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와 직업. 밥을 번다는 말과 직업이라는 말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전을 참고해보자. 직업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직업의 조건이 꽤 많다. 그렇다면 밥벌이란? ‘먹고살기 위하여 하는 일’. 간단명료하다. 혹은 겨우 밥이나 먹고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버는 일이다. 직업과 밥벌이. 좀 다른 어감이지 않은가? 대개 사람들은 직업을 구하려고 하지 밥벌이를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직업은, 내 일상과 또 하나의 삶으로서의 생활을 의미하고, 밥벌이는 생활과 구분되지 않는, 생활밀착형 노동의 느낌이 든단 말이지. 혹시 우리가 직업을 고민하기 전에, 밥벌이를 궁리(이것은 고민보다는 궁리가 맞다)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지금 당신의 직업이 밥벌이가 맞는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아마
『행복한 밥벌이』에 등장하는 그들에게 일이라는 것은, 적성과 능력을 가늠해 일정 기간 종사한다는 직업보다는 밥벌이, 생활에 가까운 활동이었을 게다. 제아무리 밥벌이라도, 그것이 언제나 행복한 형용사를 동반하지는 않는다. (
『밥벌이의 지겨움』을 토로하신 김훈 선생님이 고개를 내저을 일이다!) 내게는 마치 삶의 완성, 이상이라는 의미처럼 들리기까지 하는 제목,
『행복한 밥벌이』. 과연 어떤 분들인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12월 21일,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 ‘향긋한 북살롱’, 즐겁게 밥벌이를 한다는 젊은 예술가들이 모였다. 책의 저자 홍희선, 김대욱, 그리고 그들의 인터뷰이었던 만화가 최규석, 라퍼커션 전호영, 아름다운 목소리의 최고은 씨가 즐겁고 탐나는 대화를 나눴더랬다.
| 독자들에게 첫 노래를 선물하는 싱어송라이터 최고은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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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시간이 다가오자, 딱히 소개도 설명도 없이 최고은 씨가 기타를 들고 나타났다. 설명이 필요 없는 음악. 그녀는 그런 밥벌이를 가진 아티스트다. 진한 잉크가 막 물에 떨어져 번져나가듯, 조금은 몽롱하고 꿈결 같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night of my world’, 영문의 가사는, 입술 끝에서 바스락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처럼 들려온다. 둥그렇게 퍼지는 발음에 실리는 그녀의 음색, 두툼한 담요 같다. 그녀의 표정도 노래한다. 특유의 감수성이 그녀와 관객들을 단숨에 한데 어우른다.
“리허설을 못했습니다. 게스트 분들도 6시 58분에 오셔서,(웃음) 정말 자연스럽고 편하게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고백(?)과 함께, 홍희선, 김대욱 두 저자와 최규석, 전호영, 최고은 씨가 등장했다. 그들의 밥벌이 이야기를 듣는 데만큼은 리허설이 필요 없으리. 그렇게 두런두런 시작된 자리. 그들은 만화를 그리고, 노래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그들의 밥벌이가 주제라 할지라도 무대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 조금은 덜 익숙해 보였다. 가끔 쑥스러워했고, 짧게 말을 마치고 겸연쩍어하기도 했고, 그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래, 그들은 준비된 말들로 직업을 소개하러 나온 게 아니라, 그저 밥벌이를 하다 잠시 들러 이야기를 들려주러 온 것이었다. 그런 생활인의 모습에 도리어 설렜던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으리. 그들이 쑥스러운 미소를 띄우거나, 천진한 웃음을 지을 때마다 독자들은 더 큰 웃음으로 화답해주었다. 아래는 저자들의 질의응답으로 진행된 밥벌이 대담, 그들의 밥벌이 풍경을 엿보도록 하자.
좋은 밥벌이? 적게 일하고 많이 받도록!
