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핵포드 감독의 지휘 아래, 알 파치노와 키아누 리브스의 협연이 돋보이는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The Devil's Advocate). 주인공의 직업이 변호사니까, 제목을 직역하자면 ‘악마의 변호사’가 될 수도 있겠다. 또 달리, 악마의 말을 그대로 세상에 전파하는 ‘악마의 대변자’의 뜻일 수도 있겠다.
영화는 좀 무서운 기운도 띈다. 알 파치노의 광기 어린 연기가 그런 면을 자극하기도 하고, 키아누 리브스가 맡은 케빈 로막스라는 변호사를 통해 인간에게 도사린 악마적 본능이나 나약함 등이 표현되는 측면이 있다. 어쨌든 액면‘만’ 놓고 보자면, 변호사가 악마(자본)와 타협 혹은 야합하는 모습이 영혼을 저당 잡힌 ‘정의’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진 않았던 기억. 자고로, 법은 곧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유치원 때부터 배워서.(어른들이 잘못 가르친 건가?)
데블스 에드버킷은, 또 다른 뜻도 있단다. 가톨릭에서 사용했던 이름이자 직책이었는데, 16세기(1587년 교황 식스투스 5세)에 만들어져 20세기(198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 없어졌단다. 역할은 이런 것. 한 사람이 성인(聖人) 후보자로 천거되면, 그 후보자의 품성이나 행실이 성인으로서 자격이 없고, 기적이 사기라는 증거를 수집한다. 즉, 성인 추앙을 반대하는 역할로, 무조건적인 숭배나 추앙은 그만큼 위험하니, 견제하는 역할을 맡겼던 것 같다. 조광희 변호사는 가톨릭의 데블스 에드버킷에 대해, “우리가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비록 불편하더라도 의도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약간 억지를 섞어 끼워 맞추자면, 입 소문만으로 어느덧 10만 부를 돌파한
『삼성을 생각한다』의 김용철 변호사. 그도, 데블스 에드버킷이 아닐까. 聖人까지는 아니지만, 절대다수의 주류 미디어가 절대 神 혹은 절대 권력처럼 추앙하는 ‘별 셋’ 재벌의 정직 추구형 회장 나리께 반기를 들었으니. 같은 말의 다른 판본. 나, 회장 나리의 聖人 추앙은, 반댈세.
데블스 에드버킷, 김용철 변호사의 요약은 이렇다. “거대한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중 극히 일부를 국가, 사회의 각 분야에 던져 주어 부패시킴으로써 공적 기능을 무력화하고 나머지 비자금 대부분을 자신들의 영속 불변의 부당한 권력 체계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사용함.” 회장 나리 일가와 가신들이 국가적?사회적 기능을 오도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
일부 변호사들의 이야기로 말머리를 열었지만, 모름지기 법은 아는 사람,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의 것이다. 어떤 변호사가 악마의 대변자 노릇을 하는 것도, 법에 딴죽을 거는 것도 아니까 하는 것. 법을 모른다? 할 수 없지. 때리면 맞고 누르면 납작해지는 수밖에. 괜히 법원까지 가자니 귀찮기도 하고, 가 봐야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젠장, 된장, 투덜이 스머프가 되는 수밖에.
그런 투덜이 스머프 말고, 똘똘이 스머프가 돼 보자는 변호사가 있다. 카드 마일리지 소송으로 세간에 이름을 알리고, 방송 출연, 특히 최근 인기 프로그램 <무한도전-죄와 길>로 스타덤(?)에 오른 변호사 장진영. 최근 경제 법률 용어 사전인
『법은 밥이다』(장진영 지음 | 끌레마 펴냄)도 펴냈다.
