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이 있다. 그 빛은 쉬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노력과 그동안의 시간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그 반짝임이 더욱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에드워드 권. 그는 많은 사람들이 ‘환상의 오아시스’로 그리는 두바이의 7성급 호텔인 버즈 알 아랍의 수석총괄조리장이다. 이름만 보면 교포나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그는 순댓국을 좋아하는 토종 한국인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요리를 시작했으며 외국에 나가 두바이의 수석 총괄 조리장이 되었는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런 궁금증을 알기라도 한 걸까. 에드워드 권은
『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에 자신의 요리 인생의 시작, 외국 생활의 어려움, 셰프들의 세계, 맛 공부 등에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한 끼에 300만 원이라는 그의 요리 사진과 함께 곳곳에 전문 지식에 대한 설명도 있어 인터뷰 전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저녁 8시 30분. 그것이 에드워드 권 셰프와 인터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도착한 바로 다음 날 하루 종일 일정이 가득 차서 저녁 8시가 넘어야 시간이 난다고 했다. 약속장소에서 이미 다른 곳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던 그는 무척이나 열성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 인터뷰는 20분이나 넘겨 결국 9시가 다 된 시간에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다.
기다림은 둘째 치고 하루 종일 이어지는 스케줄에 지치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는 그가 자리에 앉는 순간에 모두 날아갔다. 진심 어린 사과와 열성적인 대답에 그 전 인터뷰의 상황이 눈앞에 그려졌다. 이 인터뷰 다음에 또 회사와 미팅이 있다고 말하는 그는 전날 밤 9시간이 넘게 걸리는 두바이발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이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침 8시부터 세미나가 있었다니 오늘은 족히 12시간은 말을 한 셈인데도 음식과 요리에 관한 질문에 신이 나서 설명하는 그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두바이의 꿈, 7개의 별을 품다
먼저 현재 일하시고 계시는 버즈 알 아랍에 대해 궁금합니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 하지만 그 비싼 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호텔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봤을 때도 세계 최고 호텔이다 보니까 세계 최고들이 모여서 일을 하고 있는 곳이 버즈 알 아랍입니다. 최고의 서비스와 최고의 음식을 제공합니다. 7성 호텔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7성이 존재하는 건 아니에요. (호텔의 등급은) 5성까지 존재하는데 손님들이 와서 보시고 5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좋고 6성도 모자라다는 생각에 손님들이 7성급 호텔이라고 불러주네요.
책에서 처음 두바이에 스카우트될 때 22개의 코스 요리를 만들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때 요리 준비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8~9시간 동안 준비했습니다. 한 코스에 3가지씩 주는 겁니다. 피에르 가니에르(미슐랭 3스타 셰프로 얼마 전 서울에도 레스토랑을 오픈했다-필자 주)의 스타일처럼 한 종류만 써서 3접시를 주는데, 제가 했던 거는 한 가지 식재료로 세 가지의 전혀 다른 맛을 내는 음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 코스에 세 접시 모두 토마토를 다룹니다. 그런데 접시마다 전혀 다른 맛을 내주는 거지요. 타파스tapas 스타일로 미니멀하게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음식 스타일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최소한의 것을 주고, 맛만 볼 수 있도록 하는 스타일이지요.
그는 버즈 알 아랍에서 최초의 한국인 주방장이지만 더 나아가 한식을 최초로 알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식을 만들어 맛보이고 더 나아가 ‘코리아 푸드 페스티벌’을 열어 세계 각국의 인사들에게 한식을 알리고 있다.
어떻게 코리아 푸드 페스티벌을 열 생각을 하신 건가요?
