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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어릴 때를 회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언니들과 나란히 누워서 책을 읽던 모습이에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책에 빠져 살았어요. 저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에게는 익숙하겠지만, 그때는 집집마다 부모님이 사주신 전집으로 책장이 그득했죠. 아마 그 당시 누구 집에나 있었을 세계명작 동화라고 있었는데, 언니들이랑 그 책이 닳도록 읽고 또 읽었어요. 특히 책 내용 중에 유달리 음식과 서양 화폐가 나오는 부분을 좋아했는데, 양파 수프, 스튜, 위스키 봉봉, 타르트 등의 음식에 대한 묘사, 몇 펜스, 몇 프랑 등의 화폐가 너무나 새롭고 신기하기만 했죠. 나중에는 언니들과 책 내용 관련 퀴즈를 내는 게 놀이가 되었어요. 『키다리 아저씨』가 주디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 중 다섯 개를 말해봐라, 『작은 아씨들』에서 에이미가 학교에 가져가서 선생님한테 벌을 받은 과일이 무엇이지, 라는 식으로 묻는 거죠. 또는 『괴도 루팡』 등의 추리 소설을 읽고, 편지 봉투 안에 하얀 장갑을 넣고, ‘하얀 장갑으로부터’ 등의 메시지를 써서 언니들에게 보내는 식이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는 고전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두꺼운 하드커버로 꽤나 무거웠던 고전 전집이 있었어요.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플로베르 등을 그때 처음 접했죠. 지금 읽어도 그 심오한 의미를 곱씹게 되는 내용을 그때 제대로 이해했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때 잠도 안 올 만큼 감동을 받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지금도 궁금합니다. 요즘 좋은 책들이 물론 많이 나오지만 고전만큼 깊이 있고 빠져들게 하는 책을 접한 경우는 드문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는 불행한 직장인이 너무 많아

사람들 대부분이 일을 하며 사는 이 시대에서는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행복하게 일해야 한다. 다국적 서치펌 엔월드코리아의 조주연 상무이사는 직업이 인생이고, 인생이 곧 직업이라 강조한다. 이러한 그녀의 철학으로 탄생한 책이 『직업의 정석』이다.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포함해서, 최근 몇 년 동안 불교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책을 쓰는 데에도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모든 것은 변하므로 지금 좋다고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도 무의미하고, 슬퍼도 지나치게 슬퍼할 일도 아니라는 것에 마음으로 공감하게 되었죠. 제 직업의 특성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오늘 좋았던 사람들이 내일 안 좋은 일이 생기고, 또 반대의 경우도 보면서 사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직업의 세계만큼 일희일비하기 쉬운 환경도 없는 것 같아요. 오늘 승진해서 좋은 것 같지만, 얼마 뒤 해고당하는 일이 벌어지는 냉혹한 세계가 직업의 세계, 직장의 세계죠. 최근 펴낸 『직업의 정석』에 이런 시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데, 순간의 편함, 즐거움에 끌려 움직이지 말고, 장기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좋은 것은 그냥 순간으로 끝나지만, 앞을 내다보며 나아간다면, 어떨 때는 좋고, 또 다른 경우는 괴로울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므로 가치 있다는 것입니다.”

“『직업의 정석』에 관해 말하자면. 우리나라 환경은 아직까지 직장인들이 자기 발전을 하고, 행복한 삶을 이끌어가기에는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지쳐 있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직장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지만 환경 탓만을 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고, 그 안에서 직업에 쓰는 시간은 너무 많죠. ‘직업이 인생이고, 인생이 곧 직업이다’라고 책 프롤로그에서 얘기했지만, 직업에서 행복하지 않고는 행복한 인생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절을 보내면서 깨달은 생각이기도 해요. 직업 안에서 단지 성공만을 꿈꾸는 게 아니라, 본인이 성장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성공도 행복도 결코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며 그 여정을 즐기기를 바랍니다. “

컨설팅 전문가인 최근 조주연 상무이사의 관심사는 마음 다스리기다. 자연스레 독서 방향도 마음에 관한 책으로 향한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의 평화가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했지요. 이를 실천하는 데는 평생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냐는 방법론에서 요즘에는 특히 명상에 관심이 있습니다. 직접 배워보고도 싶고, 관련 책도 읽고 싶어요. 더불어 직관과 통찰도 관심사입니다. 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개인적으로도 최근 몇 년간 큰 결정을 할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생각했을 때 직관을 따랐을 때 옳은 결정을 한 경험이 많고, 반대로 직관의 소리를 무시했을 때, 후회한 경우가 많습니다. 유달리 직관이 강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들의 특징을 유심히 보게 됩니다. 작가 중에는 말콤 글래드웰이 대단한 직관과 통찰력의 소유자인 것 같아요. 그의 신간 David and Goliath를 주문해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설 선택은 보수적인 것 같아요.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많이 시도하기보다는, 한 작가의 작품을 파는 편입니다. 고전만큼 좋은 책은 없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강한 것도 책 선택에 보수적인 이유인 것 같아요. 베스트셀러에는 왠지 손이 잘 안 갑니다. 실용서는 관심사에 따라 ‘소나기’ 독서를 하는 편입니다. 불교에 관해서 알고 싶으면, 불교 관련 책은 쭉 몰아서 읽는 식으로.”


