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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무모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 - 『키스 키스 뱅뱅!』 조진국

핏빛. 가을 노을. 두 여자와 두 남자. 한 편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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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대개 그렇듯, 치명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불온하다. 모든 것을 바꾸니까. 원 나잇 스탠드가 충동적인 행동이라고 우습게 볼 건 없다. 세상은 늘 사소한 것에서 도발하는 법이니까.

“핏빛처럼 물들어가는 가을의 노을을 배경으로 네 명의 남녀가 한 편의 거짓말을 찍고 있었다.”(p.215)

핏빛. 가을 노을. 두 여자와 두 남자. 한 편의 거짓말. 이 조각난 단어들을 통해 머리를, 혹은 가슴을 관통하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키스 키스 뱅뱅!』(조진국 지음|중앙북스 펴냄). 드라마 <소울메이트>의 작가였던 조진국 작가의 첫 소설이다. 두 여자와 두 남자에 얽힌 사랑과 관계. 질척거리는 점액질이 뿜어져 나올 것 같은 풍경이 있고,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도저한 심연에서 헤매는 마음의 행로가 있다.

사랑은 대개 그렇듯, 치명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불온하다. 모든 것을 바꾸니까. 원 나잇 스탠드가 충동적인 행동이라고 우습게 볼 건 없다. 세상은 늘 사소한 것에서 도발하는 법이니까. 기묘한 동거와 감정의 소용돌이, 불시착하고야 마는 사랑이 꾸물대는 시작은 결국, 한 충동이었으니까.

사랑은 그렇다. 하고 싶다고 하고, 내팽개친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무엇. “지루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난 살인이라도 할 거야.”라고 말하는 여자에게, “여자는 내가 망가뜨릴 것이다, 나 없으면 안 되는 여자로 만들 것이다.”라는 남자와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고 읊조리는 남자. 그리고 그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를 밖에서 바라보는, “잘 어울린다는 친구의 말에 사긴 했는데, 결국 혼자서 다음 날 환불하러 갈 것 같은 느낌”의 여자.

네 명 중 한 명을 고르라면, 현창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있었고, 비루해도 꼼지락거리는 자존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사랑을 위해 몸을 내던질 줄 알았다. 단지 그거다. 간지가 부러워서도 아니요, 여자를 홀리는 테크닉이 탐나서도 아니다. 그저, 사랑 앞에 무모할 수 있다는 것. <소울메이트>에서도 그랬었지. “존 레넌과 오노 요코 이야기 아세요?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 무척 닮아서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대요. 사람들은 비틀스가 오노 요코 때문에 해산됐다고 비난하지만 저는 존 레넌이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다 뿌리치고 사랑인 걸 알았을 때 놓치지 않고 잡았으니까요…….” 사랑은, 그렇게 무모할 수밖에 없는 것.

그래서 만났다. 조진국 작가.

지난 1일, 칩거 모드를 깨고 2월을 맞이한 작가에게 말을 건넸다.

(※ 인터뷰를 토대로 맥락에 지장 없이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뿌듯한 내 첫 소설

안녕. 난, 조진국이야. 드라마 <소울메이트>의 작가로 많이 알려졌지. 물론 그전에, 시트콤 <두근두근 체인지>의 서브작가 겸 배경음악 선곡을 담당하면서 드라마 작가로 데뷔했고, <안녕, 프란체스카〉의 메인작가를 거쳤어. 『고마워요, 소울메이트』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등의 에세이를 펴냈었고.

그래, 이번 『키스 키스 뱅뱅!』은 첫 소설이야. 발 킬머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나왔던 영화 <키스 키스 뱅뱅>(2005)과 헷갈리진 마. 하하. 소설 제목은…… 음, 들을 음악이 없다고 한창 투덜댈 때 알게 된, 한참을 미친 듯이 들었고, 내가 아는 한 지상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하고 해피한 일본의 밴드, ‘피치카토 파이브(PIZZICATO FIVE)’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어. 60~70년대 복고 사운드를 중심으로 시부야 케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밴드지. 일본 음악 사상 가장 댄디하고 촌스러운(?) 음악으로 비평가와 대중을 확 휘어잡기도 했었고. 아쉽게도 2001년 해체돼서 더욱 그리운 이름이야. 홍대 인디신의 여왕, 오지은도 한때 즐겨들었다지.

