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노 히데유키의 기묘한 논픽션, 저자의 주장대로 하면 8할의 논픽션과 2할의 픽션이 합쳐진 『와세다 1.5평 청춘기』는 전철과 같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읽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끅끅 끽끽 이히히’ 하는 괴상한 웃음소리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뭐 이런 사람이 있어!’ 하는 눈총을 받을 확률이 적어도 99%다. 그렇지만 『와세다 1.5평 청춘기』가 유쾌하기만 한 청춘 스케치는 아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 작품을 읽고 ‘마음에 반바지를 입은’ 청춘들의 이야기라 했다. 한여름 태풍이 몰아치듯 격렬하게 삶에 덤벼들다가 어느 순간 돛도 노도 잃어버린 사공이 되어 곰팡이가 필 듯 갑갑하게 군다. ‘청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했던가. 그런 소리를 노노무라 사람들에게 했다간 괜히 그들의 가운뎃손가락만 욕보게 만든다. 다카노 히데유키는 11년간의 하숙집 생활을 글로 옮기며 청춘의 빛남, 청춘의 한심함, 청춘의 구질구질함, 청춘의 답답함을 담았다.
이야기 에이전시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다카노 히데유키를 파주 출판단지에서 만났다. 처음 다카노 히데유키의 프로필을 보고 그의 작품을 읽었을 때 괴짜도 이런 괴짜가 없을 거라고 상상했다. 명문이라면 명문 와세다 대학에 들어가 본업인 학업보다 탐험부 활동에 매진했다. 이 탐험부 활동이라는 게 재밌다. 있을 가능성보다 없을 가능성이 더 많은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있든 없든 관심 가지지 않을- 괴물이나 UFO 등을 찾으러 다니는 게 그들의 주요 목적. 괴물을 찾아 아프리카와 터키 등을 전전하기도 하고, 마약을 찾기 위해 미얀마와 남미를 여행했다. 재미있는 샛길로 빠진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언제부터 작가를 지망했는가?
20대 후반부터다. 작가가 된 계기는 아프리카 콩고 지역으로 괴물을 찾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출판사에서 직접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이 와서 쓰게 됐다. 그래서 쓰게 된 것이 『환상의 괴수 무벤베를 쫓아서』다.
무벤베가 뭔가?
네시를 아는가? 스코틀랜드의 괴물인데, 그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환상의 괴수 무벤베를 쫓아서』도 그렇고, 『극락 태국 생활기』도 그렇고. 제목만 봐도 일본은 정말 평화롭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까지 탐험해서 글을 쓰는 걸 보면.(웃음)
그렇다.(웃음)
최근 좋아하는 취미 생활이 있나? 학창 시절엔 수영에 열심이라고 들었다.
작년엔 자전거에 빠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김훈 씨 정도는 아니다. 김훈 씨 자전거 가격의 1/100 정도 되는 자전거인데, 열심히 타고 있다. 일본에 산이 많다. 산으로 자전거를 타러 간다. 나도 빨리 돈을 벌어 김훈 선생님처럼 비싼 자전거를 사야 할 텐데.(웃음)
책은 어느 정도 나갔나?
일본에는 단행본과 문고본이 있는데, 단행본으로 적은 것은 7천 부, 많은 책은 만 부 정도 나갔다. 문고본으로는
『와세다 1.5평 청춘기』가 10만 부 정도 나갔고, 나머지는 3만 부에서 5만 부 정도 나갔다. 이건 최근 2년 정도에 팔린 것으로 그전에는 전혀 팔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와세다 1.5평 청춘기』는 3쇄를 찍었다.)
책 중에서 『와세다 1.5평 청춘기』가 제일 많이 나갔는데, 혹시 책 제목을 보고 이 책 읽고 와세다에 들어가라고 사 준 수험생 부모는 없었는가?(웃음)
부모가 사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와세다) 학생들이 많이 사 봤다. 와세다 대학에는 매년 1만 명 정도 신입생이 들어온다. OB만 해도 백만 명 이상이다.
그러면 책이 100만 부 정도는 나가야 하는데….
하하하.
『와세다 1.5평 청춘기』를 읽으면서 ‘졸업’을 떠올렸다. 그 시절을 쓰기 위해선 자신이 그 경험으로부터 나와서 어느 정도 거리가 형성되어야 하지 않나?
