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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겠지 - 『좋은 이별』 김형경

이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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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은 조금 달랐다. 남의 이별을 공감하고 위안을 받는 데서 그치지 말고, 직접 나의 이별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말을 건다. 나조차도 단 한번 또렷이 들여다보지 않은 곳을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랑에 서툴 듯 이별에 대해서도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p.19)

누구나 사랑과 이별 앞에서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누구도 직접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는 사랑도 이별도 드라마나 소설 속 주인공의 경우를 통해 배웠다. 가담항설로 익히고, 나의 경우를 상상했다. 하지만 타인의 경험은 타인의 것일 뿐이었다. 사랑과 이별만큼은 타인의 경험을 빌려서 해결할 수 없는 고독한 문제다. 그래서 아직도 사랑과 이별은 숱한 이야기와 노래 가사로 재생산되는 게 아닐까? 누구에게나 닥치지만, 누구에게나 어려운 문제니까 말이다.

『좋은 이별』은 조금 달랐다. 남의 이별을 공감하고 위안을 받는 데서 그치지 말고, 직접 나의 이별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말을 건다. 나조차도 단 한번 또렷이 들여다보지 않은 곳을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왜 우리는 슬픔을 슬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옆 사람에게 짜증만 부리게 되는 걸까? 상처를 아픔으로 느끼지 않고, 우울함으로 덮어버리는 걸까? 당신은 당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행동들의 진심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도 모르는 진심을 상대방에게 알아달라고 투정만 부리고 있으니, 꼭 힘든 시기에 곤란한 일들이 항상 몰려서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제, 당신의 진심을 들여다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진행된 인터뷰. 작가님은 시종 공감의 바람을 불어주셨고, 이야기의 파도는 유쾌하게 커피 테이블 위에서 출렁거렸다. 작가님의 목소리가 높고 낮아지는 것처럼 말끝도 편안하게 길어졌다가 어느 때는 친숙하게 짧아졌다. 그 말투에 이야기의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가 담겨있어, 어투를 다듬지 않고 날것으로 전해드리고자 한다. 테이블 위의 출렁거리는 소리까지, 고스란히 느껴보시길.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노무현 전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 용산 참사, 마이클 잭슨 등 여느 때보다 집단적 상실을 많이 겪은 해입니다. 이러한 집단적 상실의 감정은 개인적인 것과 어떻게 다른가요? 애도의 방법에도 차이가 있나요?

똑같아요. 사람마다 그 사건에서 상실감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거기에 따라 대응하는 방법이 좀 다르겠지요.

‘여전히 상실한 대상에게 사로잡힌 상태’를 그리움이라고 했습니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그리움은 괴로우면서도 자꾸만 떠올려 즐기게 되는 양가감정을 유발하고요. 이러한 그리움을 현명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오랫동안 강요해왔어요. 그런 걸 미덕이라고 가르친 거죠. 그런데 아직도 그런 여성들을 사회는 선호해요. 그런 여성들은 남자들이 지배하기 더 쉬우니까.(웃음) 사회적인 이유를 들자면, 이런 이데올로기의 내면화를 꼽을 수 있겠어요.

또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 물리적이든 언어적이든 학대에 노출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 피학성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아이들은 부모가 주는 것이면 뭐든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요. 예전에는 때리는 것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시켰는데, 그런 게 어딨어, 그것도 학대거든요.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자꾸만 자신을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몰아넣고, 그런 상황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해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보존본능과 파괴본능이 있어요.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보존본능을 추구할 것 같지만, 이상하게 파괴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프로이트가 그 점에 의문을 품었고, 다음 세대 학자들이 관련된 연구를 했어요. 유아기 때 양육자에게 받은 보살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폭력적인 방식마저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거지.


“그리움과 함께 살아간다.”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애도 기간 동안만 그러라는 거예요.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끊임없이 빈자리만 보고 있는 상태가 되지 말아야 해요. 그러면 지금 내가 살아가야 할 현실적인 삶이 메마르고 건조한 구덩이가 되어 버리는 거니까.

애도 기간에는 억지로 잊으려고 하지 말고, ‘아, 이렇게 그리운 게 당연한 거다.’라고 생각하며 그리움을 내면에 품으라는 거죠. 그리고 그 상태가 애도 기간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해요. 영원한 상태가 아니라, 임시 상태라는 거지. 그 시간이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죠. 보통 애도 기간은 6개월에서 1년이에요. 남겨진 사람의 내면에 추슬러야 할 문제가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애도 기간이 달라지겠죠.


