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론적으로는 공부가 시험을 잘 보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니다. 원래 공부의 목적은 인격과 학식의 도야에 가깝지 않나 싶다. 그러나 현실은 공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다. 독불장군 없고, 독야청청하기에는 현실이 참 춥다. 이병훈 저자의 책 『시험 잘 보는 공부법은 따로 있다』는 현실적인 공부를 위한 서포터로 나왔다. 공부한다고 얼굴이 누레져 가는 아이들이 정작 시험을 잘 못 보는 ‘고민’에 대한 해법이다. 소위 ‘우리 아이는 나름대로 공부를 한다고는 하는데 성적이 잘 안 나와요.’라는 엄마들의 하소연에 대한 응답이다.
저런 하소연을 평소에 하는 편은 아니지만 주제가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었다. ‘시험 잘 보는 공부법’이라는 말 속에 담긴 실용성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핵심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올해 고등학생, 중학생이 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어찌하지 않을 수 있으랴.
공부가 발목을 잡지는 않아야 한다
2월 21일. 강연을 들으러 간 서강대학교. 모교는 아니지만 친구들이 다녀서 간혹 놀러 가곤 했던 학교에 정말 오래간만에 찾아간 감회가 좀 있었다. 일요일 오후, 옆 건물에서는 결혼식이 이뤄지고 있었고, 강연장 앞에는 출판사에서 마련한 커피가 놓여 있었다. 강연은 커피 향 속에서 시작됐다.
‘시험 잘 보는 공부법’이라는 말에 솔깃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가, 아닌가를 가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잣대가 시험 성적이므로, 시험을 잘 봐야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고, 직장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고, 아이가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 갈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지므로. 저자도 그렇게 말했다.
“반드시 공부 잘한다고 잘사는 건 아니지만, 성적이 좋으면 ‘공부 잘하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직업’을 선택할 기회가 있고, 살면서 학벌이 발목을 잡아서 뭘 못 하지는 않는다.”고. 그러니 일단 공부해서, 시험 잘 보자고.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그는 종영한 드라마 <공부의 신> 일본판의 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우리 드라마에서 김수로의 역할을 맡은 일본 배우가 아이들을 향해 외치는 말은 “사회의 룰은 머리 좋은 사람 몇몇이 만들며, 대다수는 룰에 따라 속으며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던 화면 속 아이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필자도 좀 멍해졌다. ‘엘리트주의’에 대한 복잡한 감정. 아무튼.
공부 시간이 확보돼야 공부법도 존재한다
저자는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기계항공학부를 나온 사람이다. 한마디로 공부를 잘한 사람이다. 게다가 그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해 보고, 실패하기도, 성공하기도 하면서 공부법에 천착해 온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공부를 ‘가르치는 것’ 말고, 공부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학습 매니지먼트’라는 걸 최초로 시도한 사람 중 한 명이고, 문제를 족집게로 뽑듯이 뽑아 주는 것이 아니라 ‘공부 노하우’를 뽑아내 주는 족집게 강사이기도 하다.
학습 매니지먼트 회사인 에듀플렉스의 이사로서 그는 일 년에 150여 회의 강연을 한단다. 그래서인지 그의 강연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재미있는 표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들의 일상을 화면을 보면서 설명하듯이 콕콕 집어 묘사해 주기도 하고,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어휘를 과하지 않게,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리고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질적인 체크 포인트를 적절히 섞었기 때문에 참석한 학생들로서는 전설적인 선배가 학교에 찾아와 이야기해 줄 때처럼 귀에 감기는 느낌이었을 거라고 여겨졌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외고를 겨냥하는 영어 공부 방법.
1. 기출 문제 정보를 폭넓게 입수하라.
2. 교과서 외에 보조 교재와 프린트를 고루 신경 써라.
3. 수업을 잘 듣고 평소에 노트 필기를 잘해 두어라.
4. 다른 반 영어 수업의 내용도 체크하라.
5. 수업을 녹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녹음한 것을 두 번째 들으면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강약을 구별해 낼 수 있다.
6. 수행 평가를 꼼꼼히 하라.
7. 새로운 유형의 문제에 대비하라.
이 부분에서 저자는 텔레비전 시트콤에서 퍼진 유행어인 ‘빵꾸똥꾸’라는 표현을 써서 문장의 중간을 비워 메우는 문제 유형을 빗댔다. 선생님들이 어떤 부분에 소위 ‘빵꾸’를 내서 문제를 출제하느냐, 하는 유형의 파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답은, 문법 사항과 연관 있는 것이란다.
한마디로, 저자는 ‘현실적 공부’에 대한 입장이 단호했다. 학자나 연구자들이 아닌 초중고 시절의 공부는 ‘결과’가 모든 것이라고 했다.
“중3 때 죽을 만큼 열심히 하면 고등학교가 천국”이라는 말도 했다.
“초등학생은 일주일에 10시간, 중학생 일주일에 20시간, 고등학생 일주일 30시간,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를 가고자 하는 고등학생은 일주일에 35시간”이라고 공부 시간을 예시해 주기도 했는데, 이 말은
“기본적으로 시간을 확보해야 공부법이 의미가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공부하는 시간이 기준 미달이면 어떤 공부법도 소용이 없다고.
사실이 그랬다. 강연을 들으러 온 부모와 학생 중에는 알약 한 알로 살이 빠지는 것과 비슷한 기적의 비법을 기대한 이들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편법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시험 잘 보는 법이 아니라 시험 잘 보는 ‘공부법’이라는 말에는 공부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적어도 공부를 하고자 하는 욕구, 시험 잘 보고자 하는 욕심을 가진 아이들에게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을 일러 주는 것이 저자의 책이고, 강연이었다.
공부가 아닌 공부법을 전수한다
“방안에 시계, 핸드폰, 컴퓨터 모두 버리고 필요한 책 외에는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취조실’ 분위기(오로지 취조에만 집중하게 하는)의 책상에 앉아 보라. 15분이던 공부 시간이 45분으로 늘어나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방 안 온도는 낮추고, 물 마시러 냉장고에 가지 않기 위해 미리 물을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온 후에 공부하기 시작해 보라.”고 저자는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힌트를 주었다. 갑자기 학창 시절에 시험 기간이 되면, 책 정리, 옷 정리, 대청소에 목욕까지 하고서 막상 책상에 앉으면 졸려서 다음날로 미루곤 하던 일이 떠올랐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공부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우리 때보다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환경을 좀 단순화시켜 보는 게 좋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강연 말미에 다시 동영상을 틀어 주었다. 이번에는 <무릎팍도사>라는 연예 프로그램에 개그맨 서경석이 출연한 부분이었다. 서울대를 나온 것으로 알려진 서경석에게 진행자인 강호동이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는 식의 상투적인 이야기 말고 정말 공부 비법을 좀 알려 달라.”고 하자 서경석이 “평생 동안 잊지 않을 수 있는 자신만의 암기법을 계발하라.”고 대답했다. 이를테면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의 연도 암기를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외워 보라는 것이었다.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이 있을 ‘나만의 외우기 비법’이 생각나서였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자신만의 공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그건 공부를 해봐야 터득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그 일이 힘들면 저자 같은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도 된다. 저자가 이사로 있는 에듀플렉스를 찾아가는 것도 한 방법일 테지만, 그전에 이 책
『시험 잘 보는 공부법은 따로 있다』를 읽어 보는 것도 좋겠다. 저자가 현실 공부를 강조한 것에서 짐작되듯이 책 역시 매우 현실적이고, 바로 응용할 수 있는 방법들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