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정말 안 풀릴 때, 슬프고 외울 때 책을 읽어요. 그중에서도 여성 작가들의 책을 즐겨 읽지요. 물론 친구를 만나서 그런 문제를 풀 때도 있지만, 정말로 힘들면 친구도 만날 수가 없거든요. 그럴 때 저는 책을 읽는답니다. 그러면 고통이나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돼요. 책을 통해 따뜻한 위로를 받기도 하고, 번뜩이는 지혜를 만나기도 하지요. ‘아, 나만 이렇게 괴롭고 나만 이렇게 헤매는 건 아니구나’, ‘이 사람은 이렇게 견뎌냈구나’ 하고. 무엇보다 책이 담고 있는 다른 세계의 푹 빠져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 내가 느끼는 고통을 다 잊게 돼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나의 원더랜드에 다녀오는 거죠.
훌륭한 작가의 책을 읽는 건 너무 근사하고 매력적인 친구와 꿈에도 못 가본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것과 같아요. 거리낌 없는 상상의 여행이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시들해졌던 삶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싱싱하게 되살아납니다. 나만의 독서 의식도 있는데요. 정말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는 목욕재계를 하고, 집 대청소를 해요. 꽃을 사다가 꽂고, 향을 피우고, 초도 켜지요.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에서 가장 편안한 차림으로 독서를 합니다. 책에 줄을 그을 때도 아무렇게나 죽죽 긋지 않아요. 공감 가는 부분은 핑크 형광펜으로, 의문이 드는 부분은 녹색 형광펜으로 칠한 뒤 코멘트를 달죠. 정말 좋은 부분은 별표도 치고요. 그리고 여행을 갈 때면 꼭 여성 작가들의 작업실에 들릅니다. 여성 작가의 작업실은 언제나 저에게는 언제나 가장 감동적인 공간이지요. 프리다 칼로가 그림을 그리던 ‘카사 아술’이나 조지아 오키프가 사막 속에 만들어 낸 작업실, 펄 벅이 글을 쓰던 동백꽃 정원이 보이는 서재, 옹 언덕에 자리 잡은 카렌 블릭센의 하얀 집. 그곳에 가면 저마다 그녀다운 무언가가 느껴진답니다.
살림이스트로서 저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지구를 살릴 수 있을까, 또 지구를 죽이지 않는 인간 문명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거예요. 그래서 생태학, 윤리학, 그중에서도 에코페미니스트 윤리학을 담은 책들에 관심이 많지요. 신학자인 만큼 첨단 과학자들은 신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관련 책들이 나오면 꼭 찾아서 읽는답니다. 토마스 베리 신부님과 브라이언 스윔의 대화를 담은 『우주 이야기』, 신학과 고생물학의 만남을 보여준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책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네요. 신학과 과학의 대화를 담은 책이나 에코 페미니스트 과학자들의 책을 읽으며 신학과의 대화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자기 안에 있는 ‘연약함의 힘’을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것을 키우고, 모험 속에서 지키기를 바랍니다.
아일랜드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을 때 쓴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자네, 내가 이 감옥에 갇혀서 가슴이 부서졌을 거라고 걱정했지? 가슴은 부서지게 되어 있는 거라네.(Heart are meant to be broken)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가슴이 부서지게 하는 과정이지. 내가 이 감옥 속에서 괴로워하는 이유는 부서진 가슴이 아니라, 절대로 부서지지 않겠다고 감옥보다 더 지독한 콘크리트 담을 가슴에 쌓아버린 이곳 사람들의 부서지기를 거부하는 가슴 때문이지. 우리의 가슴이 절대로 부서질 수 없게 무장되어버렸을 때 우리의 삶은 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거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상처받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가슴이 부서져서 더 자비롭고 지혜로워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처로 인해 점점 졸아들어서 아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데 인간이란 가슴 찢어지게 아프라고 이 세상에 온 존재인지도 몰라요. 그것이 우리의 운명인 거지요.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부드럽고 연약해요. 진정한 나(true self)의 목소리를 따라 살지 않으면,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연약함의 힘’이란 백만 번 가슴이 찢어져도 다시 느끼고 다시 열 수 있는 힘이에요. 연약해야 만지고 싶고, 부드러워야 서로 만날 수 있어요. 그래서 연약함의 힘은 남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힘이에요. 내 가슴이 숱하게 찢겨 봤기에 부서진 다른 사람의 가슴도 품어 안을 수 있는 거지요. 저는 이 연약함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앨리스 워커 저/구은숙 역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는 소설 『컬러 퍼플』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앨리스 워커의 에세이집인데요,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울고 웃었는지 몰라요. 그 여자의 삶, 연애, 일… 흑인 노예의 후손으로서 겪어야 했던 고통, 퓰리처상을 받기까지 싱글맘으로 그녀가 지나온 고단한 삶… 이 모든 것을 읽는 이의 얼굴이 뜨거울 정도로 솔직하고 발칙하게 썼어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앨리스 워커가 쓴 책인데도,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내 심장에서 나온, 내 책처럼 느껴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답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위로와 공감을 받았고, 제가 여성 작가들의 책에 빠지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책이기도 합니다.