하지만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할 때조차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잃은 것을 되찾는 일, 떠난 사랑이 되돌아오는 일이다. 그 일은 어렵고 자기 파괴적 행동은 쉽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쉬운 해결책에 매달린다. 상대를 용서하는 일보다, 힘들게 애도 작업을 진행하는 것보다, 강물에 뛰어드는 일은 쉽기에 유혹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 죽음을 향해 가던 길을 멈추고 온 힘을 다해 삶 쪽으로 헤엄쳐 나와야 한다.(P.168)

이별을 하는 사람도 비슷한 상실감을 겪을 것 같아요.

그렇죠. 어쩌면 더 마음의 상처가 큰 사람들일지도 몰라. 사랑을 하다 보면, 좋은 일만 생기는 게 아니잖아. 사랑뿐 아니라 분노, 시기, 미움, 갈등이 따라오는데 이런 것들을 다룰 줄 모르는 거야. 자꾸 이별을 선언하는 사람들은, 갈등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뒷걸음질치고, 관계로서 도망치는 거예요. 바람둥이들이 여자를 만나고 헤어지고 반복하는 것도 늘 비슷한 이유로 그러는 거죠. 저는 바람둥이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스스로 자기를 고칠 수 있다면 바람둥이랑 연애를 해도 되는데……. 잘못된 헌신을 품고 있는 여성들이 있죠. ‘내가 저 바람둥이를 잡아줄 거야, 나에게 정착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달라…….’ 이런 마음은 나르시시즘과 모성애와 착각이 더해진 생각이에요.(웃음) 자기 연애도 잘 못하면서, 무슨 바람둥이를 길들이려고 그래. 누구도 다른 사람 문제는 고쳐줄 수 없어. 아직도 그런 여자들이 많아서, 바람둥이도 영원하고, 상처받는 여자들도 영원한 거야.



내가 직접 상실을 겪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 사람이 겪는 상실을 지켜볼 때도 많아요. 이럴 때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기 쉽지 않은데요.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이웃의 애도를 도울 수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어요. 하나는, 그를 지지해주는 것. ‘내가 네 옆에 있다.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내게 SOS를 쳐. 네 얘기를 들어줄게.’ 그런 태도를 취하는 거죠. 그러면서 그들의 내면의 슬픔, 상실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예요. 해 주는 거예요. 그럴 때, 비판하거나 충고하지 말고 ‘그래, 슬프겠다. 그래. 이해해.’라고 공감하면서, 속으로만 들끓는 분노, 슬픔이 충분히 표현될 수 있게 해줘야 해요.

정신분석학자들은 애도 작업에서 성취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로 양가감정의 통합을 꼽는다. 떠난 사람에 대해 느끼는 사랑과 분노를, 감사하는 마음과 시기심을, 관용과 질투를 모두 자기 내면에서 합쳐야 한다. 멀리 떨어뜨려둔 부정적인 감정들을 건강한 마음과 합쳐서 자신의 일부로 만들면 그만큼 마음이 크고 튼튼해진다. 내면을 억압하는 데 사용하던 에너지도 보다 창의적인 곳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p.200)


자율성을 갖고, 삶을 스스로 기획하라

무기력과 우울의 극복은 어제의 나(습관)와 이별해야 하는 일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에게 입힌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요. 어제의 자신과의 이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그게 뭐 어려워.(웃음) 왜 안 되냐 하면, 새로운 삶의 플랜, 새로운 삶의 규율, 법칙 같은 걸 안 배우는 거 같아. 우리가 어느 시기가 되면 자기가 알아서 살아가야 시기가 와요. 그게 삶의 자율성인데, 그게 없기 때문에 자기 삶을 어떻게 기획해서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에 관한 개념이 없는 거예요.

먼저 해야 할 것은, 심리적인 자립이죠. 자율성을 획득하고, 자기 삶을 기획하는 것. 그리고 그 기획에 맞는 실천 항목들을 세우는 것. 그런 것이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 아닐까요. 아무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것 같아. 어려운 일은 아닌데.

어제까지 대학생이었던 친구들이 사회에 나오잖아. 그때부턴 스스로 기획해야지. 내가 하고 싶은 게 결정되면, 그걸 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경로를 찾고, 문을 두드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을 알아봐야지. 실력을 갖추고, 면접 태도를 배우는 것, 이런 것들을 스스로 찾아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내가 만들어지는 거죠.

