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시이라젠느, 『별빛속에』의 작가 만화가 강경옥과의 속 깊은 이야기
한국 순정만화의 기념비적인 명작
강경옥의『별빛속에』는 몇몇 이들을 위한 추억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 순정만화의 기념비적인 명작이며, 세대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18년 동안 네 번이나(중도하차된 것까지 포함하면 다섯 번) 재출간 된『별빛속에』의 작가 강경옥 씨를 8월의 마지막 날에
“언제나 동경하는 저 우주. 뚜렷이 보이는 달은 나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첫 번째 우주였다. 그러나 언제나 나를 감싸고 있던 것은... 저 수많은 별들이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여성독자라면 이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강경옥의 『별빛속에』를 읽으면서 울고 웃었던 기억이 있을 게다. 시이라젠느의 고통스러운 운명과 레디온과의 슬픈 사랑. 그들의 이야기는 대리만족을 넘어 ‘자신이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강경옥의 『별빛속에』는 몇몇 이들을 위한 추억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 순정만화의 기념비적인 명작이며, 세대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18년 동안 네 번이나(중도하차된 것까지 포함하면 다섯 번) 재출간 된 『별빛속에』의 작가 강경옥 씨를 8월의 마지막 날에 만났다. 그녀는 작품에 대해 솔직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데뷔작이 1985년 ‘여학생’에 연재했던 『현재 진행형 ing』이고, 두 번째 작품이 1986년에 발표한 『이 카드입니까?』입니다. 1987년에 발표한 세 번째 작품이 바로 『별빛속에』에요. 구상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했고, 시작할 때부터 무척 긴 작품이 되리라고 생각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던 시기에 그렸던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5년 동안 정말 열심히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별빛속에』는 프린스출판사(21권), 창만사(19권), 르네상스(3권까지 내고 중도하차), 서울문화사(10권)에서 책이 나왔다가 이번엔 애니북스에서 여덟 권으로 책이 나오게 되었다.
『별빛속에』는 순정만화에 SF 판타지 요소를 새롭게 도입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지만 작가는 장르 자체에 구애받지 않았다. “저에겐 현실을 다루든 중세를 다루든 모든 창작은 판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sf에 많은 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이야기에 걸맞는 장르를 이용할 뿐이지요.” 그 말처럼 강경옥 씨는 20년의 작가 생활 동안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다. 『현재 진행형 ing』나 『스타가 되고 싶어』와 같은 학원물, 『라비헴 폴리스』,『노말시티』 같은 SF물, 그리고 『두 사람이다』같은 스릴러물, 『퍼플 하트』 같은 중세물까지 말이다. “제 마음 속엔 어떤 판타지들이 있고, 그것을 옮기는 것이 만화 창작입니다. 아마도 그 판타지들을 다 이야기할 때까지 만화를 그릴 겁니다.”
18년 전에 창작한 작품이다 보니 세부적인 사항은 가물가물하다고 말했다. 어떤 것이 가장 힘들었나 하는 질문에는 명쾌하게 답변이 나왔다. “주인공 때문에 힘들었어요. 시이라젠느가 갈등을 하면 나도 갈등을 했지요. 결말 부분의 블랙홀은 이미 시작할 때부터 정해두었고, 스토리도 이미 다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를 끌어가는 것은 힘들지 않았지만요.” 그리고 한마디 더. 레디온의 죽음은 처음에는 염두에 두지 않았단다. 예상보다 분량이 2배가량 늘어나게 되었지만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많은 독자들에게 『별빛속에』는 레디온과의 시이라젠느와의 사랑을 담은 만화로 기억되지만, 다시 읽어본 『별빛속에』는 신이 내린 운명과 인간의 의지 사이의 갈등을 다룬 무척 스케일이 큰 만화였다. 이런 내용을 작가에게 살짝 고백하자 “잘생긴 남자가 안나왔으면 제 만화 안 읽었겠네요.” 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만화가로 활동하면서 어떤 작품이 가장 힘들었는가 하는 질문에 그녀는 ‘윙크’에 연재했던 『노말시티』를 꼽았다. “처음 그 작품을 시작했을 때는 7년이나 연재할지 몰랐어요. 저에겐 일종의 고비 같은 작품이었지요. 『별빛속에』와 달리 『노말시티』는 스토리 때문에 많이 힘든 작품이었지요. 이 작품도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고, 중간에 스토리를 수습하느라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완결했습니다. 저는 『노말시티』의 끝맺음이 마음에 들어요.” “승부욕이 강하거나 오기가 센 편이신가요?” “그건 아니고 끝을 맺는 것을 좋아해요.” 외부적인 이유로 중단된 작품을 빼고는 모든 작품을 시간이 얼마나 걸렸든 끝내 작품을 완결했다. “저는 게임을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클리어를 해야 속이 시원해요. 만화 작업에도 그런 성격이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기다리는 『퍼플 하트』의 경우 연재할 매체를 찾기 힘들어 앞으로 창작하기 힘들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별빛속에』는 이런저런 사연도 많았던 작품이다. 처음 작품을 하고서 지금 소화하기에는 작품스케일이 컸다는 생각에 좀더 시간을 두고 작품을 창작하려고 원고를 찾으러 출판사로 갔지만, 원고를 돌려주지 않아서 결국 끝까지 만들어냈다. 또, 악몽 같은 원고 분실 사고도 있었다. 단행본 6권 분량에 해당하는 원고가 출판사 실수로 사라져버린 것. 자식 같은 원고를 잃어버리고 작가는 한동안 망연자실 했다고 한다. 