앞선 데블스 에드버킷을 통해 변호사와 관련된, 다소 크고 무거운 함의를 얘기했지만, 세상은, 우리 주변은 또한 작고 사소하지만 거대한 권리가 역시 곳곳에 있다. 소홀하고 잊히고, 포기하기 쉽지만, 삶의 구석구석에 포진한 그런 것들. 이를 일깨우고 찾아 주는 작업 역시 변호사의 몫이다. 아마도, 장 변호사의 현미경이 그런 것을 향해 있으리라. 그래서 그의 변호(?)를 듣기 위해, 법원을 찾아가려다,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법은 밥이다』의 저자 강연회 출두 명령을 받고. 지난달 23일 서울 홍대 부근의 한 카페. 다양한 성별과 직업군,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출두(?)했다. 머나먼 경북에서 어머니와 딸이 함께 출두하기도 하는 등, 재미없을 것 같은 변호사 얘기에 사람들이 북적북적.
법정이나 TV 촬영은 익숙하나, 저자로서는 이 자리가 새삼스러운 장 변호사. 오기 전 이런 생각까지 가졌단다.
“몇 명이나 올까 싶어서, 아예 두세 명만 오면 더 좋겠다, 단출하게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왔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참여를 해 줘서 고맙다. 정말 영광이다.”
책을 소재로 할지, 변호사가 하는 일을 풀어낼지, 그동안 치렀던 재미있는 소송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룰지, 살아온 얘기를 해야 할지, 장 변호사로서도 고민되는 노릇. 그렇다고, ‘말’로 먹고사는, 그리하여 ‘말발’이 좋을 수밖에 없는 변호사가 중구난방 뒤죽박죽할 순 없는 법. 종횡무진, 네 가지 재료를 섞은 레시피로, 이야기는 술술 풀려 나갔다.
굿바이, 후천성 의지결핍증~
법대생인 장 변호사. 그 법대의 3회 입학생이다 보니, 선배도 없다시피. 집안에 법조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요, 동기들과는 생각도 달라서, 사법 고시 따위 동기 부여는 안 돼. 헐~ 법대, 재미없어.
“과에서 왕따였다.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다가 취직하는 게 좋겠더라. 그래서 취직한 곳이 항공사였다. 법무팀 보내려고 뽑았다더라. 법대를 나왔지만, 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할 일도 없으니, 법무팀에 못 가겠다고 거부했다. 대신 현장으로 보내 달라고 했고, 공항에서 신나게 놀면서 일했다.(웃음) 그렇게 3년을 놀았는데, 항공사 직원 혜택이 참 좋더라. 괌 갔다 오는데 4만 원. 후쿠오카는 1만 9천 원이면 됐다.”
그렇게 3년을 룰루랄라 하다가, 결국 법무팀으로 갔단다. 로펌 소속의 변호사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됐다. 어라? 그런데 종전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남들 사고 치면 뒤치다꺼리하는 게 법조인인 줄 알았는데, 오호,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일을 하는 변호사도 있는 게 아닌가. 일이 터지기 전, 계약 단계부터 일하는 변호사들이 많았다.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눈이 확 뜨였다. 편견이 깨졌다. 아하, 법조계에도 다양한 일이 있구나.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마당이라, 음 어떡하지,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찰나, 결정적으로 마음을 송두리째 흔든 일이 생겼다.
“알래스카에서 항공사 접촉 사고가 있었는데, 소송으로 갔다. 당시 그런 일이 생기면 사내 법무팀 직원이 기장을 만나 초기 보고서를 써서 변호사에게 넘겨줬다. 그 변호사가 이를 법리적으로 검토하고 의견을 달아서 법원에 제출하는 게 일반적 회사의 절차였다. 내가 보고서를 작성해 변호사에게 줬는데, 내가 쓴 서면 거의 그대로 자기 이름만 붙여서 법원에 냈더라.”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단다. 하나, ‘내가 잘 썼구나. 뿌듯하다’. 둘, ‘변호사가 너무 성의가 없구나’. 은근히 부하가 치민 건, 변호사가 받는 보수가 나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 당시 법무팀 직원이었던 그와 변호사의 차이라면, 라이선스의 유무. 카운터펀치가 날아왔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직후, 상당한 임금의 삭감. 주저함 없이 ‘사표 킥’을 날렸다. 그리고 2000년 4월,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후배들과 머리를 함께 싸맸다.