“만화가 최규석입니다.”라는 단정한 한마디로 소개를 마친 최규석 씨. 훤칠하고 뚜렷한 이목구비가 단연 돋보인다. 흔히 만화가를 상상했을 때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들은 정녕 낡은 것이로구나. 여기,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그리는 최규석 씨는 그야말로 옆집 오빠 같은 훈남 캐릭터다. 동시에 그의 만화 속 캐릭터들에게서 느낄 수 있던 특유의 장난기 역시 슬몃슬몃 비쳐졌다. 근황을 묻자
“놀고 있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대답한다.
“인터뷰 이후로 계속 놀았습니다. 책도 보고, 작업실을 같이 쓰는 후배가 있는데 연재하는 작품 콘티도 짜주고. 지금 팔십 페이지짜리 중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독서실 얘기라서 독서실 다니고 있습니다. 한 달치 끊어서.(웃음)”
최규석 작가가 생각하는 행복한 밥벌이란 무엇일까? 역시 명쾌하다.
“적게 일하고, 많이 받는 거죠.” 독자들의 박수가 이어진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그걸 알았다면 만화가가 되지 않았겠지요.(웃음) 예전에 백남준 씨에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뭐냐’고 물었는데, 그가 ‘TV 부처’라고 대답했어요. ‘손이 별로 안 갔는데, 돈을 많이 벌었다’고.(웃음) 고등학교 때 그 인터뷰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하는 만화가. 그 노동량이 보통이 아니다. 만화가가 온종일 일했다는 것은, 24시간 일을 했다는 의미라고
『행복한 밥벌이』에서 그는 말했다.
“저는 만화가 중에 가장 적게 일하면서, 적절하게 받는 그런 작가입니다.(웃음) 그랜저죠, 그랜저. 조금만 움직여도 연비가 많이 드니까.(웃음)”
라퍼커션, 생각대로 하면 되고
이어 브라질리아 타악기를 연주하는 전호영 씨가 마이크를 넘겨받았습니다. 자기소개 겸 음악 소개를 부탁했더니, 질문이 길면 자꾸 잊어버린다고 대답해 한바탕 웃음을 일으켰습니다.
“인터뷰 갔을 때도, ‘뭐라고 하셨죠?’ 하시면서 질문에 답을 안 해주시더니(웃음).” 홍희선 씨가 덧붙였습니다.
“네, 어……. 저희는 브라질 퍼커션으로 연주를 하거든요……. 여러분이 대부분 아는 퍼커션은 쿠바 악기일 거예요. 브라질 퍼커션은 일단 가격이 싸고요.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많아서, 사기도 쉽고 연주 방법도 쉬워요. 가장 큰 특징은 여러 명이 연주를 했을 때, 가장 재미있는 연주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제가 있는 퍼커션 팀은 그렇게 많은 인원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연주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밥벌이』의 인터뷰를 진행할 당시에는 멤버가 무려 마흔다섯 명이나 되었단다.
“지금은 줄었어요. 겨울이잖아요. 방학했어요. 12일 큰 공연을 마치고, 날씨도 추우니까 돈 들어오는 행사 아니면 나가지 말자.(좌중 웃음)” 전호영 씨는 브라질에 직접 다녀오시기도 했답니다.
“제가 거길 왜 갔을까 생각해보니, 저기 뒤에 계시는 큰누나 때문인 것 같아요.(웃음) 원래는 쿠바에 가려고 했는데, 저 누나가 브라질에 간대요. ‘나, 간다.’ 하기에, 왜 가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간대요. 그래서 저도 그냥 갔어요. 가고 싶어져서.(웃음)” 전호영 씨의 대답은 거침이 없다. 저 말갛게 웃는 표정이라니. 그저 같이 웃어주고 싶을 따름이다. 전호영 씨의 브라질행은 마냥 즐거운 여행길은 아니었다. 동생 전우영 씨와 함께 가서 빈손으로 악기를 들고 연주를 하러 다녔는데, 갱단들이 보고 너무 추레한 거지 같아서 동정의 눈길까지 보냈다고 한다. 저자가 책 속에 담긴 이 에피소드를 다시 들려주자 전호영 씨는
“그렇게 남의 입으로 들으니까, 제가 진짜 거지 같은데요?”라며 또 한 번 객석에 웃음을 터뜨린다.