그 시절이 ‘끝났구나’ 하는 서운함이 분명 있었다. 또, 안도한 구석도 있다. 언제까지 여기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치고는 책 내용이 무척 밝고 재미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상태였다.(웃음) 막막하기도 했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고, 될 대로 되라 싶을 때도 있었고, 또 열심히 해야겠다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 느낌이 11년 동안 계속 반복됐다.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려면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지 않나?
고등학교 때까지는 모범생이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고 나니까 그게 싫어졌다.
전공이 불문학이다.
와세다 대학은 2학년에 전공이 결정된다. 1학년 때 성적으로. 희망은 고고학부였는데,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갈 수 있는 데가 불문학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공부보다는 탐험부 활동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아직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범생 이미지를 벗기 힘들지 않았나? 주위의 기대도 있었을 테고.
그 계기가 탐험부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 클럽에는 평범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과 똑같이 생활하면서 보통 사람들과는 많이 다른 인생을 살게 됐다. 탐험부에서는 일상적인 일이 보통 사람의 상식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거였으니까.
지금은 노노미야 시대에서 졸업을 하고 결혼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넘어갔는데 어떤가?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문화 격차가 있었다. (그들의 연애 이야기는
『와세다 1.5평 청춘기』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식생활에도 비약적인 변화가 있었을 듯하다.
‘급변’이라고 할 정도다. 아내가 요리를 잘해서 요리를 맡고, 설거지나 청소, 빨래는 내가 한다.
부인도 글을 쓴다고 들었다. 두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하다.
상당히 잘해 나가고 있다. 쓰고 있는 것이 워낙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변경을 취재하거나 일본에 사는 외국인에게 흥미를 느끼는데, 아내는 개(아내가 개를 좋아한다)나, 다이어트, 요리 같은 일상적인 것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장르는 같다. 아내도 에세이와 논픽션을 쓰고 있다. 아내의 글이 내 글보다 성실하고 진지한 편이다.
논픽션 장르를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많이 물어본 질문이다.
『와세다 1.5평 청춘기』는 진정한 의미의 논픽션은 아니다. 8할 정도만 사실에 근거해서 썼다. 그 이외의 것들은 정말로 논픽션이다. 해외의 여행기나 탐험기 같은 것들. 그런데 왜 논픽션을 쓰는가, 라고 한다면 픽션, 즉 소설은 정말 여러 사람이 여러 방법으로 실험을 했다. 충분히 실험을 했다. 그러나 논픽션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패턴이다. 왜 어떻게 해서 그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식의 진실 나열에 중점을 뒀고 스토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엔터테인먼트 논픽션이라는 것을 만든 것인가?
‘엔터테인먼트 논픽션’은 내가 만든 말인데, 재미있는 논픽션을 목적으로 한다. 소설이나 영화는 재미를 위한 문학, 영화가 존재하지만 논픽션에는 그런 것이 없다. 재미있는 논픽션이라는 것이 있어도 좋지 않는가?
재미라는 말은 굉장히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가? 단순히 웃기는 논픽션을 쓰겠다는 생각은 아닐 텐데.
내가 말하는 건 그런 웃기는 논픽션은 물론 아니다. 지금까지 논픽션은 테마에 의해 (독자에게) 선택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 대한 논픽션은 아프리카에 흥미가 있는 사람만 읽는다. 아프리카에 흥미가 없는 사람은 읽지 않는다. 나는 어떤 논픽션이라도 테마가 뭐든 내용이 재미있어서 읽는 작품을 목표로 한다.
아직 번역되지 않는 작품 중 꼭 한국에 번역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는가?
엔터테인먼트 논픽션이 무엇인지 제일 알기 쉬운 작품이 최근에 출간한 『괴수기』다. 괴물을 찾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에 번역될 예정인가?
아직 예정이 없다. 이야기 에이전시가 해줄 거라고 믿는다.(웃음) 『괴수기』는 터키에서 괴물을 찾는 이야기로, 아까 말한 대로 ‘일본은 참 평화롭구나.’ 싶은 바보 같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지만, 괴물을 찾기 위해 터키를 탐험하면서 터키의 여러 가지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이슬람 문제라든지, 쿠르드인 같은 민족 문제, 터키의 사회 상황… 그런 것이 많이 나온다. 자기가 살지 않는 다른 나라의 사정은 의식적으로 연구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다. 게다가 먼 나라 이야기라 별로 읽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괴수기』는 괴물을 찾아가는 모티프를 통해 한 사회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그리고 재미있게. 그게 내가 말하는 엔터테인먼트 논픽션이라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논픽션은 진실을 담보로 하는 글이다. 진실에 대해서 어떻게 의식하는가?
