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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본 적 없으면 말을 말어! -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

우리는 본 적도 없으면서 ‘보이지 않는 손’만을 외쳐댔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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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우리는 본 적도 없으면서 ‘보이지 않는 손’만을 외쳐댔던 것일까? 자신의 학문이 맥락도 없이 단 한 줄로 요약되어 유령처럼 떠돌 때, 저 멀리서 스미스는 원통해하지 않았을까?

201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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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국부론
김수행 저/애덤 스미스 원저 | 두리미디어

애덤 스미스는 말했다. “정부는 내비 둬~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부유하게 하리라.” 이 말은 아직까지 자유경제주의자와 주류경제학자들이 아낌없이 외치는 모토다. 이후에 마르크스는 정부가 강력하게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정규 교육과정에서 이러한 경제 원리를 배울 때만 해도,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케인즈는 ‘보이지 않는 손’이 ‘어떤 은유’라고 말했는데, 케인즈도 어떤 은유인지 밝히지 않은 것들을 선생님은 자꾸 시험에 냈다.

문제) 보이지 않는 손이란 무엇인가?
보기) ① 시장 ② 가격

이 답은 사회 선생님에 따라 1번이기도 하고, 2번이기도 했다.

20년간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쳐온 김수행 교수는, 『자본론』 『국부론』을 완역하고, 올해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을 펴냈다. 청소년 시리즈물답게 쉽고 친절한 미덕을 갖췄을 뿐 아니라 저자의 논점과 주석이 날카롭다. 원전 두 권의 번역 내공이 고스란히 담겼다. 무엇보다 『국부론』 『자본론』이 함께 이야기되어, 흥미로울 뿐 아니라 해석의 폭을 넓힌다.

국부론의 정수처럼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그 표현은 국부론 전체에서 단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는다(저자의 『국부론』 552페이지 단 한 줄!). 심지어, 이 애매모호한 표현은, 특별한 은유라기보다는, 본인도 잘 몰라서 쓴 표현일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애덤 스미스의 학문적 배경과 전작을 근거로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을 밝혀나간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 철학을 공부했는데, 이때의 도덕 철학은 신학, 윤리학, 법학, 경제학을 모두 포괄하는 사회 철학의 개념이었다. 스미스는, 창조주는 존재하지만, 자연과 인간 세계는 미리 주어진 자연 질서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마치 자연이 만류인력의 법칙에 의해 움직이듯, 사회 역시 ‘어떤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 ‘어떤 법칙’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것이 그의 학문적 과제였던 셈.

이제까지, 애덤 스미스, 하면 곧 죽어도 ‘보이지 않는 손’만 기억했다면, 그저 시장주의자라고만 생각했다면, 우리는 그를 너무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국부론』이 당시 영국의 중상주의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쓰였고, 그런 맥락에서 애덤 스미스는, 독점의 폐해를 강조하며, 정의의 원칙을 지키며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임금이 상승해야 노동자와 경제가 건강해지고, 자본가 계급의 기득권 옹호를 비판하는 등, 마르크스가 ‘형님!’ 할 만한 급진적인 주장을 펼쳐왔다. “개인들에게 자기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도록 하면 사회의 이익이 증가한다는 이론은 전혀 증명되지 않은 이데올로기이며, 절대왕정을 타도하기 위한 하나의 혁명 슬로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p.219)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스미스의 『국부론』은 상당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스미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생산물의 가치를 노동량으로 측정할 것을 주장했고, 마르크스가 이 논의를 전개하여, 노동이 가치를 창조하고, 그때의 가치란 임금, 이윤, 지대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백 년쯤의 시간차를 두고 쓰였기 때문에, 스미스는 공장제 수공업으로 생산이 이루어지는 것만을 보았고, 마르크스는 기계제 대공업이 확립된 것을 보았던 마르크스의 차이를 염두에 둔다면 이 두 거인이 꿈꿨던 사회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어째서 우리는 본 적도 없으면서 ‘보이지 않는 손’만을 외쳐댔던 것일까? 자신의 학문이 맥락도 없이 단 한 줄로 요약되어 유령처럼 떠돌 때, 저 멀리서 스미스는 원통해하지 않았을까? 그것도 어려운 사람이 좀 희생하더라도, 많이 버는 사람들이 더 벌게 도와주자고 주장하는 경제학자, 정치가들의 입에 그 구절이 오르내릴 때 말이다. 이제까지 『국부론』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경제가 제일, 가장, 무엇보다 중요한 이때(!)에 다시 국부론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그리고 경제가 제일, 가장,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라면, ‘보이지 않는 손’이 어떤 은유인지 짐작하고 『국부론』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필독! 머리 뚜껑이 열리는 경험을 보장한다.


김수행

1942년 10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해방과 더불어 귀국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모교인 대구상고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녔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서울대 조교 생활을 그만두고 외환은행 조사부에 들어가 런던 지점에 부임하면서 영국 생활을 시작했다. 영국의 사회보장제도와 1973년 10월의 석유 파동 이후 사회 변화에 흥미를 느껴 런던대학교 정경대학에서 경제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1977년에 경제학 석사 학위를, 1982년에 ‘마르크스의 공황이론’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10월 귀국하여 1987년 1월까지 한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학장 불신임안 사태로 해직되었다. 민주화 열기 속에서 좌파 정치경제학의 불모지였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된 이후 20여 년간 주류경제학의 틈바구니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치다가 2008년 2월에 정년퇴임했다.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새로운 사회’를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자본론의 현대적 해석』『자본주의경제의 위기와 공황』『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공저)『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도입과 전개과정』『새로운 사회를 위한 경제이야기』『알기 쉬운 정치경제학』 등을 집필했고, 『자본론』『국부론』『고삐 풀린 자본주의』(공역) 등을 번역했다.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
국부론
새로운 사회를 위한 경제 이야기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 경제를 말하다

  “공황을 극복하려면 연대를 맺어 깃발 들고 나서야 한다” - 김수행 교수 강연회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출간 기념으로 지난 19일 서울 신촌의 토즈에서 ‘흔들리는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경제의 미래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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