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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연회]‘아니면 말고’에 담긴 동양 철학의 진수 - 『철학 vs 철학』 강신주

“철학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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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ㅡ저자 강신주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ㅡ삶에 이르고자 하면서 치른 고독한 분투를 도와준 철학자들에 대한 회고록이다. 철학을 통해 얻었던 희망과 절망의 느낌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것도 이 책이 태어난 동기다.

“나는 다짐했다. 언젠가는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자들을 한 권에 담아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야겠다고 말이다.”(p.6)

이토록 거대한 출사표라니. 모름지기 철학을 하고자 한다면, ‘자유’ ‘존재’ ‘필연성’과 같이 큰 주제를 택하라는 강유원 선생님의 말씀,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큰 것들을 한 권에 담아내겠다니. 그게 가능할까, 의문 당연하다. 더구나 ‘철학’하면, 머리 아파하거나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득실대는 마당에, 저토록 담대한 다짐이라니.

무려 928페이지다. 거대한 출사표, 담대한 다짐은 일단 쪽수부터 압도적이다. 우월한 기럭지를 자랑한다. 전집도 아니요, 한 권의 책이다. 2,500년의 우주를 품은 길이다.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를 단, 『철학 VS 철학』(강신주 지음 | 그린비 펴냄)이다. 철학이라는 타이틀에, 928페이지의 용량에, 기죽을 필요는 없겠다. 책을 펼쳐 들고 차례를 살펴보는 순간, 휘황찬란한 선수들 위용에 눈이 반짝거릴지도 모르니까. 아마도 골라먹는 재미?

뭣보다 시절이 엄혹할수록 탄탄한 기본기가 절실한 법이라 했다. 인문학이 유행처럼 회자되는 이때, 그렇담 그 인문학을 위해선 철학이 제격 아닐쏜가. “철학을 통해서 철학적 사유에 적응하는 순간, 누구든지, 사회학?정치학?문학?공연예술 등 다양한 텍스트가 전제하는 사유 논리를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해독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인문학적 감성과 사유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철학 공부가 불가피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p.12) 철학이 어렵다고? 재미없다고? 그건 아마, 십중팔구 철학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말씀. 철학 책 제대로 한번 읽어 보지 않은 사람들의 괜한 거부감. “사실 철학은 약간의 끈기만 있으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pp.12~13)

이 책은ㅡ저자 강신주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ㅡ삶에 이르고자 하면서 치른 고독한 분투를 도와준 철학자들에 대한 회고록이다. 철학을 통해 얻었던 희망과 절망의 느낌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것도 이 책이 태어난 동기다. 그리하여, 지난달 26일 서울 신촌의 한 모임 공간에서 열린 ‘도(道)를 찾아 떠난 2,500년의 여정’에 동참했다. 『철학 VS 철학』 저자 특강. ‘사이’가 되어 맞닥뜨린 이날의 여정을 한번 따라와 보시라.

『철학 VS 철학』은 이런 책

단재 신채호는, 당대의 세태를 이렇게 개탄한 바 있다.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고 한다.” 주체적인 학문 자세를 갖지 못했던 당대 지식인들을 향해 쏘아붙인 일갈이었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강신주 선생님 왈.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사유한 적이 없다. 과거에도 한국의 유교, 한국의 불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교의 한국, 불교의 한국이 됐을 뿐이다. 지금도 늘 최신만 찾는다. 데리다, 들뢰즈 등의 사유가 나쁜 것이 아니라, 틈만 나면 버릴 준비가 돼 있다는 거다. 문화적 사대주의? 그런 건 아닌 것 같지만 왜 그렇게 휩쓸려 갈까. 궁금했다.”

