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가족』, 무대 위로 오르다
취재 차 조금 일찍 도착한 행사장. 북살롱을 준비하는 손길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수상쩍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니까, ‘찍찍’이라든지 ‘야옹’ 하는, 사람 소리 말이에요. 지난 4월 19일, 천명관 작가의 북살롱이 있던 날, 그러니까 여느 때보다 특별한 무대가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천명관 작가의 소설 『고령화 가족』이 연극으로, 인형극으로 ‘공연’되었으니까요. 1부는 공연, 2부는 저자와의 만남, 한껏 풍성하게 마련된 그날의 북살롱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말로만요?) 볼거리 넘쳤던 그날의 이야기를 입으로만 전달하긴 아쉽죠. 생생한 현장을 엿보시며, 그날의 무대를 상상해 보시죠!
| 고양이가 다가왔는데도 아랑곳없이 독서 삼매경에 빠진 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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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쩍은 목소리의 주인공, 고양이와 쥐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고령화 가족』을 읽고 있는 쥐, 고양이가 근처에서 입맛을 다시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에 매료되었습니다. 읽으신 분들은 공감하실지도 모르겠네요.
『고래』로 소설이 담을 수 있는 최대한의 상상력을 한껏 선보였던 천명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고령화 가족』은 말 그대로, 평균 연령 49세를 자랑하는 ‘고령화 식구들’의 이야깁니다. 머리에 피가 마를 즈음, 뿔뿔이 엄마 품을 떠났던 자식들이,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다 패잔병이 되어 엄마 집으로 돌아옵니다. 드라마나 대중문화에서 뻔하게 반복되었던 ‘막장 가족’ 이야기를 재치 넘치는 서사와 문장으로 풀어냈습니다. 무엇보다 간결하고 쉬운 문장, 치달아가는 극적인 서사 덕분에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빠릅니다.
허슬이라는 학자는 “연어는 태어나서부터 바다로 나갈 때까지의 기간에 자신이 태어난 강의 냄새를 기억하고, 회유를 한 후, 그 냄새에 의존하여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온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고령화 식구들의 사정을 대입해 보자면, “자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로 나갈 때까지의 기간에 자신이 밥 먹던 집의 냄새를 기억하고, 파산을 한 뒤, 그 냄새에 의존하여 ‘자신이 태어난 집으로 돌아온다’쯤 되겠네요(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라면, ‘자신이 태어난 집을 그리워한다’ 정도겠지만요).
가장 먼저 엄마 집에 ‘붙어’ 쌀을 축낸 맏형, 오함마.
“쉰두 살에 백이십 킬로그램, 폭력과 강간, 사기와 절도로 얼룩진 전과 5범의 변태성욕자, 정신불구의 거대한 괴물…… 한마디로 인간망종이다.”(p.19) 소설의 화자인 마흔여덟의 둘째 아들은
“20억 제작비의 영화”를 말아먹고, 충무로를 유령처럼 전전하다
“회생불능의 완전한 파산” 지경에 놓인 영화감독이다. 그리고 뒤이어 집으로 회귀하는 여동생 미연의 사정도 만만치 않습니다. 직접 옮겨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장해성(남편), ‘그 개 같은 인간’이 툭하면 ‘술을 처먹고’ 들어와서 멀쩡한 사람을 ‘개 패듯’ 패는데 그 동안 참다참다 마침내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오늘 민경(딸)을 데리고 집을 나와버렸다.”(p.34)라고 본인은 말하는데, 알고 보니 소문난 바람둥이였다나 뭐라나. 그렇게 칠순 넘은 엄마의 집으로 줄줄이 모여들게 된 거죠.
그렇게 엉겁결에 재구성된 우리 가족의 평균 나이는 사십구 세였다.(p.42)
“컷, 컷! 아니야! 다시, 다시!”