우디 알렌의 팬

“우디 알렌의 ‘빅’ 팬입니다. 최근 영화도 좋지만, 예전 작품들을 훨씬 더 좋아해요.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 <맨하탄>인데, 지극히 신경증적이고, 예민하고, 염세주의적이고, 삶의 불행 앞에서 발버둥치는 주인공의 사랑이야기인 동시에 블랙 코미디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조지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로 연결되는 마지막 컷이 영화의 베스트 컷이라는 데에 많은 사람들이 동감할 거예요. 20년 연하의 여자친구가 6개월간 여행을 다녀 온다는 말에, 주인공은 그 특유의 신경증적인 말투로 안 된다고, 가면 너는 변할 거라고, 가지 말라고 끊임없이 떠들어대죠. 이런 그를 앞에 두고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가지라고(You have to have a little faith in people.)’ 여자친구는 답합니다. 이 말에 그가 보여준 미소는 감동, 환희, 안도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힘들었어요. 영화 속 염세주의자인 그에게 뭔가 따뜻함의 씨앗이 심어진 듯한 미소였던 동시에 저의 마음까지 녹인 미소였습니다.”

“그의 다른 영화 <애니홀>도 항상 보고 싶은 영화예요. 제대로 접한 우디 알렌의 첫 영화였는데,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결국은 편히 만나서 점심을 먹으며 사는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관계가 되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행복감, 스트레스, 때로는 다른 사람과의 저울질 등이, 많은 영화들이 미화하는 드라마틱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지만, 오히려 과장되지 않아서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조주연 상무이사의 서재는 ‘내려놓는 곳’이다. 하루의 끝에 고단함과 피곤함, 걱정거리들을 내려놓는 곳.

명사 소개

조주연 ( ~ )

  • 작가파일보기

국내작가 : 경제경영 저자

최신작 : 직업의 정석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어교육을 전공한 후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광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오길비앤매더코리아, 그레이월드와이드, 서울다씨 등 세계적인 광고회사에서 해외광고 기획팀장으로 근무하며 IBM, P&G,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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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추천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저/공경희 역

작년에 소개된 영화는 책의 재미와 감동을 반도 전달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바다 위 호랑이와 남게 된 소년의 이야기여서, 언뜻 듣기에는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만, 실제로 읽으면 실화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예요. 실제로 구글 검색을 해보면, 이 이야기가 실화인지 아닌지 논쟁이 꽤 벌어져 있더군요(개인적으로 궁금해서 저도 검색을 했습니다). 바다에서 뛰어오르는 날치를 잡기 위해서 정확한 타이밍에 뛰어올라 물고기를 입으로 낚아채는 호랑이를 보며, 현재를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낀다는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저/윤지관,전승희 공역

엘리자베스와 다시는 제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소설 캐릭터 중의 하나입니다. 너무나 인간적이고, 사랑하고 싶은 캐릭터예요. 서로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방해했던 오만함과 편견을 인정, 극복하고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이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나목

박완서 저

故 박완서 작가의 나목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1학년 시절 책 종이 냄새가 기분 좋은 대학교 도서관에서였습니다. 그때는 박완서라는 작가를 알지도 못했지만, 우연히 책꽂이를 지나다가 뽑아든 책에 빠져서 단숨에 읽어내린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으면서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나목』 외에 박완서 작가의 여러 책을 읽었지만 개인적으로 『나목』 만큼 감동을 받지는 못했어요. 한국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전쟁의 상처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하려는 과정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

법륜 저

불교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지만 워낙 어렵게만 느껴지고, 실제로 유명한 절의 불교 강의에도 나가보았지만 겉핥기 식의 내용이나, 또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메시지에 거부감이 들 뿐이었습니다. 그때 바로 접하게 된 책이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예요. 살면서 매일매일 힘든 고민거리에서부터 삶에 대한 방향성까지 많은 부분 이 책이 해답을 준 느낌이었어요. 마음의 평화에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물론이지요. 평생 옆에 두고 싶은 책이에요.

블링크 + 티핑포인트

말콤 글래드웰 저

최근 몇 년간 저를 가장 흥분시킨 작가 중의 하나가 말콤 글래드웰입니다. 그의 새로운 책을 접할 때마다 너무 기대가 돼요. 특히 『티핑포인트』와 『블링크』는 개인적으로 센세이셔널하다는 표현을 쓸 만큼 인상 깊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현상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왜’라는 물음표는 가질 때 어마어마한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에요. 의식적으로 당연함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습관을 가져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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