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취재]2005 우리들의 북카페 이야기② - 그 두 번째 만남, 헤이리에서의 책 이야기
북하우스는 예술마을 헤이리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복합문화공간. 대나무가 방사형으로 쭉쭉 뻗은 것 같은 외양이 일단 힘차 보인다. 들어가보면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책꽂이가 북하우스 전체의 위상을 높혀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이 곳이 책의 파라다이스가 아닌가…
영국의 헌책방 마을 헤이온 와이(Hay-on-Wye). 헤이온 와이는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광산촌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 곳은 과거의 명성만 남긴 채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산간벽지의 폐광촌이 되었다. 그런데 이 산간벽지에 괴짜가 한 명 나타났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청년 리처드 부스가 1961년 헤이의 소방서 건물 한 켠에 헌책방을 연 것. (자, 지금부터의 스토리는 모두들 짐작하실 수 있겠죠?) 이 청년의 작은 반란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하고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기도 헸지만 결국 지금처럼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영국의 헤이온 와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도 헤이온 와이 마을 같은 곳이 있기 때문. 바로 파주에 있는 ‘헤이리 예술 마을’이다. 헤이온 와이 마을을 시작한 괴짜가 리처드 부스라면 ‘헤이리 예술 마을’을 계획한 사람은 한길사 김언호 대표이다. 1994년 파주출판단지 조성을 위한 사전 조사차 헤이온 와이 마을을 방문한 김대표는 ‘한국에도 책마을을 하나 세우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이 생각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지금의 ‘문화예술공동체’ 헤이리 마을 건설의 청사진이 되었고 현재 미술, 문학, 건축, 출판 등 각 문화예술 부문의 내로라하는 인사 300여명이 헤이리에 둥지를 튼 상태이다.
북하우스(클릭하시면 북하우스 홈페이지를 보실 수 있어요.)는 예술마을 헤이리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복합문화공간. 대나무가 방사형으로 쭉쭉 뻗은 것 같은 외양이 일단 힘차 보인다. 들어가보면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책꽂이가 북하우스 전체의 위상을 높혀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이 곳이 책의 파라다이스가 아닌가… 하고 여겨질만큼 책이 받아야 할 만큼의 대접을 충분히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계단이 없이 총 3층으로 이루어진 북하우스는 1층은 갤러리 공간과 이태리 식당 포레스타, 3층은 널찍한 테라스가 있는 카페 윌리엄 모리스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사이를 책방 북하우스가 완만하게 이어주고 있다. 1층 갤러리에서 전시된 것을 관람하고 포레스타에서 식사를 한 뒤,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책을 훑어 보며 위로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카페 윌리엄 모리스에서 차 한잔 할 수 있는 여유를 맞닥뜨리게 되는 형국. ‘2005 우리들의 북카페 이야기’ 두 번째 모임도 이 곳 윌리엄 모리스에서 이루어졌다.
함께 한 블로거 님들이 모두 어여쁜 여성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책을 계기로 만나 책의 집에서 이루어진 대화의 시간은 시종일관 까르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함박 웃음과 짝을 이룬 것은 책과 관련된 한바탕 수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라는 테마로 이루어진 예스 블로거들의 책 이야기, 사는 이야기겠다.
첫 번째 주자는 리리코 님.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있고, 하루 종일 컴퓨터를 쳐다보고 있어서 목이 뻐근하다”는 28살의 열혈독서가이다. 리리코 님은 하루 독서량이 서너권이 될만큼 다독을 자랑하는데, 특히 배수아와 김연수, 이영도, 아멜리 노통을 좋아하고 이외에도 일본 소설과 만화를 좋아한다.
안경 너머 눈매가 날카로웠던 안티고네 님은 출판사에서 일했던 경력으로 책을 보는 안목이 남달랐던 분. 『키리냐가』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추천도서로 꼽았다. 특히 『키리냐가』는 안티고네 님이 직접 편집을 담당했던 책으로 그 작품성과 재미로 보건대 묻히긴 아까운 책이라고 한다. SF 소설로 분류되지만 SF 독자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책으로 현재까지 발표된 과학소설 같은데 가장 많은 상을 탄 작품이기도 하다.
감자꽃처럼 님은 세련된 외모가 인상적이었지만 두 아이의 어엿한 엄마.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혀 주다 자신이 더 그림책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그림책 마니아다. 매일 수없이 쏟아지는 그림책 중에서 보다 좋은 그림책을 선별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현재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우수 어린이 도서를 추천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여 감자꽃처럼 님의 추천도서도 어린이책으로 채워졌는데, 『강아지똥』, 『한국생활사박물관』, 『엄마 마중』.