첫 소설? 글쎄, <소울메이트>에 이런 말, 나왔잖아. “첫사랑은 처음이라는 뜻밖에 없는 건데……. 온통 첫사랑에 목매다는 거 비현실적이라 싫었거든. 두 번 세 번 사랑한 사람들을 헤퍼 보이게 하잖아.” 음, 기분이 그래. ‘이래도 되나?’ 하는. 내가 보기엔 예쁘고 소중하고 좋은 놈인데, 반응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뭔가 하나를 했다는 뿌듯함도 있어. 여러 감정이 교차하네. 하하.

인터뷰어가 소설이 좀 늦어진 게 아니냐고 하는데, 난 되게 빨리 썼다고 생각해. 사실 더 나중에 쓰고 싶었거든. 아니, 더 나중에 써야 할 것 같았어. 좀 더 묵혀 두고 발효시켜서. 그런데 주변에서 드라마도 했고, 이야기 자체에 대한 부담감도 없지 않느냐며 써 보라고 부추기고, 나도 언젠간 써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마침 쓰고 싶은 얘기가 차오를 때였어. 그래서 쓴 거야.

무엇보다, 난 어릴 때부터 소설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국문과도 그래서 들어갔고, 어릴 때 책방을 가서 베스트셀러 진열장에 서면, 내가 쓴 책도 진열됐으면 좋겠다는 열망을 가졌거든. 앞서 했던 일간지 교열 기자나 음악 코디네이터는 생활, 생계를 위해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거고. 음악 코디네이터도 좋아하긴 하지만, 생계에는 큰 도움이 안 되더라고. 드라마 작가나 책을 쓰면서 비로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구나 싶었지. 글을 쓴다는 점에서 만족감도 크고 결과도 나쁘지 않아서, 참 고맙게 생각해.

우연히 하게 된 드라마 작가도 재밌고 다이내믹한 면이 있더라고. 여러 사람도 만나게 되고, 반응도 빠르고. 소설을 쓰면서 드라마 작가도 계속하고 싶어. 『키스 키스 뱅뱅!』을 보고, 영상으로 만들어 보자는 제의도 일단 있었는데, 어떻게 될진 아직 모르겠고. 일단 이 책을 읽은 관계자들이 연락해 줬으면 좋겠어.


두 여자, 두 남자, 그리고 조진국

책을 본 사람들이 종종 물어봐. 조진국이 가장 많이 투영된 인물이냐고. 일단 남자가 두 명이잖아, (나)현창과 (정)기안. 분배돼 있는 것도 사실인데, 현창은 특히 자라온 과정이나 거칠게 마음을 표현하는 타입 같은 것에서 내가 그 안에 있어. 사적인 공간에선 나도 약간 투박하고 거칠거든. 현창의 성장 과정에서도 내가 실제로 겪은 얘기도 있고. 따지자면, 『키스 키스 뱅뱅!』은 자서전적인 성격도 강하지. 기안과 같은 처지였던 적도 있고. 이 소설이 자기 치유적인 성격도 있는 셈이야. 하하.

인터뷰어는 내 애정이 가장 진하게 묻어나는 인물이 현창이 아니냐고 묻더라고. 소설 전반에 현창의 체취가 곳곳에 묻어 있고, 위악적인 면모가 가장 충실히 묘사돼 있다나. 흠, 약간 ‘깜놀’이었어(깜짝 놀랐어). 책을 읽고 만나 본 사람들 대부분은 (조)희경에게 가장 많은 애정을 쏟지 않았느냐고 그랬거든. 네 명 모두 분배를 잘하려 했지만, 애착을 가장 많이 가진 인물은 현창이 맞아. 내가 거쳐 온 환경이나 성장 과정이 비슷한 점도 있지만, 현창이 가진 정서 같은 걸 좋아해. 잘나가는 스타일리스트나 소설가가 아니라, 거친 말을 뱉으면서 몸을 팔고 하는 캐릭터에 대한, 화려한 무대 뒤에 숨겨진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거든, 내가.

네 사람의 직업군을 모델, 스타일리스트, 소설가, 네일 아티스트로 잡은 것도 그런 이유가 있어. 보기에 휘황찬란한 건물인데, 무수한 전선이 얽혀 있는 그런 느낌 있잖아. 화려한 패션쇼 뒷무대 같은 느낌 때문에. 트렌디하고 화려한 직업일수록 대비되는 그런 것을 담고 싶어서. 두 번째 이유라면, 모르는 분야에 대해 쓰는 것이 겁이 났어. 드라마 작가를 하면서 모델이나 아티스트를 알게 되고 친해지다 보니 어느 정도 그 생활을 알 수 있게 됐거든. 화려함이라는 포커스 뒤에 쓸쓸함도 대비되고. 인터뷰어가 그러더군. 자신의 몸이나 재능을 뽐내고 인정을 받거나 받고 싶은 분야의 사람들이라고. 하하.