무대 위에서 손을 허우적대며 외치시는 분. 네, 저분이 영화감독인 둘째 아들인가 봅니다. 한창 촉망받던 시절, 20억의 제작비로 꿈을 실현하던 시절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객석의 관객 분이 (갑작스럽게) 배우로 불려 나와 순덕의 찐한 러브스토리를 재연하기도 했습니다. 리얼한(!) 표정 연기와 대사로 박수를 받으셨지요.
| 소설 문장에 표정을 더해주신 배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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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도 그 영화, 폭삭 망한 모양입니다 예술적 고민이 드리웠던 얼굴보다 한층 침통한 표정의 영화감독, 묵묵히 독백을 이어 나갑니다. “지금까지의 보신 일들은 전부 과거의 일”이라고요. 그렇게 엄마 집으로 들어가게 된 사연, 집으로 들어가서 겪은 기구한 사연들을 털어놓았죠. 소설의 문장이 무대 위에 재연되고, 말 주머니 속의 대사들이 배우의 목소리로 흘러나왔습니다. 소설과 연극, 그 중간의 형태를 취한 극이었지요. 높은 속력으로 질주하던 문장들의 발랄한 맛이 산화한 대신, 리얼한 표정과 목소리의 배우들은 이야기에 한층 처연하고 쓸쓸한 감상을 얹어 주었습니다. 소설을 읽은 관객들은 소설과 비교하는 또 다른 재미도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지요.
| 고령화 가족이라고, 태어날 때부터 ‘고령한’ 얼굴을 한 건 아니겠지요. 익살스럽게 표현해 낸 공연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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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다양한 인물들을 양승환, 박경찬 연극배우 두 명이 모두 소화해 냈습니다. 빠르게 분장에, 변장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은 큰 박수를 기꺼이 보냈고요.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보여 줘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습니다. 한정된 인력, 한정된 시간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사건을 보여 주고, 고양이의 쥐의 대화를 통해 진행하게 되었고요. 그래도 소설 자체가 연극적인 부분이 많아 준비하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보신 천명관 작가님도
“정말 재미있었고, 고맙다”며 큰 웃음으로 답해 주었습니다.
| 왼쪽이 『고령화가족』의 저자 천명관 작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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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된 무대에서 이어진 순서는 낭독회였습니다. 이번에는 저자의 목소리로 듣는
『고령화 가족』. 낭독한 대목은, 빌라에 사는 할머니들이 담장 아래 긴 소파에 앉아 302호, 이 문제의 가족에 대한 뒷담화를 나누는 대목이었습니다. 작가님 스스로 자신의 특성이 잘 드러난 대목이라고 소개하셨지요.
“서울 근교의 연립 주거 형태에서 오래 살아서, 이런 풍경들이 익숙해요. 분리수거장에 나와 있는 소파. 거기에 모여 있는 노인들.” 이어지는 낭독은 주인공이 스튜어디스 아내를 회상하는 장면. 비속어가 쓰여 유머러스한 부분도 작가님은 ‘니주까리 씹빠빠’(필자 주 - 면상에 힘을 가해 아주 뭉개 놓은 상태) 정도에서만 피식 웃었을 뿐, 덤덤하게 읽어 나가셨습니다(웃음소리는 객석에서 터져 나왔지요). 그리고 이런 말씀을 덧붙이였습니다.
“어머니가 이 책을 읽고 집어던지셨어요. 우리 아들이 이렇게 저질인지 몰랐다고.(웃음) 제가 그리 우아한 작가는 아닌가 봐요. 우아해지고 싶은데, 제가 인지하는 세계는 우아하지 않은가 봅니다.”
문학, 이 또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
소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질의응답을 통해 나눴습니다.
남보다 못한 가족들의 모습이 등장하는데요. 보통의 소설들이 가족 간의 끈끈하고 정감 어린 풍경을 그리는데, 작가님은 왜 징글징글한 관계를 보여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근래 가족 서사라고 하면, 제 소설들과 다르겠죠. 사람마다 자기가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니까요. 작가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건데, 저는 징글징글하고 민망한 가족 사이의 관계를 주목해 봤습니다. 이런 가족 내부의 문제는 정말 구성원 아니면 모를 법한 얘기니까요. 들여다보면 상처 없는 가족이 없고, 구차하지 않은 관계가 없는데, 그러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가족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작가님에게 가족의 의미란 무엇입니까?
“책 속에서는 가족이 오래된 지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한국 사람은 특히 가족주의가 강하잖습니까. 개인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집단 구성원으로 존재하는데, 그 안에서 겪는 일은 누구나 비슷할 것 같아요. 부담도 되고, 자아를 짓누르는 측면도 있을 수 있고요. 저에게도 마찬가지일겁니다 나이가 들어도, 가족은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고 콧날이 찡해지고, 뭐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복잡한 존재인 것 같아요.”
