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습니다 - 서진규
한국에서 출간된 그녀의 첫 책
작년 7월 이후 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그녀는 무척 활기 차 보였다. 8월 5일 국회에서 강연을 했고,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으며(논문 주제는 ‘주한미군정에 미친 일본인들의 영향’이다).
서진규 씨의 명함에는 아무런 직함이 씌어있지 않다. 한국에서 낸 두 권의 책 제목이 씌어져 있을 따름이다.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단순히 책 이름을 쓴 것은 아닐 터이다. 이 명함을 받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두 문장에 감염된다. 인종차별과 남녀차별을 뛰어넘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있는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인생만으로도 희망의 증거가 된다. 그녀는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기회와 희망 없이 산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내가 겪었던 것처럼,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나는 도와주고 싶습니다.” 이 말을 책임지듯 그녀는 저술과 강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작년 7월 이후 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그녀는 무척 활기 차 보였다. 8월 5일 국회에서 강연을 했고,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으며(논문 주제는 ‘주한미군정에 미친 일본인들의 영향’이다), 한국에서 출간된 그녀의 첫 책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를 미국에서 출간하기 위해 영어로 번역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친 기색은 찾아보기 힘들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정과 힘이 묻어난다. 같은 말을 해도 더욱더 귀 기울여 듣게 되는 그런 목소리가 있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그렇다. 1948년생,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녀의 얼굴은 대학에 갓 입학한 여학생처럼 생기가 넘쳤다. 인터뷰 내내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그녀는 깊은 인상을 주었다. 한마디로 그녀는 무척 멋졌다.
한달에 2~3번 이상 꾸준히 강의를 하고 있는 그녀. 자신의 강의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지를 물었다. “내 강의는 인생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자기 자신과 어떻게 협상할 것인지를 이야기합니다. 어려움이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 어려움을 가장 먼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어려움을 이겨내게 되면 다른 사람도 자신을 돕게 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에서 주부, 회사원,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들이 강연을 듣거나 책을 읽고 편지를 보내주세요.”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은 ‘내가 이전에 당신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게 남아있는 시간만이라도 당신처럼 멋지고 보람 있게 살겠다’는 편지를 보낸 70대 노인이란다.
그녀의 책을 읽고 자살을 포기한 사람이 있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1사단에 강의를 하러 갔다가 그녀는 군목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강의가 자살하려고 한 어느 젊은이를 살렸다는 것. 한 사병이 자살을 결심한 후 우연히 그녀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자유분방한 요즘 젊은이였던 그 사병은 엄격한 군대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괴로워했다. 그는 무심하게 그녀의 강의를 듣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저기서 강연을 하고 있는 저 사람은 여자의 몸으로 그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냈는데 내가 이 정도로 삶을 포기하다니.” 인생은 한번 뿐이고 돌아오지 않는다.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매일 아침 자신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하루가 단 한 번뿐인 소중한 기회이고 선물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생을 아깝게 낭비한다. 그녀는 이렇게 소중한 삶을 흘려보내며 한탄만 하는 사람의 정신을 흔들어 깨운다. 그녀의 목소리는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구석이 있다.
물이 반쯤 차 있는 컵. 그녀가 자주 드는 비유다. 사람은 마음에 따라 ‘겨우 반잔밖에 안 남았네.’라고 안절부절 못하는가 하면, ‘아직도 반잔이나 남았네.’라고 다행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그녀는 당연히 ‘아직도 반잔이나 남았네.’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최악의 순간에서도 그녀는 주저앉는 법이 없다. 그녀의 눈에는 절망보다는 희망이, 지금의 고통보다는 미래의 보상이 더 잘 보이는가 보다.