“모텔처럼 살다가 없어지고 싶다”

이 소설 쓰면서, 정리한다는 느낌이었어. 앞선 두 권의 에세이도 그런 면에선 일맥상통하지. 다만 이전 것은 에세이 느낌이라면, 이번 것은 이야기 자체가 중심이었달까. 아까 말했듯, 자서전 같은 기분이었던지라, 움찔움찔한 것은 있었어. 왜 내 상처를 파고들어야 하나라는 느낌이 있었던 반면, 시원하기도 하고. 날 인터뷰했던 이는 그러더군. “작가의 ‘추억’보다는 ‘기억’이 묻은 소설 같고, 큰 지진이 일어난 뒤 여진이 남은 느낌”이라고.

아마도 이 구절 때문에 그런 얘길 꺼낸 것 같아. “기억은 언제든 그 순간이 다시 올 거라는 가능성을 믿는 거고, 추억은 가능성을 믿지 않는 거죠. 추억이라는 말에는 단 한 번뿐이라는 의미와 마지막이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겁니다.”(p.91)

머물다 갈 수밖에 없는 게 우리네 사람살이인데, 그런 면에서 소설의 처음, 모텔에 대한 묘사가 인터뷰어에겐 인상 깊었나 봐. “모텔처럼 살다가 없어지고 싶다”는 그 말을 꺼내더군.

“모텔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떠날 것을 미리 알고 잠시 머문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남길 필요도 없고,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쉴 만큼 쉬고 절정의 순간을 맛본 후에 사라져주면 된다. 아무리 깨끗해 보여도 모든 것은 이미 누가 썼던 것들이다. 새것이라곤 입과 혀를 닦을 수 있는 뻣뻣한 일회용 칫솔과 치약뿐이다. 그 점도 마음에 든다.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 앞사람이 머물렀던 자리에 내 흔적을 보태기만 하면 된다. 조금 엉망으로 놀았다고 해도 치워줄 사람은 있으니까. 모텔처럼 살다가 없어지고 싶다.”(p.8)

그러면서 또 물어. 모텔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쓸 생각이 없느냐고. 흠, 생각해 보거나 계획은 없었는데, 그것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어. 모텔이라는 상징성을 난 좋아해. 인생처럼 머물다 갈 수밖에 없는 곳이지만, 호텔과도 또 다르잖아. 소수의 부자보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 있고, 섹스, 슬픔, 불륜도 들어갈 수 있고, 인간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물론 모텔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고, 모텔이라는 느낌. 하하. 생각해 봐야겠어. 모텔이나 공동으로 사는 주택이 소재가 되는 이야길 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드네. 역시나 난,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게 좋아.

사실 내가 글을 쓰는 스타일도 그래. 짜인 틀에 맞춘다기보다 글을 진행하면서 토대를 세우지. 이 소설도, 네 명의 관점에서 진행하겠다는 건, 미리 세워 놨지만 내용을 채우는 건, 그때그때 순간에 따랐어. 영화로 치자면 왕가위 감독 스타일? 음악 고를 때도 그래. 느낌이 좋으면 바로 골라. 장르 따지지 않고. 본능대로 움직이는 스타일이지.

그러니까, 소설을 구상할 때도 디테일하게 잡아서 쓴 건 아냐.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도 그래. 소설 구상하면서 처음부터 영감을 주거나 그런 건 아니고, 현창이가 애프터 파티에서 상체를 벗고 서빙하는 장면이 나오잖아. 그 장면을 쓰면서 트렌디하지 않은 그림이 걸려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어. 문득 떠오른 게 그 그림이었고. 묘하게 또 그림 속에도 네 사람이더라고. 구도 또한 소설과 비슷했고. 딱 맞아떨어진 거지. 전문용어(?)로 ‘아다리’라고 하는데, 마침 인터뷰어도 그 말을 쓰더군. 하하. 피크닉 장면에서도 이 그림이 떠올랐다면 그런 이유 때문일 거야.