『철학 VS 철학』은 56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다. 동서양 각각 28개씩. 섹션별 의제는 바로 우리의 일상적 고민에서 잉태됐다. 국내에서만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공부했던 그에게, 강의를 끝내고 학생들이 물어 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단다. ‘누구누구와 헤어졌어요’ ‘사랑이 도대체 뭔가요?’ ‘사랑은 하나가 되는 건가요?’ 웃기는 짬뽕이라고? 사소하다고? 아니다. 이 거대한 사소함이 결국 우리네 일상을 이끌어 가는 것 아니던가. 당장 당신만 지켜봐도 그럴걸. 인류를 사랑하긴 쉬워도 한 사람을 사랑하긴 어렵고, 사랑했다는 이유로 60년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그거 끔찍하지 않나.

각설하고, 우리네 사람들의 그런 고민이 하나씩 쌓였다. “56개 테마를 구성한 것은 내가 만난 우리 이웃들이고, 우리말 쓰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모든 철학자들이 자기만의 시선이 있는데, 잘 보는 것도 있고, 못 보는 것도 있다. 가령 자본에 대해 장자는 설명하지 못하는데, 뭐라고 대답했을지 나도 궁금했다. 사실 처음에 십수 개로 출발했다가 일이 커졌다. 이런저런 주제가 생긴 거다. 출판사 입장에선 천 페이지가 넘지 않았으니 고마운 책이다.(웃음) 아직 몸 상태가 80퍼센트 정도다. 책을 쓰고 이렇게 망가져 보기는 처음이다.”

그 노력만큼 독자들을 위한 배려라고 빠지겠는가. 그 대표 선수들이, 인명사전과 개념어 사전. 독자에 따라 낯선 철학자가 주는 괴리감 때문에 책을 어려워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그래서 섹션별 철학자들과 그들의 중심 사유를 다룬 사전을 뒀다. “철학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좋은 개념 하나가 우리 삶을 확 비춰 준다는 것이다. 개념어와 인명사전을 만든 이유는, 철학자가 쓴 개념을 독자들이 능숙하게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읽다가 감이 가물가물하면 개념어 사전만 봐도 감이 올 거다.”

방대한 철학서, 어떻게 읽을까

강 선생님은 천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무리해서 읽지 말 것을 권한다. “천천히 읽어도 된다. 빈 공간을 메우듯 읽어도 된다. 천천히 6~7개월 읽으면 완독할 수 있을 거다. 56개 섹션으로 이 세계와 인간을 쪼갠 것이니, 전체로 합해졌을 때, 내 의도와 생각이 보일 거다. 우선은 관심을 가진 주제부터 읽는 것이 좋겠다.”

여기서 잠깐, 철학자가 권하는 독서법. “보통 책 읽을 때 나쁜 습관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데, 그렇게 읽는 것보다 책을 넘기면서 좋아하는 부분만 읽어도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습관을 버리지 않으면 독서가 어렵다. 책도 철저히 편식해야 한다. 다양한 책을 읽는 건 철학이 아니다. ‘사랑’에 관심이 있다면, 시중에 나온 ‘사랑’에 대한 책을 다 읽어야 한다. 자신에게 절절한 것을 읽어야 한다. 학창 시절의 교과서를 읽는 습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 부합되는, 자신의 문제에 답을 주거나 답을 줄 것 같은 책을 집약적으로 편식해야 한다. 그러면 독서의 매력을 알 수 있다. 중간에 마음에 안 들면 책꽂이에 꽂아 놓으면 된다. 예쁘잖아.(웃음) 그러면 언젠가 읽는 때가 온다. 걱정 말고.”

덧붙여, 좋은 책은 이런 것이란다. 우리의 삶에 잘못된 생각과 허영이 있다면 그걸 해체해 주는 책. 우리를 불쾌하게 만드는 책. 그리하여, 독자 자신을 찌르고 자극하는 책을 많이 읽으라는 말씀. 그것과 싸워 이기고, 정보 흡수보다 자극을 받는 책을 고르라는 말씀.

다시 돌아가, 섹션별 라이벌 열전은 어떻게 구성됐나. 보면 알겠지만, 입장은 명확하다. 한 사람 편을 든다. 물론 객관성 유지는 필수, 코멘터리에서 저자의 입장이 명확히 드러난다. 당신도 한번 골라 보시라. 아마도 자신의 가치와 세계관에 따라 찍는 재미?

