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수더분한 옷차림만큼이나 편안하고 유쾌한 만남이었다
햇볕 따뜻한 어느 오후,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는 앞이 툭 트인 마당에는 꼬꼬닭이 모이를 쪼고 한편 외양간에선 황소 한 마리가 여전히 되새김질을 하는 그런 자그마한 집 툇마루에 찐 감자 한 소쿠리 앞에 놓고 까먹으며 여자들이 조근조근 가족 이야기, 세상 이야기 그리고 먹을거리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온 듯한 느낌이다.
편안한 옷차림에 화장기 하나 없는 해말간 얼굴의 작가, 작가라기보다는 엄마 같고 언니 같은 공선옥 작가와 모두들 입가엔 미소를 머금고 정이 가득한 눈길로 작가를 바라보는 얌전한 독자들이 '행복한 만찬'을 앞에 두고 만났다. 통쾌하게 웃는 작가의 웃음이 어찌나 자연스러웠던지 독자들은 그 웃음을 따라 실컷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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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만찬』을 펴낸 소설가 공선옥 | |
얼마 전, 초등학생 아들과 촛불집회에 갔는데 녀석이 촛불 꺼질까 봐 하도 그것에만 신경을 써서 뺏고 뺏기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누군가가 "공선옥 선생님!" 하고 불렀단다. 원체 낯가림도 심한데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교양을 부릴 수도 없어 도망가고 말았다는 말씀과 요즘 세상엔 작가가 독자들을 만나려면 "인격 도야도 열심히 해야 쓰것네~에."라는 꾸밈없는 말씀이 마음에 팍 와 닿는 순간이었다.
그 편안한 만남엔 얌전한 YES24의 독자들이 있었다
만남은 대학로의 '예가'에서 한정식을 먹으며 독자들의 자기소개부터 시작되었다. 독자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하나하나 다 수첩에 적는 공선옥 작가 앞으로, 열혈 YES블로거로는 우리의 영원한 스물아홉 살 예쁜 언니(!)인 롤러코스터 님, 어릴 적 전주에서 2년간 살았고 엄마와 함께 읽고 『행복한 만찬』에 더 공감했다는 red 님, 미술과 한국 문학을 유난히 사랑하는 woojukaki 님이 참석했다.
그리고 작가 곁에서 정말 겸손하게 맑은 미소 짓고 계시던 국어선생님, 시골 얘기를 정말 구수하게 해서 좌중을 많이 웃긴 세련된(!) 대학원생, 초라하게 나이 들어가는 자신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 참석했다며 시종일관 따스하게 웃던 독자, 패션을 공부한다는 눈망울 초롱초롱한 대학생, 작가만큼이나 즐겁고 활발하게 분위기 띄워준 문학동네의 꽃 같은 미연 씨, 그리고 『행복한 만찬』을 만든 편집자 교석 씨가 남자로서는 유일하게 귀엽고 수줍은 모습으로 만찬을 함께했다. 마지막으로 김해에서 마음 설레며 올라간 진달래가 있었다.
작가가 직접 따라주는 한 잔의 산사춘의 맛이, 한 잔의 맥주의 맛이 정말 '개미가 있는'(『행복한 만찬』 159쪽) 저녁이었다.
공선옥의 문학은 인생, 그 자체다
장중한 청소년 소설이었던 『라일락 피면』에서 처음 공선옥을 알았다. 무겁디무거운 소재였기에, 청소년의 선택에 관한 문제였기에, 그것이 인생이었기에 감동을 받았었다. 이후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를 찾아 읽으며 가슴 가득 차오던 슬픔에 눈물 흘렸고 다가오는 인생을 피하거나 숨지 않고 당당히 살아낸 그 씩씩함에 용기를 얻기도 했다.
그리고 남루한 쿀상이라고 부끄러워하며 최근에 내놓은 『명랑한 밤길』은 한편, 정말 명랑한 인생 얘기였지만 또한 진한 토종 된장찌개 같은 작품이었다. 삶이 애잔하게 묻어나기도 하고 또 우리네 삶의 진한 슬픔의 냄새가 곳곳에서 풍겨져 나오는 게 삶의 연륜일까. 어쩔 수 없이 운명으로 짝지어진 가족 구성원들의 정(情)과 일상, 그리고 심지어는 심한 투쟁까지도 우리 일상을 어찌나 구성지고 찰지게 잘 표현했는지 모른다. 이런 구질구질한 일상을 지겹도록(!) 잘 그리고 깔끔하고 단아한 글맛으로 표현한 작품집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맛난 것 고급스러운 것, 비싼 것들을 찾아 헤매는 세상인심이 얄미워(!) 진짜 먹을거리로 가득한, 추억으로 가득한 『행복한 만찬』을 펴냈다. 제목에 얽힌 이야기에서 『은어낚시통신』이 '낚시와 레저' 코너에 들어가 있듯이, 『수수밭으로 오세요』라는 작품은 가끔 '에로소설' 쪽에 분류되어 있다는 말씀에 실컷 웃었다. 또한 출판사로 주문이 들어올 때 '행복한 반찬'으로 주문이 들어오기도 한다고.
