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 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렇다고 앞으로 내가 하는 얘기를 듣고, 부러워하진 마라. 부러우면, 지는 거다! 대체 뭐냐고? 그래 답부터 말하고 가자. 인디신의 거성, ‘장기하와 얼굴들’을 통해 익숙해진 이름, 붕가붕가레코드(www.bgbg.co.kr). 그들이 이번에는, 책을 냈다.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붕가붕가레코드 지음/푸른숲 펴냄). 책은 아주 흥미롭고, 재미가 쏠쏠한데, 그것으로 끝이냐. 아니, 책 출간 기념으로 붕가붕가의 멤버들이 무대를 마련했다. 그야말로 쟁쟁한 주력 멤버들이 총출동한 광란의 무대가 있었다.
때는, 지난 7일, 전제군주제(절대왕정)를 무너트리고 세계 최초로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공산주의 공화국이 세워진, 러시아혁명의 두 번째 단계였던 볼셰비키 혁명(10월 혁명, 1917년)이 일어난 날이자, 혁명가이자 정치인인 레온 트로츠키가 태어난 날. 물론 그 혁명과 아무 상관도 없지만, 어쩌면 한국 음악사의 재미난 혁명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그날, 마포아트센터 ‘맥’.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출간 기념 <우리는 나아지고 있다>라는 타이틀의 공연. 좋다. 그날의 기록을 들려주마.
참, 들려줄 붕가붕가레코드의 음악 세계가 뭐냐고? 이거다.
“서로 섞이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게 용케도 어울려 있다. 이것이 바로 붕가붕가레코드의 음악 세계다. 물론 생판 다르다면 이렇게 섞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음악에 아교 구실을 하는 몇 가지는 분명히 있다. 이 때문에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이들이 서로의 작업을 좋아하고 있다. 따로 또 같은 것이 붕가붕가 레코드의 노래들이다.”(p.215) 한마디로, 뒤죽박죽, 하지만 뚜렷하고 재미난 음악!
소녀들을 울면서 춤추게 한다, 치즈 스테레오
서막을 연 것은, 립싱크 댄스그룹이라고 위악적으로 굴며 터번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붕가붕가의 비장의 무기,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어떤 ‘술을 탔는’지 모르겠으나, 그들은
「요술왕자」에 맞춰, 간지 따위 없이 무대를 휘어잡는 쫄깃한 몸짓을 선보였다. 아마도, 이날의 광란질을 예고하는 퍼포먼스였달까. 이날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역할은 약간씩 멤버를 바꿔가며 각 밴드의 공연 사이사이에 그들만의 알싸한 공연을 선보이는 감초였다.
역시,
“장기하의 얘기처럼 음반이 들려주는 것이라면 공연은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붕가붕가 레코드가 처음 공연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가져온 생각이다. 이런 생각으로 ‘아주 괜찮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럴싸하다’고 보여주는 것, 그리하여 관객에게 음반을 들을 때와는 다른 경험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p.250)
어쩌면,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이날 공연의 핵심이었을 수도 있다. 자 보시라.
“대표, 수석 디자이너, 수석 엔지니어, 수석 프로듀서 등 주요 임직원이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멤버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붕가붕가 레코드의 높은 사람들이 장난으로 하는 것 같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그리하여 나잠 수는 ‘술탄이 붕가붕가 레코드 그 자체다(그리고 술탄의 리더인 자신이 붕가붕가 레코드의 왕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p.192)
어쨌든, 밴드에 얽힌 일화를 ‘사실을 최대한 악의적으로’ 해석한 동영상에 이어, ‘소녀들을 울면서 춤추게 하’는 ‘치즈 스테레오(cheezstereo)’의 등장. 2000년 음악에 손댈 무렵, 이른바 ‘무허가 펍’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젊음을 소진하다가, 2006년 “오로지 기타! 베이스! 드럼!”을 주창하며 간결 명료한 댄서블 사운드를 터득하게 된 밴드.
잠시 책에서 그들을 엿볼까?