도(道)를 찾는 항해의 출발


2,500년, 동양철학 혹은 동아시아의 사유를 정리하는, 道를 향한 특강의 항해 선미에 놓인, 이 시 구절.

‘사이’라는 것, 나를 버리고 ‘사이’가 되는 것.
너 또한 ‘사이’가 된다면 나를 만나리라.

강 선생님 왈. 서양 시인은 절대 쓰지 못할 시이며,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 가장 중요한 시인 두 명 중 한 명, 이성복 시인(나머지 한 명은 황지우). 시인이라면 으레 감각적인데, 깊이와 이론까지 갖춘 이성복 시인이라는 극찬까지 곁들여. “저 시를 보고 대충 감이 온다면 동양 사상의 핵심이 이해가 되는 거다. 모르겠다면 서양 사상에 익숙한 거고. 서양에서는 저런 말을 못 쓴다.”

그렇다. 도(道). 도를 아십니까. 어디선가 누군가를 통해 많이 들었던 말이지? 거리를 걷다 숱하게 만나 들었던. 강신주 가라사대, “서양이 진리에 대해 사유했다면, 동양은 길에 대해 사유했다. 길은 여기서 저기까지 가는 어떤 과정이다. 출발점은 ‘나’에서 ‘너’다. 너라고 불리는 것은 나무, 꽃, 동물, 아버지, 어머니, 애인일 수도 있다. 그게 길이다.”

길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한 것이 공자다. ‘천하무도’(天下無道). 천하(세상)에 길이 없다. 공자의 목적이 바로, 도를 찾는 것이었다. 물론 무도, 무한도전 아니다. 강 선생님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끄집어낸다. “그땐 영토 국가가 아닌, 점 단위 국가였다. 춘추전국시대를 보여 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도는 다 사기다. 길 바깥이 바로, 문명이 통용되지 않는 ‘야’(野)였다. 개인적으로 이게 더 좋은데, 당시에는 국가가 없는 자유로운 공동체가 있었다. 소수민족들이지. 당시 최소한 길에서는 서로를 죽이진 않았다. 그런데 길이 붕괴가 된 거다.”

아뿔싸. 전 세계가 野로 변했다. 사자, 코끼리 등이 어울리는 세계가 열렸다. 그래서 공자가 찾고자 한 것이 바로, 道. “공자는 잡초가 우거졌지만, 도가 있다고 본 거다. (공자가 이상으로 숭배했던) 주나라의 예절이 도인데, 잡초가 우거져 사람이 못 다닌다고 보는 길의 잡초를 제거하고 흔적만 남은 주나라의 禮를 복원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물론 사람이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길은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공자는 보수적인 사람이다. 옛사람이 걸어간 길을 찾아 풀만 자르면 된다고 했으니까(반면 장자는 새로 만들면 된다고 했던 사람이다). ‘朝聞道 夕死可’(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공자의 말이다. 그 도의 포인트는 서양의 것과 또 다르다. “서양은 진리를 알면 ‘그 순간 죽어도 좋아’이지만 동양은 최소한 하루는 걸어가야 한다. 그다음에야 죽어도 좋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 하나는 아침과 저녁 사이가 중요하다. 아침과 저녁 사이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잖나. 밤과 아침 사이엔 홀로 있지만. 공자의 생각은 이거다. 누군가에게 길에 대해 들었으면, 길을 걸어가 봐야 하는 것이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서양에서는 절대 하지 않는 말이다. 진리는 한 방에 자유롭게 하거든. 동양 사람들은 항상 전전긍긍한다. 어떤 게 길일까. 등산하면서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 초조함 같은 거 있잖나.(웃음)”

즉, ‘어떻게 타인에게 갈까’ 하는 고민. 그것은 군주일 수도 있고, 아버지이거나 자식일 수도 있다. 그게 바로 도. “길이 가진 근본적인 뉘앙스를 찾으면 된다. 길의 의미가 얼마나 절박한지 알겠지. ‘천하무도’라는 공자의 말을 들으면 공자의 절망감이 오지 않나? 내가 길을 뚫으리라. 없다면 뚫고 새로 발견해 내고 정비하리라. 공자의 논어를 보면 ‘유신’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유신은 길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 우리도 많이 들었던 말이다. 맞다. 박정희의 유신. 새롭게 길을 만들자. 그게 유학 전통에서 나온 거다.”

