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한 살 아기에게 책을 읽히라굽쇼? 환한 연둣빛 표지에 말갛게 웃고 있는 아이 얼굴이 보인다. “얘야, 네가 책을 읽는다고?” 일찌감치 영재 교육 시키는 것이 유행이라지만, 아무리 책 읽기가 중요하다지만 한 살은 너무 어린 것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책을 읽혀야 하나? 질문이 솟구친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한 살 아기에게 책을 읽혀라!’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달고 있는 『뇌가 좋은 아이』가 조기 교육을 종용하는 책은 아닌 것 같으니 말이다. 2009년, 책 읽기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믿음을 파헤치기 위해 KBS 읽기 혁명 제작팀이 꾸려졌다. 그들의 결과물 <책 읽는 대한민국 읽기혁명> 다큐멘터리가 지난 5월 방영되어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10년 3월 3일, 독자들에게 ‘읽기’에 대한 오해를 풀어 드리는 데는, 『뇌가 좋은 아이』의 저자 신성욱 PD가 나섰다.
이 다큐멘터리의 기획은 신성욱 저자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딸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책을 읽어 주려고 했는데, 마땅히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 주어야 할지 곤란했다고. ‘지금 두 살 된 딸아이의 아버지로서,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읽기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는 저자는 PD 이전에 아버지의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책을 저술했을 거다.
“이 프로그램을 꼭 만들고 싶었다.”는 저자. 대체, 우리가 ‘읽기’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건 뭘까?
독서 영재에 대한 오해 - 독서 영재가 자폐아?
그렇다면 일단, 독서 영재. 한국에 이런 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국 소아과 의사들이 경악을 했다고 하는데, ‘독서 영재’라는 말, 그 말에 숨겨진 진실부터 확인하고 가자.
“영?유아기의 다독은 더욱 심각하다. 일부에서는 ‘만 두 돌을 넘긴 아기들이 하루 3시간 5시간 심지어는 밤새도록 책을 붙잡고 있다’는 사례를 독서영재의 근거로 제시하고 이를 널리 홍보, 보급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많은 양의 책을 읽으면 아이의 뇌에 회복하기 힘든 치명적인 결과를 남긴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소아정신과, 인지?발달 심리 분야의 전문가들은 아기들의 이러한 행동을 ‘자폐성향’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
이른바 독서영재라는 아이들은 책을 붙잡고 있는 시간이 과도하게 많다. 이 때문에 상호작용을 해야 할 시간을 빼앗기고 결국은 뇌 발달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전문가들은 만 6세 이전 아이들에게 적절한 책 읽기 시간은 하루 30분 내외라고 권고한다.”(p.260)
실제 사례로 등장한 민지(가명) 이야기는 그야말로 경악스러웠다. 제작팀이 수소문해 찾아낸 ‘독서 영재’ 민지! 태어난 지 고작 20개월 동안 1만 권이 넘는 책을 읽어 낸 아이. 오줌을 싼 줄도 모르고 하루에 15시간 책을 읽는 아이. 그런데 이 아이에게 자폐 진단이 떨어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독서 영재 동호회에 이런 아이들이 많은데, 그 부모님들이 이런 얘기를 한다는 거예요. 독서 영재들이 자폐 성향을 보이는 건 일반적인 현상이고, 그 현상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이 아이가 진짜 독서 영재라는 것을 말해주는 거라고요. 제가 알기로는 독서 영재라는 말, 우리나라에서밖에 쓰지 않아요.” 미국에서는 ‘영재’라는 말을 쉽게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부모나 아이의 인생은 끝난다는 게 미국 교육학자들의 기본 인식이란다.
‘아인슈타인은 뇌의 4%도 쓰지 않았다?’ 뇌와 천재성에 관련되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례가 바로 아인슈타인일 거다. 하지만 이 아인슈타인의 뇌야말로 천재에 대한 환상을 깨는 데 기여했다.
“아이슈타인의 뇌에서 발견된 특이성이 특별히 장애를 갖고 태어나지 않는 한 누구나 후천적인 습관과 관심, 자신이 기울인 시간과 노력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 즉 자신의 분야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관심과 들인 시간 ?이 뇌를 변화시켜 남다른 업적을 성취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에 도달했다.”(p.265) 그러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천재를 만드는 것은
“1%의 영감, 79%의 땀, 29%의 좋은 환경”(p.265)이라는 셈.
뇌에 대한 오해 - 좌뇌 따로, 우뇌 따로?
신성욱 PD는 사람들이 왜 글 읽기에 집착하는지 의문을 던졌다.
“여기에 한글이 가진 오해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한글이 가진 맹점은 글자의 원리만 알면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아이가 한글을 읽으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는 거죠. 왜 문자에 집착하고, 책에 집착하는 걸까요? 아마 옛날 과거 시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겁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책을 읽어서 출세하는 일이 많았으니까요. 일본이나 유럽처럼, 아버지가 귀족이면, 자식도 귀족이었던 사회가 아니라, 글을 읽어서 과거 시험에 합격하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사회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런 식의 읽기에 대한 오해는 그릇된 조기 교육 열풍과 맞물려 아이들의 뇌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고 독서학의 권위자인 캘리포니아 주립대 전정재 박사는 지적했다. 실제로 단어나 문장은 읽을 수 있지만 의미는 잘 모르는, 난독증을 보이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이런 아이들이 학습 부진, 지진아로 여겨져 치료의 때를 놓치고 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
뿐만 아니다. 우리는 흔히 좌뇌는 몸의 오른쪽을 담당하며 문자 구사력,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담당한다고 하고, 우뇌는 몸의 왼쪽을 담당하면서 직관, 감각의 일을 담당한다고 말하는데, 이 역시 크나큰 오해라고 저자는 지적했다.