“한때는 ‘오예스’라는 치어리더 백댄서를 대동하고 야구복을 입은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으나 ‘EBS 스페이스 공감’의 화려한 무대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다시는 야구복을 입지 않겠다’고 선언,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잔기술로 승부를 보지 않고 음악적인 본원에 충실, 열심히 노래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2009년 9월, 첫 정규앨범 《Don't Work, Be Happy》를 발매했다.”(p.205)
어찌하여, 야구복은 아니다만, 테니스룩으로 무장한 그들은 「Dance Very Much」로 흥을 한껏 돋우고,
「동물해방전선」과
「파티엔 언제나 마지막 음악이 필요하다」로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사실 말은 불필요하다. 권하건대, 음악을 사서 듣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이들 노래를 평한 한 블로거의 말. “배고픈 밤 남몰래 먹는 찰떡처럼 귀에 착착 붙네요. 다른 밴드보다 비교적 간결한 악기구성입니다만 고개를 끄덕거리며 살짝살짝 몸을 흔들게 만드는 재주들이 탁월하셔요. (…) ‘간결하면서도 춤추기 좋은 록큰롤’을 집에서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 동감. 파티의 마지막엔, 스텝을 멈추지 말고 그들의 노래를 듣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돈을 많이 벌어서 폴로 복장으로 말을 타고 등장하겠다.”라는 포부를 밝히는데, 아무래도 그들은 ‘유덕후(유니폼 오타쿠) 밴드’? 그랬거나 말거나, 폴로 복장으로 무대를 헤집는 치즈 스테레오를 보고 싶다면, 필요한 건 뭐? 현금 입금! 돈 내고 앨범 사기.
별일 없이 산다, 장기하와 얼굴들
술탄, 다시 등장. 이번엔 5인방이다. 그런데 한 명은 등을 돌리고 잔뜩 폼을 잡고, 나머지 4명이 70~80년대의 디스코풍 선율에 맞춰 요란한 몸짓으로 흥을 돋운다. 그 몸짓, 사실 어설프다. 그럼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획일화되지 않은, 통일된 동작에서 빗겨난 몸짓이 왠지 신선하다. 규격화된 공산품 같은 아이돌 그룹의 똑 부러진 몸짓과는 달라서.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공산품, 때론 지겨웠거든.
무대를 뛰어다니더니, 아 등 돌리던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니, 장(기하) 교주다. 그런데 네 명이 장 교주를 흠씬 두들긴다. 구걸하러 다니는 신세로 전락한 붕가붕가의 얼굴이라니. 붕가붕가를 부흥시킨 장 교주를 패대기치는 이 모습, 붕가붕가의 모토가 떠오른다. “혼자 힘으로 사랑하자 혼자 힘으로 살아가자 = 혼자 힘으로 사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온전하게 우리 힘으로 해낸 게 아닌 만큼, ‘장기하와 얼굴들’에 의존하지 말자. 다른 팀들에게 그 수준의 성공을 기대하는 건 애초에 그만두자. 당분간 초라한 자취방에 살더라도 자기 힘으로 관객을 모아나가자. 남이 열어준 문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다른 문을 두드려보자. 아니면, 아예 벽을 뚫고 문을 하나 새로 내자.”(p.83)
혹시 이것은, 그들의 꿈을 은유하는 몸짓? 뭐, 아니면 말고. 재밌으니까, 됐어!
“우리가 만드는 노래를 괜찮다고 들어주는 누군가가 지금은 한 줌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적지 않은 숫자가 될 것이라는 바람. 취미로 음악 하는 대학생들이 한 데 모여 있는 동아리 주제에 스스로 회사라고 주장하며 음악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나선 자뻑의 바탕에는 나름 이런 꿈이 있었다. 일단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이런 의미에서 김 기조는 붕가붕가 레코드의 모토를 ‘혼자 힘으로 살아가자’로 정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자위라는 붕가붕가의 의미에 목매달고 있던 곰사장은 이를 잘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붕가붕가는 ‘혼자 힘으로 사랑하자’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붕가붕가 레코드는, 시작했다.”(pp.54~55)
이윽고, 장기하와 얼굴들에 대한 곰사장의 착각를 다룬 동영상. 우리는 나아지고 있다, 파트2의 악의적 해석. 세 줄로 줄여보자.
