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기타노 다케시의 워낙 유명한 이 말.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버리고 싶은 것이 가족이다.” 전경린의 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에는 이런 말이 나오죠. “아이란, 가정이란 그 아름다운 동화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유폐시키는가.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이 생에서 실종되는가.”
물론 이 말들을 통해, 가족 혹은 가정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고자 하는 건 아니에요. 이 엄혹한 시대, 국가나 정부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혹은 직장에서 내몰리고 있는 지금-여기의 사람들이 믿고 기댈 곳은, 그야말로 가족 밖에 없잖아요. 남들 다 등을 돌려도,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건, 그래요. 가족입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그 가족 혹은 가정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족쇄인지 알고 있잖아요.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때문에 맥없이 손을 놓고 말기도 하지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이뤄지는 악행까지도. 말하자면, 가족 이기주의.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 혈연과 제도에 의해 규정된 가족의 개념에 익숙해져 있지요. 근래 그런 가족의 개념에 딴죽을 거는 영화 등이 선보이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가족은 너무 협소해요. 이성 간의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엄마-아빠-아이로 이뤄져야 이른바 ‘정상’이라고 일컬어지곤 하는 전통적인 가족 개념 혹은 질서.
여기 이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그런 개념에 묻습니다. “꼭 그래야 가족이 될 수 있는 거야?” “아빠는 꼭 있어야 돼?” 등등. 영화는 아빠가 다른 자매의 로드무비이기도 하면서 한 여성이 가족(이라는 개념)을 톺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다룬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모 기업이 광고를 통해 허접하게 주장하는 ‘또 하나의 가족’ 같은 건 말고요, ‘다른 가족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요.’라는 말을 넌지시 건네는. 따지고 보면, 전통적 개념에서도 엄마와 아빠는 아무 연관이 없던 이들이 만난 거잖아요. 이들이 만나 가족을 이루듯, 가족은 우리가 서로 어깨를 기댈 수 있고 연대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이름이 아닐까, 하는.
저는 이 영화에서 명주(공효진)가 하는 이 대사가 좋았어요. “부모 잘못 만난 죄? 그딴 것 없어. 그냥 사는 거야. 나도, 너도, 승아도.” 없으면 없는 대로, 연대가 이뤄지면 그것대로, 유연하고 개방된 사고. 지금, 이대로가 좋아효!
11일 ‘입양의 날’(!)에 이 영화를 연출한 부지영 감독을 만났어요. 그 의미심장한 날에 가족 그리고 영화에 대해 나눈, 흥미로웠던 대화를 들려드릴게요. 기회를 찾아서 영화 관람도 권해 드려요. 두 배우의 앙상블을 보는 재미도 있고요, 가족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도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참 얼마 전, 제 블로그의 한 포스팅에 이런 댓글이 붙었어요. “재능이 세상을 섬기게 될 때 그 가치가 더욱 돋보이게 되는 것 같아요. 자기 욕망에의 실현에 천착하지 않고. 모쪼록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어줄 디자인들을 기대하며.”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와 관련한 포스팅에 붙은 댓글인데, 저는 부지영 감독을 만난 소감으로 이 댓글을 빌리고 싶어요. 그 말에 딱 하나, ‘디자인’이라는 말 대신 ‘영화’로 바꿔서. ^.^
언니와의 여행에서 이번 영화의 영감을 얻었다고 하던데,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나요?
지난 2005년에 둘째를 임신한 지 4~5개월 된 시점에서 두 살 터울의 언니와 4박5일 오사카 여행을 떠났어요. 갑갑하던 찰나에, 무조건 여행을 가자고 해서 함께 가게 된 거죠. 성인이 된 뒤 언니와의 첫 여행이었어요. 보통 성인이 되면, 형제자매들끼리 여행을 가는 경우가 별로 없잖아요. 그렇게 가게 됐는데, 침대도 하나뿐인 좁은 유스호스텔 같은 곳에서 묶으면서 여행을 했어요. 안락한 여행 환경이 아니었고, 많이 걷고 되게 고생했어요.