『행복한 만찬』은 새끼를 기르는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한 먹을거리로 가득하다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엔 우리 시골의 투박한 맛이, 새끼를 기르는 어미의 손맛이 담겨있다. 시골이라고 다 같은 시골이 아니고, 어미라고 다 같은 어미는 아닐 게다. 공선옥의 글엔 칭얼대다 고개를 외로 꺾고 잠이 든 갓난쟁이를 들쳐 업고 바구니 하나 들고 못나디못난 텃밭에서 상추를 솎고, 꼬부라질 대로 꼬부라진 가지를 두어 개 따고, 따가운 햇살 한번 바라보고, 슬그머니 지나가는 바람의 속삭임도 듣고, 숙였던 허리를 펴며 한 번 더 애기띠를 추스르는 그런 모습에서 나오는 음식 얘기인 것이다. 그래서 공선옥의 글에선 투박한 시골의 맛이, 진한 추억의 맛이 느껴진다. 못생긴 된장 그대로 보글보글 끓는 모습이 그대로 음식에 녹아있는 그런 맛이다.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먹을거리가 없었지만 먹을거리가 없지 않았던 그런 시골의 먹을거리가 가득 들어있는 작품이다. 내 새끼에게 먹일 음식을 준비하는데 어찌 마트에서 그냥 사다 먹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이 책엔 밭을 매고 씨를 뿌리고 뾰로롱 뾰로롱 올라오는 채소를 솎아 음식을 만드는 그 노고까지 모두 들어 있다.
사진작가 이영교 씨가 정성껏 찍은 사진 가운데 채반에 얹어진 가죽부각은 실제 책에 나온 글을 읽고 그 아내가 직접 만들어 찍은 사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즉, 이 책을 보고 그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니 말이다.
가끔 '거시기, 머시기'라는 구수한 사투리로 음식 얘기를 하시던 작가는 전라도 음식을 '지분지분하다'는 말로 정의했다. 서울에도 서울만의 먹을거리가 있지 않느냐고. 도시에서 자란 아이 치고 어린 시절에 국자 한 번 안 태워먹은 아이가 있을까. 요즘은 달고나 세트로 팔지만 그놈의 '뽑기'를 한번 해보겠다고 불이나 안 냈으면 다행이지. 그래서 음식은 물과 불의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과 불을 잘 가려서 음식을 해야 하지 않는가 하고. 요즘 음식이 차갑다고 말씀하신 작가는 예전엔 짚불, 나무, 솔, 심지어 연탄까지 불이 다양했지만 요즘은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느냐는 안타까움을 더했다.
공선옥 문학은 가난 판타지?
한번은 어느 대학에서 강연회를 했는데 한 학생이 질문을 하더란다. "선생님, 그거 판타지 소설이죠?" 그런 가난을 살아보기는커녕 상상도 못 해본 요즘 학생의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럼 그건 가난 판타지인가? 그런 가난을 현실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대중의 현실은 공선옥 문학을 판타지로 만들어 버렸다.
한번은 경주의 모임엘 가셨는데 어느 한 분이 작가를 잘 안다면서 "그 뭣이냐. '간고등어'(?) 쓰신 공 머시기(?) 선생님이시죠? 제가 잘 압니다……. (기타 등등)" 『명랑한 밤길』로 너무 늦게 공선옥 작가를 처음 발견한 게 억울할 지경인데, 공선옥 작가를 만나러 간다고 해봐야 모르니, 유명한 '공 머시기' 작가의 언니쯤 된다고 해야 사람들이 알아먹는 게 요즘 세태란다. 이럴 수가…….
어떻게 공선옥 문학이 안 팔리는지 이해할 수 없는 독자에게, 작가는 베스트셀러의 문제에 대해 말씀하셨다. 문화,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책이라는 게 대중에게 몰리다 보면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그 해악의 이유는 바로 많이 팔린 책이 상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라고. 그런 몰림은 우리 사회가 하향평준화가 될 수도 있으며, 그렇게 상식이 되어버린 베스트셀러가 양산되고, 그 자체가 독재가 되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공선옥 문학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독자의 애정 어린 투정에 "아따, 진짜 좋은 작가 되야긋네. 겁나게 어깨 무겁네."라는 농담을 해주셨다.