제대 후 막대한 감량으로 ‘변절자’소리를 듣고 동료에게 버려진 장기하, 녹음을 일단 하나,
반응은, “심지어 나쁘지도 않잖아”(깜악귀) “대중성 빵점”(나잠 수) “별로인데, 야구하지?”(곰사장).
야구를 했으나, “C발”을 내뱉으며 다시 음악을 하고 성공하자, “나쁘지 않댔잖아”(깜악귀) “대중성은 빵점인데, 대중들이 이상한 거다”(나잠 수) “…미안”(곰사장)
그렇다. ‘아무도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던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 장기하와 얼굴들의 등장이다. 눅눅한 자취방의 정서를 정확하게 포착한
「싸구려 커피」가 흐른다. 그 옆에는 술탄의 한 멤버가 가사 맞춤형 퍼포먼스를 펼친다. 노래와 몸짓의 완벽한 앙상블.
이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거물 섹시 코러스단 미미시스터즈의 등장에 환호성이 터진다.
「나를 받아주오」에 맞춰 뇌쇄적이고 관능적인 몸짓으로 무대를 뒤집어놨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여하튼 후끈 달아오른 무대와 객석은, 그야말로 신명나는 한마당. 장 교주의 예의 어수룩하지만 능글맞은 멘트도 따라온다.
“제 머릿속에는 요새 거의 한 가지만 있어요. 11월 하순에 단독공연(11.24~29)을 해요. 오늘 엽서와 포스터를 나눠준다고 하던데, 받으셨어요? (아니요~) 나갈 때 줄 거예요. (웃음) 오늘 붕가붕가 책이 나온 기념 공연인데, 사셨으니까 오신 거죠? 그럼 홍보할 것도 없고,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많이 응원해 주세요.”
「달이 차오른다, 가자」와
「별일 없이 산다」로 이어진 장기하와 얼굴들의 2부 공연은, 아비규환이다. 두 번의 장기하와 얼굴들 공연을 봤지만, 저렇게 장 교주가 날뛰는 모습은 처음이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지르고 있는 게, 분명히 맞다! 그는 팔짝팔짝 무대가 좁다고 뛰어다니고(제자리 뛰기가 아니었다는 사실!), 객석까지 침투해 관객들을 아주 죽여준다. 그렇다, 전업가수, 공연을 통해서는 보여주는 음악인답다.
“2008년 10월, 과다한 스케줄로 그동안 다니던 월 88만 원짜리 직장을 그만두면서 장기하는 많은 고민을 했다. 생계를 위한 다른 직업을 가지고 음악 활동을 병행한다는 것은 예전부터 구상해왔던 자기 인생의 모델이었으니. 그런데 결국 마음속 한마디가 머리를 찔러왔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지르는 게 맞다.’ 이게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다. 이제 정면으로 맞닥뜨릴 때다.” 생각했다. 정말, 정면으로 맞닥뜨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구나. 박수, 짝짝짝. 우리 모두가 그렇게 즐기고 있음을 절감한다. 나도, 관객도, 장기하도 모두 그렇게.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매일 매일 신난다 좋다 매일 매일 하루하루 아주 그냥!”
보편적인 노래, 브로콜리 너마저
아니나 다를까,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막간 무대가 펼쳐진다. 이번에는 「압둘라의 여인」이다. 그렇지 붕가붕가의 제2대 척추이자 테크니컬 디렉터, 나잠 수의 창작곡.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감명할 만한 센스를 품은’ 노래. 그래서 붕가붕가 일동이 나잠 수에게 러브콜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노래. 유후~
곰사장의 후회를 다룬, 우리는 나아지고 있다, 파트3. 역시나 악의적 해석으로 가득 찬 동영상 놀이가 펼쳐진다. 역시 세 줄로 말해보자.
2007년 11월 정말 좋아서 눈물 날 것 같은 앨범을 만든 ‘브로콜리 너마저’.
그러나 곰사장, 돈도 사람도 없으니 다른 좋은 회사를 알아보라며 뻥 (‘별로’가 배인 곰사장).