그런데 여행을 즐겨했던 언니는 언니 페이스대로 여행하면서 임산부에 대한 배려 같은 것도 없는 거예요. (웃음) 사흘째 되던 날인가, 감정이 폭발했어요. 서로 불편이 쌓이다가, 제가 툴툴대니까, 언니가 물건도 집어던질 정도로 화가 난 거예요. (지나고 나니까) 그런 경험들이, 성격이 다른 자매간의 여행이 재미있게 와 닿는 점이 있었어요. 평소 로드무비에도 관심이 있었고. 가족 얘기도 추가됐고.
아, 그러면 여행을 다녀온 뒤 바로 시나리오 작업을 한 건가요?
시나리오를 거의 바로 쓰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전에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아이템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런 아이템도 있었어요. 여행이 살을 붙여준 거죠.
1997년에 <불똥>이라는 단편영화를 가장 먼저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영화 일을 하게 됐나요?
<불똥>은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한 포트폴리오 작품이었어요. 1995년에 영화 홍보 일을 하게 됐어요. 사실 영화감독은 한 번도 꿈꿔보지 않았어요. 대통령처럼, 제겐 일상적인 직업이 아니었어요. 영화 홍보를 하다 보니, 영화감독이 재밌는 일이구나 싶은 생각은 있었어요.
그전에 영상에 관심이 있어서 방송이나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방송이 더 현실적이긴 했어요. 방송작가와 영화 홍보를 하는 아는 언니들이 있었어요. 두 언니들에게 얘기를 했는데, 영화 홍보 하는 언니한테 먼저 연락이 와서, 영화 홍보를 먼저 하게 된 거죠. 처음에 들어가서 복사나 커피 타 주는 일부터 하다가 이건 아닌 것 같았고, 글 쓰는 일이 뭔가 있어 보여서 방송작가도 하게 됐어요. (웃음) 한 6개월 정도. 그런데 일이 싫다기보다 일을 둘러싼 환경이 싫었어요. 어떤 부속품 같은 느낌도 들고 적응도 못하고 허탈한 느낌도 들고.
그래서 다시 영화 홍보를 하게 됐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갑갑하지만 영화가 나에겐 더 맞는 일이라고. 심재명 씨(명필름) 같은 기획이나 프로듀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내 자신한테 설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아, 감독이 되기 위해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된 것인가요?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려면 이력을 가져야겠다 싶었죠. 3년이 걸렸어요. 삼수한 거죠. (웃음)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 연출부로 일도 하고, 한국영화연구소의 간사 노릇을 하면서 수강생들과 한 푼 두 푼 모아서 공동 연출한 것이 <불똥>이에요. 참 고맙더라고요. 사실 프로듀서는 맞지 않는 게, 그러려면 오지랖도 넓어야 하는데, 제가 인간관계를 잘 못 풀어요.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는 성격도 있고. 영화아카데미에 2번 떨어지면서 자신감도 많이 떨어지기도 했어요. 나중에 들으니 뒤에서 두 번째로 붙었다는…….(웃음)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가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잖아요, 준비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2006년 11월에 영화진흥위원회의 HD저예산영화 지원에 뽑혀서 5억 원을 지원받고 ‘KTB 다양성 영화를 위한 투자조합’ 펀드 등에서 돈을 받아 7억 원 예산으로 시작했어요. 2007년 10월 크랭크인을 해서 2008년 6월 후반작업을 마쳤어요. 촬영은 두 달이 걸렸는데, 상영 날짜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서 천천히 후반 작업을 한 거죠. 10월에 부산영화제에서 상영을 했고, 최근 극장에서 개봉한 거죠.
첫 번째 장편영화가 극장에 걸려서 감격했겠어요. ^.^
음, 제 성격이 무덤덤한 편이라 감격까지는. 촬영 시작할 때도 여느 날과 같았고, 상영이나 개봉 때도 무덤덤했어요. 다만 그런 건 좀 있었어요. (영화아카데미) 졸업 단편을 부산영화제에 출품했는데, 아마 2002년이었죠, 떨어졌어요. 그리고선 살림과 육아로 부산영화제를 가지 못했는데, 작년에 10년 만에 부산영화제에 영화를 들고 가니까, 뿌듯한 느낌이 있었어요.