요즘에 정부도 그렇고 정말 많은 분들이 한국 음식을 세계화시키겠다고 하시는 것 같아요. 우선은 개인적으로도 일조를 한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식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즈 알 아랍이라는 시장에서 시작을 하게 되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식의 세계화는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쉽게 말씀드리면 가장 세계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이라는 것은 문화입니다. 그것을 외국인이 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거부감이 없는 것이에요. 대부분의 외국인은 젓가락질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외국인에게는 젓가락질부터가 불편함이겠죠. 우선은 가장 한국적인 것보다는 세계적인 시각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느꼈을 때 거부감이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해요. 또한 더 나아가서 현대적이고 창조적인 요리들로 접근해서 그 사람들의 문화에 절충될 수 있어야 합니다. 부글부글 끓는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주면서 이것이 한국 음식이라고 얘기하기보다는 수프로 바꿔서 주는 발상을 가져야 하는 거죠.
한 예로 요즘 제가 삼계탕 얘기를 많이 합니다. 양식에 테린(고기나 야채 등을 국물과 함께 틀에 넣어 응고시킨 요리―필자 주)이란 게 있어요. 그럼 삼계탕을 테린으로 바꾸지 말라는 법칙은 없는 거예요. 닭고기를 삶아 살과 국물을 (그릇에) 넣고 굳힌 후, 돌나물도 조금 얹고, 인삼은 폼으로 올리고, 마늘은 튀겨서 칩으로 주고, 찹쌀은 건조시킨 후 튀겨 퍼프 라이스puff rice로 주는 겁니다. 그리고 대추 같은 것은 가니쉬로 얹게 되면 차가운 삼계탕이 되는 겁니다. 음식을 차게 재해석한 것이지요. 저는 된장찌개 그 자체로는 절대 세계화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풀 수 있는 것이 나와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한국적인 식재료를 다 끌고 가되, 현대화된 요리법으로 푸는 것이 한국 음식을 세계화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권 셰프의 요리를 무척 맛보고 싶은데요, 한국에서 맛볼 수는 없을까요?
기회가 있을 수 있겠죠.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청담동에 가게를 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건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드워드가 처음 오픈하고 싶은 식당은 대중을 위한 식당이에요. 누구나 내 음식을 먹고 싶다면 먹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요리사는 어떻게 식재료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괜히 너무 비싼 거위간 같은 식재료를 써서 이 사람들(비싼 음식을 못 먹는 사람들)에게 못 먹게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대중이 느껴서 (그들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음식을 이해하는 눈이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청담동은 음식 가격이 몇십만 원이 넘어가요. 식사에 와인까지 함께한다면 더 비싸지겠죠. 일반 평범한 중산층이 접근할 수 있는 식당은 결코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그 음식이 대중화가 될 수 있겠냐는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에드워드가 처음 열고 싶은 식당은 굉장히 하이클래스의 음식을 대중적으로 재해석한 식당이에요. 편하게 와서 먹을 수 있지만 전혀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꿈입니다. 물론 에드워드만을 위한 공간도 가지고 싶죠. 그런데 그곳은 내가 원하는 요리를 만드는 공간일 뿐이지, 손님을 위하는 공간은 아닌 것 같아요.
| 두바이 버즈 알 아랍 호텔의 수석총괄조리장 에드워드 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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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감자바우, 세계로 나아가다
요리사가 되기 전에는 요리를 전혀 하지 않았나요? 어릴 적부터 요리에 관심이 있었나요?
아뇨. 전혀 안 했어요. 저는 신부님이 되고 싶었어요. 할머님께서 너무 반대하시고 쓰러지시는 바람에 포기를 하고 재수를 하는 도중에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주변 사람들이 재주가 있는 것 같다고 하고 그러다 보니 신검 통지서를 받고 집에 내려갔어요.
솔직히 군대는 가기 싫고, 대학을 가면 군대를 미룰 수 있을 것 같고. 대학교 책을 뒤져보니 조리과가 있더라구요. 이거라고 생각했어요. 칼도 만져봤겠다, 그래, 이거 가자고 말이죠. 일종의 하나의 도피처였어요. “그래. 나 어차피 요리를 했어. 그러니 끝까지 가보자.” 했더니 재미있더라구요. 요리를 하면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어요. 남들은 슬럼프다 뭐다 하는데 저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어요. 저에게 요리는 아직도 즐거운 경험이에요.