“좌뇌, 우뇌라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도 참 속상한 일입니다. 이 이론을 발표한 사람이 60여 년 전에 노벨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50년간 연구된 이야기, 밝혀진 이야기는 쏙 빼놓고, 그것이 사실이 아닌데도 좌뇌, 우뇌가 따로 일한다고 쉽게 말하고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좌뇌와 우뇌가 나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통합적으로 일하지, 말하는 것처럼 따로 역할을 담당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의 증거로, BBC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여섯 살 아이의 일화를 들 수 있겠다. 태어날 때 뇌혈관이 터져 버려 심각한 간질을 앓던 아이. 좌뇌 손상으로 인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죄뇌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단다. 아니, 언어 능력과 운동을 담당한다는 좌뇌를 들어내면 이 아이는 어떻게 말하고 움직인단 말인가? 심각한 후유증을 떠안고 감행된 수술, 결과는?
“좌뇌를 제거했는데도 말하거나 몸을 움직이는 데 문제가 없었다. (…) 태어난 직후에 좌뇌가 손상되자 이때 아이의 뇌는 재빨리 신경 회로를 변환했다. 우뇌가 자뇌의 기능을 떠안아 손상된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던 셈이다.”(p.141)
이러하니, 시중에 나와 있는 광고들. 우리 아이를 책 읽는 아이, 독서 영재로 만들어 주겠다는 광고들. 곧이곧대로 믿을 게 못 된다. 미국 공영 방송 PBS의 유아 대상 비디오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 시청하고도 아이가 똑똑해지지 않을 경우 환불을 해 주겠다는 디즈니사의
<베이비 아인슈타인> 등의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영재로 만들어 준다는 프로그램의 포맷, 비디오 자체도 문제시된다. 미국 소아과학회는 ‘2세 미만의 아이는 절대로 TV를 봐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으니, TV 아닌 비디오라도 신중히 선택할 일이다.
뇌는 플라스틱이다?!
그렇다면 신성욱 PD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뭘까?
“뇌는 플라스틱헭다?!” 이것이 그의 결론. 플라스틱에는 이런 의미가 있다. 1. 합성수지의(자장면 그릇을 생각하면 쉽다.) 2. 가소성의 3. 조형의 4. 성격, 감수성이 유연한. 이 중에 뭘까? 4번? 아쉽게도 땡. 정답은 1번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 다 해당된다.
“‘뇌는 마음대로 형태를 뜰 수 있다.’ ‘뇌는 형성력이 있다.’ ‘뇌는 유연하고 감수성이 예민하고 가르치기 쉽다.’ 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p.139) 그러니까 다시 풀어 얘기하면, 뇌는 끊임없이 주어지는 정보와 자극에 끊임없이 적응해 나간다는 말. 변신 자동차, 트랜스포머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뇌가 변화해 나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자극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뇌변연계의 발달은 생후 8주 무렵부터 더욱 활발해진다. 즉 원초적인 감정의 처리와 조절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행위가 아기와 부모와의 상호작용이다. 미소 짓는 아기에게 눈을 맞추고 미소로 대답하기, 울면 안아주고 토닥이기, 또 시도 때도 없이 얼러주기 등등 이 모든 일들이 상호작용에 속한다. (…) 바로 이 상호작용이 아기의 대뇌변연계를 발달시키는 가장 좋은 재료다.”(p.148) 그러니까 더 이상 우리(만 3세 이전의) 아이를 위해, 교재나 프로그램을 놓고 고민하지는 말자.
“뇌 과학, 인지?발달 심리학에서 한결같이 강조하는 결론은 ‘3세 이전 아기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부모와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이라는 겁니다. 이 시기 엄마의 품에 안겨 책을 듣는 아기들은 최고의 상호작용을 경험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 책은 상호 작용을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
“아기를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안아 주고,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것, 즉 부모의 전폭적인 관심과 사랑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p.276)
신성욱 PD는, 아이를 위해 부모들이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사실, 어린 아이들의 뇌에 관한 연구는 많이 밝혀지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더 오해하기 쉽고, 달콤한 말에 속기도 쉬운 법. 비록 아이에게 가장 큰 교재가 부모의 사랑과 손길, 눈길이지만, 아이의 뇌가 언제 어떻게 발달하는지 과학적 지식을 알고 있다면, 좀 더 지혜로운 사랑으로 품어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가 덧붙였다.
“아이를 안아서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신비로운 능력”이라고. 그리고 책 속에 인용되어 있는 플라톤의 말로 기사를 맺어야겠다. 길게 설명했지만, 이 두 문장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되니 말이다. “가장 효과적인 종류의 교육은 자녀가 사랑스러운 것들 사이에서 뛰어놀 수 있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