리 때문에 깜짝 놀랐지만(웃음) 금방 적응이 되었어요. 마치 감독님의 고백을 듣는 듯했어요. 단순한 해설, 감상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이야기의 틀과 맥락을 잡는 중요한 역할이었는데요. 내레이션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여러 가지 버전을 만들어서 집에서 녹음한 거예요. 마지막에 녹음실에서 믹싱을 했죠. 어떤 분은 내레이션을 듣고 ‘아니, 그걸 왜 그렇게 우겨 넣으셨어요’라고도 하셨는데(웃음) 나중에 가면 제 목소리가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요. 익숙해지고 편안해집니다.(웃음) 아마추어의 목소리지만, 나의 목소리, 내 시점이라는 것이 영화 속에서 중요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내레이션을 쓸 때도 문장의 문제보다는 시선의 문제, 철학의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았죠.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하는. 부분적으로는 굉장히 쉽게 썼고, 어떤 부분에서는 고심하느라 단어 하나를 선택하기가 힘들기도 했어요.”


너는 어느 쪽이냐, 묻는 대한민국

많은 취재진들에게 둘러싸인 송두율 교수.
“한국에 오신 걸 후회하십니까?” 묻자 대답한다. “네, 후회합니다.”

아직 공동체 상영으로 상영을 이어가고 있지만, 극장 개봉은 마무리된 상태입니다. 그동안 관객 반응을 지켜보시면서 어떠셨나요?

“제작 과정의 어려움만큼이나 개봉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과연 개봉이 될지, 관객들은 진정성을 수용해줄 수 있을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많이 떨리고, 설렜고, 기대도 많이 했어요. 다행히도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내면의 거울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얘기하세요. 그게 저희가 하고 싶었던 얘기거든요. 관객과의 대화를 하다 보면, 제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과 만나기도 해요. 영화가 관객을 만나서 현실적인 평가를 받고 보니, 내가 놓치거나 성취해 낸 것들이 객관화되는 것 같아요. 한 달 반의 극장 개봉을 내리고 공동체 상영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것은 또 소극장에서 관객과 배우들이 함께 호흡하듯 가깝고 직접적인 느낌이 있어요. 내면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진지하게 나누게 되는데, 이런 것들이 또 다른 재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뿌듯하실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잘 닿았다는 것을 느끼고 확인하고, 대답을 듣고 하는 과정들이.

“네, 그게 영화를 계속 만들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힘인 것 같아요.”

10점 아니면 0점. 평점이 굉장히 극단적입니다.(웃음) 이런 현상 자체도 흥미로웠어요. 그럼에도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말씀하시면서, 놓치거나 성취한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었나요?

“작업을 하면서 주목했던 것은 기억의 문제였어요. 현재 우리가 오늘을 생각하고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되고, 버팀목이 되는 게 과거잖아요. 과거에 대해 제대로 된 기억을 가지는 것.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억 투쟁이라고까지 할 정도로요.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진지하게 조망해주는 걸 보면서, 우리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확인할 수 있었어요. 관객과의 대화는 그런 걸 확인하는 과정이었어요.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이 해석되는 걸 볼 때, 놓쳤던 것을 발견해요. 한번은, 고등학생 딸과 엄마가 영화를 보러 왔어요. 고등학생 아이는 영화가 담고 있는 상황이나 인물에 대해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였어요. 그 친구가 영화를 보고 나서 얼굴이 상기된 채 이런 얘길 했어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영화에서 보이는 어른들의 모습들 속에서 나는 내 엄마와 아빠를 본다.’ 엄마 아빠는 항상 ‘너를 위해서야’라는 전제를 깔고, 자신에게 선택과 판단을 강요한다는 거예요. 자신의 생각이 존중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도 늘 힘들었대요. 그런 개인화된 이야기까지는 제가 생각지 못한 부분이죠. 영화라는 게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다는 걸 다시 느꼈어요. 제가 어떤 주제 의식과 생각에 의해 만들었으나, 관객과 만났을 때는 다르게 해석되는 다른 생명체가 되니까요. 그럴 때 큰 힘을 느끼기도 하고, 희열을 느끼기도 하죠.”