에너지가 새로운 나를 만드는 데 모두 투자되면, 예전에 나를 돌아볼 에너지는 남지 않아요. 그걸 못하는 사람들은 ‘예전에 영광스러운 나’만 붙잡고 있는 거예요. 왕년에 좋은 날은 자기만 있었나?(웃음) 그렇게 과거만 붙들고 있으면 새로운 나를 만들 수가 없죠.


이제 막 사회 속으로 내딛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시겠네요.

그런 걸 잘 못 하더라고. 왜 그런 걸 안 가르쳐 주는 거지? 우리 사회가 성장기 젊은이들, 성장하는 친구들에게 자괴감을 너무 많이 주는 것 같아. ‘나는 정말 잘해.’라는 마음을 갖고, 언제나 그런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열 명 중 한두 명이나 될까? 자꾸만 경쟁을 시키고 비교하니까, 어떻게 자괴감을 안 느끼겠어? 1등이 아닌 친구들을 보살펴주고 격려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스타의 연령이 점점 어려지잖아요.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이나. 아마 비슷한 나이 대 친구들은 더 열등감을 느끼지 않나 싶어요. 차라리 선배가 잘하면, 나도 저렇게 돼야지 싶지만, 내 또래가 그렇게 높이 가버리면 아무래도…….(웃음)

TV에서 빛나게 활약하는 스타들, 연예인들 중에 노력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그들을 시기하기 전에 그들만큼 내가 그만큼 노력하는지 보라는 거지. 김연아 선수를 대하는 젊은이들의 태도가 안타까워요. 김연아는 그 잠깐의 연기를 위해서 나머지 시간을 다 연습해요. 근데 보통 사람들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김연아가 연기하는 걸 보기 위해 밤잠을 안 자고 기다려요. 그게 뭐야.(웃음)

자기 인생을 위해 김연아만큼 열심히 노력하고, 에너지를 압축해야 할 것을, 밤잠 안자고 김연아 경기만 기다리고 응원하고 있어. 그게 바로 자기 삶을 살 줄 모르는 태도인 거야. 그때 기쁜 마음은 대리만족일 뿐이에요. 쫓아다니면서 열광할 게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노력하는가를 배워야 해. 스타들을 대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행동도 납득하지 못할 때가 많고, 무의식 속에 감춰진 진심을 말하기도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에게 심리학이 더 필요한 걸까요?

이제는 우리가 심리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막다른 길까지 몰린 거지. 사실 정신분석학은 1895년 프로이트가 시작해서 아직 백 년 밖에 되지 않은 학문이에요. 1차대전 때 상처 입고 가족을 잃은 유족들을 연구하면서 애도와 우울증이라는 감정을 처음 제시했어요. 2차대전 때는, 전쟁고아들을 시설로 불러들여 깨끗한 환경을 마련해줬는데도, 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다 죽는 일이 있었어요. 시설 증후군이죠.

원래 유태인 학문이었어요. 유태인들이 박해를 피해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고 피신하면서, 학문도 확산된 거죠. 일본은 그때 받아들였어요. 우리나라는 그 이전부터 불행을 겪었으면서도 그동안 심리학에 무관심했죠. 사실 우리는 20세기 동안 한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던 민족이에요. 일제시대를 겪고, 한국전쟁을 맞은 사람들이 있어요. 민주화 운동도 있고. 그렇게 상처투성이 현대사를 겪으면서, 우리는 한번도 그 상처를 치유하거나 돌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런 불안한 생존여건 속에서 살다가, 화병이라는 게 등장하죠. 분노 증후군이요. 냉소적이고 가차 없이 비판적이 되는 거죠. 그거 유전되는 거예요. 자식들이 아버지의 욱하는 성격을 보면서, 동일시하고 내재화해요.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도 없이 내면화하는 거예요. 2000년이 되서야 전문가들이 심리학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제야 ‘아, 내 마음이 그래서 그런 거구나.’ 하면서 심리학을 찾게 되고, 그렇게 수요가 생기니까 공급이 계속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상실이란 지금 없더라도 앞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상실과 애도를 준비하고 훈련하는 방법도 있을까요?