공자의 恕, 장자의 문제 제기

공자에게 ‘예’(禮)보다 중요한 것은 ‘서’(恕)이다. 제자가 공자에게 길에 대해 물었다. 공자 왈. “禮를 몰라도 되고, 인간이 恕대로 하면 禮의 길이 뚫린다.” 이는 나와 남,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다룬 것이다. 처음으로 남에 대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 공자이며, 그래서 위대한 철학자가 될 수 있었단다. 돌려 봐라.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즉, 나에 대한 숙고이며 의식이다. 타자는 아직 없다. 소크라테스보다 공자가 나은 것, 바로 주체와 타자 사이의 길에 대한 진지한 숙고.

공자 왈. ‘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 恕의 행위 원리다. 물론 딜레마가 있고, 이것이 심각해지는 이유도 있다. “나와 남이 같아야 한다는 거다. 이게 타당하려면 나와 남의 욕망이 같아야 한다. 공자가 나와 남을 발견한 건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이 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 공자의 얘기가 한계도 있지만, 남의 욕망을 모르니까 당분간 이렇게 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렇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모른다는 것. 그러니 폭력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원한다고 해서 아기가 똑같은 걸 원한다고 할 수는 없다. ‘너도 이걸 원할 거야’라고 한다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공자의 恕에 폭력성이 있다고 자각한 것이 장자다. 유아론적이고 타자에 대한 폭력적인 원리라는 거다. “장자라는 철학자의 중요성은 그가 바로 공자 사유의 핵심, 즉 서(恕)의 논리를 집요하게 문제 삼았다는 데 있다. 물론 그것은 그가 관념 속에서 정립되는 타자가 아니라 삶에 마주칠 수밖에 없는 진정한 타자를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에 장자가 만든, ‘바닷새 이야기’ 에피소드. 우연히 노나라 임금에게 바닷새가 날아들었다. 7일 내내 자신이 가장 좋았던 음식, 술 등 온갖 향응을 베푼다. 그러나 바닷새가 죽었다. “공자가 만든 恕를 조롱하는 에피소드다. 바닷새가 원한 것은 뭘까. 바닷새를 죽이지 않는 방법은 자연에 풀어 주라고, 교과서에는 그렇게 나온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노나라 임금이 바닷새를 아끼고 사랑했다는 거다. 풀어 줄 수 있나? 노나라 임금에게 바닷새를 풀어 주라는 충고가 먹힐 수 있었겠나. 바닷새를 죽이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장자는 이렇게 고민한다.”

장자가 제기한 문제는, 공자의 것과 다르다. “타인이 원하는 것이 뭔지 어떻게 아느냐.”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시대, 공자와 장자의 시대로부터 한 치도 나아간 것 같진 않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마당이잖나. 지배 세력이 주입한 가치에 휘둘려 자신 안에 있는 욕망조차 모르는 신세. 남이 원하는 것까지 신경 쓸까, 하는 생각도 잠시.