물론 세상이 그렇게 호락하진 않는 법. ‘법대생’보다 ‘밥대생’이었다보니, 형법의 구성 요건조차 구속 요건으로 알고 있던 상황. ‘아, 난 정말 한심하구나!’ 하는 자괴심에도 잠시 빠졌지만, 돌파구는 공부 또 공부. 그의 증언을 들어 보자.
“공부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그걸 느낄 정도로 열심히 했다. 9개월 만에 사시 1차 시험에 붙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사시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만한 일이었지.(웃음) 그래도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면, 아침에 차를 타 강의 테이프를 꽂고 신림동으로 출발하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배식하는데, 기다리는 동안이나 화장실 가서도 테이프를 듣고, 집에 돌아올 때는 또 듣고. 자투리 시간만 활용하니까, 90분 테이프가 하루에 하나씩 진도가 나가더라. 하루 14~15시간씩 공부한 것 같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지식이 쌓이는 게 보이고 성취감도 느껴서였다.”
이전에 스스로 평가하기를, ‘후천성 의지결핍증 환자’라고 진단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극복하고 싶었던 측면도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이 단박에 이뤄지진 않는 법. 2차 시험에서 몇 차례 낙방의 고배. 그렇다고 이젠 포기하지 않았다. 더 이상 환자가 아닌 마당에. 총 3년 반에 걸친 사시 준비 끝에 마침내 합격증을 받았다. 가장 큰 소득이라면, 바로 스스로를 바꿨다는 것.
“합격 자체보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의지결핍이라고 진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소득이었다. 이젠 목표와 기간을 정해 놓고 이룰 수 있는 것을 해 가자고 결심했다. 그것이 조금씩 실천이 돼가는 것 같다. 작년엔 토플 시험을 봐서 원하는 점수를 넘겼고, 포기했던 마라톤도 다시 하고 있다.”
‘장진영’을 세상에 알리다
결혼한 상태에서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렸느냐고? ‘장고 끝에 악수 둔다.’ 그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렷다.
“많이 고민했으면(항공사를) 못 그만뒀을 거다. 성격이 치밀하게 계산하지 않고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다. 중간에 방법도 알게 되고 도와주는 사람도 생기고, ‘아니면 말고’였다.(웃음) 목적을 못 이뤄도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이 있으니까,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 두려움이 없었겠나. 고시 낭인, 고시 폐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하다 안 되면 경매브로커나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을 하지 뭐’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법은 밥이니까. 법을 알면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성격이 낙천적인 게 있었다.” 낙장불입? 아니! 낙천불입!! 낙천적이면, 들어가지 못할 것이 없다.
카드 마일리지 소송. 장 변호사의 변호 인생에 빠질 수 없는 중요 사건이자 그를 세상에 알린 결정적 사건이다. 역시나 항공사에 몸담았던 경험이 도움이 된.
“사법연수원에 가기 전 신용카드를 하나 만들었다. 항공 마일리지를 두 배 준다는 광고를 보고 만든 당시 LG카드의 트래블 카드였다. 항공사에서 맛을 잘못 들여서 돈을 다 주고 여행 다니는 게 억울한 차에, 마일리지를 그렇게 준다니, 모아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썼다. 그런데, 이듬해 갑자기 마일리지 혜택을 줄이겠다는 통보가 온 거다. 당초 1,000원당 2마일을 주는 조건이었는데, 1,500원당 2마일로 50%를 줄인 거다. 이건 좀 아닌 거 같다고 생각했다.”