소설 속에서 헤밍웨이가 등장하는데, 굳이 헤밍웨이 소설을 언급한 까닭이 있나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작가였고, 헤밍웨이식의 글쓰기를 좋아해요. 헤밍웨이는 기자 출신이라, 이전까지의 장식적 수사, 시적인 수사와는 달리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 일상어로 된 문장을 썼어요. 제가 추구하는 문장과 가깝죠. 문학적 언어가 쓰레기통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적 언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래어, 비속어, 사투리가 문학 안에 들어와서 쓰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상어, 입말들을 적극적으로 끌어 와야 하고요. 헤밍웨이의 삶도 재미있고, 주인공과 비교할 수도 있어서 이야기 속에 들어간 것 같아요.”
힘든 경험이 문학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젊을 때는 다 힘들죠. 저는 그런 것이 문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 저보다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겠죠. 존 어빙이 이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가장 평범한 사람이 더 좋은 작품을 쓸 확률이 높다고요. 파란만장한 경험이 트라우마나 콤플렉스가 되어, 사건을 과장할 수도 있고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계를 보기가 어려울 수 있죠. 오히려 상처받지 않고, 평범하게 자란 사람들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키처럼요. 우아하게 사셨잖아요.(웃음)”
상상력이 굉장한데, 상상하는 훈련은 어떻게 하시나요?
“농담 삼아 하는 말인데, 연쇄 살인자와 작가는 골방에서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현실에서 자기 판타지를 구현하려고 노력하잖아요. 그걸 현실에서 다 이루게 되면 상상이라는 게 필요 없는 거죠. 연애를 못 해본 사람이 연애 소설을 더 잘 쓸 수 있는 것처럼 『고래』 안에는, 제가 갖지 못한 것, 꿈꿨지만 이루지 못한 것들이 담겨 있어요. 결핍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마음이 가난한 자’라는 게 뭘까, 여러 번 생각해 봤는데, 남들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여도, 태생적으로 마음이 가난한 영혼들이 있어요. 그런 영혼들이 밤마다 스탠드 앞에서 하는 일이 어쩌면 소설 쓰기가 아닐까 싶어요.(웃음)”
주인공이 주변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전의 작품 「프랭크와 나」도 그랬고, 이번 작품에서도 비정규직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데, 작가님이 평소 주변부 인생에 관심이 많으신지요?
“주변부, 하위 주체, 마이너리티의 인물상은 저에게 무척이나 당연한 인물상의 모습입니다. 부자들의 얘기는 알지도 못하고 쓸 줄도 몰라요.(웃음) 글 쓰는 데에 있어 최소한의 윤리와도 관계가 있고요. 르 클레지오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작가의 펜에 유일한 윤리가 있다면, 사소한 낙서일지라도 강자를 칭송하는 일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소외받고 힘들어하는 인물이 자연스럽게 등장해요.”
문학적인 고민이 있으시다면?
“『고래』를 썼을 때,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 역사와 사회, 지금 여기에 작품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허공에 떠 있는 것 같다고요. 즉, 80년대 리얼리즘 미학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이 아직도 유효한지는 고민이 돼요. 현실이라든지 리얼리즘이라는 문학적 테마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고요. 그런 관심을 어떤 미학 안에 담아내느냐가 고민이 되는 거고요. 아직도 과정 중에 있지만, 그게 찾아진다면, 저만의 색깔을 더 보여 드릴 수 있겠죠.”
마지막 인사말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내고 나서 처음 가진 독자 만남 행사였어요. 사실, 작가는 독자의 실체를 잘 모르잖아요. 굉장히 여러 취향을 가진, 다른 분이실 텐데, 이렇게 와 주셨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문학 행위를 차갑게 생각했어요. 세상에 작가가 글을 내보내면, 누군가가 읽는다. 그런 의미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것 또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있는 일이구나. 이런 느낌들의 공유가 앞으로 글을 쓰는 데 힘이 될 것 같아요. 앞으로 여러분을 실망시키는 글을 더 쓰게 될지도 모르지만(웃음)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