실제 그림을 그리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을까? “배경을 그리는 것이 어려웠어요. 우주선 메카는 아담스키 우주선 모양을 참고로 해서 그렸어요. 여성용 복장은 고대 그리스의 얇고 하늘하늘한 느낌을 살리려고 했고요.” 여운이 많이 남는 결말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이미 그 이야기를 완결시켰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니 그 이후의 이야기는 있을 수 없습니다.” 속편을 기다린 독자라면 조금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18년 동안이나 독자들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에 대해서 작가는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강경옥 씨는 작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저는 작품을 창작하고 독자들은 그것을 읽고... 나머지는 읽은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나더러 제 작품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라고 하면 어려워요. 작품에 대한 평가는 평론가들의 일이지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이 없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작품 속에 다 담아 두었습니다. 제 의견이 작품을 즐기는데 필요한 정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순정만화답지 않은 여성 캐릭터에 대해서는 이야기 했다. “내가 추구하는 여성상을 담았어요. 무엇보다 제가 그린 대부분의 여자들은 ‘독립적’이지요. 특히 주인공들은 제 성격이 많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야?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터뷰를 하거나 사진을 찍히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단다. 독자가 생각한 작가의 이미지와 실제 자신의 이미지는 차이가 있고, 그 갭을 메우는 것이 쉽지 않아서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작가는 만화와 화실이야기, 후기 속에 등장하는 모습으로 기억해주길 바랐다.
“독자와의 교류도 많지 않아요. 블로그(//kr.blog.yahoo.com/kko314)와 펜페이지(//www.imagepuzzle.net) 활동도 시작한지 얼마 안돼요. 작품을 사랑해준 독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팬들 중에서는 작업실까지 찾아온 분도 있었고, 만화가가 되겠다고 찾아온 학생들도 많았어요. 『별빛속에』에서 레디온이 죽었을 때 팬레터를 많이 받았죠. 제발 죽이지 말라고요.(웃음)” 그녀의 팬 중에서는 『별빛속에』의 모든 판형을 가지고 있는 열혈독자도 여럿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작품을 사랑하고 아끼고 기억해준 독자들이 늘 고맙단다.
“지금 만화 시장 상황은 좋지 않아요. ‘윙크’와 ‘댕기’가 창간되었던 94년부터 2000년까지는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었는데, 대여점과 스캔본 공유 때문에 만화 시장이 많이 죽었지요. 지금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은 자료를 구하고,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은 제가 처음 만화가로 데뷔했을 때보다 좋아졌지만 경제적으로는 더 힘든 것 같습니다. 또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낮고요. 보호도 미비하고, 남용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제 단편 만화 제목이 영화 제목으로 그대로 사용한 일이 얼마 전에 있었는데요. 최소한 원 저작권자에게 양해를 구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렇지만 좋은 소식도 있다. 『별빛속에』의 애니메이션 작업이 진행 중이고, 『두 사람이다』도 영화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제 작품의 2차 저작물들을 보고 싶죠. 『별빛속에』는 애니메이션을 해보자는 제의가 많이 들어온 작품이지만 실제로 계약까지 간 적은 드물었습니다. OVA가 될지 극장판이 될지 아직 모르지만 작업은 진행 중이에요. 『두 사람이다』는 ‘선물’을 찍은 오기환 감독이 작품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만화 작품들의 영화 판권을 사들인 후 작품화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본만화 『기생수』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판권을 샀지만 아직 영화화 되지 않았잖아요.”
올 일 년 동안 강경옥 씨는 작품 활동을 쉬고 있다. “오른손에 염증이 생겨 손이 낫는데 오래 걸리는 관계로 몇 달 동안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해요. 올해는 원래 쉴 생각이었기 때문에 작업에 차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좀 불편하네요. 현재 연재하고 있는 작품은 없습니다. 내년에 『두 사람이다』의 애장본 작업과 단편집(만화만이 아닌)을 하게 될 것 같고요. 옛날 단편집들도 새롭게 내고 싶어요. 그리고 새로운 작품도 창작해야겠지요.” 강경옥 씨는 대중적이라는 게 나쁜 의미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중적인 모든 게 좋다고는 할 수 없어도 사람은 좋은걸 선택하게 되는 본능을 지녔고 좋은 작품은 독자에게 많이 읽힐 수밖에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대중성을 겸비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창작하는 만화들도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내년, 그녀의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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