어쨌든 강 선생님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신다. 바닷새를 죽이지 않는 방법은? 노나라 임금이 버려야 할 것은 뭘까. “남이 이런 것을 좋아할 거라는 걸 지워야 한다. 그렇다고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예를 들어 보자. 커피점에서 누군가를 만났어. 계속 아메리카노 두 잔만 마신 거야. 그 사람이 티만 마시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메리카노를 싫어할 수도 있어. 그런데 계속 아메리카노만 마신 거야. 그러다 난 아메리카노가 싫어 이 새끼야, 이럴 수도 있다. 폭력성이 이런 데서 나온다. 그렇지 않으려면 눈빛을 봐야 한다. 아메리카노의 ‘아……’를 꺼내면서. 그래서 나온 것이 ‘허’(虛)이다. 좋아할 거란 생각을 지우고, 그 사람 보내는 신호에 민감해질 수 있다. 그게 차라리 낫다는 것이 장자의 입장이다.”

원효의 진여문으로 타인의 마음을 읽어라


요 문제. “사랑을 잃지도 않고 동시에 사랑하는 대상을 죽이지도 않는 방법은 있을까?” 강 선생님이 도움을 청한 대상은, 원효. 참고로, 한국 사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 원효와 정약용이란다. 서두에 언급했듯, 카피와 아류의 역사에 점철된 우리의 사상사에서 동아시아의 다른 사상을 압도할 만큼의 사유 체계를 세운 사람이 바로 두 사람이라는 것. 퇴계와 율곡? 천만에. 강 선생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상가도 원효란다.

명경지수(明鏡止水).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마음을 명경지수로 비유했다. “‘虛’는, 원효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요한 물의 상태다. 고요한 물은 외부의 타자를 잘 비출 수 있지만 요동치는 물은 그렇지 못하다. 만약 얼굴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한다면 우리는 요동치는 물이 아니라 고요한 물에 얼굴을 비춰야 한다. 고요한 물에 얼굴을 비추면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지만, 요동치는 물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효가 말한 우리 마음의 두 상태. ‘진여문’(고요한 물)과 ‘생멸문’(요동치는 물). “우리 자신이 부처일 수 있다는 것이 원효의 생각이다. 생멸하는 마음만 가라앉히면 된다고 봤다. 원효는 이 생각을 가지고 민중과 같이 있었다. 더럽다가 아니고, 다 우리였다. 진여문. 느낌이 오지 않나? 바닷새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감수성을 열어 놓고 타자가 원하는 것을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지, 티를 좋아하는지, 하나씩 지워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애정이 느껴지지 않나? 장자에게, 원효에게 그것이 있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다. 노력 자체가 애정이다. 어차피 (우리는 남을) 모르잖나. 수줍어 얘기를 안 할 수 있는데, 하나씩 제안하면서 미묘한 변화를 읽어 내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강 선생님 왈. 불행과 행복을 한번에 날려 버리는 방법이 있단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 “이게 가장 좋고, 더 좋은 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죽는다는 것은, 결국 같은 거다. 거기서 안식이 찾아온다. 죽음과도 같은.” 그러니까, 사랑의 비극은, 사랑하기 때문에 타자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보다 비극적인 게 어디 있나. 사랑하는 것, 알겠다. 그럼에도, 우리와 우리의 후세를 파괴하는 지금-여기의 통치자가 노나라 임금 같다. 졸지에 바닷새가 되고 말지도 모를 우리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내몰고 있는 부모들, 똑같다. 그들 역시 노나라 임금이다. 짐승처럼 사육당하는 아이들은 바닷새.

