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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당신에게 강금실이 하고 싶은 말

서른 살이라는 나이는 인생을 살면서 반성이 시작되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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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법무부 장관이자, 전 서울시장 후보였던 강금실이 첫 책을 냈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정치부 기자들이었다. 때가 때인 만큼 강금실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전 법무부 장관이자, 전 서울시장 후보였던 강금실이 첫 책을 냈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정치부 기자들이었다. 때가 때인 만큼 강금실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썼다고 하니 다들 어떤 식의 ‘발언’을 기대했겠지만 『서른의 당신에게』는 그런 기대에 바늘을 찌르듯 정치색을 탈색해냈다. 인간 강금실이 살아온 이야기, 만난 사람들, 읽은 책과 본 영화에 대해 써내려간 책이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왜 이제야 첫 책을 냈는지 의아스러워진다. 경험이 빚은 삶에 대한 통찰, 문학과 예술을 바라보는 안목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그의 글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수필이라면 쉽게 쓰고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서른의 당신에게』에 실린 글은 그렇게 훌쩍 읽고 덮어서는 안 된다.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성찰이 어우러진 그의 글은 쉽게 읽을 수 없다. 글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글의 밀도가 무척 높아서다. 한 줄 한 줄 수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스물네 시간을 꼬박 끓여 낸 설렁탕 같은 우직한 맛을 내는 글이다.

텔레비전과 신문 등의 매스미디어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사람에 대해서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가지기 쉽다. 그 사람의 사진을 보고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에 대해 쓴 글을 읽을 기회가 많으니 말이다. 특히, 그 인물이 ‘정치’를 한다면 왠지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다는 친근한 느낌마저 든다. 정치가란 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음 짓고 손을 내밀고 십년지기처럼 얼싸안을 수 있는 인종이 아닌가.

『서른의 당신에게』를 출간한 강금실
전 정치인 강금실을 만날 때도 어느 정도 그런 점을 기대했다. 책표지처럼 부드럽고 온화하게 미소 짓는 그를 보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잇따른 인터뷰와 기자들과의 만남으로 지쳐있어선지 몰라도 첫인상은 야무진 차돌 같다는 느낌이었다. 쉽게 말 붙이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겨, 과녁을 겨냥하는 활처럼 팽팽하게 상대를 긴장하게 했다.

“예스24는 서점이니까 이제야 책 이야기를 하겠네요.”

그의 첫 마디였다.

“기자들이 무엇을 제일 많이 묻던가요?”

“정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 하겠다고 했는데 다들 그것만 궁금해 하네요. 정작 책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를 못 했어요.”

“글 쓰는 건 힘들지 않으셨나요?”

“글 쓰는 건 좋아해요. 그렇지만 좋아하니까 적게 하려고 해요.”

“왜요?”

“뭘 해도 오래 못 가는 걸 이제는 아니까요. 금방 싫증을 내는 편이에요. 취미 중에서 유일하게 전통춤만 계속하고 있어요. 그것 말고는 다 중간에 그만둬 버렸어요. 서예도 하다가 그만두고, 판화도 그렇고. 피리, 장구, 북, 요가, 재즈댄스, 판소리, 성악… 배우다가 다 그만둔 것이에요. 그래서 앞으로는 이것저것 많이 안 하려고 해요.”

“판사로 판결문을 쓴 것이 글 쓰는 데 도움이 되었나요?”

“판결문은 논리정합적이고 수미일관해야 해요. 사실을 압축해서 표현할 줄 알아야 하고요. 그런 점은 확실히 글쓰기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판결문의 영향인지 문장이 좀 긴 듯해요.”

“책에 실린 글 중에서 서평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선방일기』에 대한 글이 특히 좋았어요.”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해요. 분야에 상관없이 이것저것 많이 읽는 편이에요. 앨러리 퀸이나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추리 소설을 특히 좋아했어요. 범죄 드라마 시리즈도 많이 보는 편이고요. 형사 사건 변호사로 일하면서 범인들을 만나고 증거물을 직접 수집하기도 해서 그런지 추리물에 관심이 많아요.”