| 라퍼커션의 리더, 전호영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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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는 지금보다 15킬로 정도 더 말랐어요. 못 먹어서. 차비 아껴서 햄버거 사먹으면서 지냈죠. 그런데 제일 서러웠던 건 공연을 많이 못 본 거예요.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나오는 할머니 있잖아요. 브라질의 패티 김 같은 분이신데, 입장료가 32만 원! 비싸서 못 갔죠. 그게 제일 슬펐던 것 같아요.”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의 입으로 듣는 ‘슬프다’는 말은 묘하게 마음을 울렸다. 흥겨운 리듬이 새어 나오는 공연장 밖에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맴돌고 있는 어떤 뒷모습이 아른거릴 찰나, 홍희선 씨가 재미있는 얘기를 꺼냈다.
“어느 공연장에서 우연히 봤는데, 사회자 김미화 씨가 그러셨어요. ‘자기야, 자기는 나랑 참 닮았다. 내 동생 같아, 앞으로 지켜볼게.’(웃음) 혹시 전호영 씨는 외모 때문에 불만 있었던 적 있나요?”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많았죠. 엄청나게 많았어요! 그래서, 한때 앞트임이랑 코랑……. 진지하게 고민을 했거든요.(좌중 웃음) 여기저기 사이트도 찾아보고, 주위 사람들한테 솔직하게 물어봤죠. 그런데 다 하는 말이, 어차피 타악기 쳐서 먹고살 거면 이 얼굴이 낫대요.(좌중 웃음) 그래서 콤플렉스를 극복했어요.” 조금은 의외였다. 성형수술을 고민하는 그의 모습이라니. 이건 잘 상상이 안 된다만,
“잘생기면, 뭐든 더 좋아요.”라는 그의 말은 그저 웃어넘기기에는 의미심장하다. 그래도 혹여 그가 내게도 물어왔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말해줬을 거다. 그 성형, 나도 반댈세!
그가 말했다시피 퍼커션이란 악기와 사람이 늘어날수록 흥이 더해지는 음악이다. 혹시 이들의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은 어떻게 접속하면 될까?
“일단 싸이클럽에 라퍼커션을 쳐보세요. 하고 싶으면 같이하면 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웃음) 누구나 와서 하면 된다고 써 놨는데, 사실 들어오는 건 쉬워도 나가는 게 어렵거든요.(웃음) 브라질에 삼바 스쿨도 기존 멤버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이 하면서 발전한 연주와 문화거든요. 그런 문화를 존중하니까, 누구나 와서 같이했으면 좋겠어요.”
진정 원한다면야, Why not?
오프닝 무대를 마련해주었던 홍대 싱어송라이터 최고은 씨. 그녀는 인디 특유의 낯선 느낌보다는 친숙하고도 농밀한 음색이 돋보였는데, 그녀는 홍대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음악가는 아니다.
“성격이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힘들어하는 성격이라, 공연도 많지 않고, 노출이 많이 되지는 않아요. 원래는 친구 생일이나,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만들어서 왔는데, 그것이 알려져서 홍대까지 오게 되었어요.” 다른 저자 김대욱 씨가 최고은 씨는 나이가 어리다고 말하자, 전호영 씨가 불쑥 외친다.
“저도 이 친구랑 동갑이에요! 하핫.” 말끝에 붙은 멋쩍은 웃음에 객석이 한참 들썩였다.
최고은 씨가 말을 이었다.
