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랑은 항상 놀라움과 함께 등장했다. 열여덟 살에 작사, 작곡, 편곡, 연주, 프로듀스까지 해내며 앨범을 냈고, 2집 앨범은 실험적인 강렬함으로 호오가 분명히 갈렸다. 6년의 세월이 흐르고, 대중이 그를 잊어버린 지금, 김사랑은 3번째 앨범 『U-turn』으로 돌아왔다. ‘돌아왔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그는 한 번도 음악을 떠난 적이 없으므로.
나이에 걸맞지 않은 성숙함이 돋보였던 1집 『나는 18살이다』, 익숙한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가 넘쳤던 2집 『Nanotime』. 이 두 앨범이 한껏 성장하는 뮤지션의 풋풋함과 젊음의 패기가 느껴진다면, 3집은 성장에서 성숙으로 옮겨가는 그의 음악적 나이테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균형과 힘 그리고 그만의 감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잘 발효되었다. 잘 맞는 옷을 입은 듯한 음악이다. 새롭기보단 편안하다.
6년 만에 팬들을 만난다, 김사랑의 3집 앨범 『U-turn』
“여기서 주로 작업을 하나요?”
“아뇨. 여긴 사무실에서 빌린 데예요. 연습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그래요.”
“김사랑 씨 작업실은 어디에 있나요?”
“논현동에 있어요. 지하에 있는데 요즘은 더워서 작업을 못 하고 있어요.”
“3집도 1, 2집처럼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작업했어요?”
“네, 그래서 저는 앨범 한 장 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앨범은 만족스러우세요?”
“기간이 오래 걸린 만큼 욕심을 부렸고 다행히 마음에 들어요. 어렸을 때부터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이번 앨범은 그 느낌으로 갔어요. 편안한 음악이죠.”
“3집 앨범 제목 ‘U-turn’은 직접 지으셨어요?”
“처음엔 ‘Return’이라고 하려고 했는데, ‘Return’은 그냥 갔다가 되돌아온 느낌이잖아요. 음악은 거대한 원과 같고 나는 그 안에서 계속 돌고 있어요. 그런 느낌을 살리려고 제목을 ‘U-turn’이라고 했죠.”
“사실 이런 질문 많이 받으시죠? 앨범 타이틀 의미, 곡의 의미, 타이틀곡이 뭔지, 어떤 곡이 제일 좋은지… 그런 질문에 대답하긴 곤란하지 않으세요? 사실 음악은 그저 듣고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잖아요.”
“그렇죠. 앨범 홍보하면 ‘의미’를 많이 묻는데 저는 할 말이 없어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왠지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문화를 즐긴다는 느낌을 받아요.”
| 6년 만에 새 앨범으로 '유턴'한 김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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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 씨 곡과 닮은 느낌이 나는 곡도 꽤 있던데요. ‘mud candy’ 같은 곡이요.”
“‘mud candy’는 3집에서 제일 헤비한 곡인데… 그런 느낌이 났나요? 윤상 씨를 많이 좋아해요. 음악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고.”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하세요? 친하게 지내는 분도 있나요?”
“윤상 씨, 정석원 씨 좋아하고 외국 아티스트로는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좋아해요. 윤도현 형이나 내 귀의 도청장치, 피아 분들과 친하게 지내요.”
“2집 앨범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는데 3집 내면서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2집에는 음악이 헤비한 곡이 많았어요. 어떤 분이 블로그에 쓴 걸 보니까 ‘얘가 사지 말라고 절규를 했다’라고 하셨던데(웃음) 그냥 실험적인 걸 해보고 싶었어요. 1집과는 다른. 3집은 편안한 것이 하고 싶었고. 원래 3집 앨범이 13곡이었는데, 헤비한 곡을 다 빼버렸어요. 그건 나중에 따로 묶어서 낼 생각이에요. 따로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헤?한 곡은 그 느낌에 맞춰서, 일렉트로니카나 랩 하고 싶다 그러면 그쪽으로 싱글을 내거나 프로젝트를 하려고요.”
“디지털 싱글도 낼 생각인가요?”
“네. 추세니까요. 제작비도 적게 들고….”
