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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 길에 반한 YES24 회원들 청계천을 걷다 -『여자, 길에 반하다』 유혜준

돌다리를 건너는 맛도 느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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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걷기에 참여하면서 은근히 걱정했다. 아무리 어렸을 때 많이 걸어 다녔고, 유일하게 할 만한 운동이 걷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꽤 먼 거리를 걸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나마도 점점 꾀가 나서 걷는 것도 중단한 지 꽤 되었는데……. 그러나 작가와 함께 걷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 학교를 걸어서 다녔다. 어른들 말로 십 리라고 하니 대략 4킬로미터는 될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갓 입학한 1학년짜리가 그 먼 길을 어떻게 걸어 다녔을까.’ 싶다. 그러나 그 시절(이렇게 얘기하니까 엄청 오래전 같다!)에는 다 그랬으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겠지. 그때는 이처럼 어쩔 수 없이 걷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일부러 걷는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에 가는 것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어디든 걷는다. 산길도 걷고 강둑도 걸으며 야트막한 구릉도 걷는다. 그리고 이번처럼 강변도 걷는다. 꼭 흙길이 아니어도 된다. 그냥 상황에 맞춰 걸으면 된다.

사실 이번 걷기에 참여하면서 은근히 걱정했다. 아무리 어렸을 때 많이 걸어 다녔고, 유일하게 할 만한 운동이 걷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꽤 먼 거리를 걸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나마도 점점 꾀가 나서 걷는 것도 중단한 지 꽤 되었는데……. 그러나 작가와 함께 걷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추석을 불과 일주일 앞둔 지난 토요일(9월 26일) 오후 2시. 약속 장소인 청계천으로 갔다. 때마침 직거래 장터가 열려서 어수선했다. 어수선한 장소와 햇살을 피해 그늘에 있으려니 유혜준 작가가 곧 도착했다. 이어 참가자들도 속속 도착. 작가는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편한 웃음을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참가하기로 한 인원이 다 모이자 이렇게 모여서 함께 길을 갈 사람들이니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하자고 작가가 먼저 제안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분, 이제 대학 1학년생, 취업 준비 중인 분, 아이가 시험기간인데 공부하라고 하고 나왔다는 분 등 연령대와 참가 이유가 다양하다. 출판사 관계자가 시원한(일주일 얼린) 물을 한 병씩 나눠주자 다들 손수건을 꺼내 병을 감쌌다. ‘아, 모두들 저런 것도 가지고 다니는구나. 난 아무것도 없는데. 평소 모습이 여기서 드러난다니까!’

드디어 걷기 시작. 유혜준 작가는 우선 복잡한 길을 피해 강변으로 내려갔다. 이렇게 걸으면 좋은 것은 마음 내키는 대로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걸어도 된다는 점이다. 물론 일행과 떨어지지 않기 위해 보조는 맞추겠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 일행이 있더라도 꼭 함께 이야기 나누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꼭 옆에 붙어서 걸을 필요도 없다. 때로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계속 뭔가를 생각해내야 해서 편치 않은 경우도 있지 않던가. 상호작용이 재미있긴 하지만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때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옆에 누가 있으면 이야기하고 아무도 없으면 그냥 혼자 생각에 잠겨 길을 걷는 자유로운 걷기였다. 또한 계속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쏠쏠했다.

돌다리도 건너봐야

작가는 청계천을 걸을 때는 무조건 한 쪽으로만 걷는 것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걸어보라고 권한다. 돌다리를 건너는 맛도 느껴봐야 한다면서. 그러고 보니 돌다리가 다양해서 건너는 맛이 있다. 가끔 물소리 들으며 중간에 서 있으면 주위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어떤 참가자는 약간 어지럽단다. 풋 하고 웃었더니 나이 들어보란다. 그래, 나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지.