애도를 연습할 수는 없지. 그렇지만 애도를 잘하는 것은 삶을 잘 사는 것과 똑같아요. 우리는 남의 비판에 막 흔들리고, 확 반응하잖아. 그게 다 자아가 약해서 그래요. 마음이 강하고 단단해졌으면 좋겠어. 자율성을 확립하고.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알면, 그 사람은 어떤 상황이라도 괜찮아요. 잘 대응할 수 있지.


모든 이들로부터 배운다

『꽃피는 고래』와도 같이 얘기해보고 싶어요. 애도라는 측면에서 이 소설은, 『좋은 이별』과 짝을 이루잖아요. 저는 『좋은 이별』을 먼저 읽었는데, 그래서인지 『꽃피는 고래』가 훨씬 더 이해가 잘되고, 구절구절 와 닿더라고요.

맞아요. 『꽃피는 고래』와 같이 읽어야 한다고 꼭 얘기해줘요.(웃음)

인상 깊은 구절에 관련해서 질문을 드릴게요. “내가 아직도 슬퍼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게 문제 같았다.”(p.200)라는 대목이 있는데, 슬퍼하기 위한 선생님만의 방법은 무엇인가요?

슬퍼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은 독서예요. 소설을 읽으면 좋은 점이, ‘내 감정이 이런 감정이었구나.’ 하고 이해가 돼요. 내 감정이 납득이 되고 체화되는 거예요.

독서를 통해 나는 억압해둔 내면의 감정들과 접촉할 수 있었고, 그것들을 체험하기도 했다. (…) 책을 읽을 때 나는 자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유심히 보았고, 그들이 어떻게 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시련을 넘어왔는지 관찰했다. 꾸역꾸역 이끌어가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알고자 했다.(p.229)

“이제 나는 모든 것이 바뀌는 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의 삶 속에서, 모든 것이 바뀌었던 한순간을 꼽자면 언제일까요?

요즘의 시간들이죠. 서른여덟, 아홉 즈음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상담을 받으면서, 이제 좀 우울증을 털었다고 싶었을 때가 마흔일곱, 여덟이었어요. 마흔여섯에 대학원 진학을 했어요. 치료는 끝나가는데 이것저것 내 주변에 어질러져 있는 거야. 정리를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다 싶었죠.

문학 등 모든 것을 정신분석적으로 공부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외서를 많이 사서 봤어. 그런 공부를 마무리 지어서 작품을 쓴 게 『꽃피는 고래』『좋은 이별』이예요. 이제 『좋은 이별』을 마지막으로, 그 마무리도 끝났어. 난 이제 50대인데, 상쾌하게 시작하는 기분이야. 그래서 요즘이 새로운 순간들이에요.


“그 말들이 내 삶의 소중한 순간을 지탱해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말이나 문장이 있다면요?

오래전부터 좌우명으로 삼은 말이 있어요. ‘모든 이들로부터 배운다.’ 타인을 대할 때, 우리는 평가하고 비평부터 하려고 해요. 늘 해석하고 탐색하고 판단하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지. 이런 태도를 없애고 바라볼 때 배울 게 생겨요. 모든 이들로부터 배워버릇하면, 세상이 전부 나의 스승이 되는 거야.

나도 20대 기자로 일하면서 성공했단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 나는 성공한 사람들은 그 성공을 위해 계략과 책략을 쓰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들은 정공법으로 승부하고, 자기 것 이외에 남에 것에 관심이 없는 순수한 사람들이더라고요. 남에 일에 뭐라고 할 시간이 없던 사람들인 거죠. 그 시기 때 사람을 대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늘 비평하고, 분석하고, 문제점을 찾아내는 훈련을 해서 그런지, 장점을 찾고 배우려는 태도는 일부러라도 노력해야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분노와 시기심에서 비판하는 것과, 애정으로 비판하는 것은 또 달라요. 애정이 있는 비판이라면, 선한 대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죠.


내 역량을 다 꺼내 쓰는 기분

한 가지 주제를 잡아 한 번은 소설로, 한 번은 에세이로 풀어 쓰시고 있는데요, 이러한 집필 방식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소설을 쓰고 나면, 일부러 쓰려는 건 아닌데, 에세이를 써야 할 일이 생겨요. 살다 보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일이 생기는 때가 있어.(웃음) 출판사 하는 선배에게 에세이를 써주고 싶었는데, 당시에 여행에서 보고 들은 얘기밖에 없었어요. 그런 건 많이 나와 있잖아. 이걸 어떻게 차별화할까 생각하다, 심리학과 접목을 시킨 거지.