2집 앨범 발표 후 대중매체에서 그의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다. 유학을 갔다, 은퇴했다, 자살했다 등등 별 소문이 있었지만 그는 태연했다. 3년 동안 공익요원으로 복무했고, 그 후에는 차근차근 3집 앨범 준비를 했다. 꽤 긴 시간 공을 들여 낸 앨범이라 기분이 좋아 보였다.
“2001년에 2집이 나왔으니까 6년 만에 앨범을 낸 건데 그동안 뭐 하셨어요?”
“3년 동안은 공익요원으로 근무했고, 제대하고 나서는 3집에 들어갈 음악 만들었어요.”
“어디서 복무하셨어요?”
“부모님이 충북 진천에 계세요. 거기서 복무했어요. 저수지의 수문 관리를 했죠. 자전거 타고 아침 7시에 출발해서 밤늦게 돌아오면 힘들어서 뻗었어요. 음악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단순하게 살았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근무하고 저녁에 와서 자고.”
“그럼 진천에서 계속 사신 건가요?”
“저는 계속 서울에 있었어요. 부모님이 서울에 계시다가 진천으로 내려가셨어요. 집에 잠깐 내려갔다 오면 정말 건강해져요. 공기도 좋고 유기농 채소에.(웃음)”
가장 좋은 것도 음악, 가장 하기 싫은 것도 음악
“김사랑 씨에 대한 글을 보면 ‘천재’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세요?”
“천재는 무슨.(웃음) 저 정도가 무슨 천재예요.”
열여덟 살에 호들갑스러운 언론이 붙여준 ‘천재’나 ‘제2의 서태지’ 같은 수식어나 아직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나는 열여덟 살이다’라는 카피의 CF 이미지는 자의식 강하고, 내성적이고 취미라고는 밤늦게 마음 통하는 사람과 술 마시는 것, 내키면 산이든 바다든 떠나는 자유로운 김사랑에게는 걸맞지 않았다. 그는 담백하고 맑다. ‘연예계’에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20대의 남자다.
“데뷔 초에 나이에 비해 조숙한 음악적 성취로 주목을 받았잖아요.”
“‘제2의 서태지다’ ‘괴물’이다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는데 솔직히 부담스러웠어요. 오히려 역효과를 본 것 같아요. 많이 알려지는 건 좋긴 하지만. 어린 나이에 이것저것 많이 했고 광고에서 ‘나는 열여덟 살이다’라고 하니까 오히려 반감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어요. ‘뭐 어쩌라는 거냐’라는 식으로.”
“‘네가 그렇게 잘났다는 거냐’ 하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
“사실 CF의 카피가 저보다도, 제 음악보다도 더 주목을 받은 것 같아요. 뭐,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제 음악이 정말 좋았다면 제가 CF를 찍든 뭘 하든 음악이 더 부각이 됐겠죠. 2집까진 테스트를 하고 실험을 했는데, 3집은 제 색깔을 찾은 것 같아요. ‘이게 내 음악이고 내 색깔이다’라고 말할 만큼.”
“김사랑 씨를 신비주의 가수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아니에요. 저는 그냥 앨범 내고 활동하고 그랬는데. 그런 이야기에 별로 신경 안 써요. 누가 뭐라고 해도 그냥 평생 음악을 한다는 생각이에요.”
“음악이 그렇게 좋으세요?”
| “가장 하고 싶은 것도 음악이고, 가장 좋은 것도 음악이고, 가장 하기 싫고 귀찮은 것도 음악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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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물을 만들어낼 때 만족감은 뭐라 말할 수가 없어요. 가장 하고 싶은 것도 음악이고, 가장 좋은 것도 음악이고, 가장 하기 싫고 귀찮은 것도 음악이에요. 힘들고 결과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리고. 하지만 결과물을 보면 이보다 나를 만족케 하는 건 세상천지에 아무것도 없죠. 아직 어린 나이에 이런 말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평생 음악을 할 거라고 확신해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앨범이 한 장도 팔리지 않아떵 계속 음악을 할 건가요?”