그리고 피크닉을 가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각자가 담배를 피우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쓰고 나서도 참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야. 난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연기에 대한 애착이 있어. 난 담배도 속에 있는 것을 내뱉는다는 점에서 언어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지. 오히려 사람의 말은 왜곡하거나 꾸미는 부분이 있다면, 담배 피우는 것을 보면, 그게 저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나와 얘기를 한 이 양반은 그 장면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고, 서로를 안다고 느꼈으나 전혀 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관계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묘사가 아니냐고 물었는데, 맞아. 담배를 피우는 숨겨진 모습을 보면서, 이런 사람이었나 하는 느낌을 드러내기도 하고, 성적인 긴장감과 연결되기도 하지.


쿨한 사랑? 아니 사랑은, 늘 뜨겁다

“몸이 아니라 마음을 차지해주세요.”라고 희경은 현창에게 요구하지. 현창도 이 말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이고. “한 사람을 다른 사람이 아니면 안 될 정도로 빈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매력적이었다.”(p.31) 몸은 어차피 빨리 뜨거워지고 식어. 난 그래. 누구한테 마음을 줄 때 예열이 필요한 타입이야. 한 번 마음을 주면 웬만해선 끊지 않고. 상처를 받아도, ‘그래도 아닐 거야.’라며 미련이 남는 타입이고. 그런 면에서, 마음을 차지하는 게 많은 부분을 갖는 게 아닐까. 당신은 어때?

그렇다고, 나 완전 착해 빠진 사람은 아냐. 피치카토 파이브의 「키스 키스 뱅뱅」이 마음에 들었던 것도 멜로디보다는 제목이었어. 장난스럽기도 하고 명랑하기도 하고. 그래서 제목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딱 떠올랐지. 열렬히 키스를 했던 두 사람이 어떤 일로 서로에게 총을 쏘는 관계가 될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키스 키스 뱅뱅. 사랑하다가 헤어져도 그 사람의 행복만 빌어 주고 그랬으면 좋겠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야? 또 그게 사람이야? 하하.

좋은 이별. 물론, 나도 머리론 알아. 그렇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가슴이 꼭 그럴 수 있나. 헤어지고선 그 사람이 앞으로 잘 안됐으면 좋겠고, 나보다 훨씬 못난 놈 만났으면 좋겠고. 전혀 그런 적 없다고 말한다면, 음, 당신은 진짜 초식남? 하하.

인터뷰어가 그래. <소울메이트>에서도 그랬고, 현창과 서정도 본능적으로 이끌리니까, 소울메이트라 불러도 좋을 듯한데, 본능적이고 운명적인 끌림을 믿느냐고 물어. 이거 뭐야, 취조야? 하하. 음 그래, 상당히 믿었었지. 알겠지? 과거형이야. 난 즉흥적, 충동적, 본능적, 이런 단어, 좋아해. 그런 게, 계획되고 준비된 것보다 진실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요즘은 조금씩 달라지긴 해.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그랬지. “사랑은 운명이 아니라, 운명적인 선택이다.” 어쩌면 내가 ‘그 선택이 불가피해.’라고 변명하는 것일 수도 있단 거지. 이젠 뭐랄까, 운명적인 느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택하는 것은 본인이라는 생각? 조금 달라지는 느낌이야.

물론 본능의 힘은 강하지. 사랑은, 학습된 무엇이 아닌, 진짜 날것의 본능일지도 모르고. “그녀는 현창과 싸우면서 생기를 얻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딱지가 앉을 것 같으면 금방 또 뜯어내고 아파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방법이 잘못됐을지는 몰라도, 내가 주고 싶었지만 실패했던 걸 현창은 주고 있었다. 노력으론 따라잡을 수 없는 본능의 힘이었다.”(p.164)

네 사람 각기 사랑에 대한 다른 관점과 시선이 있는데, 아마 난 현창의 시선에 가장 가까운 것 같아. 아까 말했듯, 애정이 가장 많이 포함돼 있기도 한데, 갈구할수록 믿지 않게 되는 그런 면모도 있었거든. 상처도 받고, 나쁜 사람이 돼 보기도 하고. 가장 벌거벗은 느낌의 현창의 시선에 가까운 것 같아.

소설이 쿨한 것 같아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뜨거워. 인터뷰어가 온도를 재보면 어떠냐고 묻는데, 이 얘길 들려줬어. “생각해보면 가장 뜨겁게 보이는 빨간색이 사실은 차갑고, 차가워 보이는 파란색이 사실은 가장 뜨겁다는 건, 아이러니했다. 나와 서정은 어떤 색깔일까. 겉으론 무심하지만 애증으로 들끓는 파란 불꽃일까, 어중간하게 서로에게 머물고 있는 노란 불꽃일까.”(p.180~181) 손을 대보면, 읽어보면 파란 불꽃이길 바랐고, 그런 느낌으로 쓴 거지.