낙천적이면서도 까칠한 성격의 장 변호사.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옳지 않은 일을 따지는 성격이 발동했다. 그래, 결심했다. 싸우자. 내가 직접적으로 피해도 받는 마당이고, 사법연수생이라 시간도 많겠다. 일단 1년 차 시절에는 소비자단체 등에서 사전 조사를 하고, 2년 차는 변호사 친구의 사무실에서 인턴을 하는 기간. 친구에게 부탁해, 소송을 해보겠다고 나섰다. 당시 ‘천만 인의 카드’라는 바위에 계란을 날렸다. 에잇, 받아라.
변호사 시보 ‘주제’에. 말하자면 다윗, 골리앗에게 돌을 던진 셈이었다. 그렇다고 쫄았냐. 아니. 지금 그 당시 소장을 보면 소설인지, 기사인지, 도저히 법률가가 썼다고 할 수 없는 괴발개발의 엉성함 투성이라지만, 어쨌든 당시 그는 투사였다.
“재판장이 연수생이라서 예쁘게 봐 준 것도 같고, 진행 과정에서도 배려를 많이 해 줬다. 나중에 상대방 변호사와도 얘기할 일도 생겼는데, ‘정말 마일리지는 모르겠다’는 거다. 그래서 희망도 얻었다. 난 이해가 잘됐거든. 핵심 내용은 그거다. 계약을 했으면 계약 기간에는 그것을 지켜야 한다. 카드 유효 기간이 5년이니, 그 기간은 쭉 가야 한다는 거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특별한 사정은 망한다든지 그런 거.”
1년을 꼬박 싸웠다. 사법연수원 지도 교수(부장 판사)나 동기에게 물어도, 약관에 부가 서비스 변경 등의 조항이 있어서 안 되겠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법을 계속 파고들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론은 ‘전부’ 승소. 사법연수원 수료 한 달 전이었다. 언론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단다. 왜?
“기자들이 전부 그 마일리지 카드를 갖고 있었던 거다. 나중에 보니 재판부도 그 마일리지 카드를 갖고 있었고. 다들 피해자였던 거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일반인들도 비행기를 타려고 마일리지 모으는 사람이 많잖나.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지만 하나같이 카드사를 욕하고 있던 분위기였다. 그럴 때 불이 확 붙은 거다. 언론들이 다 보도하고 의미 있는 사건이 됐다.”
항소도 있었고, 상대방 대리인이 거대 법률 서비스 업체 ‘김&장’으로 바뀌었지만, 2심도 1년을 꼬박 끌면서 승리. 상대방이 협상을 제안했고, 당시 함께 소송을 건 피해자 1만 명은 물론, 추가로 300명까지 구제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마무리됐다. 브라보.
승리의 쾌감도 좋았지만, 장 변호사가 건진 희망의 증거는 여기.
“우리 사회가 원칙이 없는 사회였다 보니,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없는 사람은 늘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살았다. 아직 그런 면이 많고. 그 경우도, 화가 나지만 어떻게 할지 모르겠고, 법원에 간들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돈은 많이 드니,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곤 카드를 바꾸는 것 정도였다. 그런 분노를 대리 만족시켰다는 것과 더 중요한 것은 불공평하고 원칙 없는 사회, 강자가 계약을 바꿔도 할 말이 없는 사회에 대해, 법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 법을 주장해서 법원이 그걸 판단해 내 편을, 소비자 편을 들어줬다는 거다. 난 그걸 희망의 신호라고 봤다.”
장 변호사의 보람도, 의미 부여도 그렇게. 10여 년 전의 그 사건과 비슷한 짓거리를 하는 시티카드와도 지금 일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있다. 역시나 상대방 대리인은 그때 그 ‘김&장’. 지금 막바지 진행 중이란다. 같은 사건에서 이겼으니, 다시 이겨야겠다는 투지도 활활.
공익 소송 전문? 아니, 내 만족을 위해!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란다.