“음악에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속성이 있다는 걸 부인하지 않아요. 우리는 획일적으로 대중성에 치우친 음악이 대부분이잖아요. 3집 나오기 전에 혹시 아무도 내 앨범을 안 내주면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그럼 그냥 mp3로 뿌리고 어디 가서 돈이나 벌자’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나를 위해서 노래를 만들고 가끔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노래를 만들어요. 그렇지만 돈을 벌려고 음악을 하진 않아요. 그건 바보 같은 짓이에요. 돈을 벌려고 음악을 하는 사람은 마음이 텅 빈 거예요. 돈과 결부하면 뭐든지 일이 돼버리잖아요. 돈을 벌려면 몇십만 명이 좋아하는 음악이 뭔지 궁리해서 그것만 써야 해요. 자기가 없는 음악이 돼버리죠. 힘들면 장사를 하거나 막노동을 하든 일하면서 취미로 음악을 할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 가수 중에서 평생 음악을 하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자신은 있어요.”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면 어떤 형태의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음악적 재능이요?”
“네. 재능 이야기를 하면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요?”
“아뇨. 잘난 척하고 싶었어요.(웃음) 저는 이것저것 많이 하지만 한 가지만 꼽으라면 곡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건 잘하시는 분들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돼요. 실력이 모자라요. 굳이 내세울 게 있다면 작곡 능력이라고 봐요. 가끔 가만있다 보면 곡이 하나 죽 지나가요, 전체가. 그럼 ‘땡 잡았다’ 하면서 녹음을 하는데 그게 재미있어요. 그게 재능이라면 재능이겠죠.”
“이번 앨범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 음악은 영화음악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곡도 있었어요. 혹시 영화음악에 관심 있으신가요?”
“정말 좋죠. 영화음악 꼭 하고 싶어요. 근데 시켜주는 사람이 없네요.(웃음) 게임 음악도 해보고 싶어요.”
노력하는 딴따라, 김사랑
싱어송라이터가 어느 순간 드물어지고, 작업실에서 곡을 만들고 실험을 하는 가수보다 ‘만들어진 가수’가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싱어송라이터인 김사랑이 신기한 가수가 되어 버렸다. 노래로 승부하는 가수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방송계. 그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앨범 홍보 시작한다고 하니 바쁘고 힘들어지겠네요.”
“이번 앨범 홍보 시작하면 또 수없이 물을 거예요. ‘작곡, 작사를 혼자 다 하셨어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게 화제가 되는 게 신기해요. 매우 당연한 건데요.”
“재능에 대한 진지한 관심보다는 그저 재미있는 볼거리가 되는 느낌이랄까요.”
“라디오에 나가도 음악에 대한 관심보다는 출연자들끼리 웃으면서 잡담하고 저는 그냥 제 할 이야기만 하거든요.”
“PD가 싫어하지 않나요? 재미없다고.”
“뭐 그래도 그렇게 생긴 걸 어쩌겠어요.”
“취미는 뭔가요?”
“취미는 술 마시는 거. 대화하면서 술 마시는 거 좋아해요. 마음 맞는 사람 있으면 밤도 새고. 보통 아침에 헤어지죠.(웃음)”
“영악한 성격은 못 되는 것 같아요.”
“영악한 편은 절대 못 되죠.”
“영악했다면 자기 포장지를 잘 이용해서 지금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있지 않을까요.”
“영악했다면 앨범도 대중적으로 팔리는 걸 만들고 돈도 벌었을 것 같고 인기도 더 많았겠죠. 남들 구미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 팔아먹을 생각 없어요.”
“부모님은 어떠세요? 아들이 가수 활동 하는 걸 보면.”
“뭐 불안해하시죠. 그러나 어떤 부모도 자식에 대해선 다 불안해하는 것 같아요. 평소엔 걱정을 많이 하시지만 앨범을 갖다 드리면 무척 자랑스러워하세요.”
| 평생 음악을 하고 싶다는 ‘노력하는 딴따라’ 김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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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때부터 그를 지켜보고 가족처럼 지내온 SINE Entertainment의 김정일 씨는 김사랑의 재능을 ‘정말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라고 평하며, 그를 ‘노력하는 딴따라’라고 불렀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자신의 재능이라고 말하는 김사랑. 그 재능은 어쩌면 평생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