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일곱 번째 앨범 'Grace'를 들고 팬들을 찾아오다
“수영이는 기대하는 것 이상을 해냅니다. 일은 물론이고, 자기관리도 철저하죠. 어린 나이에 정상에 올랐고, 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하지요. 경험에서 배운 감각이 탁월해요.” 7집 앨범 'Grace'로 팬들을 찾아온 가수 이수영을 만나기 전, 그녀의 매니저와 잠시 잡담을 나눴다. ‘곁에서 본 이수영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매니저 팀장 원승민 씨는 이렇게 이야기를 해줬다. “굉장히 대범하고, 어떨 때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앨범에 대해서는 “당연히 좋죠. 대박 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2005년은 이수영에게 있어 좋다고 말하긴 힘든 해였다. 개인적으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고, 그 와중에 준비했던 앨범도 해를 넘겨 팬들 앞에 내놓게 되었다. 어떤 앨범보다 이번 앨범은 이수영에게 특별하다. “작년 10월쯤 나오려고 했고, 앨범 녹음과 준비도 다 끝내두었는데, 1월에 발매하게 되었네요. 3개월 동안 앨범을 다시 가다듬으면서 변화가 있었어요. 타이틀곡도 바꿨고… 아, 이번 앨범 타이틀곡은 발라드가 아니에요. 굉장히 발랄하고 신나는 노래로 정했어요.”
이수영, 하면 다들 ‘발라드 가수’라는 수식어를 떠올린다. 1집부터 6집까지 딱히 발라드풍이 아니었던 노래까지 발라드로 느껴질 만큼 그녀와 발라드는 썩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그녀는 자기 앞에 붙은 그러한 수식어에 어떻게 반응할까? “옛날에는 발라드 가수 이수영이라는 말이 서글플 때가 있었어요. 지금은 그저 감사할 뿐이에요. 한 분야를 자기 수식어로 쓸 수 있는 가수가 얼마나 될까요? 그런 것은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항상 무대에 가지고 올라가는 자기 노래가 자랑스럽다는 그녀. “음악하시는 분들이 제 노래를 듣고 ‘참, 기묘하게 곡을 썼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제 노래들은 기복이 심하고, 멜로디도 대중적이지 않거든요. 6집 노래 ‘휠릴리’만 해도 그래요. 그런데 그런 것이 노래를 더 대중성 있게 만들어주고 있어요. 기복이 없고, 멜로디가 너무 대중적이어서 밋밋했다면 내 개성을 드러내지 못했을 거예요.”
이수영이 사는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드립니다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음악적으로는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동시에 듣는 사람을 위로하길 원했다.
'Grace'라는 제목처럼, 감사와 겸손, 그리고 사랑을 담고 싶었다. “이번 앨범은 진짜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타이틀곡 ‘Grace’도 무척 발랄한 곡이죠. 이번 앨범에는 어쩌다보니 제가 가사를 다 쓰게 되었는데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시면 ’이수영에게 뭔 일이 되게 많았나보다‘고 하실 만큼 솔직하게 노래 속에 다 쏟아 부었어요.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와요. 노래 듣고 슬퍼지시면 실컷 울고 후련해지세요.”
슬퍼도 웃었던 날도 있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슬픈 마음을 내색하지 못했다. “지금은 안 그래요. 슬플 때는 슬퍼하고, 기쁠 때는 기뻐하고 그렇게 살아요. 저는 콤플렉스가 많은 편이라 정말 슬럼프에 빠진다면 누구보다 더 깊게 슬럼프에 빠질 자신이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슬럼프가 없었던 것은 항상 슬럼프가 오기 전에 미리 대비해두었기 때문이죠. 제가 몇 년간 감기를 앓은 적이 없어요. 감기가 올 것 같으면 항상 푹 쉬고, 미리 약도 먹고 그렇게 챙겼거든요. 그렇게 마음의 병이나 슬럼프 같은 것도 미리 대비하거나, 빨리 고치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이번 앨범 작업하면서 독감이 들어서 3주 동안 아무것도 못했어요.(웃음) 정말 고생했죠.”
실컷 울고 난 후에 찾아오는 후련함. 그런 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단다. “가사를 읽어보면 슬퍼요. 하지만 노래는 무척 발랄하죠.” 살다보면 항상 좋을 수는 없다. 이번 앨범에 실린 곡은 그녀에게 어쩌면 ‘주문’ 같은 노래였을지도 모른다. ‘괜찮아, 오늘만 조금 울고 나면 내일은 꼭 괜찮을 거야. 울고 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내일은 좋은 일이 꼭 있을 거야’ 그런 마음이 노래에서 절절하게 느껴진다.