지금까지 잡지 등의 매체에 발표한 글에 새로 쓴 글을 보태서 펴낸 『서른의 당신에게』는 쉰의 강금실이 서른의 당신에게 전하는 따뜻한 충고다. 그는 무작정 충고를 던지지 않는다. 자신의 서른이 어떠했는지, 자신의 서른과 당신의 서른이 어떻게 만나는지, 어떻게 다르면서도 같은지를 풀어내면서 잔잔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의 서른인 당신의 과거는 지금 당신의 현재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해서 우리는 하나로 만난다. 나에게 주어졌던 체험의 고통들은 지금 당신이 이 사회의 진입문 앞에서 서성이며 갈등하는 고통들과 만난다. 고통의 모양과 색깔이 다르다 한들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도대체 무엇으로 내가 살아 있어야 하는지 하나의 몸체로 만난다.」

“책의 제목이 『서른의 당신에게』인데, 특별히 서른 살을 지칭하신 이유가 있나요?”

“서른 살이라는 나이가 인생을 살면서 반성이 시작되는 나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때가 진정한 의미에서 고민을 하는 시점이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잖아요. 이때야말로 누군가로부터 조언이 가장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저는 제가 경험한 인생의 핵을 독자들에게 주고 싶었어요.”

“선생님의 삼십 대는 어떠셨는지요?”

“저는 상황이 많이 힘들었죠. 암울한 역사적인 상황 안에서 인생 계획을 세우고 가치관을 정립해야 했으니까요. 자유가 드문 시절이었어요. 요즘은 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만 고민하면 잘 살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했어요. 내가 나를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사회를 위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했던 시절이니까요.”

“기형도의 시에 대해 쓰신 글을 읽어보면 그런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기형도가 시를 썼던 80년대에는 그 사람 시를 읽지 않았어요. 아니, 읽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 사람들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그때는 옆 사람과 말을 할 때도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추었을 때였으니까요. 그로부터 십 년이 훨씬 더 지난 후에 기형도를 읽었는데, ‘대학 시절’이라는 시를 읽고는 눈물을 흘렸어요. 시인이 느꼈던 고통 때문이기도 했고 그 시절, 그 삭막하던 시절을 보낸 나 자신이 느낀 비애기도 했지요.”

“그래도 그 시절의 좋은 점이 있었다면 뭘까요?”

“제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어서 그들과 함께 그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요. 저는 사람을 좋아해요.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많이 배워요.”

강금실이 요즘 서른 살에게 제일 부러운 것은 역시 자유다. 자신의 서른에 자유가 있었다면, 그때 사회에 대한 책임 대신 자유를 생각했다면 훨씬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지만 지금 자신의 모습에는 큰 변화가 없으리라고 믿었다.

“서른으로부터 20년이 흘렀는데 지금은 어떠세요?”

“그때는 책임에 짓눌려 있었지만 지금은 자유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까, 뭘 하면서 재미있게 놀까 그런 것을요. 실제로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요.”

“세월이 준 선물 같은 건 없는지요.”

“글쎄요. 세월이 준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이 너그러워졌다는 걸 느껴요. 이해하려고 애쓰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처음부터 선을 긋죠. 또 많이 자유로워졌어요. 자신이 원하는 걸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지금 젊은 사람들 보면 부러울 때가 있으시겠네요. 80년대에는 젊음을 누리는 것도 죄스러웠다는 분들도 계시던데요.”

“고민도 많이 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냈다고 생각해요. 힘든 시절이었지만 사람들과 만나서 그들에게 배우면서 지금까지 비교적 길을 잃지 않고 지금의 나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누리는 세상은 그때의 성과와 후유증이라고 생각해요. 또, 앞에서 심각하게 말한 것처럼 고민한 점도 있지만 그 또래들처럼 재미있게 보낸 기억도 분명 있어요. 제가 원래 노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요. 놀기도 많이 놀았어요.(웃음) 제가 막내기질이 있다고 해요. 그래서 근본적으로 낙천적이에요.”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어떠세요?”