‘두 시간 일찍 출근, 6시간 늦게 퇴근’이 정말 가능한가요? 체력적으로만 보아도 무척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럼 평균 몇 시간을 쉬는 건가요?
저는 지금도 7시 출근해서 밤 12시 퇴근합니다.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4시간입니다. 그렇게 산 지 10년도 훨씬 더 넘은 것 같네요. 요리책 많이 보고. 요리책 보는 거 무척 재미있어요. (손가락을) 딱 치면서 “이런 게 있었구나~” 하는 거 정말 좋아요.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내가 정말 좋아서 일을 하니까, 그게 가장 좋은 체력의 유지 비결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저보고 외국에 사니까 골프도 치고 다양하게 즐기고 살 것 같다고 하는데 실제로 저는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쉬는 날을 모아 한국에 들어오기 바쁘지요. 저에게 가장 좋은 힘이 되는 건 정말 즐겁게 일을 하니까 모든 일을 할 때, 회사에서 일도 그렇고, 지금 이런 인터뷰마저도 무척 즐겁게 일을 합니다. 그것만큼 좋은 헬스클럽이 없는 것 같아요. 운동을 특별히 하는 건 없습니다.
그동안 샌프란시스코, 중국 텐진, 두바이에서 생활하셨는데, 어느 나라가 가장 기억에 남나요?
당연히 미국이죠. 일하기 쉬우면서도 어려웠던 나라였던 것 같아요. 가장 즐거웠던 추억과 어려웠던 추억이 존재하는 곳이었어요. 배운다는 즐거움, 아마 많이들 공감하실 거예요. 근데 식당을 가서 봐도 정말 이렇게 (요리를) 줄 수 있고, 이런 음식이 있고. 그때그때는 정말 신이 나는데, 실질적으로 가장 큰 문제점은 신이 나는 대신에 받는 무시와 멸시였어요.
아시안이라서 받는 시선, 일을 하기 시작하면 보이지 않는 무시, 멸시 같은 것이 있어요. 그래서 죽을 둥 말 둥 일했어요. “너네 내가 제대로 갚아줄게.”라고. 그래서 요즘 그것 갚고 있어요. 그래서 그때 위에 있던 친구들이 다 밑으로 왔고, 그리고 3~4년 동안 연락 없던 친구들이 연락 와서 추천서 써달라고 하고. 그럼 살살 약 올리면서 나중에는 써줘요.(웃음)
외국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일, 궁금한데요.
요리하면서, 해외 생활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아시아인이라는 거. 검은 머리, 갈색 눈을 가졌다고 무시당하고 멸시당한다는 거. 하다못해 손님 자체도 그래요. 손님이 셰프 보고 싶다고 해서 나갔어요. 그랬더니 ‘너 말고 셰프 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셰프라고 하니까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싱가폴인이냐 묻더군요. 그래서 한국이라고 대답하자 더욱 무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더 나아가 아시안이라는 자체, 일반 사람들의 선입견, 그게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죽을 둥 말 둥 일했습니다.
‘바삭한 셰프’ 에드워드 권
‘바삭한 셰프’라는 재미있는 용어를 쓰시던데요, 정확한 뜻이 무언가요?
제가 생각하기에 셰프는 항상 자신을 가꿀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깔끔한 사람이어야 해요. ‘바삭한’이란 영어로 이야기해서 crispy라는 표현을 말한 것인데, 깔끔하고 깨끗해 보이는 옷차림을 뜻합니다. 그것을 한국식으로 바삭하다는 표현을 쓴 겁니다. 셰프는 언제 고객을 만나더라도 깨끗하고 깔끔하게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여분의 셰프복을 항상 준비하고 있습니다.
셰프 에드워드 권을 세 단어로 표현한다면?