그러다 보니 일간지에 심리학 얘기를 연재하게 됐어요. 이걸 책으로 내자고 하면,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소설 쓸 시간도 없는데 말야!(웃음) 상담코너였는데, 질문이 하루에도 20~30개씩 올라와. 나는 한 개밖에 답을 해줄 수가 없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질문들이 또 답을 해주고 싶은 얘기들인 거예요. 선배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는데, 못 해준다는 것에 대해 좀 미안한 마음이 컸어요. 누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걸 봤을 때, 하나 들어주는 것 같이 당연한 일이잖아요. 이런 질문들에 대답도 안 해주고, 나 혼자 잘 살면 두고두고 켕기겠다 싶었죠.

그래서 모든 질문에 아우를 수 있는 글을 쓰자 해서 『천 개의 공감』을 썼어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심리학의 마지막 보따리를 싸매는 심정으로 쓴 글이 이번 『좋은 이별』이죠. 애도는 병리치료의 핵심이기도 하니까. 고로 마음이 독하지 못해서, 자꾸 에세이를 쓰는 게 아닐까 싶어요.(웃음)


심리 관련 서적을 쓰고 나면, 주변 사람들이 고민 상담 요청을 많이 할 것 같은데요. 남의 고민을 많이 들어주고 얘기해주는 편인가요?(웃음)

나 안 들어줘요!(웃음) ‘난 몰라, 그런 건 전문가한테 가서 물어봐.’ 이렇게 말해요. 원래부터 잘 아는 후배들에게는 간단한 얘기를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안 해요. 나는 그저 선배고 멘토 역할이지, 전문가는 아니니까요.

지난 번 인터뷰에서 “억압한 무의식의 어둡고 우울한 정서를 끌어올려 없앴다. 이렇게 무의식의 성격이 달라졌기 때문에 앞으로의 작품은 조금 다를 것”이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요. 실제로 최근의 작품을 쓸 때, 이전과 다른 점이 있었나요?

글 쓸 때 내가 더 경쾌해졌어요. 자신 있게 내 역량을 발휘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를테면 내 안에 10 정도가 있었다면, 예전엔 그만큼 못 꺼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나니 내 안에 있는 10이라는 역량을 다 꺼내 쓴다는 기분이 들어요.

이제 상담은 다 끝나신 건가요?

내가 상담을 받는 건 끝났고, 그 이후의 훈습의 기간이에요. 상담을 받고 나서, 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서서히 변화하는 기간이 한 7년 정도 걸렸어요.


독립군 소설가, 그런 예술가로 남고 싶다


여러 책에서 좋은 구절이 인용되어 이해를 도왔습니다. 이 구절들은 평소에 읽으시며 메모하신 건가요? 공부하시면서 읽으신 구절인가요?

이 책에 발췌된 작품들은 내가 2, 30대 읽은 책들이에요. 그때는 읽으면서 그 의미들을 잘 몰랐는데, 정신분석적 관점을 갖게 되니까, 세상의 모든 게 다 정신분석적으로 보이고, 예전에 읽은 책들이 이해가 되는 거예요. 아하, 이게 그런 뜻이구나! 이번 책을 쓸 때, 그 책들을 몽땅 다시 사야 했어.(웃음) 내용은 알지만, 인용을 해야 하니까.

자기표현은 고통, 슬픔, 상실, 외로움 등의 감정을 성숙하게 처리하고 소화시키는 방법이다. 아픈 기억을 소화시켜 유익한 교훈을 얻고 나쁜 기억과 감정을 떠나 보내는 일이다. 치유를 위한 자기표현법으로는 말하기, 글쓰기 외에 그림 그리기가 많이 활용된다.(p.218)

책 속에서 여러 방식의 글쓰기를 권하시는데요. 요즘도 일기나 애도노트를 쓰시나요?

어렸을 때 일기 검사 같은 거 하잖아요. 그렇게 습관이 들어서 고3 때까지 계속 일기를 썼어요. 대학 다니면서 습작하던 시기에는, 일기를 안 쓰고 그 글쓰기를 습작으로 전환했었어요. 카뮈의 작가수첩 같은 메모들. 인상적인 장면에 대한 장면, 느낌, 의문 같은 걸 적어나가죠.

평소 집필 습관은 어떠세요?