올 가을 결혼하게 될 약혼자와 함께 참석한 수탉 님. 다른 친구들은 국어 교과서에 실린 시를 겨우 읽고 있을 중학교 때 기형도를 읽어서였을까? 삶이 만들어내는 어쩔 수 없는 그늘을 기꺼이 안을 수 있을 듯한 밝은 미소가 인상적인 분이었다. 중학교 때 기형도를 읽었던 것만큼이나 기이하게 『빨강머리 앤』 완역본을 초등학교 때부터 읽었다. 빨강머리 앤이 커서 선생님이 되었던 것처럼 수탉 님은 현재 고등학교 국어 교사이다. 열심히 일한 돈으로 책도 사보고 맛있는 음식도 사먹는 해피한 직업 여성 수탉 님이 요새 재미있게 읽은 책은 김영하, 윤대녕, 한강의 책. 하루키의 책을 좋아하지만 『어둠의 저편』은 왠지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단다.
속초의 작은 서점에서 만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읽고 대학에서 중남미 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는 씰뱌 님. 학창 시절에는 소설을 꾸준히 읽어왔지만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는 책을 거의 안읽었다고 봐도 된다며, 직장 생활 기간과 독서를 굶은 기간이 거의 똑같단다. 씰뱌 님이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책은 역시 중남미 문학 전공자답게 『백년 동안의 고독』.
모임 내내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로 좌중을 압도한 포이즌 님. 『토지』, 『찰리와 초콜릿 공장』 그리고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책이 가슴에 남는다. 『내 이름은 빨강』은 우리나라에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터키 문학 작품. 표면적으로는 살인범의 정체를 알아나가는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계속 읽어내려 가면 시대적 변화 속에서 어떤 것이 진정한 예술인지 갈등하는 예술가들의 고뇌, 쇠퇴기로 접어든 이슬람 회화 전통에 대한 그들의 비애, 한 여인을 향한 세 남자의 사랑 등 너무나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듬직한 맏언니 같은 존재감이 있었던 롤러코스터 님. 칼칼한 경상도 사투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놀기 시작하면서 예스 블로그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예스블로그를 열심히 하고 있단다. 주로 읽는 책이 연애 소설이라고 애써 겸손해하셨지만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전작주의로 읽는 숨은 독서 마니아.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시작으로 최근엔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읽었다. 롤러코스터 님이 추천한 또 하나의 책은 존 버거의 『결혼을 향하여』. 누가 읽으라고 억지로 떠밀지 않았으면 절대로 읽지 않았을 것 같은 소설이었단다. 책의 서사와 아름다운 문체가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을 너무 힘들게 했는데 95페이지가 되어서 이 소설의 제목이 왜 『결혼을 향하여』인지 알게 되었다. 두 번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 정도는 더 읽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앞서는 소설이다.
어렸을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는 약간은 도도한 인상의 레드 님. 레드 님은 블로그를 하면서 그 동안 편식해서 책을 읽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요즈음은 그 동안 손이 잘 안갔던 인문서를 부러 챙겨 읽는다고 하는데 그 중 『유혹의 심리학』을 참 잘 읽었다. (『유혹의 심리학』을 읽은 레드 님이 어떤 남정네를 유혹할지도 지켜볼 일!)
진달래 님은 털털하고 소탈한 성격이 매력이 넘치는 분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이야기’를 워낙 좋아해서 오빠 교과서까지 훔쳐다 읽었단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지만 진달래 님이 추천한 도서는 굵직굵직한 한국 문학들이 많았다. 진달래 님이 추천한 첫번째 책은 『토지』. 우리나라가 꼭 노벨문학상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토지』가 있기 때문이란다. 『토지』가 대하소설이라면 『김약국의 딸들』은 『토지』를 한 권으로 만든 축약본이다. 이외에도 조정래의 『아리랑』,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김승옥의 『무진기행』, 최인훈의 『광장』 그리고 '중심의 민족주의 권력'과 '주변의 민족주의 권력'의 숨겨진 동반관계를 파헤친 『적대적 공범자들』을 추천했다. 진달래 님과의 책 이야기는 언제 날 잡아서 밤을 새워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책 제목이 거침없이 나왔다.
경주빵을 정성스럽게 준비해와 허기진 블로거들을 기쁘게 하는 센스를 발휘한 트리나나 님은 맹렬하게 달려왔던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요즘 한 박자 천천히 살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고 한다. 해서 바쁜 시간을 쪼개 책의 세계에 빠질 준비가 되었단다. 최근에 읽은 책은 『코코 샤넬』과 『우리는 얼음 사막을 걷는다』. 특히 『코코 샤넬』은 박찬욱 감독의 싸인이 담겨져 있는 책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헤이리 마을 북하우스에서의 대화는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르게 더욱 깊어졌다. 죽뻗어 있는 하늘 밑에서 향기 짙은 차 한잔과 더욱 향기 짙은 책 이야기를 하는 충만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한 번 헤이리로 훌쩍 떠나보는 것은 어떠할는지… 물론 ‘좋은 사람들과 함께’는 필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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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레스닉 저/최용준 역7,650원(10% + 5%)
'키리냐가'는 아프리카의 키쿠유 부족이 자신의 전통 문화를 지키기 위해 지구 밖 소행성에 건설한 유토피아의 이름이다. 마사이 말로 Kiri는 산, Nyaga는 빛. 즉, 인류가 비롯된 신성한 기원지를 의미한다. 이 책은 현재까지 발표된 과학소설 가운데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작품이고, 글을 읽는 재미와 이야기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