물고기도 꽤 있다. 이름을 몰라 답답하지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작은 물고기도 있고 꽤 커 보이는 물고기도 있다. 그리고 하류로 가니 커다란 금붕어도 있다. 물고기들은 모두 물길을 거슬러서 힘들게 꼬리지느러미를 흔들고 있다. 왜 편하게 물길과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고 반대로 가려고 하는 것일까. 상류가 더 깨끗하기 때문일까.

이래서 걷는구나!

길을 가다 보면 들꽃들도 만난다. 벌개미취도 있고 쑥부쟁이도 있다. ‘아, 가을이구나. 그렇지, 가을이었지!’ 시간에 쫓겨 살 때는 주위의 풀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렇게 한가하게 길을 걸으니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산보리수도 있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산보리수던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들에 갔다가 커다란 가지를 꺾어 오시면 열심히 따 먹었던 기억이 난다. 산보리수는 작아서 사실 먹을 만한 게 없다. 알갱이도 작은데 반 이상을 차지하는 씨를 뱉고 나면 새콤달콤하면서도 떫은 맛밖에 남는 게 없다. 그래도 가을이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생각나곤 했다. 맛이 생각났다기보다 그때의 햇살이 생각났고 통통하고 빨간 열매에 찍힌 하얀 점이 생각났다. 하긴 추억이라고 하는 것을 곰곰 생각해 보면 당시의 냄새와 분위기인 경우가 많다. 바람에 실려 오는 상큼한 냄새를 맡으며 봄을 기억하고, 비에 섞여 있는 흙냄새를 맡으며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떠올린다. 집에서였다면 이런 생각들을 과연 했을까. 이래서 걷는구나 싶다. 그래서 작가가 걷기에 반했구나 싶다.


재미있는 퀴즈도 풀어 가며

영도교에 도착해서 잠시 쉬었다. 그동안 사람들이 많아서 제대로 쉬지 못했다. 중간에 국악공연 하는 곳에서 잠시 쉬었지만 앉지 않았기 때문에 쉬었다고 할 수 없다. 적어도 내겐. 이곳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물고기도 구경했다. 그리고 가장 치열했으며, 이때부터 참가자들과 더 친해진 계기가 되었던 퀴즈가 있었다.

“우선 첫 번째 퀴즈. 청계천에 왔으니 이와 관련된 문제를 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다리를 꽤 많이 지났지요. 그럼 청계천에는 다리가 모두 몇 개일까요?”

아, 이거 책에서 분명 봤는데 숫자엔 워낙 약한지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우선 급한 대로 21개를 외쳤다. 이보다 많단다. 다시 28개를 외쳤다. 그보단 적단다. 이때부터 거의 경매장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모르긴 해도 그 사이의 숫자가 한 번씩 다 나왔을 것이다. 그러다 간신히 나온 숫자 22. 아, 내가 처음에 21이 생각난 이유가 있었다. 기억이 날 듯 말 듯했던 것이다.

“다음은 청계천의 마지막 다리 이름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오늘 걷는 코스에서 보면 다리 이름이 나오지요.”

첫 번째 문제를 내가 맞혔기(주책없이) 때문에 답을 알지만 차마 손을 들지 못했다. 대신 옆 사람에게 알려줬다. 고산자교. ‘고산자 김정호’를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 김정호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하다. 백두산을 백 번 넘게 올라갔다더라, 역적으로 몰렸다더라 등. 그러나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당시 여러 지도를 참고해서 대동여지도를 만들었으며(직접 발품을 팔기도 했지만 백두산을 그토록 많이 오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관리 친구가 지도 그리는 것을 도와줄 정도로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즉, 역적으로 몰렸으면 절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정호가 언제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는 모른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이토록 추앙하고 있는 사람인데도 당시는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니. 하긴 이게 어디 그 시대만 그럴까. 이 시대에도 지금은 홀대받지만 후대에 사람들로부터 추앙받을 만한 일을 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분명 있을 게다.