“미군은 1년이나 2년마다 전 세계로 전근을 가야 합니다. 딸을 맡아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부임지로 데리고 다녀야 했는데, 아이는 매번 이사와 전학을 해야 하는 생활이 불안하고 초조했나 봐요. 친구가 생겨 친해질 만 하면 떠나야 했으니까요. 그런 딸에게 이렇게 말해줬죠. ‘너는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으니 세상에서 가장 친구가 많은 아이다. 그리고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것을 보고 경험할 수 있으니 다른 사람보다 앞설 수 있다. 그러니 너는 얼마나 행운아인가.’고요.” 엄마의 말대로 딸은 새로운 환경에 즐겁게 적응하고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딸에 대해 애정이 각별한 그녀에게 딸을 어떻게 키웠는지를 물었다. “여덟 살 때 처음 한국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어요. 첫 시험을 봤는데 반에서 꼴찌를 한 거에요. 그런데 저는 조금도 걱정이 안되더라구요. 꼴찌라는 경험도 무척 중요하거든요. 저는 가급적 잔소리를 안하려고 했어요. 저도 어릴 때 청소하려고 빗자루를 들었다가도 어머니가 ‘청소해라’라고 잔소리 하시면 청소를 안하고 도망쳤거든요. 아이들 마음이 다 똑같지요.” 그녀의 딸은 초등학교 때는 꼴찌를 했지만 미국 최고의 대학 하버드를 졸업했다. 딸이 정직하고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항상 타인에게 신용을 잃지 않도록, 타인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고3 때부터 딸은 ROTC로 복무하면서 자신의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었다. 엄마만큼 야무진 딸이다. “우리 아이는 내가 사는 모습과 공부하는 모습에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말보다는 행동이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하잖아요. ‘공부해라’라는 잔소리를 하기보다는 저는 이렇게 말했지요. ‘공부를 못해도 괜찮고, 네가 나중에 식모나 웨이트리스를 해도 행복하기만 하다면 괜찮아. 다만, 내가 너라면 공부를 하겠다. 어릴 때 공부를 하고 실력을 쌓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네가 공부를 한다면 나이가 들어서 웨이트리스가 하기 싫어져도 다른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지.’ 이 말을 듣더니 공부를 알아서 열심히 하더군요.” 이렇듯 그녀는 딸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먼저 깨우쳐 주었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된 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이 그녀의 조언이다. 영어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녀는 어떤 비결이나 요령보다는 왜 영어를 잘해야 하는지를 먼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자도 하기 힘든 군대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엔 많이 고생을 했다고 한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버티기 힘들었던 그 때, 그녀는 ‘이 고비만 지나면 나는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자신을 격려했다. 『소공녀』의 세라처럼, 그녀는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그리면서 자신을 설득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믿고 의지하게 되었다. 눈물겨운 노력 속에는 자신의 딸에게는 차별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강의한 의지가 숨어 있었다. 또, 이 고비를 넘겨 차별 속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은 포기를 잊게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최우수 훈련병으로 졸업하는 영예를 얻었을 때, 그녀는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 자신감은 그녀의 인생에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젊은 사람들에게 ‘꿈을 정하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꿈은 등대가 되어 줍니다. 꿈을 정한 후, 지금 현실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 할 수 있는 것을 하세요. 인생은 계단이에요. 한 계단을 올라가면 또 다른 가능성이 생기지요. 인생은 프로젝트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요. 죽을 때까지 멋있고 보람 있게 살기 위해서는 길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문해보길 바랍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지를요. 만약 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현재의 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겁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세요.” 처음에 이룬 것은 소박했지만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해낼 수 있는 것들은 많아지고 커졌다. 하버드 박사라는 목표를 이룬 지금, 그녀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제 전공이 국제외교사이거든요. 제 전공과 미군에서 지역전문가로 일한 경험을 살려 미국 국무장관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정말 필요한 인재가 되어 백악관에서 저를 부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미국 사람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여성으로 남성들의 조직인 군대에서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한 비결이 무엇일까? 그녀는 ‘협상 능력’이라고 대답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 하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천을 제시하는 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협상 방법이다. “항상 협상 당사자 양쪽 다 좋도록,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합니다.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주고, 할 수 있는 일을 지시하며, 그 결과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겠지요. 저는 이렇게 항상 웃거든요. 이렇게 웃는 얼굴로 협상에 응하면 누구도 거절하지 못할 겁니다.”
늘 바쁘게 살아가는 그녀,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낼까. “영화도 보고, 한국 드라마도 보고 그래요. 얼마 전에 ‘대장금’을 딸애가 빌려와서 봤는데 어찌나 재미있는지 밤새도록 봤어요. 운동은 취미라기보다는 필요해서 하는 편이에요. 주로 조깅을 해요. 골프도 좋아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요즘에는 많이 못했어요.” 드라마를 보면서도 단순히 즐기기 보다는 그 안에 숨어있는 진리와 인생의 묘미를 깨닫는다는 그녀는 멋진 여성이자 삶을 가치 있게 쓸 줄 아는 인생의 선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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