사랑. 난 뭘 쓰더라도 화두는 사랑이야. 이 얘기. 한번 읊어볼게. 책에도 인용됐지만.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에 나온.

“사랑받는 사람은 배신자일 수도 있고 머리에 기름이 잔뜩 끼거나 고약한 버릇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랑을 주는 사람도 분명히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이는 그의 사랑이 점점 커지는 데에 추호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디로 보나 보잘것없는 사람도 늪지에 핀 독백합처럼 격렬하고 무모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세상엔 아마 60억 개의 연애가 있을 거야. 다른 빛깔과 모습을 지닌. 한편으로 많은 연애가 그러지 않을까. 목적지와 다른 곳에 종착하거나 예기치 않은 샛길로 빠지기도 하는. 현창과 서정이 그렇잖아. 누가 알았겠어. 당사자도 모를 그런 사랑과 연애의 느닷없음. 연애의 본질이 그런 게지. 카슨 매컬러스의 글을 인용한 이유도 그래. 내가 가진 사랑의 느낌과 맞아떨어져서야. 지위나 성품이 어떻든, 그 사람이 죽일 놈이거나 나쁜 년이든, 나한테는 소중한 단 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사랑의 본질은 몰라도,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무모한 거야. 사랑은 무모할 수밖에 없는 거지. 다른 어떤 것을 따져서라도.


음악, 내 글쓰기의 영감

그래, 음악 얘길 빼놓을 순 없지. 책 끝에도 있잖아. 이 소설을 쓰면서 영감을 받았던, 자주 들었던 음악들. 네 명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챕터마다 붙은 제목도, 다 음악 제목들이지. 현창이는, 「POISON PRINCE」(Amy Mcdonald). 서정이는, 「YOUR HEART IS AS BLACK AS NIGHT」(Melody Gardot). 기안은, 「WRITING TO REACH YOU」(Travis). 희경인, 「BROKEN BICYCLES」(Tom Waits).

한 블로거가 소설을 읽고 이런 글을 써 놨다고 인터뷰어가 알려줬어. “모든 장르의 음악을 넘나들며 음악처럼 명징한 글을 써 내려가는 이 사람은 상상력만으로도 외롭지 않겠다.” 글쎄, 상상력만으로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직업이 글 쓰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난, 밝을 때나 기쁠 때보다는 고민이 있고 슬프고 외로울 때, 글이 잘 써지더라고. 그때 썼던 글이 조금 더 낫다는 생각도 하고. 그래서 생각해 봤어. 외롭고 슬픈 것도 때론 거름이 될 수 있구나.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 거지.

아, 물론 음악도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친구다 보니, 글을 쓸 때도 음악에 영감을 많이 받는 스타일이야. 이 책을 쓸 때는, 캐릭터의 체형 같은 것은 미리 잡아 두는데, 어떤 옷을 입힐 것인가, 스타일링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생각을 하지 않고 썼어. 음악을 들으면서 까만색, 보라색 옷 등을 입히고 스타일을 잡아나간 거지.

글 쓸 때, 음악 외에 책, 영화, 드라마 등은 접하지 않는 타입이야. 오로지 음악과 함께. 그건 영향을 받을까 봐 그래. 음악을 통해 상상력을 불러오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거든. 날 인터뷰한 이는 내가 시나리오에 참여한 영화 <M>의 이미지도 떠올랐다는데, 아마 몽환적이고 부유하는 이미지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 사실 <M>에 참여는 했지만,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작품은 전적으로 이명세 감독님의 색깔이고, 이미지 중심의 예술적인 작품이거든. 물론 나도 몽환적이고 부유한 느낌을 좋아해. 음악도 그런 것을 좋아하고.


