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저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어요. 이 책을 읽고 황석영 선생님의 전작도 모두 찾아 읽었고요. 일단 소재가 충격적이었죠. 그때 제가 한참 탈북자들 처벌 금지, 중국에서 다시 북송 시키는 일을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고 있어서 더 그랬던 것도 같아요. 그리고 『대지』와 마찬가지로 놀라웠던 점이, 한 여자가 도망을 나와서 당하는 모든 일이 정말 생생하게 그려지는 거예요. 그녀가 느끼는 감정의 결이라든지 기분이 남자의 시각에서 묘사한 것이란 게 믿겨지지 않았어요.
이외수 저/정태련 그림
확실히 인생의 굴곡을 겪고, 유인경 기자님도 말한 ‘고통 정량’을 채운 사람만의 통달 같은 느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고통 정량의 법칙이 있대요. 사람이 일생 동안 받을 고통은 정해져 있어서, 인생의 초년이 고통스러웠다면 갈수록 나아진다는 거죠. 이외수 선생님도 고통 정량을 일찍이 채우신 분이 아닌가 싶어요. 젊었을 때 많이 아프고 많이 고뇌한 사람 특유의 촌철살인이, 선생님 책에 담겨 있잖아요. 한 마디 톡 쏘는. 선생님은 나이가 드셨는데도, 그 분 글에 청량감이 있어요. 젊은 사람이 쓰는 단어를 잘 쓰시잖아요. 글을 읽다 보면 고궁 안을 잘 이노베이트한 상큼한 카페 같은 느낌이 들어요. 고궁 원래 특유의 정취가 사라지지 않은, 몇 백 년 된 나무는 그대로 있는 고즈넉한 고궁 안에 묘하게 잘 어울리는 펜시한 레스토랑 같은 느낌이요.
노희경 저
노희경 선생님은 대사나 그런 것이 워낙 감성적이죠. 제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경외랄까요. 저는 섬세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재미있고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죠. 제가 멋있게 말하면 멋 부리는 것 같아서 쑥스럽고 간지러워요. 근데 노희경 선생님 말은 감성적이고 섬세한 이야기들이잖아요. 사실 일상에서 쓰지 않는 대사를 주고받음에도 불구하고 멋 부렸단 느낌보다 멋있다는 느낌이 들고요. 이 책도 그랬어요. 무엇보다 제가 생각하는 의견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맞은 책이었어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한 여배우를 보면서, 정말 가볍고 소위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셨대요. 늘 사랑, 사랑, 사랑 타령을 하고 사랑하면 너무 푹 빠지고 너무 사랑하는 것도 티를 내고, 헤어지면 너무 힘들어하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다른 사랑에 빠지고, 참 사람이 가볍다, 깊이가 없다라고 생각하셨대요. 그런데 본인이 나이가 들고 보니, 아니다, 그녀가 옳았다라고 알게 됐대요. 사랑하고, 사랑을 활활 불태울 때가 얼마나 있을까, 언제 또 오랴.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해보려 해도 열정도 에너지도 안 따라준다는 이야기였어요. 저는 동의해요. 그 나이에 맞는 사랑과 연애는 따로 있는 법이라고. 왜 선생님들이 공부에 때가 있으니까 어릴 때 하라고 했겠어요(웃음).
펄 벅 저/장왕록,장영희 공역
중학교 때 읽은 책이에요. 한 사람의 일생이 쭉 그려지는 대작인데, 정말 충격적이었던 것 같아요. 과거 중국의 결혼이나 가족, 전쟁 이야기가 한 방에 쫙 읽히잖아요? 읽는데, 정말 그림이 막 그려지는 거예요. 어린 나이에도 펄벅이란 사람은 글에 힘이 있다고 느꼈어요. 무엇보다 어떻게 서양인이 동양인에 대해서 이렇게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썼을까 신기했고요.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책들은 글로만 뇌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고, 어떤 책들은 비주얼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읽었을 때 비주얼이 보여야, 또 보이는 농도가 진할수록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독자에게 대신 시간여행을 시켜주는 거잖아요. 그런데 바로 『대지』가 그런 소설이었고 그래서 어린 나이에, 이건 굉장히 대작이구나, 생각했죠.