“똑똑하고 발랄해서 좋죠. 우리 세대는 그러지 못했잖아요? 그렇지만 한릱사의 주인공이 되려면 좀 더 세계를 돌아보고 보편적인 가치관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자기 안에만 갇혀 있는 것 같아요. 사고가 굉장히 좁아요.”

“요즘은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인데요. 법조계에 몸담으신 분으로 그런 것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사법고시를 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젊은 세대가 생업문제로만 직업에 접근하는 것 같아요. 그건 참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아까운 일이죠. 저희 세대만 해도 생업이 무척 중요했어요. 그렇지만 지금 정도의 자유와 경제력이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품위 있게 먹고사는 길을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전 개인적으로 법학은 그 사회가 지향하는 인간적인 가치를 반영하고 싶은 사람이 도전했으면 합니다.”

“이 순간을 진실하고 아름답게 살려는 노력이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 아닐까요? 인간에게 지성이 있다면 그 지성은 바로 이런 데 쓰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금실은 젊은이들이 비록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하고 그 길에서 상처를 입더라도 계속 걸어가기를 바라지만 섣불리 후배들에게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쉽게 쓴 시가 부끄럽듯 쉽게 입에 올리는 희망도 그렇다. 막막한 세상에 막연한 희망을 던져 놓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여겼다. 고통도 겪고, 배신도 당하고, 사정없이 키질을 당해 내면의 쭉정이를 모두 까부르고 알곡을 남기고자 치열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어 했다.

“선생님은 우리 시대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는지요?”

“사람의 삶은 모두 똑같이 주어졌지만, 스스로 얼마만큼 들어올리는가에 따라 품격이 달라진다고 믿어요. 사람의 삶을 가치 있고 품위 있게 하는 건 그렇게 살고자 하는 그 사람의 의지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그런 삶은 결코 하루아침에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젊은 시절부터 가치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그런 역할 모델로 보여주고 싶은 인물이 혹시 있으신가요?”

“제 친구인 시인 황인숙이요. 인숙이는 옥탑방에서 혼자서 시를 쓰면서 살아가요.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지만 그 친구가 누리는 삶의 질은 예술가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품위 있고 가치 있는 삶이에요. 경제적인 가난, 삶의 구차스러움을 모두 뛰어넘어 무척 풍요롭고 멋지게 살죠. 많은 젊은 세대들이 경제적인 것이 없으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런 사람에게 인숙이의 삶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렇게 자기가 원하는 삶을 품위 있게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하면서요. 삶의 품격을 올리는 건 절대 경제적인 게 아니죠.”

“살면서 흔들리거나 잘 안 풀리는 문제가 있을 때 선생님은 어떻게 극복하세요?”

“힘든 문제가 있을 때 저는 주로 잠을 잡니다. 한참 자다 보면 문제가 명확하게 보여요.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선택을 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고, 어려움에 부딪히죠. 상처받고 흔들리면서 자라는 것이 인생이니까요. 그럴 때마다 저는 답을 찾기보다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둡니다. 인생에 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평생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게 삶이잖아요. 저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저도 똑같이 고민하고 상처받으면서 그래도 지금껏 길을 잃지 않고 걸어왔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계속 힘든 이야기만 했는데 그럼 선생님은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세요?”

“책에도 썼지만 내일 아침에 일어나 커피 마실 생각을 하고 밤에 잘 때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제가 커피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소박하지만 매우 공감이 가는 말인데요.”

“다른 분들도 그 부분에 공감을 많이 하셨어요. 자연은 끝없이 반복하지만 인생은 딱 한 번이에요. 이 순간을 진실하고 아름답게 살려는 노력이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 아닐까요? 인간에게 지성이 있다면 그 지성은 바로 이런 데 쓰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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