이성복 시인의 ‘사이’에서 찾다

이성복 시인의 시로 다시 돌아가자. 강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나를 버리고 사이가 된다는 것’, 마음을 비운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 ‘사이가 된다는 것’, 고요한 마음을 갖는 거다. ‘너 또한 사이가 된다면 나를 만나리라’, 바닷새에 접근할 수 있으나, 바닷새도 노력을 하지 않으면 사이가 될 수가 없다. 사이의 비유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나를 버리고 비어 있는 공간에 가는 것, 너도 비어 있는 공간으로 올 때, 바닷새가 노나라 임금도 사랑할 수가 있다. 이성복 시인의 감각은 한마디로, 동양적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 「섬」에 나온 시 구절도 꺼낸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역시나 같은 맥락이란다. 정현종 시인과 이성복 시인, 똑같은 생각이고, 원효와 장자가 한통속처럼 같은 뜻을 지니는 것. ‘동양적’인 것을 관통하는 생각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 그만큼이다. 그 사람도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끝이다. 원망할 필요도 없고 한탄할 필요도 없다. 이게 동양적이다. 공자의 방법이 그렇다고 나쁜 건 아니다. 마음을 비워도 제안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는 하나다. ‘너희들은 할 수 있니, 실천할 수 있니, 타인을 읽어 내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니, 타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포기할 수 있니, 그 사람이 안 한다는 것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있니.’ 서양 철학이 할 수 없는 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끝이 있다. 결과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나쁘면 동양 사람은 던진다.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 그냥 받아들이고 껴안아라. 어떤 슬픔, 비극적인 정서다. 해보다가 아니면 마는 거지. 상대방을 풀어 줘 버리는. 그게 동양이 가지는 우울이다.”

살면서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 얼마든지 많다. 가장 흔하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경우. 최선을 다해 애정을, 마음을 줬다. 그 이상은 아니더라도 애정이 돌아와야 하는데, 아닌 경우, 부지기수다. 어찌하오리까. 최선을 다했지만 별수 있나. 사랑이 그렇듯, 인생도 마찬가지. “동양의 정신은 그런 거다.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나를 발견한다.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盡心’ ‘知性’ ‘知天’. 맹자를 좋아하진 않지만, 이건 좋아한다. 우리는 마음을 다해 본 적이 없다. 한계까지 가 본 적이 없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의 한계가 어떤지도 모른다. 동양의 정신은 비장하다. 사랑의 경우도 그렇잖나. 내가 ‘사이’가 된다고 상대방이 ‘사이’가 되는 건 아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유일한 조건이다. 바닷새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듯 ‘사이’를 만드는 것은, 온전히 한 사람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이가 되는 것은 타자와 만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오늘 온 분들은 운이 좋다. 동양 정신의 핵심은 그거다. 이런 비극성을 끌고 가는 담대한 정신,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나서 결과가 안 좋아도 그걸 가슴에 품는 정신, 자신의 한계를 아는 정신. 서양 철학은 좋은 저자들이 많아서 개성 있는 글도 많은데, 동양 철학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 양보하고 싶지 않다. 동양 철학도 서양 철학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듭 확인한 것은 사랑이, 철학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사랑한 또 다른 그녀를 나는 사랑하지 않은 그 ‘사이’에 대한 사유. 그리고 어떤 이별들. 그 붙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사랑하는 동안에는 기필코 다 쏟아야 한다. 물론 명경지수로, 진여문으로. 고요한 물에 그대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질 수 있도록. 그리하여, 어설프게 꼬리를 남기고 마는 애정이 아닐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은 뒤) 아니면 말고. 그 동양적 정신에 대하여. ‘사이’에서 만나기 위해서는 때론 번거로움을 무릅쓰기도 해야 하며, 카피하거나 아류로 접근하지 말 것. 주고받기. 아마도 이날이 즐거웠던 이유. 일방통행이 아닌 상호 작용에 의한 강연, 그리고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이어 질의와 응답의 시간으로 마무리하겠다.

철학이라고 할 때, 어떤 특성이 있다고 얘기해 줄 수 있나.

