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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 천천히 읽기를 권함

그가 소설가로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작품은 『장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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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조금 색다른 책을 냈다. 『책을 읽는 방법』.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실용서다. 독서의 테크닉에 대한 책이다. 그는 특이하게도 책을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 이 인터뷰는 <히라노 게이치로에게 묻다>에 독자 여러분이 덧글로 써주신 질문을 히라노 게이치로에 물어보았습니다. 히라노 게이치로 씨가 일본에 있는 관계로 이메일로 진행되었습니다.

***

한국에 프로 소설가 김연수가 있다면 일본에는 히라노 게이치로가 있다. 10년 전 문예지 〈신조〉에 투고한 소설 『일식』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면서 소설가로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10년 동안 『달』『장송』『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 등의 장편과 『센티멘털』『얼굴 없는 나체들』 등의 단편집을 발표했다.

그의 소설은 결코 쉽지 않다. 한국에서 지금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재미있는’ 일본 소설의 가장 먼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지하게 언어의 한계를 고민하며, 인간의 본질과 사회의 현상을 탐구한다. 그는 자기만의 소설 산맥을 쌓아가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를 이탈리아 바로크를 대표하는 천재 카라바조에 비유했다. 카라바조처럼, 그는 압도적인 소설을 쓴다.


소설가가 알려주는 책 읽는 방법

그런 그가 조금 색다른 책을 냈다. 『책을 읽는 방법』.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실용서다. 독서의 테크닉에 대한 책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쓴 실용서는 ‘글쓰기’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특이하게도 책을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소설 쓰기에도 바쁜 그가 왜 이런 책을 냈을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본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상생활의 템포가 빨라지고 대량의 정보가 흘러들어오는 현대사회에서는 책을 읽어도 천천히 음미하기보다는 하나의 정보로서 처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 때문에 모처럼 좋은 소설이 나와도 충분히 감상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죠. 소설가로서 그런 현상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책에서 그가 권하는 독서법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지독(遲讀)’ 즉 슬로 리딩이다. 읽어야 할 것이 많은 세상에 느리게 읽기를 권하다니 시대착오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리고 여러 번 되풀이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책을 빨리 읽을 수 있는 속독법에 관심이 많던 사람이었으나 많은 속독법 책을 읽으면서 ‘속독법’이 굉장히 수상쩍은 독서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많은 책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바람을 겨냥해 수상쩍은 ‘속독책’이 유행하면서 천천히 책을 읽고 싶은 사람들이 열등감을 느끼는 분위기까지 생겨났어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책을 천천히 음미하며 감상하는 기쁨을 되새겼으면 하는 마음에서 독서의 ‘팁’을 소개하는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슬로 리딩’ 붐을 일으킬 만큼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을 읽고 이제껏 대강 훑어보고만 넘어간 책을 다시 읽어보았다고 한 분도 있고, 앞으로는 양이 아닌 질을 따져서 독서를 하고 싶다는 말씀하신 분도 많아서 책을 쓴 사람으로서 기뻤습니다.”


독서에도 숙성과정이 필요하다

『책을 읽는 방법』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개인적인 독서 이력이 담긴 책이기도 하며, 독서의 시행착오를 담은 기록이기도 하며, 평범한 독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천재’ 소설가로 불리는 그도, 평범한 독자들처럼 읽을 책이 쌓여서 ‘저 책을 언제 다 읽지.’ 하고 한숨을 쉬고, ‘뭐, 쉬운 길이 없을까’ 고민하면서 속독법을 기웃거리고, 귀가 얇아 남들이 좋다는 것은 다 해보기도 한다.

그쟀 독서 이력은 미시마 유키오에서 시작한다. “중학생 때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다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이게 도대체 뭘까?’ 하고 멍했습니다. 그 이후 미시마 유키오의 전 작품을 섭렵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미시마 유키오가 언급한 작가들의 책을 모조리 찾아서 읽었죠. 그렇게 토마스 만, 괴테, 실러, 도스토옙스키, 고골을 찾아서 읽었어요.”

미시마 유키오의 책은 그가 가장 많이 재독한 책이기도 하다. 『금각사』를 비롯해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은 많이 되풀이해서 읽었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데, 최근에는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되풀이해서 읽었어요.”