곰사장이 내친 이 음반,
<보편적인 노래>. 빵 터졌고, 록스타가 된 덕원, 곰사장은 뒤늦게 후회를 해보지만…….
그렇다. 인디계의 국민밴드, 돌이킬 수 없는 인연, 그러나 끊어질 수 없는 인연, 위로가 필요한 청춘들의 보편적인 노래, 브로콜리 너마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첫 곡이 흐른다.
‘너에게 하고 싶던 말… 이젠 안녕’이라면서도,
‘차마 할 수 없었던 그 말은/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줘/ 너 없인 삶의 의미가 없어’라던 「이젠 안녕」. 조용조용하고 나긋한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컬, 덕원의 속삭임. 그는 이런 멘트도 날린다.
“이런 자리에 와서 영광이에요. 콩트는 사실과 좀 다르고 픽션이 가미됐어요. 사실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웃음)” 하핫, 우리를 뭘로 보고, 앙~
다시 노래가 흐른다.
‘그렇게 눈이 부시던 순간들이 지나고 모든 게 변해버렸지’라며 「그 모든 진짜 같던 거짓말」. 아마도 그랬던 순간이 있었지. 어떤 기억을 냉큼 끄집어냈던 그 노래. 물론, 죽지 않아. 이별 통증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상흔을 남긴다 해도. 아무렴, 모든 관계는 이별을 품고 있는 법. 나는 어느덧 이별은 그저 자연의 일부임을 알게 된 나이. 이별은 나쁜 것도 아니고, 이별의 지혜를 차츰 갖춰가고 있지. 만남과 이별은 그렇게 뫼비우스의 띠. 브로콜리 너마저도 붕가붕가와 그랬잖아.
그렇게 이별이 흉터를 남겨도 다시 사랑이 움트고 삶을 꾸리는 것이 우리네 청춘.
“여러분의 청춘 열차는 지금 달리고 있습니까?”라고 외치며 달려가는 「청춘 열차」. 칙칙폭폭, 간다, 가. 청춘아, 달려라.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에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 그때의 그때
그렇게 소중했었던 마음이
이젠 지키지 못할 그런 일들로만 남았어
괜찮아 이제는 그냥 잊어버리자 (…)
아마도, 무언가 마음을 어지럽힌 날, 노래방에서 부르기에 딱 좋을
「보편적인 노래」가 울려 퍼진다. 그래, 특별하지 않아, 보편적이지. 사랑과 이별. 사랑의 환희, 이별의 통증, 인류의 탄생 이래 모두가 겪은 정도를 결코 벗어나지 않는 법. 당사자가 아닌 바에야 그저 그런, 뻔하디뻔한 사랑과 이별, 그리고 노래. 아, 그럼에도 연인들의 비밀스런 마음과 속삭임이 존재하는 그때의 그때. 아, 그래서 보편적인 노래.
지구를 지키지 말거라, 눈뜨고 코베인
악의적 해석과 정확하고 바른 발음을 추구하는 내레이션으로 120% 싱크로율을 보이는, 우리는 나아지고 있다 파트4, 곰사장의 허무. 책 집필과 관련한 이야기. 다시, 세 줄이다.
2008년10월, 깜악귀에서 책을 내자고 제안하고 인세라는 미끼를 던지는 곰사장.
3개월째 거의 병신이 되는 과정을 거쳐 1년이 흘러, 마침내 나온 책.
그러나 표지를 보자면, 장기하가 쓴 책으로 알고, 밥이나 먹으러 가는 두 사람.
우주적 스케일의 로큰롤 밴드, 눈뜨고 코베인이 나오기 직전, 깜악귀(눈뜨고 코베인의 보컬)가 동참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역시 막간무대. 막가는 듯한 그들의 개구락지 퍼포먼스가 ‘목청이 자지러질 듯’하게 펼쳐진다.