“남들은 공익 소송이라는데 난 사익 소송이라고 본다. 내가 무슨 의인이라고.(웃음) 나 나름대로 이름을 날릴 수 있고 또 좋은 일도 하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억울한데 소송 못한 것을 묶어서 하니, 개인적인 부담은 적잖나. 그분들도 좋고 나도 좋은 거다. 또 ‘카드 마일리지’에선 내가 일인자가 될 수 있으니까. 이를 다른 분들은 공익 소송이라 하니, 더 좋은 거지. 물론 결심한 것은 있다. 돈은 안 되지만 의미가 있는 사건을 한 해에 한 건은 하자. 다른 사건이 많지만 한 건씩은 꾸준히 해 나가자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변호사는 멋있는 직업이라는 생각도 부쩍.
“그런 사건을 할 때, 내 목소리가 커지는 걸 느낀다. 재판정에서도 떳떳이 큰 소리로 얘기하고. 변호사가 그럴 때 멋있구나, 생각하면서 내 만족을 위해 그렇게 하고 있다.”
이번
『법은 밥이다』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공익과 사익이 어우러진. <TV 로펌 솔로몬>(이하 <솔로몬>) 출연 당시, 계약서 공증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매번 얘기를 해도, 출연자 변동 등으로 같은 소리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 그러다 보니, 다른 매체를 통해 이런 법률적 상식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출판사와 의기투합이 된 것이다.
“기존에 법률 관련 책이 많은데, 법률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용어이다. 상황에 대한 해설 책은 많지만 상황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할지 잘 모를 수밖에 없다. 용어가 기본이고, 이를 알면 어느 정도 응용이 가능한데, 용어를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쉽게 다룬 책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이 이 책의 기획의도다.”
물론 한계도 있고 아쉬움도 있지만, 장 변호사는 이 작업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진, 장 변호사를 향한, 질의와 응답의 시간.
변호사를 택해서 잘했다 싶은 점과 단점을 듣고 싶다. 그리고 판검사를 택하지 않고 변호사를 택한 이유가 있나.
“똑똑한 사무관 한 명이 우리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비슷한 논리로, 정의로운 변호사가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변호사가 멋진 직업이 아닌가. 단점은 글쎄, 일이 많다?(웃음) 남들은 변호사를 산다고 하는데, (변호사로) 선임되는 것은 내 영혼을 파는 거라고 생각한다. <데블스 에드버킷>처럼 양심을 판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런 변호사도 물론 있지만.
내 말은, 그 사람의 영혼의 짐을 짊어져야 한다. 법원에서 호출이 오면, 잠을 못 자고 세상이 곧 무너질 것 같은 분들이 계약서를 쓰고 돈을 입금하면 잠을 잔다. 그러면 그 짐은 고스란히 내게 온다. 그 짐을 지고 가는 거지.(웃음) 그런 면에선 고달픈 직업이다. 특히 이혼 소송은 썩 내켜 하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데, 정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을 울면서 얘기를 하면 그걸 들어주는 게 내 일이고. 그 사람은 그걸 통해 (감정적으로) 풀리는 부분은 있지만, 난 어디다 푸나.(웃음) 그런 애로가 있어서 변호사는 영혼을 파는 직업이라고 본다.
음, 판검사는 솔직히 성적이 안 됐다.(웃음) 판사가 제일 성적이 좋아야 하고, 그다음 검사고, 변호사는 그다음이다. 물론 요즘은 굉장히 상위권인데 변호사가 되는 경우도 많다. 성적도 안 됐지만, 또 하나의 변명을 하자면, 처음부터 변호사 라이선스가 필요해서 시작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같이 일했던 변호사가 라이선스 하나 때문에 차이가 많은 걸 보고, 라이선스를 따는 게 목적이었다. 그래서 판사는 생각도 없었고, 검찰은 약간 생각이 있었다. 검찰은 딱 3년은 하고 싶었고, 조금만 공부를 더하면 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아깝더라. 서른다섯에 수료했는데, 가족이 있었고 나한테는 호사라고 생각해서 포기했다. 변호사, 만족한다.(웃음)”
수면 시간은 어떻게 되나. <무한도전>은 어떻게 접촉됐고. 여기 오면서 친구들에게 뭘 질문할지 물었다. 친구들이 이미지를 보니, 바른 변호사인 것 같다며. 정의를 해치는, 가령 『삼성을 생각한다』처럼 비자금, 불법 상속 등에 대한 의뢰가 들어오면, 돈과 법적 양심 중 어느 걸 택할 건가.