되풀이해서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인간은 처지와 성장수준에 따라 책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오에 겐자부로의 말을 빌려 설명하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 선생님이 ‘독서에는 시기가 있다.’라는 말씀을 어느 소설에서 하신 적이 있어요. 처음 읽었을 때는 재미가 없었는데 몇 년 후에 읽으면 의외로 재밌을 때가 있거든요. 또, 독서에도 적당한 숙성과정이 필요합니다. 재독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성장을 측정해볼 수 있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책이라면 5년, 10년 후에 다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에게 독서란, 재독(再讀)과 지독(遲讀)을 의미한다. 소설가가 된 후 그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소설가가 된 후에 독서습관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처럼 책에 푹 빠진 독자로 책을 읽기도 하지만 동시에 작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저 역시 소설을 쓰면서 남들이 보기에는 웃을지도 모르지만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씁니다. 그래서 타인의 소설이나 글을 읽을 때도 작은 부분까지 주목해서 읽게 됩니다. 또, 읽으면서 ‘왜’ ‘어째서’라는 질문을 많이 하죠. ‘왜 이런 테마로 글을 썼을까?’ ‘어째서 이런 식으로 문장을 구사할까?’ 하는 식으로요. 이런 질문을 갖고 책을 읽게 되면서 보다 깊숙이 작품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장송』에 이어 또 하나의 대작 『결괴(決壞)』를 쓰다

그의 작품들은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 어, 중국어로 번역되고 있다. “최근 들어 예전보다 더 번역에 대해 의식하고 있습니다. 번역에 의해 어떤 부분이 사라지고 어떤 부분이 남게 되는지, 일본 이외의 독자들에게 작품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런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이 생각하고 글로 쓴 것이 다른 나라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정말로 감동적인 경험입니다.”

그가 소설가로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작품은 역시 『장송』이다. 『장송』은 경애하는 예술가들의 생애를 통해 저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를 시간을 들여 천천히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는 『장송』 완성 직후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이런 말을 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고 망설임 없이 단언할 만큼 작품의 완성도에는 완전히 만족하고 있고, 이 이상의 무언가를 내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라고.

『장송』은 꼬박 4년의 시간을 투자해 썼다. 『장송』 집필 중에는 1846~1849년 달력을 만들어 매일 그 꾳짜에 따라 생활했습니다. 현대의 일본과 19세기의 파리. 두 개의 세계에서 동시에 살아가는 기분이었죠. 3년 가까운 시간을 들인 고독한 작업이었지만 그만큼 충실감도 컸습니다.”

『일식』『달』『장송』으로 이어지는 장편들과 그의 단편들은 소재들이 파격적이다. 『일식』은 연금술에 대한 것이었고, 『달』은 메이지 시대를 무대로 한 탐미적인 소설이었으며, 『장송』은 19세기 프랑스의 두 예술 거장의 삶을 다루고 있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가로지르며 그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그 상상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리고 왜 그런 소설을 쓴 것일까?

“일상생활에서 느낀 것, 책을 읽고 생각한 것, 그림과 영화, 음악 같은 다른 장르를 통해 자극 받은 것 등 여러 가지입니다. 생각난 것을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하면 작품화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일식』『달』『장송』은 우리들이 왜 지금 현재의 세계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살게 되었는지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현대는 자기 자신을 살면서 한편으로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의 근거가 흔들리고 있는 시대니까요.”

올 6월 30일 일본에서 장편 『결괴(決壞)』가 출간된다. 『결괴(決壞)』는 ‘독자’와 함께 간다는 생각으로 쓴 작품이다. 그는 이전에는 자기 나름의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을 완벽하게 완성해서 독자에게 건네면 독자가 그 작품을 어떻게 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이 작품은 독자가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에도 작가가 함께 달리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도록 썼다고 했다.

“『결괴(決壞)』는 제 10년간의 작가 생활을 집대성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작품에 흥미가 있는 분이라면 제일 먼저 읽어 주길 바랄 정도입니다. 살인을 테마로 해서 ‘나’는 무엇인가, ‘타인’은 무엇인가, ‘악’은 무엇인가, ‘용서’란 무엇인가 등, 현대인이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에 소개되면 독자 여러분도 언젠가 꼭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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