“개구리 바지를 입자~”
참고로, 깜악귀는 붕가붕가의 줄기세포이자 관계자다. ‘붕가붕가’라는 이름의 유래. 깜악귀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붕가붕가 중창단’이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논란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2000년에 내 여자친구의 친구 되는 사람 자취방에 놀러갔다가 ‘붕가붕가’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들었다. 그 단어가 애완동물의 자위를 의미한다는 설명도 함께였다. ‘오, 발음 좋네. 뜻 좋네. 붕가붕가 좋네. 우리의 자기 충족적이고 관객 의존적이지 않은 자발적 아방가르드 문화 활동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적인 단어인 것 같아.’”(P.30)
덧붙여,
“주류 대중음악(일반적인 섹스)과 기존 인디음악(자위)의 중간 지점에 있는, ‘대중지향적 인디음악’이라는 조금은 모순적인 우리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는 단어가 바로, 붕가붕가다.”(p.53) 섹스와 자위 사이의 붕가붕가에 대한 유력한 유래(?)와 설명은 51~52페이지에 보다 자세히 나와 있다. 물론 그들은 솔직히 실토한다. 붕가붕가라는 어감이 좋아서라고.
어쨌거나 감탄곡,
「지구를 지키지 말거라」가 이날의 대미를 장식할 눈뜨고 코베인의 첫 곡이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얘기했던 이 중요한 말씀. 아무렴, 지구를 지키는 것은, 독수리 5형제도 있고, 슈퍼맨도 있다. 굳이 지구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아버지 말씀에 절로 어깨가 들썩들썩. 이 삶의 무게감이 한결 가벼워지는 이 흥겨움.
다음 곡은
「횟집에서」. 그야말로 산울림스러운 이 노래. 2008년 12월 31일 횟집에 갔는데, 그날의 얘기로 만들어졌다는 이 노래.
“달이 높이 떴는데/ 너는 아직 가지 않았다/ 횟집에서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무심해질 만큼” 아주 죽여주는, 끝내주는 마당의 사이에 흘러나오는 광고 말씀.
“책 살 때마다 저에게 소량의 돈이 들어옵니다. 팔아주시면 생활에 도움이 됩니다.” 즐길 줄 아는 자들을 위한, 현금 입금의 연대! 아~ 좋아 좋아.
이어진 곡,
「아빠가 벽장」이 압권이다. 친히 벽장에 들어가 ‘불륜녀의 딸에게 발각된 불륜남의 충격과 공포’를 온몸으로 표현한 곰사장의 격한 퍼포먼스가 작렬한 탓이다. 그 오묘하고 기묘한 몸짓이 주는 쾌감은 공포 이상. 그러니, 지옥에 갈 만하다고? 그러면 어때. 염라대왕 앞에 끌려갔다가, “너는 너무 아름다우니 다시 한 번 살아나거라”고 무서운 염라대왕이 나를 꽉 끌어안고 이렇게 말해줄 수도 있잖아?
「지옥에 가다」가 그렇게 끝나지 않은,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을 부추겼다.
역시나, ‘앵콜요청금지’는 없었다. 앙코르가 무대를 장악하자, 슬픈 얘기이자, 우리 삶의 진실이자, 외로움에 슬퍼하는 고독한 남성의 마음을 담은
「여동생이 생겼어요」가 흘러나온다. 이번에는 6인조가 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흐느적거림. ‘060-5882’의 여동생, 엄마도 모르시는 여동생. 외로운 내 가슴을 적셔달라는 여동생이 생긴 남자의 마음.
곰사장이 불쑥 나온다.
“술탄…에서 2년 활동하면서 마이크를 들고 얘기하긴 처음이에요. 이런저런 얘기가 많았고, 그걸 모아서 책을 냈는데, 책 사셨어요? (웃음) 우리 주제에 뭔 책이냐고 생각도 했지만, 이런저런 어두운 일들과 배신과 여러 가지 실수 끝에 지금까지 왔어요. 책의 첫 장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마지막 장이 오늘 공연 제목이기도 한, ‘우리는 나아지고 있다’예요. 붕가붕가에는 8개 팀이 소속돼 있고 장기하와 얼굴들이 벌어다 준 돈 다 까먹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웃음) 내년에는 3~4장의 정규앨범을 낼 예정이고요, 무엇보다 11월 장기하와 얼굴들의 남산 공연이 있습니다. 안 오시면 망합니다. 여러분의 현금이 저희에겐 큰 도움이 되니까, 많이 오세요.”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소수자의 현금 연대는 믿는다. 인디나 약자에게, 현금은 지속 가능함을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그들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재미있는 것을 보고 즐기고 싶다면, 바로 당신의 지갑에 있는 현금!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이라는 모토를 처음 걸었을 때 지향했던 레이블의 목표,
“인디 음악인이 자기 음악의 가능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생계를 충족하는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다.”(p.15)에 동의한다면, 당신의 주머니에 있는 현금!