영화 속에서 사형을 운운하며 막무가내로 욕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충격적이기도 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실제로 그런 입장의 관객도 있었을 것 같아요. 혹시 관객 중에 그런 격렬한 반대 의견을 보이신 분은 없었나요?

“극장에 오시지 않으세요.(웃음) 직접 이야기하는 분은 없었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것 자체가 이곳의 실제적 지형이라고 생각해요.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면, 우리는 항상 ‘너는 어느 쪽이냐?’라고 입장을 강요받거든요. 극과 극의 사이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할 수 있는데, 그 부분에 관한 포용, 관용이 너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죠. 문제의식이 바로 여기에 있었어요. 영화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와 의견이 나와서 충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새로운 담론들이 나오고 미래에 대한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어요.”

반대 평을 올린 사람이라도,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런 이야기를 한 거라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보지 않은 분들은 두 가지 부류가 있어요. 아예 보지 않고, ‘저런 좌파 영화’라고 색깔로 이야기하는 부류. 한쪽은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 보지 않는 부류. ‘아, 그 사건 알아. 뻔하지 뭐. 국가보안법에 대한 얘기?’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안 보세요. 그런데 그분들이 보면 할 말이 많아지는 게 이 영화거든요. 후자 쪽의 분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게 우리네 현실이기 때문에. 특히 이 영화는 그 지점에 관해 허를 찌르는 부분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송두율, 학자로 한길을 걸어간 사람

옆에서 지켜본 송두율 교수님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그 질문이 가장 어려워요. 한 사람에 대해 다 안다고 얘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잖아요. 자신도 모르는데.(웃음)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학문이 처음이자 끝인 분이에요. 말 그대로 학자. 다른 곳에 눈 돌리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 외에 발견하기 어려웠어요. 개인적인 성품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유하시죠. 진지하시고.”

1편부터 송두율 교수님을 지켜보셨어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의외의 모습을 보거나, 교수님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적은 없었나요?

“친구가 되는 과정과 같아요. 카메라라는 게 큰 이물질이긴 하지만, 함께한 시간이 10년인데, 그 사이에서 이해, 오해, 갈등의 과정이야 없었겠어요. 직접적이지 않아도 내면에서는 그럴 수 있죠. 그런 과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하게 갈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선배로서 곧게 살아온 인생이구나, 하는 점. 그 안에 인간적인 허술함도 있을 수 있고, 저 역시 그런 허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평생을 집요하게 한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존중할 만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부인이신 정정희 선생님의 역할이 컸던 것 같아요. 정정희 선생님의 말이 없었더라면, 송 교수님의 침묵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모두가 반대하고 옥죄는 상황 속에서 자기 발언을 하는 일, 굉장히 어려운 역할을 맡으셨다고 생각했어요.

“정 선생님 없는 송두율 교수님은 상상 불가능하죠. 어떤 분은 ‘송두율의 부인 정정희가 아니라, 정정희의 남편 송두율이다’라고 까지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더라고요. 남편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온 삶이기 때문에 둘이 다른 영혼이라고 볼 수가 없어요. 서로 성장하는 관계였겠죠. 부부라고 늘 그럴 수 있는 건 아닌데, 곁에서 두 분을 지켜보면, 느끼는 점도 많았고 울림이 컸어요.”


빛나는 청춘! 만족할 때까지 파고들어라

송교수는 아홉 번의 검찰 출두 끝에 구속영장을 받는다.

한국사회를 뒤흔든 레드 콤플렉스 앞에서 진보, 우익 세력은 경계인을 경계 밖으로 밀어낸다.


평소에 남북문제, 개인과 국가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요?

“분단 문제는 고루하고, 때늦은 느낌이 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그 문제는 해결되기 전까지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봐요. 그걸 건드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이지. 80년대 이후 큰 담론들은 줄어들고, 작은 이야기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긴 호흡으로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죠. 그래서 십 년!(웃음)”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일이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만만한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학교를 졸업하면서, 평생 업으로 삼을 만한 일을 찾다가 시작한 게 이 일이에요. 내가 즐거우면서도, 사회적으로도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운 좋게도 작업할 때마다 성장하는 기회를 얻어요. 이전에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굉장히 큰 사명감, 이를테면 ‘어떤 대단한 걸 해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나는 못 미치나’(웃음) 하는 생각 때문에 좀 부담스러워했고 힘들어했어요, 지금은 좋은 질문을 발견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일에 재미를 느껴요. 발견하고 질문하기. 이것을 다큐멘터리의 포커스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그렇게 마음의 짐을 덜어내면서 나아온 것 같아요.”

