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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강연회] 『쏭내관의 재미있는 박물관 기행』 송용진

“서울 전체가 큰 박물관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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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서울 전체가 큰 박물관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한 저자의 음성이 남는다. 시간을 내서 90여 개 박물관을 천천히 다 둘러보리라 결심했다. 그리하여 나도 ‘박물관의 달인’이 되고 싶다.

무엇보다 저자의 닉네임과 이력이 이채로웠다. 아는 사람은 아는 저자의 닉네임은 ‘쏭내관’이다. 내관은 수염이 나지 않고 목소리도 가늘어서 남성적이지 않은 남성인데, 스스로 내관을 자처하는 사람이라니.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그는 내관 의상을 입고 강단에 섰다. 어머니들 사이에서는 킥킥 하는 웃음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와~!” 하는 환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이내 이해가 되었다. 그가 왜 내관을 자처하는지. 그건 바로 청중을 사로잡는 필살기였던 것이다. 그의 강연은 일종의 퍼포먼스 같이 느껴졌다. 퍼포먼스 강연, 즉 ‘perforlecture’라고나 할까?

그런데 의상보다 더 강렬한 것은 저자의 언변이었다. 저자는 쉴 새 없이 사람들에게서 웃음을 이끌어냈다. 처음부터 웃기 시작하였고 이후로도 계속 웃으면서 슬쩍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내용보다 웃음이 더 앞서는 건 아닐까? 결론을 말하면 그건 기우였다. 강연은 재미있다가 진지했다가 뭉클했다가 아쉬움을 남긴 채 끝났다. 강연을 듣고 나서 박물관에 대한 새로운 느낌, 우리 문화재에 대한 가슴 뭉클함,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새삼스럽게 차올랐다.

아, 우리 박물관이 세계적 수준이구나!

저자는 한국화를 전공했고 영국에서 예술경영 공부를 했다. 그리고 우리 궁궐과 박물관에 경도됐다. 런던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어느 날, 위인전에 나오는 먼 인물로만 알고 있던 나이팅게일의 박물관을 우연히 접한 뒤 과거를 현실화하는 박물관의 매력에 빠진 저자는 런던의 박물관 160여 개를 샅샅이 구경하였고, 이어 서울의 박물관을 공부하여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0여 년 동안 그는 그야말로 우리 문화재에 미쳐서 살았다. 무언가에 미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박물관과 우리 문화재라는 것은 멋진 일이다. 저서 『쏭내관의 재미있는 박물관 기행』『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 이후 그의 두 번째 결과물이다.

저자는 흔한 우리 도자기 그림 한 점과 청나라 도자기 한 점을 비교해 보여 주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두 도자기는 얼핏 보기에도 많이 달랐다. 화려한 청자에 비해 우리 도자기는 수수하고 소박하고 단아했다. 보기에 편하고 자연스러웠다. 저자의 외국인 친구 한 명은 우리가 별 감흥 없이 보는 평범한 도자기를 보고 감격해 마지않더란다. “이것이 한국 도자기구나!” 하면서.

그게 문제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것에 대한 감흥 없음. 남이 알아주어야 그제야 다시 보는 무덤덤한 시각. 이어 저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서울에만 박물관이 90여 개 있다고 말해 주었는데, 내심 놀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영국국립박물관에 비견할 만하다는 것, 그리고 올해가 우리 박물관 역사가 100년이 되는 해라는 것에도 새삼 놀랐다. 우리가 국내에 있는 박물관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다녀온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집트전에 대해서 다시 떠올려 보았다. 이마 부분이 노출된 실제 미라가 놓여 있어 지금까지도 인기가 높은 이 전시 역시, 전 세계에서도 시설이나 인력이 갖추어진, 수용 가능한 박물관으로만 순회를 할 것이 아닌가. ‘아, 우리 박물관이 세계적 수준이구나!’

우리가 모르는 우리 박물관, 우리 조상, 우리 문화재


쏭내관은 중간에 깜짝 퀴즈를 내어 맞히는 아이들에게 ‘세계에 단 3개밖에 없는’ 쏭내관 머그컵, 마우스패드, ‘컵라면에 물을 붓고 덮어 놓기 좋은’ 『쏭내관의 재미있는 박물관 기행』 책을 선물로 주었다. 문제는 매우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는 상식적인 답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선 최고의 명의가 누구일까요?”라는 질문의 답은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 역을 한 배우 ‘전광렬’이었다. 깜짝 퀴즈의 난이도는 점점 높아졌고, 청중들은 식상하지 않은 답을 찾느라 악전고투했다. 세상에 단 몇 개뿐인 상품에 대한 갈증은 점점 높아졌다. 일단 손을 들고 나오는 대로 답을 말했다. 정답이 나오지 않으면 쏭내관은 입 모양으로 답을 가르쳐 주었다. 아무튼 답을 맞히려면 쏭내관을 잘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모두 정신없이 웃고 있으면 쏭내관은 사진 자료를 보여주며 진지하게 말했다. “조선 최고의 의사는 허준입니다. 『동의보감』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지요. 이 귀한 책의 원본을 ‘허준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한의학의 중심인 대학에 가면 허준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들은 왜 남의 나라 의사 동상을 자신들의 대학 안에 세워놓은 걸까요? 허준이라는 인물, 『동의보감』의 가치를 과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걸까요?”