“왜 물어봤느냐. 주변에.(웃음) 수면 시간부터 말하면, 난 잠이 많다.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서 특강을 했는데, 잠이 많다고 구박 받는 아이들에게 ‘낙담 마’라고 말해 줬다. 나처럼 될 수 있다고.(웃음) 고등학교 때부터 2~3교시가 끝나면 밥 먹고, 4교시 끝나고 쓰러지면, 5교시 종 치면서 일어났다. 그렇게만 잤다고 생각했는데, 옛 친구를 만나면 내가 수업 시간에도 잤다고 하더라.(웃음) 낮밤으로 잠이 많았고, 연수원에서도 잠이 많았다. 변호사가 좋아 보였던 것도, 방이 있다는 거였다. 일반 회사는 임원이 돼야 하는데, 변호사는 말단이라도 방이 있어서 눈치 안 보고 잘 수 있잖나. 잠이 그렇게 많았다. 신조가 그렇다. 잠잘 시간은 자고 눈 뜬 시간만 열심히 하자. 잠은 8시간씩 잔 거 같다. 지금도 8시간 정도 자고 낮에 밥 먹으면, 내 방에서 20분 정도 잔다.
<무한도전> 출연은, 마일리지 소송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일리지 소송이 내 인생을 많이 바꿨다. 3년 전, <솔로몬>에 나갔는데, 마일리지 소송을 보고 전화가 왔다. 이 프로그램을 하는 중에 <5천만의 아이디어>도 하고. <무한도전>은 그걸 보고 또 연락이 왔다. 우리나라엔 변호사가 1만 명인데, TV에 나온 변호사가 많지는 않다. 게다가 난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을 맡고 있는데, 이것도 TV에 나왔다고 맡게 된 거다. 책에 나온 소개를 보면, 낯간지러운 말이 있다. ‘방송사의 예능국과 보도국에서 주목하는 최초의 변호사’라고. 사실 내가 쓴 말이다.(웃음) 그게 목표였다. 고승덕 변호사나 김병준 변호사가 TV에 많이 나오긴 해도, 뉴스와 예능을 동시에 나와 주목 받은 경우는 없었다. <솔로몬>에 출연하면서 그런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거기엔 어떤 의미가 있냐면, TV에 출연했다고 변호사의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았다. 변호사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게 내 정체성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봤다. 꼴에 또, 가벼운 터치는 거절했다.(웃음)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을 하면서 뉴스에도 등장했고, 동시에 예능도 하게 되는 목표를 이뤘다고 본다. <무한도전>도 처음 연락 왔을 땐, 거절했다. 그 입담 센 사람들 사이에서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배경이나 소품이 되려면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변협 대변인이라 거기 나오면 안 될 것 같다고 거절했다. 그런데 작가한테 계속 전화가 오는 거다. 그래서 얘길 들어 보니 법정에서 이뤄지고, 소품이 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번 해보자고 한 거다.