그때의 그때, 붕가붕가와 나와 당신이, 우리들이 있었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떼창. 붕가붕가가 무대에 한데 모였다. 노래는 외로움의 송가, 깜악귀가 붕가붕가 레코드의 전신, 붕가붕가 중창단을 만들 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가 직접 해야겠다.”(p.28)는 각오로 나서 크리스마스, 솔로들을 위해 무대에서 불렀다는 그 노래. 「외로운 것이 외로운 거지」.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바치는 연서.
나는 알아, 너의 외로움
포기하지 마, 기죽지도 마
돌아보지 마, 눈물을 감추지 마
등판을 보이지 마, 앞면을 보여
둘이 되면 두 배가, 두 배가 돼버리는 외로움
둘이 되면 두 배가, 두 배가 돼버리는 외로움
외외외 외외외로운 것이
외외외 외외외로운 거지
모르겠다. “둘이 되면 아홉 배, 아홉 배가 되면 어떡해”라고 노래는 외쳤지만, 이날 외로움은 몇 배나 될까. 뭐, 외롭다고 슬프거나 이런 건 아니다. 4년 전, 레이블 창립 기념 공연에서 7만 원의 수익을 남기고 “적자 보지 않았다”며 즐거워했던 그들이었다.
더 앞으로 가자면, 붕가붕가 중창단의 정식 데뷔가 있었던 2001년 봄. 그땐 그랬다.
“‘붕가붕가 중창단’이라는 붉은 깃발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 학내 공연의 게스트에 불과하건만 마치 무대를 강탈한 혁명단 같은 모습이었다,”(p.32)그러니까, ‘우리는 풀 밴드가 아니어도 풀 밴드보다 더 참신하게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는 모토로 출범한 소규모 출장 전문 밴드. 소규모 지향적인 정서를 지닌 밴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버티고 견뎠다는 것이다. 삶과 마찬가지다. 나는 그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그마치 5년째(!)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다.
“남들이 내 능력을 알아주지 않아 잘나가지 못할 때, 미래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지속 가능을 위한 자질이다. 그걸 해낼 수 있는 게 반드시 용기와 근성만은 아닌 것 같다. 제3의 재능이랄까.”(pp.73~74)
나는 박수를 보낸다. 버티고 견딘 것. 무엇보다 뭐라도 재미있는 것을 질러보고 있는 붕가붕가에게. 에너지가 있다고 그들을 쉬이 ‘열혈’이라는 단어 안에 가둘 필요는 없다.
“아무래도 열혈은 천부적인 자질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늘이 점지해준 사람들만이 자기만의 가치에 충실하여 타협하지 않는 태도로 범상치 않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 우리는 하늘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다. 용기보다는 소심함에 가깝다.”(p.72)
심지어 근성도 없다고 그들은 토로하지 않았던가.
“생계야 어떻게 되건 말건 일단 음악에 매달리겠다고 질러볼 만한 깜냥은 못 된다. 그렇다고 열악한 음악 시장 상황을 의지로 돌파해낼 만한 근성도 없다. 하지만 즐거운 음악 활동을 포기하고 돈 버는 일에 매여 살 만한 근성도 없다. 하지만 즐거운 음악 활동을 포기하고 돈 버는 일에 매여 살 만한 용기도 내질 못한다. 결국 어중간하게 두 가지를 함께한다. 생업과 음악 취미 활동을 공존시키겠다는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은 이렇게 소심하고 근성 없는 이들이 찾은 방법이다. 지속을 위해서는 절실하게 필요한 근성도 없는 주제에 말이다.”(p.73)
하지만 최소한, 그 최소한이 있었기에 그들은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무조건 낫다고 생각하고 저질렀다.