“주변 친구들이 취직하고 자리 잡고 있는 모습에서, 저는 기계를 찍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사회에서 원하는 다른 사람의 일원이 된다는 것, 저도 한번 해보려고 노력했는데,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싫은 건 절대로 못 하는 성격이기도 해서, 노래를 부르는 일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꾸준히 해왔어요. ‘제대로 해보자.’ 한 게 일 년 반이에요. 돈이나 가시적인 수입은 많지 않지만,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가수니까 오래하고 싶어요. 그리고 속삭이듯이 부르고 싶어요. 듣는 사람이 마치 자기에게만 노래 불러주는 것처럼 특별한 느낌이 들 수 있게 부르고 싶어요. 음악적인 지향점이겠죠. (p.146)
만약 누군가 그녀에게 ‘나도 그렇게 해볼까?’ 묻는다면, 과연 그녀는 어떤 말을 해줄까?
“제가 지켜보니까요. 정말 다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학교에서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면서 다양한 밥벌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일단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면, ‘why not?’이라고 하겠죠. 그렇지만, 쉽게 던지는 ‘why not?’은 아니에요. 그 선택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해야겠죠. 그 선택이 진실되다면야, ‘why not?’”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지한 눈빛들의 교감. 그들이 천천히 말을 이어가는 동안 관객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한껏 귀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요한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표정으로 작은 움직임으로 반응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일단락 짓고 두 번째 무대를 준비한다. 그들의 밥벌이 풍경을 들었다면, 이번엔 직접 보고 듣고 느껴보자. 우선 최고은 씨의 두 번째 노래. 제목은 「forest」
“달빛 아래서 춤추는 한 사내가 있어요. ‘나무도 달도 별도 숨을 죽이고 그의 춤을 듣는다, 새들도 바람도 비도, 속삭임을 멈추고 그의 노래를 듣는다’는 가사가 담긴 곡이에요.” 그녀가 기타 줄을 튕기자, 숲의 문이 열린다,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는 그 숲 속으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 Dancing on the moon, dancing in the sunset. 그녀는 낯선 길을 열어주는 요정 같은 목소리를 지녔다. 마냥 어리지만은 않은 요정, 알고 있다는 듯, 그래서 보듬어주겠다는 듯, 그런 위로하는 힘이 느껴지는 음색. 듣고 있으니 참 포근하다. 금세 상상카페 천장에 별도 박고, 달도 박아 놓는 그녀의 목소리. Again and again. 꿈결 같은 음악이 멎었고, 젊은 아티스트들은 마지막 질문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 차례대로 들어보자.
| 왼쪽에서부터 사회자, 저자 홍희선, 최규석, 전호영, 최고은, 저자 김대욱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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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무엇을 망설이시나요?
홍희선: 저 역시 하고 싶은 일들이 있는데도, 게으르고 나태한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는 일이 많아요. 여기 모이신 분들도 그런 경험 많으리라 생각해요. 그런 순간에 용기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얼마만큼 원하는가, 왜 이것을 해야 하는가.’ 스스로 질문해보는 것 같습니다.
최규석: 예상에 없던 질문이라…….(웃음) 만약 열정이 재능이라면, 재능은 타고나는 거니까, 열정 없는 사람은, 앞으로 없을 거라는 얘기일 테니, 좀 무섭네요.(웃음) 게으름과의 싸움, 저도 어릴 때는 그저 이기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은 원래 일하지 않기를 원하고 그게 편한 상태기 때문에(웃음), 최대한 일을 안 하려고 합니다.
