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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북살롱]“고마워요,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이여” - 「서은영이 사랑하는 101가지」 서은영

‘정성으로 만든 물건들은 결국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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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영 작가는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본질을 발견하려 노력했기 때문에 단지 스타일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할 만큼 성숙해 있었다.

나는 엄마를 닮았다. 특히 ‘먹는 게 남는 것이다’라는 좌우명은 꼭 빼닮았다.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지출의 반 이상은 식비였다. 먹는 것은 아깝지 않았다. 좋은 일이 있으면 기념으로 먹었고, 나쁜 일이 있으면 잊으려고 먹었으며, 친구와 약속 잡을 땐 “밥은 어디서 먹지?” 고민부터 했다. 먹는 것에 대한 집착과는 반대로, 옷이나 생활용품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옷은 그저 일주일에 한번 빨래하는 사이클에 영향받지 않을 정도만 있으면 됐고, 신발은 주구장창 한 시즌 동안 두 켤레로 버티다가 낡아서 자연스럽게 정리하곤 했다. 사회생활 6년차 주제에 종잇장보다 얇은 통장을 갖고 있는 것도 부끄럽지 않았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떠났고, 오늘 먹고 싶은 것을 내일로 미루지 않았다. 소위 말해 ‘My way'를 걸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큰일 났다. 한 작가의 강연회를 갔다 온 후, 내 신발장엔 빨간색 구두와 아이보리 여름 샌들이 생겼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들고 나가지 못하는,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가방도 새로 샀다. 홈쇼핑에서 목걸이를 선전하는 것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려 했다. 목걸이 중간중간에 작고 앙증맞은 리본을 달아 나만의 보석을 만들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든 것이다. 아, 어쩌면 좋지. 나는 말로만 듣던 ‘쇼퍼홀릭’이 된 것일까.

강연회에 다녀온 지 두 주일이 지났다. 한 차례 폭풍을 견디고,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조금 변해 있었다. 잠자기 전에 꼭 크림을 듬뿍 발라주고, 매니큐어도 좌판에 늘어놓는 한 개에 1000원짜리가 아니라, 지속성과 내 발에 어울리는 색을 보고 선택하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필요는 없지만 갖고 싶었던 작은 소품ㅡ넷북 파우치나 예쁜 마우스 패드 같은 것ㅡ을 스스로에게 선물로 주게 됐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게 됐다.

“우린 여자잖아요. 살짝 포인트를 주면 귀여워질 수 있어요”


옷을 입을 땐 늘 설렌다는 서은영. 일을 하러 나갈 때는 진한 아이라인과 타이트한 옷으로 먼저 기선 제압을 하고, 남자를 만날 때면 센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평소와는 다른 옷을 선택한다는 그녀.

누군가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서은영을 평가한 짧은 글이 있다.

“어떤 사람은 보면, 온갖 명품에 메이커를 뒤집어쓰고도 정말 촌스러운데, 어떤 사람은 시장표를 가지고도 간지 작살나게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서은영과의 아마추어 패션 피플들. 서은영의 손길이 닿으면 누구나 옷장에 가지고 있는 기본 아이템만 가지고도 충분히 예뻐질 수 있을 것 같다.”

고현정과 김아중, 김민희의 스타일리스트이자, 『Style Book 스타일 북』 『Style Book 2 : 스타일 북 두 번째 이야기』 등의 전작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들의 일상에 ‘스타일’을 정착시킨 서은영 작가와 독자의 만남. 대부분의 독자들은 20~30대의 젊은 여자들이지만, 마케팅 업계에 종사하는 40대 여성들도 종종 보였다.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입문, 잡지 에디터를 거쳐 톱 스타일리스트의 위치에서 당당하게 빛나는 그녀는 많은 여성들의 워너비 스타다. 그런 서은영이 먼저 꺼내놓은 말은, 스타일은 여러 가지 실패와 실수를 통해서 생긴다는 것. 타고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독자들의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실패를 하나둘 겪으면서, 본인만의 체형을 알게 되고 자신만의 좋아하고 아끼는 것들이 생기는 게 바로 스타일이라고.

그녀도 101가지, 소개할 물건을 어떻게 골라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쓰다 보니까, 너무 많아져서 나중에는 덜어내는 것이 힘들었다고. “명품이거나 비싼 물건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중해서 혼자 보기에 아까운 것들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출간을 결심했다는 서은영. 독자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책 속에서 발견하기를 바란다는 그녀의 강연회는 질문과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Help me!” 서은영 작가, 취업 컨설턴트 및 심리학자가 되다

왜 ‘101’ 숫자를 선택했는지?


101가지는, ‘죽기 전에 해야 할 백한 가지’ ‘101마리 달마시안’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숫자. 일반적으로 많은 숫자를 의미하는 ‘100’에 1을 덧붙여서, 정보와 지식을 꽉 채워서 도움을 준다는 의미의 숫자라고.