“어떻게 우연히 일이 되겠다 싶으면 밀어붙이는 정도의 근성,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무조건 낫다는 신조 정도는 있고, 그래서 일단 괜찮다 싶은 음악인이 꼬드김에 넘어왔다 싶으면 음반을 낼 때까지는 간다. 최소한의 전략도 있다. 이를테면 괜찮은 밴드의 멤버를 꼬드겨 솔로 작업을 부추기는 것? 뭐, 이것조차 안 했으면 진작 망했을 테다.”(pp.189~190)
망하지 않아서 고마웠다. 어떡할 뻔했나. 폭력과 악으로 구축된 이 세계에 음악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듯, 엄숙을 가장한 싼티가 판치고, 삽질만 할 줄 알고 놀 줄 모르는 이 엄한 시대에 붕가붕가 레코드가 숨통을 틔워주고 있으니까. 분별없는 열정이 판치는 시대에, 붕가붕가는 그 분별없음이 없어서 좋다. 무엇보다 그들은 키치가 아니다. 저렴한 것을 키치와 동일어로 상정할 필요는 없다.
“괴발개발에 엉성해서 저렴하게 보이는 것과 저렴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다.”(p.147)
이날도 상서로운 조짐 같은 것은 없었다. 글 앞부분에 언급한, 혁명은 그저 웃자고 한 소리다. 그렇다고 이날을 무시하자는 건 아니다. 책에서도 그랬잖나.
“1976년 6월 4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렸던 ‘섹스 피스톨스’의 공연에는 달랑 마흔두 명의 사람이 모였다. 그런데 그들 중 몇몇이 밴드를 시작했고, ‘버즈콕스’, ‘조이 디비전’, ‘뉴 오더’, ‘진저 넛’ 등의 밴드는 이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팀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날도 아마 상서로운 조짐 같은 것은 없었을 테다.”(p.54) 놀 줄 아는 ‘붕가돌’의 신명나는 현장에 있었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기억되든, 기록되든, 그때의 그때, 우리들이 있었다.
함께 붕가붕가~ 노닐어 보자
한편으로 나는 붕가붕가가 지금보다 더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무리 덤덤한 척해도 마음 깊숙한 곳에는 뜨거운 부분이 있다”(p.161) 고 했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지르는 게 낫다”(p.117)며 지르다 보니, 명성과 명예를 얻고 누군가에겐 롤모델이 됐다. 또한 붕가붕가는 ‘굳이 남의 비위 맞출 필요 없이 저렇게 살면 되겠구나’하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있음도 알려줬다. 스펙에 목매달지 않아도, 일보 전진을 위해 반보 후퇴를 하는 한이 있어도, 뭐라도 재미난 것을 해보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들려줬다. 책이 매혹적이었던 이유는 이런 것도 있다. “스스로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남들이 대신하거나 소멸한다.”
20여 년을 인디로 산 ‘욜 라 텡고’. 그들의 정체성이자, 태도와 스타일인 인디로 한결같으면서도 꾸준히 성장했고 지속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을 하고 있다. 한국에선 인디는 아니지만, 김창완이 있다. ‘옳게’ 나이 먹은 딴따라질을 하고 있는 그다. 붕가붕가 레코드도, 그랬으면 좋겠다.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으니, 계속 지켜볼 테다.
“여러분의 현금이 저희에겐 힘이 됩니다.”라고? 좋다. 나는 기꺼이 붕가붕가를 위해 현금 입금으로 연대를 맺을 용의가 있다. 붕가붕가 레코드의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을 위해, 커피를 만드는 나는 그들이 필요하다면 직접 내린 커피 한 잔씩도 건네줄 수 있다. 어떤가. 지금까지 내 얘기를 들은 당신도 함께하자. 장담 건대, 놀 줄 알아야 삶이 풍요로워진다. 함께 놀자. 붕가붕가~ 하악하악~ 곰사장의 감사의 말을 약간 변용해 쓰자면, (붕가붕가 레코드의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을 위해 돈을)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게 무조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