나는 당신과 연결되고 싶다

슬슬 이야길 마무리하는 순간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소설의 결말에 대해 이야길 하자면, 고민, 많았지. 다른 결말을 놓고 저울질도 했어. 현창을 악인으로 남겨둘 것인가도 생각해 보고……. 여러 버전의 결말이 있었지. 그렇게 고민도 했지만, 어느 순간, 소설이 내 손을 떠나 있더라고. 등장인물들끼리 얽혀 있고, 그들이 가는 방향으로 나는 길만 만들어 줄 수밖에 없구나. 왜 그런 결말을 썼느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그게 맞다고 생각했고. 주인공들이 살아 움직이면서 마지막에 다다른 결론이니까. 다른 맥락에서 쓰인 말이긴 하지만, 희경의 이 말 같은 거지. “…… 그런 건 내가 정하는 게 아니에요.”(p.233)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주인공은 누가 했으면 좋겠냐고 인터뷰한 친구가 묻는데……. 음, 지금 즉흥적으로 생각해 보니, 서정이는 너무 화려한 외모는 아닌, 손예진이나 전도연 씨? 현창은 강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는데, 주진모 씨? 물론 나이가 좀……. 하하. 기안은 드라마 <거짓말>에 나온 이성재 씨의 이미지였으면 좋겠고, 희경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으면 하는데, 아마 내가 좋아하는 박진희 씨? 어쨌든 관계자들도 책을 많이 봐주고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 언제든 환영이니까. 하하.

1월의 마지막 날, 블로그에도 썼는데. “왠지 내일부터는 기분 좋은 일이 마구 생길 것만 같다. 그러고 보니 2월이구나.” 자기 최면일 수도 있는데, 신문사를 그만두고 백수일 때도 되게 힘들었어. 당시 미니홈피 활동을 했는데,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대문에 ‘나는 이제 원하는 글을 쓰고 살겠다.’고 적어 놓았어. 정말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그렇게 적고, 음악을 듣곤 음반 평을 올렸는데, 음악 사이트에서 그 글이 게재됐고, 방송 쪽에서 일하게 됐어. 2월을 좋아해. 숫자 ‘2’를 좋아하거든. 2월이 됐으니, 좋은 일이 마구 마구 생길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인터뷰를 한 것도 2월의 첫 날이네. 하하.

진짜 마무리할게.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는데, 음……. 연단 위에 올라 연설을 하는 느낌의 작가는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럴 능력도 안 되고. 그저 같은 객석에서 같이 뭔가를 만들 수 있는, 편안하고 인간적인 작가였으면 좋겠어. 지금까지 내가 사랑 이야기만 썼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랑을 쓰겠다고 해서 쓴 건 아니고, 인간에 대해 쓴다고 난 생각했어. 인간의 외로움, 슬픔, 희망 등 인간을 썼고, 앞으로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쓰고 싶어.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머리에 가득 있거든. 하하.

이 책은 내가 쓴 세 권의 책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 물론 그전 책들도 애정이 있지만, 이 소설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의 모습이 가장 많이 녹아 있기 때문이야. 내 글에 관심 가진 사람은 『키스 키스 뱅뱅!』을 읽어주면 좀 더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리고 블로그(//blog.naver.com/passion7992)도 있으니까, 나와 이야길 나누고 싶다면, 조진국, 이라는 사람을 알고 싶다면, 당신만의 언어로 날 불러줘. 그럼 난 꽃이 되겠지? 하하. 우린, 그렇게 연결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곤, 서로에게 고개 끄덕여주기. “아픔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내 아픔이 남들보다 깊다고 움츠러들 필요도 없고, 남의 아픔이 무겁다고 겁낼 필요도 없다.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도 오만이고, 날선 비난의 눈으로 타인을 쳐다볼 자격을 가진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은 서로가 서 있는 그 거리에서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면 되는 것이다.”(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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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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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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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도슨트와 함께 엿보는 명화 속 사랑의 이야기. 이중섭, 클림트, 에곤 실레, 뭉크, 프리다 칼로 등 강렬한 사랑의 기억을 남긴 화가 7인의 작품을 통해 이들이 남긴 감정을 살펴본다. 화가의 생애와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해석은 작품 감상에 깊이를 더한다.

필사 열풍은 계속된다

2024년은 필사하는 해였다. 전작 『더 나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에 이어 글쓰기 대가가 남긴 주옥같은 글을 실었다. 이번 편은 특히 표현력, 어휘력에 집중했다. 부록으로 문장에 품격을 더할 어휘 330을 실었으며, 사철제본으로 필사의 편리함을 더했다.

슈뻘맨과 함께 국어 완전 정복!

유쾌 발랄 슈뻘맨과 함께 국어 능력 레벨 업! 좌충우돌 웃음 가득한 일상 에피소드 속에 숨어 있는 어휘, 맞춤법, 사자성어, 속담 등을 찾으며 국어 지식을 배우는 학습 만화입니다. 숨은 국어 상식을 찾아 보는 정보 페이지와 국어 능력 시험을 통해 초등 국어를 재미있게 정복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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