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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한창 시절에도 영화는 많이 찍은 편이 아니었어요. 그중에 연기한 〈들개〉라는 영화가 있어요. 원작 소설을 보고 출연을 결심한 영화지요. 『들개』는 이외수의 삶과 소설 속의 삶이 한 겹으로 겹쳐져 있는 것 같은 느낌, 하나도 다를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매혹적이었어요. 이외수 작가님 책은 그 후로도 꾸준히 챙겨보았지요. 어렸을 때 읽은 책을 말하라니까. 어릴 적에는 자서전을 많이 읽지 않나요? 헬렌 켈러 같은 사람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요. 조금 더 크면서는 한국 근대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어요. 삼성문고 같은 시리즈의 깨알 같은 글씨를 통해서 읽었지요.”

“그때그때 회자되던 책은 다 읽었던 편이에요. 이를테면 노동운동이 시작되고 가열될 때 그에 맞추어 나오던 소설들도 읽었고요. 헌데 조금 물러나 자기 삶에 대한 관조를 하게 될 즈음에 박완서와 이문열 소설을 읽게 되었어요. 박완서 선생은 마흔 넘어 등단하셨으니, 소위 늦깎이? 글을 쓰시는 분이니 왜 예민하지 않으셨겠어요. 그런데 그런 예민함에 덧붙여서 느지막이 무언가 이룬 사람다운 푸근함이 느껴지고 만년에 발표한 작품들도 뭐라 할까요? 노욕이 느껴지지 않고 앞서 말한 저력이 작품에 계속 녹아 있는 거예요. 놀라운 일이죠.”




책 속에서 나의 삶을 관조하다

“그냥 이것저것 책을 보는 걸 좋아해요. 배우생활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예요. 그때는 살던 아파트 동네에 서점이 몇 개씩 있었는데, 어느 날 서점 아저씨가 그렇게 책을 읽으니 1, 2천 원만 주고 읽고 나서 도로 가져다 놓으래요. 일하지 않을 때는 집에서 읽다 읽다가 하루에 네 권까지 읽은 적도 있으니까(웃음).”

“어린 시절에 데뷔하다 보니 책으로부터 간접 경험을 얻으려는 욕구가 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린 시절에 시골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그 기억과 책에서 읽는 것이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고나 할까요. 책에서 아궁이 피우는 장면만 나와도 머릿속에 아련하게 그림이 그려지고요. 지금은 에세이도 많이 읽지만 어릴 적에는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한데 요즘 나오는 책들은 뭐랄까, 에세이에 자기계발적인 요소가 없으면 안 팔리는 걸까? 에세이인지 자기계발서인지 모를 책이 지나치게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아쉬워요. 책을 읽고 생각을 훈련하는 것, 가령 똑같은 나무라도 빛에 따라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는 거잖아요. 그런 걸 볼 줄 아는 훈련을 책을 읽고 해보는 건데, 천편일률이 된 것 같아요.”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저에게는 최대 관심사예요. 그런 건 책 등을 통해서 습득해서 하는 일은 물론 아니지요. 더불어 사는데, 사람이란 다 다르고 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잖아요. 그걸 알고 받아들이고, 그 바탕 위에 더불어 걸어가는 길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 길은 엘리베이터를 타듯 쉽고 빠르게 올라갈 수가 없어요. 그렇게 올라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아주 높은 빌딩을 계단으로 천천히, 힘겹게 가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지요. 속도는 의미가 없어요. 그런 삶을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의 이야기가 좋아요. 꼭 유명하지 않아도, 몇 명 바꾸지 못한다고 해도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테레사 수녀님의 삶은 그런 면에서 감동적이지요. 또 실천을 위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을 읽어요. 한 대여섯 가지 판본은 놓고, 휴대폰에도 다운 받아 놓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짐하듯 새기며 읽습니다.”

“영화관에 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주로 집에서 영화를 보는 편이에요. 젊었을 적에 보았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가 잊히지 않네요. 일주일 가까이 마음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어요. 그러면서 뭔가 멍한 상태로 있었어요. 뭐 그래, 하면서도 주인공이 이해가 간다고 할까, 그랬어요. 몇 년 전에 〈아바타〉를 보면서는 이건 진짜 영화, 이런 게 영화라고 하는구나 하고 감탄했고요. 한국영화 〈광해〉도 재미있게 봤지요.”


