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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 이치로식 ‘연애편지의 기술’을 전수해 드리겠습니다

『연애편지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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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8개월에 걸친 모리타 씨의 서신 왕래 무사 수행을 잘 지켜보았습니다. ‘어떠한 여자라도 편지 한 통으로 유혹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책 띠지의 카피만 보고서, 그런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에세이나 기술서인 줄 알았습니다.

2010-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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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편지의 기술
모리미 도미히코 저/오근영 역 | 살림출판사

4월 20일 (채널예스 김 기자가 모리타 이치로 씨께)

안녕하세요. 모리타 씨. 저는 한국에 사는 김수영이라고 합니다.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내린다고 했는데, 한국에는 4월까지 눈이 내렸습니다. 물론 지금은 벚꽃이 만개했습니다. 약 8개월에 걸친 모리타 씨의 서신 왕래 무사 수행을 잘 지켜보았습니다. ‘어떠한 여자라도 편지 한 통으로 유혹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책 띠지의 카피만 보고서, 그런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에세이나 기술서인 줄 알았습니다. 교토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해파리 연구에 여념이 없는 한 대학원생의 편지들로 도배가 되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모리타 씨가 여러 명에게 보낸 편지만으로 모든 정황과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다니, 연애편지는 모르겠으나 글 솜씨는 굉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쓸데없는 말을 끝없이 이어 나가는 기술 또한 달인의 경지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모리타 씨가 친구, 선배, 과외를 맡았던 초등학생, 동아리 선배이자 소설가 모리미 도미히코(이 책의 저자!)에게 동시에 편지를 보내서, 하나의 편지를 쓸 때마다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어서 통쾌했습니다(하지만, 정작 발신자인 모리타 씨는 모르실 겁니다. 수신자들이 서로 편지를 보내 모리타 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했다는 걸요! 가여운 모리타 상).

“연애편지란 상대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전하는 건 어디까지나 첫걸음이고, 그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데에 연애편지의 진정한 역할이 있다”(p.214)는 것을 깨우친 모리타 님이! 연애편지 대필 벤처 기업을 만들겠다고 천명하신 모리타 님이! 정작 편지를 보내야 할 이부키 씨에게 한 통의 편지도 보내지 못했다는 건 애석한 일입니다. 게다가 실패 서간집은 뭡니까. 이부키 씨에게 쓴 편지마다 스스로 반성문을 붙여 놓고 편지를 검열해 둔 점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반성. 모리미 도미히코 선생이 ‘그녀를 칭찬하라’고 하기에 칭찬의 글을 적어보았다. 그랬더니 연애편지가 어느새 농도 짙은 문장으로 변하여 나의 연애편지 역사상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오싹한 글이 되었다. 이런 편지를 읽고 도망치지 않는 여자가 있을까. 나는 정말 머저리!”(p.287) 하지만, 연애편지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마 그런 검열이라면, 이 세상의 연애편지 중 검열을 통과할 수 있는 연애편지는 단 한 장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모리타 씨의 많은 편지 글을 보고, 연애 감정을 담은 편지는 제아무리 엉뚱한 소리를 써도, 제 정체를 숨기지 못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모리타 씨는 아무에게도 이부키 씨를 여전히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편지 수신인들과 심지어 독자인 저까지 그 마음을 알아챌 수 있었으니까요. 정말 연애편지를 쓰는 기술이 아니라 ‘연애편지의(연애편지가 가지고 있는) 기술’인 셈입니다. 저는 모리타 씨의 기술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리타 씨가 장래가 촉망되는 소년 마미야 군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옮기고자 합니다. 남의 편지 글을 옮기자니 멋쩍은 기분이 없지 않지만, 내심 자신의 편지를 한국 독자들에게 더 알리고 싶어 하는 모리타 씨라면 흔쾌히 허락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 글에서 ‘모리타 이치로식 연애편지의 기술’을 완전히 폭로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돼.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안타까운 추억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다는 점을 아는 것만으로도 뭔가 안심이 되지 않느냐. 적어도 선생님은 그런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고 그건 선생님의 재산이다. (p.315)


그런데 모리타 씨. 고독한 바닷가에서 해파리를 연구하는 대학생이라고 들었는데, 대체 해파리 연구는 언제 하는 겁니까? 이렇게 쉴 새 없이 편지를 날리고, 여성 신체 부위에 관련된 실험이나 일삼고, 연애편지 대필 벤처기업 생각뿐이니, 어떻게 해파리 연구에 진전이 있겠습니까? ‘모리타 드(De) 호색한’이라든지, ‘더(The) 부끄러운 대사’ 같은 황당한 조어를 만들어 쓰는 것을 보아하니, 차라리 해파리는 관두고 언어 연구를 해보심이 어떨까 추천 드리는 바입니다. 이만 총총.

추신.

아직도 이부키 씨에게 편지를 보내지 못하셨나요? 지난 11월 11일 거대하게 계획했던 전골 파티는 어떻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혹시 채널예스 코너 ‘만나고 싶었어요’에서 저와 인터뷰를 하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서신 왕래의 달인 모리타 이치로 씨. 세계 평화에 일조하기 위해 한국의 독자에게도 아무것도 아닌 답장을 보내 주신다면 행복할 겁니다. 봄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연애편지 입문자 김 기자가
연애 상담실 수석 상담원 모리타 이치로 씨께

모리미 토미히코

‘교토의 천재’ ‘21세기 일본의 새로운 재능’ 등의 찬사로 수식되는 작가. 1979년 일본 나라 현 출생으로, 나라여자대학 부속 중고교를 졸업했다. 교토대학 농학부 생물기능과학과에서 응용생명과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농학연구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3년 『태양의 탑』으로 제15회 일본판타지노벨대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2006년에는 천진난만한 후배 아가씨와 그녀의 뒤를 쫓는 어수룩한 선배의 청춘 판타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로 제20회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했으며, 이 작품은 나오키상 후보작에 오르는가 하면 2007 <다빈치> 올해의 책 1위, 서점 대상 2위, 기노쿠니야서점 베스트텐 2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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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연애편지의 기술

<모리미 도미히코> 저/<오근영> 역10,800원(10% + 5%)

어떤 여자라도 편지 한 통으로 유혹할 수 있는 연애편지의 기술!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가 선보이는 괴짜 연애소설이다. 그는 연애편지를 대필하는 벤처회사를 세우고 자신만의 ‘초절정’ 기술을 개발해 편지 한 통으로 전 세계 여성들을 유혹하고자 하는 대학원생 모리타 이치로의 이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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