그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모르는 우리 박물관, 우리 조상, 우리 문화재에 대한 환기를 불러일으켰다. 그가 박물관을 ‘역사가 있는 곳, 감동이 있는 곳’으로 소개한 이유가 점점 실감되었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나왔던 단원과 혜원의 그림을 보러 고려대학교박물관으로 당장이라도 달려가 보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랐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법으로 그려졌으며 원근법이 적용되어 사실감이 살아 있다는 「동궐도」를 큰 그림으로 보고 싶어졌고, 많게는 100번을 덧칠해 임금님 옷의 빨간색을 표현했다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러 고궁박물관으로 가고 싶어졌다. 22권의 책을 연결하면 거대한 지도가 되는 「대동여지도」를 보러 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을 찾아가보고 싶어졌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의 소실에 다시금 가슴 아파오기 시작한 것은 강연이 중반부를 넘어설 때쯤이었다. 저자가 아이들 넷을 단상으로 불러 각각 동, 서, 남, 북대문의 역할을 맡기면서 사대문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대문의 파괴, 남대문의 방화, 운동장으로 변해버렸던 동대문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는 “6.25도 견뎌내며 600년을 이어온 숭례문이 6시간 만에 전소됐습니다.”라고 덧붙였는데, 울컥하는 느낌이 왔다.

동대문이나 광화문을 최근에 다시 정비하면서 콘크리트 바로 묻혀 있던 성곽들이 드러났다는 이야기는 뉴스로 접했지만 또 다른 느낌으로 전해졌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전국을 콘크리트로 칠해 버렸던 지난 수십 년이, 수백 년을 덮어버리는 결과가 되기도 했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되었다.

아픈 역사 덕분에 세계 최고가 된 문화재 포장 기술


국보 이야기는 국보 1호가 국보 2호보다 ‘더 중요한 보물’이라는 뜻이 아니라 지정된 순서일 뿐이라는 이야기로 이어졌고, 역시 국보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제83호)’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왔다. 굳이 국보를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보험료를 따지면 700~800억 원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여기저기서 “아~” 하는 정체 모를 소리들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우리 국보의 해외 나들이 얘기 부분이었다.

“2008년 10월부터 2009년 2월까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국 페스티벌을 위해 우리의 국보급 문화재 다수가 초대되어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말씀드린 건 그때의 보험료예요. 그런데 이런 국가적 프로젝트의 꽃은 바로 문화재의 포장입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은 포장에만 며칠이 걸립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재 포장 기술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계 박물관 전문가들이 모두 탄성을 질렀다고 하죠. 솜과 중성 한지, 그리고 습기 조절이 가능한 나무 상자와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알루미늄 상자에 거듭 싸는데, 그러고 나면 상자를 360도 회전해도 유물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포장된 국보는 무진동 차량에 담겨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해외로 나갑니다.”

그런데 우리 박물관의 우수함이나 문화재 포장 기술의 앞서감이, 아픈 역사의 결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수차례 이사를 해야 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야기에서는 저자의 말대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데다, 청중의 대부분이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점을 감안해 중간에 간식 시간까지 안배한 덕분에 한 가지 이야기를 충분히, 깊게 하지는 못한 듯했고, 그럼에도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예정한 시간을 살짝 지나치기까지 했는데, 마지막까지 퍼포먼스를 보는 듯한 저자의 강연은 드라마틱했다.

나도 박물관의 달인이 되고 싶다


여자 어린이 한 명에게 대본을 쥐어 주고 즉석에서 짧은 콩트를 연출해 보인 것이 강연의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이었다. 쏭내관 자신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튀어나온 듯한 ‘박물관의 달인’이 되었고, 어린이는 소개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

화면에는 우리 눈에 익숙한 옛 사진과 그림들이 등장했고, 사진 속, 그림 속에는 잘 찾아보면 어김없이 쏭내관 자신의 얼굴이 합성되어 있었다. 마치 한국판 『월리를 찾아라』를 보는 느낌이었다. 600년을 살아온 ‘박물관의 달인’이 중요한 역사의 현장마다 늘 있었다는 말로 강연은 마무리되었다. 그 익숙한 그림 속에 쏙쏙 박힌 쏭내관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은 강연이 끝난 뒤에도 킥킥거리는 웃음으로 남았다.

아마 황당한 퀴즈를 맞히고 진귀한 쏭내관표 기념품을 받고서 매번 브이 자를 그리며 사진 찍힌 아이들에게도 그 웃음은 오래 남을 것이다. 그래도 서대문형무소에서의 아픈 과거나 손가락 마디가 짧은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 도장은 또 다른 느낌으로 남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게는 서울 전체가 큰 박물관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한 저자의 음성이 남는다. 시간을 내서 90여 개 박물관을 천천히 다 둘러보리라 결심했다. 그리하여 나도 ‘박물관의 달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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