어른들에게 불편한 것은 아이들에게 좋다
아이들이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맛있어 하는지, 요즘 음식들을 찾지는 않는지 질문을 하자, 작가는 "그것만 해주는데 뭘…… 맛있고 없고 그런 게 어딨어?" 한번은 햄버거를 사다가 6 등분을 해서 먹어봤다는 에피소드를 곁들여주셨다.
자신은 시골에 가면, 냇가엘 가도 들판엘 가도 본능적으로 어디 먹을 게 없나 찾아보신다는데, 자신의 눈엔 찔레순이며 삘기 등 모든 게 다 먹을거린데, 요즘 아이들은 냇가에 발이나 담그고 먹을 게 그렇게 가득한 들판이 단지 풍경일 뿐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먹을 건 모두 마트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만든 건 어쩌면 우리 어른들일 것이다.
못 먹을 거라도 일단 입에 대본다는 작가에게 우리는 어릴 적 먹었던 사루비아 꿀이며 아카시아 꽃 얘기를 곁들였다. 그렇다. 못 먹는 게 어딨어! 배추 '꼬다리'도, 한겨울에 우적우적 깨물어 먹던 무도 다 맛난 먹을거리였다.
요즘엔 그런 생활을 일부러 아이들에게 체험 한번 시켜주려면 엄청 비싸단 한 엄마의 말씀에 작가는 "그렇지, 그게 사는 것이어야지, 체험 차원이 되면 그렇지."라고 말씀하시며 결국 중요한 건, 애들 보고 해먹어보라고 해야 그 음식이 자기 것이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현대의 삶에서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공부를 하고 엄마 혼자 준비해서 먹기만 같이 해서는 음식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음식을 둘러싼 정황들, 즉, 사람살이 그리고 환경까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어른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맛난 것이다
우리는 요즘 웰빙이다, 향수다 해서 다시 옛것을 찾고 시골 음식을 찾는다. 또 시대가 시대다 보니……. 아무튼 먹는 사람으로서는 '맛있다, 맛없다'라고 음식을 따지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어미의 마음은 다른 것이다. 음식이라는 이름으로 식탁에 오르기까지, 뭐 하나 새끼 입에 넣기까지 얼마나 땀과 눈물을 흘렸는지, 그 눈물겨운 과정을 거치는지 먹는 사람은 모른다.
먹을 것 없던 시절엔 다 맛있었다. 먹는 음식을 앞에 두고 어떻게 '몸에 좋다, 안 좋다'를 따질 수 있는가. 그건 음식에 대한 모독이다. 먹을 것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던 시절이 있었다. 먹을 것 없던 서러움이 먹을 것에 대한 눈물을 만들고 감동을 자아냈던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독초를 씹어대고 흙을 개어 먹는 곳이 아직도 이 세상엔 있지 않은가.
공선옥에게 맛있는 음식은 모두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인생에 쓴 맛도 단 맛도 있듯이 음식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쓴 머구(머위, 『행복한 만찬』 134쪽)도 맛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작가면 뭐 혀?
언제부터 글을 잘 쓰셨는지, 어릴 적에 글쓰기 재능이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또 한번 작가를 전남 곡성의 시골로, 밤마다 육자배기를 불러대던 어머니 곁으로 데려갔다. 책이 없던 시절이어서 읽고 싶은 욕구를 신문지로 도배한 벽의 글 읽기로 하셨다고. 동생 위에 올라, 또 재봉틀 위에 올라 한문이 섞인 한글을 지어내가며 읽었다고.
아버지는 도시로 돈 벌러 가고 만능 엔터테이너였던 엄마와 세 딸이 외로운 밤이면 함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택시 운전사 미스 양'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력을 키웠던 것이다. 전라도 엄마는 자신이 신세타령을 지어내서 걸쭉한 육자배기로 뽑아내다 '님은 간 데 없고…….' 노래도 부르고 그 옆에서 딸들은 눈물지었다고. 몸이 약해도 장난을 잘 쳤던 엄마의 싫었던 모습까지도 지금 글쓰기의 바탕이 되지 않았겠느냐는 말씀에 그 시골과 자연이 어우러진 정서가 그대로 드러났다. "선옥아, 야그 좀 해봐라."
그곳엔 아직도 "작가가 뭐 허는 사람인지도 몰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인생에서, 경험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온 인생 이야기를 쓸 수 있게 해준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작가의 새 장편을 기다리며 행복한 헤어짐
이제 곧(!) 공선옥 작가의 새 장편이 나온단다. 모두 신나게 박수를 쳐댈 정도로 기쁜 소식이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작가의 꾸밈없는 모습과 구수한 사투리가 따라왔다. "나만 얘기해서 겁나 미안허네." 하지만 우리들은 모두 생각할 것이다. "공선옥 작가가 계셔서 저희 독자들은 겁나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