열정. 똑같은 이야기를 16명에게 하루 종일 반복할 수 있는 열정이 있죠. (웃음) 창조. 음…… 그리고 카리스마. 막 장난치다가도 갑자기 진지해지는 면이 있대요.
포장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에요. 있는 그대로를 보여드리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 듣고 싶어요. 제 기술은 이미 명품화되어 있습니다. 이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데 굳이 제 자신까지도 명품화를 할 필요가 없겠죠. 그렇지만 저는 공과 사가 매우 확실합니다. 예전에 한 공익광고가 있었어요. 집에서는 양인데 차에 딱 타고 늑대로 변하는 아버지의 모습, 저는 키친에 들어가면 늑대로 변해요. 키친에서는 엄청나죠. 그런 것에 있어서는 선이 매우 확실합니다.
| 키친 안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진지하지만 밖에서는 부드럽고 유머 있는 에드워드 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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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세상의 모든 사람은 요리사다.’ 내가 오늘 저녁에 배가 고파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럼 나는 요리사인 겁니다. 세상에 최초의, 또한 최후의 직업도 요리사라고 생각해요. 쉽게 얘기하자면 집 없이떵 살 수 있고, 옷을 안 입어도 살 수 있지만 굶으면 다 죽어요. 모두 다 먹어야 살잖아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요리를 하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고, 그 사람이 요리사인 것이지요. 직업적인 것으로만 요리사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라도 요리사라고 생각하고, 자기 자신에게 만족한다면 누구나 다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최근에 요리사라는 직업이 각광받고 있는데요, 그들에게 선배 요리사로서, 스타 셰프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번에 현대 전문학교의 석좌교수로 위촉을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에드워드가 왜 그 작은 전문학교에서 요리를 가르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그 친구들을 가르치게 된 것은 그들이 가장 절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문학교라는 곳은 직업학교입니다. 직업을 가지기 위해 마음을 먹고 달려든 곳인 것이죠. 그런 사람들에게 얘기도 하고 호흡도 하면서, 요리에 미쳐서 살 수 있는 사람에게 제 요리를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직접 요리를 가르쳐 주는 곳이 될 겁니다. 앞으로 글로벌한 인재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고, 더 나아가 한 층 더 성숙된 맛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학교의 제안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뜨거운 학교’였습니다. 저는 ‘정신 좀 차려라.’라는 강의를 많이 합니다. 앞에서 재미있게 막 떠드는 것보다 듣는 순간에는 어려울지 몰라도 지나고 나서 살면서 ‘이런 강의를 들었구나.’ 하고 되돌아 볼 수 있는,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강의를 하고 싶어요.
책을 쓰게 된 동기도 가르침의 의미를 담고 있나요?
저는 스스로 (제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이지요. 사람들이 저의 삶을 읽고 나서, 치열하고 뜨거운 삶이었지만 따뜻한 보통 사람의 삶이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이 요리사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이 되기를 바란다기보다 좀 더 포괄적이고 넓게 알기를 바랐습니다. 말 그대로 직업인이 아닌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 바라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읽고 ‘삶이, 요리가 그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어떤 호텔보다도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버즈 알 아랍의 최고의 자리에서 일하는 그는 오히려 누구보다도 겸손하고 또한 솔직했다. ‘요리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스스럼없이 ‘삶’이라고 대답하고 평생을 가도 요리가 무엇인지 모를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미 자신의 삶은 요리로 채워져 있으므로 평생 요리를 하고 맛을 채워나갈 거라는 말에 얼마나 그가 요리, 즉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그는 삶의 단편을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를 썼다. 자신을 그저 두바이의 수석총괄조리장으로 보지 말고 그저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아주었으면 좋겠다는 그는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에게 요리사가 어떻게 사는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마지막 꿈은 한국에서 세계적인 요리학교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진정한 요리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주고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고 했다. 어렵고 사정이 안 되는 학생들에게 무엇보다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옆얼굴이 또 한번 반짝반짝 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