루미 저/이현주 편
실연당하고, 배신당하고, 일도 꼬이고, 그야말로 인생이 하나도 안 풀렸을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나를 구원해 준 게 루미의 시예요. 루미의 시집을 들고 숲속이나 냇가에 혼자 가서 소리를 내서 읽었지요. 그러면 펑펑 눈물이 나면서 신의 사랑을 느끼게 돼요. 지금 당장 죽을 것 같고, 제 아무리 절망과 배신감이 깊다 해도 나는 지금 너른 들판 같은, 바다 같은 신의 커다란 사랑에 안겨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아, 내가 또 걸려 넘어졌구나.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거야’ 하게 되지요. 그리고 루미 시가 무척 유머러스해요. 이슬람 수피 시인들의 특징 중 하나가 끝에 가서 꼭 반전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울면서 읽다가 킥킥 웃게 된답니다. 그러면서 치유가 되는 거죠.
아룬다티 로이 저/황보석 역
나는 문장이 이토록 아름다운 소설을 본 적이 없어요. 그 문장에 빠져 익사해도 생각한 책이에요. 인도의 몬순, 냄새, 인도 여성이 느끼는 삶의 기쁨과 비참함에 대해 쓰는데, 농익은 망고 냄새와 몬순이 내리는 남인도의 숲의 냄새, 인도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느껴지고, 슬프고도 아름다운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들지요. 카스트 제도의 위선을 비판하고 있지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에요. 아룬다티 로이는 이 책으로 부커상을 받았고, 그 뒤 이혼을 하고 신자유주의와 군사주의를 반대하는 운동가가 되었지요.
헤르만 헤세 저/송영택 역
고등학교 때 여러 번 읽었고 최근에도 다시 읽은 책이에요. 10대 때 그 책을 읽으면서 어린 마음에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나는 골드문트처럼 살고 싶지만, 우리 아버지 사업이 망한 지금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나르치스처럼 살아야겠다.’ 그래서 석사 학위 세 개에 박사학위까지 따고 교수로, 나르치스로 살게 된 거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어느 날 보니 내가 ‘신학계의 골드문트’가 되어 있는 거예요. 제 별명이 신학계의 마돈나거든요.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두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통합해야 할 인간의 두 원형이라는 거예요. 어린 시절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에요.
마를린 호리스,빌레케 반 암멜로이,엘스 도터만스
내 인생의 영화를 물어보면 주저 없이 <안토니아스 라인>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마를린 호리스라는 유럽 여성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우리가 살아야 할 다른 세상을 어쩌면 이토록 잘 담아냈을까 감탄하게 돼요. 참 아름다웠고요.
잉글리쉬 페이션트 : 양장 팩키지 (BD+DVD) : 블루레이
안소니 밍겔라, 레이프 파인즈, 줄리엣 비노쉬, 윌렘 데포
연애 영화로서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본 영화는 <잉글리시 페이션트>예요. 장면 장면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파블로 베르헤르
최근 본 영화 중에서는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Blancanieves)>, <그녀(Her)>가 기억에 남네요.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는 여성 투우사의 이야기를 담은 스페인 감독의 작품이에요. 흑백 영화인데 너무 감각적이고 환상적이에요.
현경 “여성을 아름답게 하는 건, 관계와 일” 『미래에서 온 편지』 개정판 출간 여신은 가장 가슴 뛰게 하는 일을 한다 아무리 좋은 지도가 있어도 해결사는 결국 자기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