계단을 오르듯 천천히 힘겹게, 그러나 함께

“요즘은 예전과 달리 에세이를 많이 읽어요. 저도 에세이 비슷하게 끼적여 보기도 하고 하니까. 책을 고르는 데 별다른 기준은 없어요. 닥치는 대로 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길 안내를 받듯 남들이 추천해주는 것을 읽는 것도 좋아요. 이를테면 문학상 수상작은 다 섭렵하는 것 같아요. 이상문학상 수상집은 문학상 수상 도서는 많이 챙겨서 읽는 편이에요. 특히 해마다 이상문학상 수상집은 빼놓지 않고 다 읽어요. 좋은 길을 안내 받는 것처럼, 자기가 스스로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추천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길 아닌가요? 이를테면 문학상 수상 도서는 많이 챙겨서 읽는 편이에요. 특히 해마다 이상문학상 수상집은 빼놓지 않고 다 읽어요.”

“90년대에 신경숙, 공지영, 성석제 작가 등의 책을 좋아했고 열심히 읽었고, 2000년대 이후 젊은 작가들의 책도 많이 챙겨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하도 읽다 보니, 어떤 작가에게는 매너리즘 비슷한 것이 느껴질 때도 있어요. 어떤 작품이 못 썼다기보다는 독자, 팬의 가려운 데? 니즈? 그런 걸 너무 간파하고 있어서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는 버무려놓는데 예전 같은 힘과 느낌이 증발한 것같이 보일 때가 있으면 아쉽잖아요. 누가 그러냐고요? 글쎄, 지금은 기억이 안 나는데(웃음).”

남들이 잘 알아주지 않을 때부터도, 알아주고 나서도 더없이 꾸준하게 나눔과 봉사의 삶을 이어온 정애리 배우가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 후 8년 만에 에세이집 『축복: 그러나 다시 기적처럼 오는 것』을 조용히 들고 돌아왔다.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나직하게 건넨 편지들과 따로 모아둔 글을 엮었다. 작가는 힘들다고 아우성인 세상에 위로가 되는 책 하나를 더 보태고 싶었다. 그러면서 아프고 힘든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며, 스스로도 글을 써내려가는 동안에 힘을 얻었다고 한다. 비록 일상의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담았지만, 담는 내내 그 특별하지 않음이 바로 특별한 힘을 불어넣어 준다는 것을 말이다. 작가가 옆에 수북이 쌓인 책을 곁눈질한다. “책이야 쓴 사람이 인세를 가져가는 게 당연한 일 아니에요? 근데 전부 다 기부를 한다고 하니까 출판사 나와서 하루 종일 사인을 하게 되는 거예요.”(웃음) 전날 촬영에서 약간의 부상을 당해 조금 불편한 몸이었지만, 살짝 화장기 도는 배우의 얼굴에 다가오는 봄기운이 화사하게 퍼져간다.

글/문은실 사진/출판사 제공

명사 소개

정애리 (1960 ~ )

  • 작가파일보기

국내작가 : 문학가

최신작 : 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

1960년 8월11일 출생. 1978년 KBS 신인 탤런트 모집에 특선으로 데뷔한 이래 35년 동안 수십 편의 드라마와 연극, 영화를 아우르며 활약하고 있다. 절정의 연기력으로 백상예술연기상, MBC 방송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서울연극제 최우수연기상, MBC 연기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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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저

별로 이르지 않은 나이에 등단한 작가가 등단한 후로부터도 아주 한참 후에 낸 소설이잖아요? 이 자전적 소설에서 노 작가는 삶에 대한 관조를, 어떠한 탐욕도 느껴지지 않는 동시에 삶에 예민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워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저/공경희 역

원래 공경희 작가의 번역을 참 좋아했어요. 특히 미치 앨봄이 스승의 마지막 나날을 함께 하며 삶에 새롭고 너그럽게 눈 뜨게 되는 이 책을 좋아해요.

풍금이 있던 자리

신경숙 저

정말 아련해요.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아련하고 따듯하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비교적 최근작인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더군요.

들개

이외수 저

작가의 삶과 글이 이렇게 긴밀하게 녹아든 책이 있나 싶어요. 너무너무 재미있게 몇 번을 읽고서 이외수 작가의 책을 모조리 찾아 읽었지요.

떠남

이용규 저

『내려놓음』을 썼던 이용규 선교사의 신간이지요. 『내려놓음』에서도 그랬지만, 이 책에서도 떠나는 것으로써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을 제공해줍니다. 규장출판사에서 나오는 종교서적은 많이 챙겨서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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