변호사 가치관을 물었는데, 나는 사익을 추구하는 변호사다. 내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시라.(웃음) 사무실 유지는 물론, 가정도 꾸려야 하고 평범한 변호사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다만 남들보다 조금 더 까칠하기 때문이다. 디젤차 소송에 부과되는 환경 개선 부담금 소송도 했는데, LG카드 소송도 그렇지만, 내가 그 카드를 썼고 디젤차를 사용해서 그렇다. 내가 피해자라서 그렇지, 발굴해서 그런 건 아니다.(웃음)
나도 변호사의 윤리에 대한 고민, 많이 한다. 다만 이해해 줬음 하는 게, 변호사는 의사랑 비슷한 면이 있다. 전쟁터에서 적군이 부상당하면 우리 쪽 군의관이 가서 생명을 살릴 수도 있잖나. 포로나 전쟁 협약 등에도 그런 게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선악을 가리지 않고 생명을 존중한다고 하잖나.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전두환이나 김길태 변호인도 있고, 그 사람들을 욕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다. 왜 저런 놈을 돈 받고 변호하느냐고. 그런데, 변호사는 그런 일을 해야 한다. 변호사의 의무, 직업적인 의무다. 김길태의 무죄 판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쁜 놈이지만 나쁜 짓을 한만큼만 처벌 받도록 하는 거다. 마녀사냥 시대를 떠올려 보라. 잘못한 것 이상으로 군중 심리에 의해 처벌하는 야만적인 시대였다. 그렇게 야만적인 시대가 되지 않도록 잘못한 만큼만 처벌받도록 하는 게 변호사들의 의무다.
물론 모든 변호사가 다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변호사는 하기 싫거나 못할 것 같으면, (변호나 대리인을) 할 수 없다고 거절할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다. 로펌에선 또 그럴 수 없다. 회사가 수임하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처럼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거부할 수 있다. 다행히 나는, 아직 정의에 반하는 그런 의뢰인을 만나지 않았다. 왜 그러냐면, 아까도 말했듯, 카드 마일리지 소송이 내 인생을 좌우했는데, 사람들이 날 정의의 사도로 알아서, 노점상 연합회 이런 데서 자주 온다. 재건축을 해도 건설사에서 안 오고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막아 달라고 온다.(웃음) 내가 하는 사건도 주로 그런 사건이고. 상대방이 크고 강한데, 약하고 돈도 없는 그런 사람이 주로 온다. 반대로, 대기업이나 그런 쪽에선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고민을 할 수 없었고, 앞으로 오면 어쩔 거냐. 그건 그때 고민해 봐야겠다.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변호사로서 해 보고 싶은 일이나, 사람들에게 어떤 변호사로 기억되고 싶은지.
“사실 여러분의 관심이 부담스럽다. 난 진짜 평범한 보통의 변호사인데, 지금 알고 있는 건 이미지일 뿐이고, 깨야 한다.(웃음)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돈을 밝히는 변호사는 되고 싶지 않지만, 돈도 잘 버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 금전적인 것에 부족함이 없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더라. 돈이 안 되는 소송을 할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려면 잘 이기면 된다. 변호사는 돈을 두 번 받는다. 착수금과 성공 보수. 성공 보수는 이긴 금액의 몇 퍼센트를 받는다. 성공률이 낮으면, 착수금만 받는 변호사가 된다. 자꾸 이기면 성공 보수를 받으니까 금전적으로도 좋다. 돈을 잘 버는 변호사는, 실력이 좋은 변호사인 것 같다. 나한테 사건을 맡겨 준 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그러면 돈은 따라올 테고.
어떤 변호사로 기억되고 싶으냐면, 음, 주위에서 잊히기 쉽고, 소홀하기 쉬운 권리들이 노력하면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깨닫게 하고픈 변호사다. 그 정도.”
어떻게 눈가에 그런 주름이 나오나.(웃음) 그리고 현재 삶에 만족하나.
“주름이라면, 아버지에게 여쭤 봐야 하나. 성형외과를 소개 시켜 드릴까. 주름 있는 게 좋은 건가?(웃음) 사실 책의 표지 사진도 뽀삽 처리한 거다.
현재 삶에 늘 감사하고 있다. 난 사회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걸 구하거나 기도한 것도 아니고, 이런 길을, 이런 궤도를 갈 거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고. 왜 그럴까 생각하면 두렵고 한편으로 여러분의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런 것이 나한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더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감사하지만 긴장하고 사는 게 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