소설을 쓰는 기간을 정해둬요. 최소 세 달에서 여섯 달.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그 주제와 관련된 생각만 해요. 그 생각을 보아서 쓰는 식이죠.

만약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 되셨을까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탐정도 되고 싶었고, 과학자도 되고 싶었고. 제가 어렸을 때는, 여자들이 사회 진출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 선생님, 간호사 정도.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더 그랬고. 나는 책을 많이 읽어서 막연히 나중에 글 쓰는 사람이 되어 봐야겠다. 여자 소설가도 있으니까. 그래서 고등학교 때 결심하고, 문학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찾아간 거죠.

우리 사회 20, 30대 여성들의 멘토 같은 존재신데요, 책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고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소설가와 상담가로서의 자의식은 어떤가요?

나는 사회적 요구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웃음) 어쩌다가 그런 책을 쓰게 된 거고, 추운 날 택시를 못 잡아 떨고 있는 친구에게 택시를 잡아주는 정도의 역할? 그 이상은 없어요. 더 요구할까봐 두려워.(웃음) 난 예술가가 되고 싶어. 개인주의적이고, 주체적으로. 혼자 틀어박혀서 주제와 씨름할 수 있는, 혼자 있는 시간을 정말 갖고 싶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자꾸만 이런 요청이 오는 거예요. 딜레마가 있죠.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 낸 건 내가 아니야. 그들이 만들어 낸 거지.(웃음)

서평을 보니, ‘저자의 책을 읽고 인생관이 바뀌었다.’ ‘삶의 지침서처럼 읽는다.’라는 독자의 글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그런 거, 나는 잘 몰라. 그저 좋은 소설을 쓰고 싶어요. 소설을 쓸 때 그 충만감이 있어요. 한 스텝 한 스텝 밟아 나가는. 내가 이런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과연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재미. 내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서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는 순간의 충만감이 있죠. 그래서 소설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글을 쓰면서 힘들 때나 어려울 때는 없나요?

독자들이 글이 안 써질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해요. 그럴 땐 안 써.(웃음) 억지로 쓴 작품은 나중에 버리게 돼. 글을 잘 쓰려는 방법은, 내 컨디션을 좋게 하는 거예요. 아까 얘기했잖아. 몸과 마음이 같은 거라고. 항상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작품 쓸 때 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요.

그리하여, 지금 내가 ‘괜찮다고 느끼는 증거’라면 이런 것들이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서너 달쯤 칩거할 때 어디까지가 자폐 성향이고 어디부터가 성찰과 탐구의 시간인지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 비하적인 음담패설이 오가는 자리에서 빠져나올 때 어디까지가 신경증적인 반응이고 어디부터가 건강한 자기 존중감인지 구분할 수 있다. 종교를 수용할 때 어디까지가 의존성이고 어디서부터가 인류의 지혜가 담긴 보물 창고에 접근하는 일인지 구분할 수 있다. 안다고 느끼는 것이 또 하나의 교만일지 모르겠지만, 심리 내면의 그런 미세한 차이들을 구분하여 감지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내면의 평온이 흔들리지 않을 때 내가 괜찮아졌다고 느낀다.(p.251)

앞으로는 어떤 소설을 쓰실 건가요? 아무래도 선생님이 또 소설을 내면, 사람들이 또 그걸 심리학적으로 해석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웃음)

내가 쓰는 소설에는 내가 이해한 모든 것이 들어있죠. 나를 만드는 모든 관점들이 다 들어가니까 내가 심리학적으로 쓰지 않아도 그런 게 있을지도 몰라요. 내가 소설가만 아니면 더 많은 것들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아니야, 그래도 나는 독립군 소설가가 돼야 해.(웃음) 심리상담 공부하는 학생들이 ‘선생님 사례를 듣고 싶습니다.’ 요청하기도 해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건, 내가 치료를 경험한 사람이라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심리학 서적은 대개 의사나 고치는 사람 입장에서 쓰니까요.

조만간 YES24 독자들을 만나 강연회(12월 16일)를 가지시잖아요? 예고편을 들려주신다면요?

자기 정체성의 문제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려고요. 모르는 게 당연해. 나도 몰랐으니까. 그러려면 제일 먼저 부모와 정신적으로 이별해야 해요. 그런데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말이 어렵지 않나?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 이라고 할까?(웃음) 책 내용을 중복하진 않을 거예요. 그건 읽으면 되니까. 내가 아는 게 많다고 그랬잖아.(웃음) 재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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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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