한 가지 감동적이었던 건, 첫 상영 때 GV시간이 있었어요. 60~7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께서 맨 앞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질문은 아니고 일종의 소회를 말씀하셨어요. 영화 재미있게 잘 봐서 고맙다고, 꼭 손녀 대하듯이.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부산영화제에 오시는 열혈관객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넙죽 큰 절이라도 드리고 싶을 정도로 감동적이었어요.
와, 정말 큰 힘이 됐겠는데요. 그 장면 생각만 해도 제가 다 뿌듯해질 정도예요.
(테이블의 넷북을 가리키며) 여기 인터넷에 있는 평 하나하나나 무대인사 때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척 소중해요. 보통 머릿수로 10만, 20만 얘기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쉽게 상상이 안 되는데, 무대 인사를 가면 관객 한 명 한 명이 뭐랄까, 실체감 있게 다가와요. 어제(10일)까지 1만7,000명가량이 왔다는데, 그분들에게도 무척 고마워요.
(영화)평을 봐도 내 의도를 알아주신 분도 있고, 그 이상으로 본 분들도 있더라고요. 전 한번도 평을 올린 적 없거든요. 이분들은 (프랑수아) 트뤼포가 얘기한 ‘영화를 사랑하는 법’을 실천하고 있는 거죠. 첫 번째는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것, 세 번째 영화를 만드는 것인데, 저는 세 번째를 했지만, 그분들도 그만큼 영화를 사랑한다는 거죠. 여하튼 영화를 만들고 그것이 감상되고 퍼져나가는 과정을 지금 하나하나 느껴가는 게 신기해요. 특히 영화평은 제가 안 하는 것이라 더. (웃음) 사람들이 참 생기 있게 사는 것 같아요.
무대 인사 같은 곳에서 기억나는 분들이 있다면.
지난 8일 무대 인사를 하면서 관객분들께 OST를 드렸어요. 기억에 남는 분들은 어머니와 딸이 경남 진주에서 올라오셨더라고요. 언니와 동생도 아니고 어머니와 딸이. 이 영화가 그분들께 어떤 의미가 될까 생각도 해 봤어요. 어쨌든 재미있었다고 하시던데. (웃음)
기존의 가족 구성원을 벗어난 영화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영화들 좋아하세요?
<가족의 탄생>이나 <안토니아스 라인> 같은 영화들 좋아해요. 다큐인 <쇼킹 패밀리>도 좋고. (가족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세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뭐랄까, 제게는 어린 시절에 기존의 견고한 ‘가족주의’라고 느낄 만한 것이 없었어요. 자식으로서 그렇게 느낀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히 제가 가족에 천착하는 것은 아닌데 애를 낳으면서 가족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보게 됐어요. 부모와 아이로 가족 구성원이 이뤄지면 물론 좋지만, 다른 형태로도 얼마든지 가능하잖아요.
이 사회가 그렇잖아요. 만약 4인 가족이라고 치면, 그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 시스템이 얼마나 견고해야 하는지. 장난이 아니에요. (웃음) 가족, 가정은 꼭 ‘소대’ 같아요. 이 사회를 위한 소대이자, 관습이나 시스템?인습을 재생산하는 소대. 그런 가족이 사회 전체를 떠받들고 있잖아요.
맞아요. 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가족들에게 떠넘기고, 그러면서 가족 이기주의는 강화되고.
전 가족이 연대커뮤니티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힘들거나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해요. 그게 가족의 본령이라고 생각해요. 인습이나 기존 질서, 노동력을 위한 소대로 지탱되고 있다는 게 사실 짜증나요. 이 영화를 만들면서도 가족의 본령에 충실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엄마-아빠-아이의 전통적인 울타리를 벗어나 어깨를 빌려주는 연대 커뮤니티로서의 본령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물론 부족한 것도 있었겠지만요. (웃음)
혈연 중심으로만 묶인 가족 개념은 확실히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보고 ‘결손’이라는 말로 규정해버리고. 뭔가 부족하거나 결핍된 것으로 치부하잖아요.