가수 생활 7년, 이제야 자유롭게 노래를 부른다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면서 이 노래를 듣는 사람이 행복하고 편안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항상 해요. 노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죠. 노래 속에 삶이 들어가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정말 그렇게 느껴서 노래를 해야 한다고. 공감하는 척 하긴 쉽지만 그렇게 부른 노래에는 아무도 감동하지 않아요.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은 타인에게도 느끼게 하지 못하죠. 그래서 점점 더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앨범을 낼 때마다 부담감이 커지진 않나요?”
“아마 대한민국에서 그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 유일한 가수일걸요. 제가 잘나거나, 지금까지 실패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좀 무모하고 무식한 구석이 있어서 그래요.(웃음)”
“작사하는 건 어때요?”
“이번 앨범도 쓸 거리가 자꾸 생겨서 쓰다보니 제가 작사한 곡이 많이 들어갔어요.”
“자기 가사로 노래 부르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자기가 느낀 것을 자기가 부르니까 호소력이 더 있죠. 이소라 선배님은 거의 자기가 쓴 가사로 앨범을 만드는데, 정말 노래가 절절해요. 다른 사람이 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남의 슬픔을 내 것으로 여기는 것 같죠. 그에 비해, 내가 쓴 것을 부를 때는 감정 표현이 수월해요.”
“작곡도 해 볼 생각이 있어요?”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작곡을 비롯한 음악 공부는 지금도 하고 있어요. 근데 지금은 가사 쓰는 것만으로도 벅차요. 아직도 저는 노래를 배우는 학생이라고 생각해요. 대가가 되려면 아직 까마득해요.”
“음반 작업이 힘들지 않았나요? 특히 이번 앨범 작업.”
“만들다보면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그런데 즐거워요. 음반이 어떤 반응을 가져올지는 정말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음반을 만드는 건 가수가 하는 일이지만, 그 이후의 일은 제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가장 행복할 때는 관객과 눈으로 교감을 나눌 때
“가수로 제일 행복한 순간은 언젠가요?”
“노래가 잘 되는 날이죠. 수없이 연습을 하고 무대에 나가 노래를 부르지만 어떤 날은 정말 ‘어, 오늘은 정말 괜찮게 불리네’ 싶은 날이 있어요. 그리고 무대에서 관객과 ‘필’이 통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정말 짜릿하죠. 무대에서 노래를 하면서 관객과 눈으로 교류해요. 정말 내 노래에 ‘필’ 받은 관객과 교감을 느낄 때 저는 그래요. ‘좋아 좋아, 팬 됐군'(웃음)”
“예전에 이수영 씨 콘서트를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고로 무대장치가 쓰러졌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노래 부른 것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하하, 제가 좀 능글맞은 구석이 있어요. 제가 당황하면 관객도 당연히 동요하지만 제가 당황하지 않으면 ‘사고’도 ‘설정’으로 보이죠. 가끔 방송에 나가 노래하다가 가사를 까먹을 때가 있거든요.”
“몇 백 번씩 연습을 하는데도 가사가 기억안날 때가 있어요?”
“앨범에 있는 그대로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거든요. 방송에서는 시간에 맞춰 편곡해서 노래를 불러서 정말 ‘가사’가 기억 안 날 때가 있어요. 그럼 저는 내 맘대로 작사해서 부르죠. 감정을 그대로 이어서 부르기 때문에 관객도 눈치 못 채죠. 근데, 요즘은 방송에 자막이 나와서 ‘뽀록’ 나요. 팝송 부를 때는 1절 가사로 3절까지 간 적도 있는걸요.(웃음)”
“무대 배짱이라고 할까, 그런 게 있어 보여요. 타고난 것 같아요.”
“그렇진 않아요. 옛날엔 무대공포가 엄청 심했거든요. 1집 2집 발표하고 나서 활동할 때는 안 떨리게 한다는 ‘우황청심환’을 먹어도 무대 뒤에서 사시나무처럼 ‘덜덜덜’ 떨었어요. 떨리는 것이 꼭 안 좋은 것은 아니에요. 그런 긴장감이 없으면 노래가 잘 안되거든요.”