꿈 얘기들 많이 하잖아요. 요즘은 꿈을 가지길 강요하는 세상입니다. 학생들에게도 꿈을 가지라고 쉽게 얘기하는데, 사실 사람은 꿈이 없는 게 정상이죠.(웃음) 몇백 년 전까지는 농부, 아니면 양치기, 이렇게 딱히 꿈을 갖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근대 와서야 꿈이 다양해졌죠. 꿈을 가지란 말은 참 폭력적인데, 꿈을 가지면, 사는 데는 좀 편한 것 같습니다. 술값을 친구한테 뒤집어 씌워도 양심에 덜 미안하고, 옷을 대충 입고 있어도 쪽 팔리지 않고, 꿈이 있고, 꿈을 이루는 도중에 있는 사람들은 좀 살기가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호영: 아까 전에 제 나이에 대해 얘기할 때 말을 못했는데, 고은 씨가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까……. 전 스물일곱이에요.(독자들의 함성!) 이것 봐, 놀라잖아요.(웃음) 전 이걸 꼭 말하고 싶었고요, 그런데 질문이 뭐였죠? (좌중 웃음) 저는 단순하게 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생각해보고, 이게 좋은 거다 싶으면 단순하게 돌진해도 될 것 같은데, 여기 오신 분 중에 나이가 한참 많으신 분은 없잖아요.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단순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최고은: 저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없었어요. 그냥 선택할 수 있는 것 가운데, 나에게 맞는 것, 하고 싶은 것 하다 보니 지금 제가 여기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남들에 비하면 늘 늦어지는 편이에요. 그런데 저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저만의 속도가 있어요. 나만의 부드러운 속도는 뭔가, 늘 생각해요. 그렇게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노래를 계속 부르겠지만, 그러면서 저의 어떤 모습이 발현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계속 간다면 조금은 더 강해지겠죠. 그래서 저는 열정이라고 하면, 자신만의 속도를 지닌 내면의 강함이 아닐까 생각해요.
김대욱: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고 싶으면 일단 해보라고, 따지고 재고 망설이지 말고 일단 움직이라고 인터뷰이(interviewee)들은 한목소리로 말하더라고요. 이 말은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최소한 자기 영역에서 길을 찾아가는 분들이 하는 이야기니까 한번 믿어보세요.(웃음)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지 말고 할 수 있게 용기 주는 것 같아요. 돌아가시는 길에, 내가 어떤 일에 너무 망설이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퍼커션을 타고 대지를 달리다!
전호영 씨가 활동하는 그룹, 여덟 명의 라퍼커션 멤버들이 등장해 마지막 무대를 마련했다. 나누지 못한 말들의 아쉬움까지 단번에 날려줄 리듬을 장전하는 그들.
“제가 말을 잘 못해요. 그래도 악기로 표현하는 게 말하는 것보다 나은 것 같아요.” 자신의 뒤로 선 멤버들을 바라본다. 가지각색의 악기들을 들고 맨 멤버들, 훤칠한 키에 화려한 의상, 알록달록한 고깔모자, 호피무늬 머리띠 등등 각자의 다른 빛깔의 개성을 뽐내고 섰다.
“제가 꿈꾸지 못한 것들을 가진 저희 팀원입니다.(좌중 웃음) 굉장히 사랑합니다. 한번 놀아 볼까요!”
| 독특한 의상을 갖춘 라퍼커션 맴버들, 강렬한 리듬이 단숨에 휘몰아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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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퉁퉁, 속삭속삭, 오아오아, 챙챙, 둥둥둥……. 그러니까 브라질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동물들이 각자의 발소리를 내며 달리는 장면을 상상하면 된다. 그들의 연주에 심장이 ‘쿵쾅’댄다. 추장 역을 맡은 전호영 씨, 그는 거대한 동물들의 무리에 맨 앞에 선 자다. “헤이~” 운을 띄우면 그에 맞춰 대열을 갖춘 퍼커션들이 제소리를 살려가며 어우러진다. 크고 작은 소리가 제각기 빈 곳, 벌어진 곳 사이사이를 채우며 공간을 리듬으로 ‘꽉’ 채운다. 흔들고 치고, 때리고, 던지고, 굴리고. 정말이지 환상적이다!
본능이요. 우리의 음악은 본능이다. 생각하지 말고 느끼는 대로 움직여라.(p.276)
박수 소리도 그에 맞춰 시원하게 터져 나온다.