가족 구성원에 대한 개념을 확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기존의 질서 속의 책임과 의무가 아닌 느슨한 커뮤니티 같은 것. 계운경 감독의 <나의 선택, 가족>이라는 다큐에 보면, 제도의 틀을 넘은 가족들이 나와요.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건 전통적인 개념이고, 그런 선택할 수 있는 가족의 형태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곱 집이 모여 사는데 아이를 함께 기르고 그래요. 종적인 대가족 말고 횡적인 대가족이 되는.
그러니까 가족 제도가 핵가족주의에 함몰돼 있지 않다면 구성원들도 스스로 경쟁을 내면화하지 않을 것 같아요. 가족 이기주의도 발휘되지 않을 테고. 예전엔 이런 것들이 내 고민으로 들어오진 않았는데, 이 사회에서 가족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돼요.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아버지가 다른 자매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함께 여행을 갔다가 이름을 새기는데, 성이 다른 것을 그때야 확인하고는 ‘아, 그랬지.’ 하고 새삼 그 다른 성에 눈길이 가더라고요. 아 나도, 사회에서 주입한 편견에 물들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가지게 되는.
부계 사회라면 그럴 수밖에 없죠. 이제까지는 형제, 자매, 남매가 성이 같지 않으면 문제가 됐으니까요. 재혼한 사람들의 고통이 그런 거였잖아요. 사소한 것 같지만 상징화된 편견이죠. 진짜 별것도 아닌데 그런 게 문제되는 것, 편견이 굳어지고 누군가를 달리 보는 것은 잘못된 것 같아요.
역시 영화 속 ‘반전’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좀 놀라긴 했어요. 반전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렇게 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어요.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건가요?
가족이라는 것이 공익광고에 나오듯이, 부모와 아이로만 이뤄져야 행복하고 정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명은이도 알게 모르게 강요되는 그런 식의 (사회적) 흐름 때문에 상처를 받은 거잖아요. 그래서 명은이에게 그런 의미를 넣고 싶었어요. 네가 찾는 그 가족이라는 것이, 같이 살지도 않는 아빠인데도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껍데기뿐인 아빠를 찾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네 옆에 있는 이모를 찾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조금 또 다른 의미를 추가했다면, 아버지를 부정하는 거죠. 왜 굳이 아버지를 찾아야 하나. 어리석은 여행이었다는 걸, 명은이가 깨달아야 한다는 거죠. 아버지가 가족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보면 가족 내에 생산과 연대감을 만들어주는 것은 대개 어머니나 할머니, 이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리하자면, 2가지 의미가 있죠. 여행이 불필요한 것이었다는 것. 즉, 허상을 깨는 것이고요. 이른바 ‘정상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족 모양새를 깨는 것. 그게 부족했다면 다 제 탓이죠. (웃음)
명주가 튀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명은이에게 더 초점이 맞춰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명주와 명은이가 여행을 함께 갔지만, 명주는 메신저 같은 역할이죠. 회상을 불러들인 것은 이것이 물리적 여행이 아닌 시간적 여행이기 때문이에요. 여행 속에서 회상이 들어오는 것은 중요했어요. 명주도 그런 역할 때문에 따라간 셈이죠.
밀도가 있었으면 반전에 놀라지 않았을 텐데, 고민을 많이 했어요. 형식적으로나 이야기의 흐름에서 수위 조절을 하기 위해서. 그 수준을 만드는 게 어렵긴 했어요.
놀이동산에서 이뤄진 어떤 깨달음이 좀 느닷없긴 했어요.
밀도가 좀 약한데 놀이공원의 상징을 이용하고자 했어요. 놀이공원이라는 곳이 아이들이 노는 장소이고 자연스레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회전하는 놀이기구나 앞선 사람의 뒷모습이 과거로 돌아가게끔 만드는. 원래 더 들어가는 부분이 있었는데, 너무 설명적이지 않을까 해서 결국 찍지 않았어요.