사람과의 소통, 제품과의 소통을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라고. 편협한 인간관계로 ‘참 주변머리 없다’고 나무라는 이웃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는 그녀. 화를 내도 진심을 담으면, 부메랑처럼 언젠가는 좋은 답변을 받게 된다고 답한다. 진심으로 물건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또 물건이랑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본질에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서은영. 비단 사람관계나 물건을 다룰 때뿐 아니라, 직업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그녀의 답은 한 가지, “진심을 다하라”.

10대들의 스타일링에 대해서 추천을 해준다면?

저녁 7시에 열린 강연회에 솜털이 보송한 고등학교 여학생들도 몇 명 찾아왔다. 교복이 아니라, 범상치 않은 옷을 입고 온 학생의 다소 도발적인 질문. 유행을 따라 하는 친구들과,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싶은 욕심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학생에게 서은영의 답은, 처음에 스타일이란 무조건 따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따라 하다가 내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될 때가 오면, 유행은 바뀌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은 마음속에 살아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다고 답한다.


패션 디자인은 전공하고 있는데, 여러 길 중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어요.

시작을 하지 않고,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하는 서은영 작가. 학교를 졸업하고 30여 군데 이력서를 썼던 과거를 들려준다. 수십 번 반복해서 듣는 “죄송합니다. 다음 기회에 오세요”라는 말. 그 말이 있었기 때문에, 첫 번째 들어간 직장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수만 개 단추를 세서 공장에 갖다 주는 일을 반복할 때에도 버틸 수 있었다고. 내 속에 다이아몬드 빛을 내기 위해서는 겉에 있는 먼지나 흙을 떨어야 한다고 말하는 서은영. 목표를 세우지 말고 두들기고 도전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고 대학 4학년 동안 공부했지만 선택했던 길이 자신한테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다른 길을 찾고, 마음속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새롭게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일단 시작하라”.

우아한 카리스마, 사람과 물건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하라

행사장을 찾은 『윤광준의 생활명품』의 저자 윤광준

한 가지 일에 미친다면, 세상의 만물을 꿰뚫어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고 했었나. 서은영 작가는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본질을 발견하려 노력했기 때문에 단지 스타일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할 만큼 성숙해 있었다.

“정말 온 힘을 다해 우물을 팠는데, 맨 처음에는 흙탕물이 나왔다. 더 깊이 파니 맑은 샘물이 나왔어. 그 샘물을 발견하기 위해서 땅을 파기 시작한 것은 아닌데, 사람들은 그 샘물이 맛있다고 말해준다. 한순간 최선을 다해 사느라, 남을 감싸 안을 여유가 없었지만, 이제는 달라. 주위 이웃들과 함께 나눠 마실 수 있는 넓고 깊은 우물을 파고 싶다.”

『서은영이 사랑하는 101가지』 안에는 옷이나 구두뿐 아니라, 좋아하는 장소, 문구류, 향초, 죽, 간식거리 등 너무 다양한 물건이 들어 있다. 첫 번째 책을 만났을 때에는, 선물이 잔뜩 들어 있는 보따리를 선물 받은 느낌이다. 너무 예쁜 물건의 사진과, 그 물건에 듬뿍 담긴 애정까지. 마치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패키지의 안마 서비스를 받고 나온 것처럼, 노곤하고 행복했다.


크리스찬 디올, 랄프 로렌, 샤넬, 까르띠에와 GAP, 드 이희 샴푸, 슈퍼마켓, 마비스 치약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은 세상에 단 하나 서은영의 책뿐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물건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작가가 듬뿍 넣은 애정뿐 아니라 그녀가 포착한 ‘정성으로 만든 물건들은 결국 통한다’라는 진리 때문일 것이다.

『서은영이 사랑하는 101가지』는 정말 쉽게 읽히는 책이다. 물건에 대한 설명과 좋은 점들을 잔뜩 적고, 뒷장을 넘기면 한 페이지 가득 프린트된 ‘잘빠진 물건 사진’이 독자를 반겨준다. 이럴 수가! 너무 사고 싶잖아! 이 책을 들고 다닌 지 이틀쯤 된 독자라면, 슬슬 101가지 소중한 물건을 꼽아볼 것이다. 10개를 간신히 넘긴 사람도 있을 것이고, 150개를 훌쩍 넘겨 쩔쩔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곰곰이 생각해봤다. 우선적으로 떠오른 것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즐겨 읽었던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고 대학생 4학년 우연히 옆 반 전공(?) 수업 시간에 만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학창 시절, 예절 배울 때 입었던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가 예뻤던 한복. 러시아에서 출국 시간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안을 달리다시피 해서 샀던, 전통 옷을 입은 도자기 인형. 네팔 안나푸르나 3,210m를 오른 후 내려오는 길에 샀던, 약간은 조잡한 보석함. 생각을 하다 보니 끝이 없다. 결국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동물인지라, 자신의 구역에 체취를 가득 남기며 살고 있는 것이다.


추억에 집착하는 나에 비해, 서은영은 좀 더 현명하다. 자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물건을 뽑아내는 데 타고난 소질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찾아낸 물건들은, 서은영을 아름답게 꾸며준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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