기욤 뮈소 저/전미연 역
기욤 뮈소의 소설은 뭐가 좋냐면, 보통 비주얼이 많이 보이는데 그의 소설은 음악이 들린다는 점이에요. 음악에 조예가 깊은 소설가인 듯해요. 마치 영화 OST가 깔리는 것처럼, 어떤 사건과 상황마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소설을 귀로도 읽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죠.
미즈키 아키코 저/이서연 역
연애에 관한 책을 쓴다고 하니까 누가 『간파력』이란 책을 선물해줬어요. 일본 승무원 출신의 이미지 컨설턴트가 좋은 남자 고르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는데, 흥미롭긴 했어요. 저자가 비즈니스석 승무원을 오래하면서 느낀 부분이 특히 재미있었어요. 비즈니스석을 타는 사람들이 소위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이잖아요. 요즘은 자주 타는 소위 vip 고객은 승무원들은 미리 인포메이션이 다 뜬대요. A열에 2번 좌석 고객님은 화이트와인 뭐를 좋아하고, 미주노선을 자주 타고, 몇 만 마일을 타고 그러니 이렇게 맞춰 서비스하라 같은 내용이요. 어느 회사, 어느 직책인지도 다 알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저자가 보니 정말 높은 직책일수록 브랜드 티가 안 나는 옷을 입는대요. 받아서 안감을 뒤집어봐야만 브랜드를 알 수 있는 옷을 입는다고요. 너무 티가 나는 브랜드를 입는 사람일수록 의외로 성공하지 못하고 사기꾼이거나 아니면 자존감이 없고, 이렇게 파악을 하더라고요. 나름 설득력이 있었어요.
취미가 여행인데요. 여행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여행지에 관한 영화, 책을 보고, 떠나서 ‘주인공이 뭘 했지’를 떠올리며 본인이 원하는 루트를 짜는 게 베스트예요.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보고 그 나라를 떠나고 싶게 만드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중경삼림>은 ‘꼭 홍콩을 가보고 싶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영화입니다. 94년도 작품이잖아요. 그때 제가 갓 대학교를 갔을 때라 갑자기 인생이 너무 변했어요. 교복 입고 갇혀 지내다가 갑자기 주변에 남학생도 많고, 술자리도 허용되고. 머릿속은 어린앤데 어른 취급을 받게 되니까, 정신 없고 혼란스러운 청춘이었죠. 그런 제 상황과도 맞아떨어졌던 영화 같아요.
우디 앨런 감독을 좋아하는데 굉장히 미국적인 재기나 위트가 돋보이는 감독이잖아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영상이 감각적으로, 파리를 예쁘고 매력적으로 잘 풀어내서 매력 있는 영화였어요.
우디 앨런
최근에 본 <로마 위드 러브>에는 걸출한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데, 특히 로베르토 베니니가 나오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죠. 베니니는 극중에서 가장 평범한 동네 아저씨였다가 갑자기 유명해져요. 아무 이유 없이, 정말 갑자기요. 어딜 가도 파파라치가 따라붙고, 그가 입은 속옷 색이 무엇인지까지 방송으로 중계가 되고, 그가 양치질만 해도 사람들이 열광하죠.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즐기는 수준이 되요. 그런데 또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또 다른 평범한 사람에게 유명세가 옮겨가요. 하루아침에 유명세를 잃은 주인공은 처음엔 좋아해요. 이젠 마음 편하게 영화 볼 수 있겠더라고.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에서 막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해요. 바지 벗으면서 내가 그 사람이라고. 사람들에게 사인해줄까? 사인해줄까? 묻고. 그 에피소드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여러 인물이 나오고, 그 인물들이 얽히고 설켜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런 걸 담백하게 풀어서 좋았어요. 미국 음식은 오랫동안 공들여서 묵히고 끓이는 것보다 햄버거처럼 심플하고, 합리적이잖아요? 그런 게 굉장히 잘 드러나 있어요.
안선영 “당신에게 애인이 안 생기는 이유? 궁금해요?” 개념연애 지침서 『하고 싶다, 연애』 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