하긴 너무 감독의 의도나 의중을 듣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관객 나름의 해석할 여지가 있고, 그걸 상상하고 유추하는 것도 영화의 한 부분인데. 그럼으로써 영화도 관객? 함께 최종적으로 완성되고.
영화는 여백 같은 게 있잖아요. GV라는 게 그런 면에선 좋지 않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감독이 관객에게) 해답을 제시하는 것 같고. 원래 그 자리는 영화 못 만든 거 땜빵하는 자리잖아요. (웃음) 요즘 영화 관객들은 지적 호기심도 많고 영화를 보고 물음표도 남겨두더라고요. 영화를 만들 때 너무 변수도 많고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도 많으니까, 하나로 꿰뚫는 논리라는 건 있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신민아 씨 연기가 이전과는 달랐어요. 뭐랄까, 남자 주인공들을 보좌하는 그런 역할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색달랐어요.
명주는 메신저고 주인공일 수 없어서 명은이 못하면 죽는 영화인데, 신민아 씨가 잘 해줬어요. 공효진 씨도 이 영화는 명은이 영화고, 자기는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말하더라고요. 민아 씨도 힘을 받아서 성실하게 임하고 의욕도 무척 강했어요. 종전과는 다른 걸 해야 한다고. 민아 씨가 19살 때인가 나온 <마들렌>을 봤었는데, 25세 연기를 곧잘 하더라고요. 일상적인 연기 하려고 힘쓰고. 그동안 계기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죠.
캐스팅은 그럼 처음부터 두 사람으로 정해진 상태였나요?
다른 분을 원래 염두에 있었는데, 홀딩된 상태에서 캐스팅이 지지부진했어요. 그때, 민아 씨가 먼저 연락을 해 왔어요. 시나리오를 준 상태도 아니었고, 먼저 그렇게 연락이 와서 저도 놀랐어요. 그렇게 만났는데 이미지도 좋고 되게 성숙해 보이더라고요. 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죠.
원래 효진 씨는 나이 때문에 고민을 했어요. 두 주인공이 지금 나이보다 둘 다 다섯 살이 많았는데, 민아 씨가 캐스팅 되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지금의 극중 나이로 어려진 거죠. 효진 씨도 자기한테 붙으니까 연기를 아주 잘하더라고요. 앞으로 더 많은 자신을 발견했으면 해요.
남편께서 김우형 촬영감독이시잖아요. 말하자면, 영화인 가족이신데, 어떠세요?
뭐, 특별할 것도 없는데. (웃음) 처음 애 낳기 전에 서로 영화 할 때는 재미있었어요. 당시 남편은 <바람난 가족>을, 저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하면서 서로 영화 이야기 하고, 늘 연장선상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애를 낳고 나니 그게 나쁘더라고요. 촬영 내내 못 들어가니까 애 키우는 데 안 좋은 것 같았어요. 아이를 방목할 수밖에 없는. 그래도 꼭 나쁘진 않았어요.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어린이집 엄마아빠들이 돌봐주시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 부분들은 좋은 것 같아요.
또 예전에는 살림을 하다가 영화를 찍고 했는데, 이젠 그럴 수가 없어요. 이것저것 지속하면서 살림을 돌봐야 하니까. 서로 이해하기로 하고, 힘들기도 하고 그래요. 어쨌든 회사 다니듯 진행되는 게 아니고 특정 시간에 노동집약적으로 일이 몰리는 데 대해 이해해주는 점은 좋아요.
진부한 질문이지만, 마지막으로 다음 준비하는 작품이나 계획이 있으시다면.
가족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일단 6월까지 써야 해요. 괜찮게 나오면 (영화사와) 계약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 정해진 것은 없어요. 영화사 대표께서 작년 가을에 영화를 보고 좋게 생각하시긴 했는데, 두 번째 작품을 해야 안정될 것 같아요. 지금은 전업주부나 다름없어요. 직업으로 안정됐다고 할 수 없고. 그저 영화 하나 찍은 주부죠. 이 생활을 지속하려면 직업으로서 말할 수 있어야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