꺼려지지 않으세요. 몸도 피곤할 거고…….(웃음)

“당연하죠. 20년이 넘으니까,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이 있죠. 음…… 채찍질을 할 수 밖에 없고요. 자기와 싸워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까 공동체 상영이 끝나고 대학생 친구들에게(웃음) ‘빛나지 않는다면 청춘이 아니다’라고 얘기했거든요. 20대라고 청춘이라는 말에 거저 부합하는 게 아니라고요. 청춘은 얼마큼 치열한가에 관한 얘기인 것 같아요.”

빨리 다음 작업을 시작하고 싶으세요?

“그런 마음이 한편에 있고, 또 한편에서는 충분하게 충전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떤 걸 선택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놀게 되더라도, 치열하게 열심히 놀았으면 좋겠어요.”

빛나는 청춘이시네요.(웃음) 가장 영향을 받거나 감독님께 자극을 주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제 가장 좋은 파트너가 남편이자 프로듀서예요. 작업을 할 때면 굉장한 논쟁을 벌여요. 옆에서 모르는 분들이 지켜볼 때는 걱정해요. ‘저러다 이혼하는 거 아냐?’ 할 정도로 쟁점이 있으면 서슴없이 싸워요.(웃음) 결국에는 큰 버팀목이 되고, 생각의 지평을 확장시켜주니까, 제게는 중요한 에너지가 되죠.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하셔서 좋겠어요’ 하시는데 저는 이렇게 얘기해요. ‘좋을 때만 좋아요.’(웃음) 서로 상승작용을 하고 발전적으로 얘기가 되면 ‘와~’ 할 정도로 좋다가도, 싸울 땐 엄청나게 싸워요.”

평소에도 주변에 대해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세요?

“그렇지 않아요.(웃음) 다만 요즘 친구들이 말하는 ‘꽂혔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제가 관심 있어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집요하게 파고들어가는 편이에요. 지독하다는 얘기도 가끔 듣고요.”

지독하다고요? 이를테면 어떤……?

“7년 동안 사라졌다가…… 결국엔 했니?(좌중 웃음) 독하다. 이런 식의 이야기.”

중앙대 겸임교수로도 계세요. 20대와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요?

“역시 나와는 굉장히 다른 세대로구나, 이런 걸 느끼죠.(웃음) 확인하고 싶지 않지만, ‘선생님, 저희 엄마와 나이가 같아요. 두 바퀴 돌아서 띠 동갑이에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웃음) 청년들에게 뭐든 치열하게 하라고 당부하죠. 자신이 만족할 만큼 집요하게 제대로 파고들라고요. 고루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친구들이 아는 것 같아요. 다큐 작업과 가르치는 일은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있어요. 먼저 질문해야 한다는 것. 선생님으로서 지식을 전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질문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것들’이라고, 소위 ‘88만원 세대’라고 얘기를 하지만 결국 청춘들에게서 희망을 봐야 하잖아요. 이들이 어떤 청춘으로 성장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주변 환경이에요. 우리 세대도 이들의 배경이 되고, 자극이 되고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죠.”

주변에서는 대학생들이 소위 우경화되는 현상을 우려하기도 하는데요. 사회에 관심이 없다는 지적을 하기도 하고요.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세요?