마지막 문제는 아뿔싸, 생각이 안 난다. 고산자 김정호에 너무 빠져 있었나 보다. 여하튼 마지막 문제를 누군가가 맞히고 나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비록 해는 구름에 가렸지만 그래도 땀이 났었는데 시원한 그늘에 앉아 있으니 땀이 쏙 들어갔다. 다시 새로운 사람과 짝이 되어 이야기 나누며 걸었다. 이제는 사람도 부쩍 줄어들었다. 또 어느새 주변은 시멘트벽이 아닌 흙 둔덕으로 변해 인공적인 맛이 덜하니 좋다. 갈대와 억새가 강(이제는 가히 강이라 불러도 될 정도다.)가에 피었으며 흙도 밟을 수 있다.

중간에 청계천문화관에 들러 청계천이 예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둘러보았다. 당시 청계천변에 있었던 판잣집에 상점을 차린 모습을 재현해 놓았기에 그것을 구경했다. 지금 이렇게 보면 마치 숲 속에 있는 통나무집 같아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당시 난방도 제대로 못 했을 테니 겨울이 얼마나 추웠을까.

인연도 발견하고

작가와 한 참여자가 앞에서 걷다가 갑자기 환호성을 지른다. 두 분이 글쎄, 중학교 선후배 사이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게 된 사실이라나. 그때부터 두 분은 선생님들 이야기로 정신없다. 이렇게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만나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도 하고 새로운 인연을 발견하기도 하나 보다. 두 분에게는 이번 걷기가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조금만 더 가면 살곶이다리가 나온단다. 이제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유혜준 작가만 빼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살곶이다리는 보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작가의 말에 모두 동의하고 마지막 힘을 내기로 했다. 살곶이다리에서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고 공식적인 걷기 행사를 마쳤다. 그러나 아직 행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바로 맛있는 저녁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짧은 만남이었지만 기억에는 영원하리!

응봉역 근처에는 먹을 만한 곳이 없다는 한 참여자(바로 작가의 후배)의 조언에 따라 한양대학교 근처에서 먹기로 했다. 하필이면 우리의 일정이 끝난 곳에 코스모스가 피어서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발빠른 몇 명은 멀리서라도 사진으로 남기는 열성을 보였다.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이 나오자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모두들 배가 고팠던지 밥 먹는 데만 집중했다. 하긴 세 시간 반을 걸었으니 그럴 수밖에. 똑바로 걷지 않고 왔다갔다했기 때문에 족히 10킬로미터는 되었을 것이라니(그것도 평지를). 많이 걸었다.


밥을 먹고 나자 기운이 솟는지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그리고 모두 지하철역으로 가서 각자의 방향대로 흩어졌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인연이지만, 기억에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아마 내년 이맘때쯤이면 문득문득 생각나지 않을까. ‘수크령’이라는 이름을 보며 ‘맞아. 맞아.’를 외치던 모습이나 강변을 걷던 사람들의 뒷모습, 퀴즈를 맞히기 위해 서로 소리 지르던 모습 등이.

수도권에서 걷기는 남한산성이 최고

유혜준 작가는 수도권에서 가장 걷기 좋은 곳으로 남한산성을 꼽았다. 수원화성은 그늘이 없어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지만 남한산성은 나무가 많기 때문에 여름에도 시원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제주 올레는 여름보다 12월을 추천했다. 또 봄에는 바람이 많아서 오히려 더 힘들단다.

작가는 가족을 두고 훌쩍 떠나기를 잘한단다. 그러면 부군께서 걱정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블로그에 올리는 걸 보면 여정이 다 나오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단다. 그리고 그날도 아침에 남편이 해 주는 밥 먹고 나왔다고 은근히 자랑을 하신다. 게다가 설거지까지 맡기고 나왔다나. 자유롭게 살면서도 자신의 일을 멋지게 해내는 작가이자 오마이뉴스 기자인 유혜준, 그녀를 만나서 무척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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