“삼바 레게라는 리듬이었어요. 자메이카 리듬과 브라질 리듬이 만나서 이뤄진 리듬이에요. 흑인들이 노예로 팔려나가면서 전 세계로 퍼졌잖아요. 각국에 퍼져 있는 흑인들의 자긍심을 표현했다고나 할까요. 더 자세한 설명을 하면 라퍼커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 이런 프로그램이 되니까(웃음) 다음 곡을 들려 드릴게요. 날씨가 춥잖아요. 이럴 때 필요한 게 뭐 있어요? 고함지르면 돼요. 으악, 추워! 같이 외치면서, 저희와 함께 심장을 불태워봅시다!” 그의 외침과 함께 이어지는, 좀 더 뜨거운 연주가 펼쳐졌다. 몸을 절로 움직이게 하는 음악! 어깨도 다리도 좀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대체 어떤 풍경 이었냐고? 그러니까, 뒤에서 천적이 쫓아올 때, 동물들 무리가 한꺼번에 달려나가는 소리를 상상해보라.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볼 법한 장면을 우리는 여기서 듣는다. 절박하기보다는 흥이 넘치는, 어디선가 ‘냅다 뛰어!’란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무리는 계곡을 건너기도 하고, 잠깐 멈춰서 낭떠러지도 넘는다. 이건 그 음악이, 리듬이 들려주는 풍경이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몸에 차오르는 리듬, 좀 더 높이, 좀 더 빠르게! 우리는 그렇게 함께 달렸다. 그리고 “아쉐!” 하는 추장(!)의 외침으로 리듬이 그쳤다. 겨우, 천적으로부터 탈출한 짜릿한 느낌. 내 심장이 춤을 췄구나. 움츠렸다, 펴졌다가 한껏 움직인 기운이 역력하다. 모쪼록 독자 여러분, 상상에만 그치지 말고 최고은, 라퍼커션의 음악을 꼭 한번 들어보시길,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는 특히 ‘강추’! 뜨거운 온도의 리듬이 몸에 착착 감긴다.
| 박수치고 외치며, 라퍼커션과 함께 ‘달린’ 독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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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매력적인 직업, 행복한 밥벌이
단 두 곡에 마음을 쏙 빼앗긴 채로, 북살롱을 떠나야 했다. 기분이 좋았다. 뭔가 어떻게 살라는 얘기를 해주지도 듣지도 않았지만, 그저 그네들의 건강한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힘을 얻는 것 같았다. 부러운 마음보다 동지 의식이 발동한 것일 테다. 나 역시 걷고 싶은 그 길 위에 먼저 올라선 그들에게,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를 함께 들었던 여러 독자들에게.
‘나는 지금 행복한 밥벌이를 하고 있는가?’ 거기 모였던 우리들은 그런 생각을 하며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누군가는 그들을 떠올리며, ‘행복한 밥벌이라더니 별거 아니었군, 그렇게 단순하게 순수한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것이었군.’이라며 혼자 웃음 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도 어쩌면 그들처럼 밥벌이하며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하며 어떤 이는 휑한 바람 속에서도 흐뭇한 온기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나처럼 말이다.
김훈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 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 그자가 바로 나다. /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한다. /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밥벌이란 자고로 이러한 것인데, 이 밥벌이가 정녕 행복한 것이라면, 이거야말로 정말 그 어떤 직업보다도 매력적이지 않은가! 끌린다면, 아래 전호영 씨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저는 세상 사람들이 ‘사는 대로 생각’해버리는 삶이 아닌 ‘생각한 대로 사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마음속으론 1백 가지를 생각하고 꿈꾸지만 실천에 옮기는 건 한두 가지에 불과하잖아요. 저는 어른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해요. 그때마다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은 늘 같았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이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행복하더라.’였죠. 그 말들이 언제나 저에게 큰 힘이 되죠.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분들 중 뭔가를 망설이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보세요. 세상은 비주류들이 이끌어 간다는 말이 있거든요.(p.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