“언제부터 덜 떨리게 되었어요?”
“3집 정도부터요.”
이수영이 만난 하나님
'Grace'는 이전 앨범과는 다른 의도가 들어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제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노래를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독교적인 내용을 노래에 쓴 것은 아니지만 그 마음을 담아내고 싶었죠. 이번 앨범은 안에 있는 것을 다 토해낸 것 같은 시원한 느낌이에요.” “이수영 씨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옛날에는 하나님이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던 시절도 있었어요. 경외의 대상이었죠. 지금은 현자의 모습으로, 참하고 현명하고 강하고 사랑이 넘치는 모습으로 다가오세요. 항상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미리 알려주시는 분이기도 해요. 2006년에는 하나님에 대한 공부도 시작하고 싶어요.”
지금 이수영이 가장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가수로 살아갈까’하는 것이다. 최고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인기를 오랫동안 실감하지 못했다고 했다. “저는 제가 누리는 인기가 가불이라고 생각했어요. 미리 주는 상이라고 할까요. 원래는 내가 그만큼은 안 되는데 더 열심히 하라고, 미리 주시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죠. 그것에 걸맞기 위해서 늘 애썼어요.”
발라드는 감성이다
발라드는 이수영에게 가장 잘 맞고, 자기 식으로 풀어갈 수 있는 장르다. “좋아하는 장르와 내 식으로 풀어갈 수 있는 장르는 다르죠. 발라드는 감성이에요. 노래에서 어떤 감성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지 못 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감성적인 것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이에요.” 그녀 역시 그런 감성적인 면 때문에 발라드에 깊이 매료되어 있다.
이수영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음악은 흑인 음악이다. 그녀는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을 들으며 자랐고, 그 노래들을 매개로 다른 음악으로 손을 뻗게 되었기 때문이다.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을 듣고 난 후에 블루스와 소울을 듣게 되고, 그 다음에는 감각적인 록 음악을 듣게 되었어요. 요즘 제일 감동받은 것은 타마키 코지의 음악이었어요. 이전까지 들어왔던 일본 음악은 깔끔하긴 하지만 기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타마키 코지의 음악은 감수성이 남달랐어요.” 좋아하는 다른 아티스트로 알리시아 키스를 들었다.
최선을 다해 얻은 정상은 정말 나의 것이다
“한국 여가수 중에 어떤 분을 롤 모델로 삼고 싶어요?”
“인순이 선배님이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것을 보면 정말 뿌듯해요. 한국에서는 여가수가 결코 오랫동안 활동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음반 시장 자체도 많이 힘들고… 그런데도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선배님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죠. 장르는 다르지만 제가 가장 닮고 싶은 분입니다.”
“2003년과 2004년 연속해서 MBC 10대 가수 가요제 대상을 타면서 정상에 올랐는데,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허탈하거나 앞으로 뭘 해야 하나 그런 기분은 들지 않았나요?”
“대상을 받은 후, 실제로 주변에서 그런 말씀 많이 하셨어요. 그런 이야기를 자꾸 듣다보니까 ‘이젠 무엇을 해야 하나, 한국에서 더 이상 할 게 없나’ 그런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런데 할 게 없긴 뭐가 할 게 없어요. 앞으로 갈 길이 너무 먼데요. 이제야 저는 자유롭게-물론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제 노래를 부르게 되었어요.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승부욕이 강해 보여요.”
“강하지만 그 자체에 집착하지는 않아요.”
“정상에 있는 지금,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정상이라는 곳은 정말 그 자리에 가고 싶다, 가겠다, 갈 것이다 하는 불굴의 투지와 의지가 없으면 갈 수 없는 자리에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다가 아닌 자리죠.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 얻은 ‘정상 자리’라면 그건 정말 내 것이라고 생각해요.”
살며, 사랑하며, 노래하며
이수영의 좌우명은 ‘바르게 살자’다. 자신의 좌우명을 이야기하면서, 착하게 사는 것과 바르게 사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바로 서 있다는 의미죠. 지금의 나, 내 생각이 똑바로 중심을 잡고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르게 살자’는 저희 집 가훈이기도 하죠. 하나님을 만나면서 그런 마음은 더 강해졌어요.” 삶을 살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 그렇게 매번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한층 더 깊어지고 넓어진 모습이 되는 것. 그것이 그녀가 걷고 있는 가수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