“철학에서는 개념이 가장 중요하다. 개념이 지닌 파괴력이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인 개념을 갖고 있다고 철학이 되지 않는다. 특히 철학자들의 철학은 모두 고유명사다. 이 책에서 (개별 철학의) 유사성을 강조했지만, 차이도 엄청 크다. 그러면 어떤 개념이 철학이 되느냐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지 않고 발전적 전망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일상적 개념을 갖고 싸우는 게 아니다. 개념을 일상적으로 쓰게 되면, 그 철학은 끝이라고 봐야 한다. 가령, 데카르트의 ‘코지토’(코지토 에르고 숨? Cogito ergo sum)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반면 생각은 일상적으로 쓰잖나. 철학 용어도 너무 평범해지면, 그 철학은 삶으로 녹아들어 간다. 일상적인 언어와는 달리 발견적 의미도 있고, 미래적 의미도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철학은 개념이다. 개념이 없다면, 그것은 시로 떨어진다. 시는 다른 언어로 번역이 불가능하다. 김소월의 시가 번역이 되겠나. 철학은 그나마 유사하게 번역이 된다. 철학 책, 물론 힘들다. 자연 과학에서 수학이 가진 위치는, 인문학에서 철학이 가진 위치와 같다. 그런 잣대로 볼 수 있는데, 철학이 엄격하게 쪼개지느냐,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을 보면, 문학 책 같다. 철학자들은 개념을 갖고 끝까지 가 보는 거다.

종교와 차이를 들자면, 인문학은 오류 가능성을 알고도 인간을 품는 것이고, 종교는 인간을 혐오한다. 즉, 종교에서 인간은 구원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다. 철학은 인간의 가능성을 믿고, 오류를 고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법정 스님을 좋아한다. 법정 스님은 ‘선택적 부주의’를 택했다. 앨범에서만큼은 무소유의 법칙을 버렸다. 앨범은 소유하셨다. 그래서 좋아한 거다. 분명, 무소유의 대상이 있지만, 나는 스님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철학이 우리 삶에 주는 기능은 뭔가.

“내 경험인데, 철학 책을 읽은 뒤, 소설을 못 읽는다. 재미가 없어서. 다만 시는 본다.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켜서. 인문학적 텍스트 가운데 사람을 가장 불쾌하게 하는 게 철학이다. 소설은 위로를 하지만, 철학은 그렇지 않다. 철학은 효용성은 없지만, 각자의 삶엔 굉장한 파괴력이 있다. 자신이나 타인, 사회를 보는 태도와 관습적인 것을 뒤흔들고 모든 것을 재배치시킨다. 생각하는 자신과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다 70년을 사는 것보다 스스로를 직시하고 상처를 응시할 수 있다면 더 행복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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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VS 철학

<강신주> 저31,500원(10% + 5%)

현장에서 인문 독자들을 직접 만나고 책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 온 철학자 강신주의 신개념 철학사! 서양철학 혹은 동양철학에만 갇힌 기존 철학사의 틀을 벗어나 동서양 철학을 모두 망라했다. 56개의 주제에 대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철학자들을 대비시켜 흥미를 유발하고, 어려운 철학 용어를 몰라도 차근차근 읽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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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장재현 감독의 K-오컬트

2015년 〈검은 사제들〉, 2019년 〈사바하〉, 2024년 〈파묘〉를 통해 K-오컬트 세계관을 구축해온 장재현 감독의 각본집. 장재현 오컬트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준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오리지날 각본은 영화를 문자로 다시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독자를 오컬트 세계로 초대한다.

위기의 한국에 던지는 최재천의 일갈

출산율 꼴찌 대한민국, 우리사회는 재생산을 포기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원인은 갈등이다. 대한민국의 대표 지성인 최재천 교수는 오랜 고민 끝에 이 책을 펴냈다. 갈등을 해결할 두 글자로 숙론을 제안한다. 잠시 다툼을 멈추고 함께 앉아 대화를 시작해보자.

어렵지 않아요, 함께 해요 채식 테이블!

비건 인플루언서 정고메의 첫 번째 레시피 책. 한식부터 중식,일식,양식,디저트까지 개성 있는 101가지 비건 레시피와 현실적인 4주 채식 식단 가이드등을 소개했다. 건강 뿐 아니라 맛까지 보장된 비건 메뉴들은 처음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할 말, 제대로 합시다.

할 말을 하면서도 호감을 얻는 사람이 있다. 일과 관계, 어른으로서의 성장을 다뤄온 작가 정문정은 이번 책에서 자기표현을 위한 의사소통 기술을 전한다. 편안함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대화법, 말과 글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방식을 상세히 담아낸 실전 가이드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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