진실이라… 내 경우는 진실에 대해 즐겁게 생각한다. 그것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 장난치듯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심각한 논픽션은 쉽게 쓸 수 있다. 지금 장애인에 대해 취재를 하고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블라인드 사커(blind soccer)를 해 보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수화를 배우고 있다. 왜 하필 장애인에 대해 쓰고 싶냐면 지금까지 장애인에 대해 쓴 글은 모두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해 심각한 논픽션을 쓰는 건 쉽다. 지식이 없어도 ‘장애를 지니고 살기가 힘들다, 정부가 뭘 해주어야 한다.’라는 식으로 쉽게 글을 쓸 수 있다. 이건 굉장히 공식적인(표면적인) 이야기다. 장애인들에게도 그들의 생활이 있고, 매일매일 웃고 울고 평범하게 살고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예쁜 여자를 본다’는 표현을 쓴다. ‘안 보이잖아?’라고 물으면 냄새나 분위기로 여성의 매력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가 많다. 인간의 생활이니까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심각할 수는 없지 않나? 그들도 즐겁게 평범한 일상을 누린다. 그런데 그런 걸 처음부터 알기 힘들다. 그들과 신뢰 관계를 맺고 같이 생활하고 웃고 즐기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거다. 그런 후에야 쓸 수 있다. 그래서 엔터테인먼트 논픽션을 쉽게 쓸 수 없다. 엔터테인먼트 논픽션이 추구하는 진실은 이런 것이다. 상대(대상)에 대해 신뢰와 애정을 가지는 것. 신뢰나 애정이 없으면 논픽션을 쓰기 힘들다.
탐험이 주된 활동인데, 지구상에 탐험할 곳이 아직도 많이 남았나?
날카로운 질문이다. 변경이나 오지를 탐험하는 게 아니라 아까 말한 것처럼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를 탐험하려고 한다. 그곳 역시 미지의 세계다.
탐험에서 제일 많이 느끼는 건 무엇인가?
무엇을 하러 탐험을 가는가. 멋있게 말하자면 자신의 무지를 깨닫기 위해 간다. 예를 들어,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프리카에 가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거기 사는 사람은 밭을 만들고, 칼 한 자루로 집을 만들고, 약이 없으면 나뭇잎을 따서 약을 만들고… 뭐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아기나 다름없다. 그런 것을 깨닫게 된다.
유독 일본 사람들이 탐험을 위해 외국으로 많이 떠나는 것 같다.
일본 사람들 안에는 ‘이것’이라는 믿을 만한 것이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메이지 유신 때 옛 일본의 가치관이 사라지고 유럽의 가치관이 들어왔다. 모두가 믿을 것을 잃어버렸을 때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라는 개념을 믿으려 했다. 그런데 패전 후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주의가 무너졌다. 또, 믿을 만한 것이 사라진 것이다. 그 뒤에는 미국에서 들어온 민주주의를 믿었지만 민주주의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지금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옛날로 거슬러 가거나 외국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그래서 많은 일본인들이 외국으로 나가고 있다.
그럼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
없다. 그것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와세다 1.5평 청춘기』는 다카노 히데유키의 논픽션 작품 중 이례적인 것에 속한다. 지금까지 써온 작품들이 직접 탐험을 떠나 겪었던 일을 쓴 거라면
『와세다 1.5평 청춘기』는 에세이에 가까운 자전적인 이야기다. 다카노 히데유키의 ‘즐거운’ 논픽션의 본령이자 참맛이라고 할 만한 괴물 찾기 책 『환상의 괴수 무벤베? 쫓아서』와 『괴수기』 등도 번역되어 한국 독자들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통역으로 수고해주신 이야기 에이전시의 강병혁 님과 한국을 방문한 바쁜 일정에도 YES24 독자를 위해 귀한 시간을 내준 다카노 히데유키 님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