“오늘이 5월 18일이잖아요. ‘아, 오늘이 5.18이네요’ 하면 (물론 소수지만) ‘남다른 의미가 있지 않나요? 5.18이 뭔데요?’ 되묻는 친구도 있어요. 한편에서는 ‘이를 어찌 하리오’ 하는 생각에 철렁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얘야, 5.18이란……’(웃음) 이렇게 하죠. 그러면 관심을 보여요. 이 세대들을 키워내는 방식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이 사회가 사람을 성장시키는 사회인가. 이제까지 기계적으로 상품같이 키워 왔던 세대라면, 이런 반응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 거죠. 생각하는 자유를 갖게 된 요즘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으로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을 하면, 또 얘기가 돼요. 다른 언어로 표현해서 그렇지.(웃음)”


경계인, ‘가능할까?’ 질문보다는 일단 ‘가능하다’는 명제를 두고


다큐는 그대로 보여줘야 하고, 진실에 가까워야 하고, 그러려면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다큐는 감독님이 자기 목소리를 냅니다. 저로서는 다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는데요. 어떤 다큐멘터리가 좋은 다큐멘터리인가요?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보통 다큐멘터리, 하면 얼마나 분석적이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가에 따라 좋다,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저는 거기에 더불어,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감성에 호소하고, 감성을 흔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감성과 이성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다큐가 참 드물거든요. 그런 작품이 힘을 가져요. 아까 제 숙제라고 말씀드린 것처럼, 과연 이 작품에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고요. 어떤 것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지, 질문하게 하는지, 이야기하자고 제안하는지. 이런 질문과 발견에서 중요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봐요.”

작업을 할 때마다 렌즈 갈아 끼듯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웃음) 다큐 작업을 하며 감독님 자신에게는 무엇이 바뀌었나요?

“사람을 이해하는 깊이 혹은 폭…… 그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이전에는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어’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왔어요. 하다못해 버스 탈 때 줄 서지 않고 끼어드는 일을 볼 때도 ‘어떻게 저러지?’ 이렇게 생각한 것에 비해 이제는…… ‘인간의 가능성은 정말 무궁무진하다’.(좌중 웃음) 나도 이런 짓을 할 수 있고, 너도 이런 짓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사람에 대한 이해, 한 발짝 물러날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난 것 같아요. 단순히 나이를 먹는 문제를 떠나 작업을 하면서 겪는 일을 통해 달라지는 것 같아요.”

2003년 경계인의 의미는 초라한 회색인의 변명으로 퇴색되었습니다. 그렇다면 2010년은 어떨까요? 과연 지금이라면 ‘경계인’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이라도 ‘경계인’으로 존재할 수…… 없겠죠?(웃음)

“한국 사회에서 경계인이 존재할 수 있을까, 작업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더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남다른 시선들이 많이 이야기되고, 기존의 관념을 좀 허무는 작업들이 계속돼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고이고 정체되거든요. 정말 현실적인 꿈을 꾸기 위해서는 ‘경계인이 가능할까’라는 질문보다는 ‘경계인이 가능했으면 좋겠고, 그것은 가능하다’는 명제를 두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편에서는 이것이 실존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이라도 해보자는 얘기일수도 있겠죠.”

감상평 중에 영화를 보고 죄책감이 들었다는 얘기가 많더라고요. 하지만 많은 경우 죄책감을 갖는 일에서 끝나기도 해요. 이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싶은 관객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자성의 목소리를 내거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 물론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자성 모드는 권하고 싶지 않고요. 이 영화에서 사회적, 정치적인 거창한 감상을 담아가는 분들이 있겠죠. 반면 작은 감상을 가져가는 분도 있을 거예요. 저는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상 속에서 내 친구와 관계를 맺을 때 나는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지, ‘나는 도움을 줄 거야’라고 하면서 어느새 남의 인생에 대책 없이 끼어들어 훈수 두고 있지는 않는지, 이런 것들을 멈칫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정말 족하다 싶어요. 기억을 하고, 앞으로 해나갈 일들이 많지만, 다큐 한 편 보면서 너무 무거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나 덧붙이자면, 요즘에 여러 가지 색깔의 독립영화들이 많잖아요. 스스로에게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주시길 바라요.”

개인 작품으로서, 하나의 다큐멘터리로서 작품의 만족도를 물어도 될까요?(웃음)

“글쎄요. 말하기 쉽지 않네요. 내 아이가 얼마나 맘에 드느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제 아들이 열 살인데, 맘에 들었다 안 들었다 하거든요.(웃음) 대신 늘 사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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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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