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제 기억이 좀 흐려지기는 하지요. 하지만 상상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아요. 그것으로 글을 쓰고, 시를 써요. 기억이 흐려지는 것은 아쉽지 않아요. 너무 많이 기억하면 삶이 황폐해져서 어디 살 수 있겠어요?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 지나간 시절에 읽었던 책을 떠올려볼까요? 서정주 시인이 엮은 『작고 시인선』이 있었습니다. 6.25 전쟁이 나기 전에 나온 책이에요. 한용운에서 윤동주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시인들의 시가 담겨 있었지요. 박목월 선생의 일본어 중역으로 처음 읽은 『좁은문』도 잊을 수 없어요. 충격을 받으면서 읽었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도 지금 읽으면 어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아주 놀라면서 읽었던 소설이에요. 『삼국지』도 여러 번 읽었고, 지금이야 많이 잊혔지만 『두시언해』에 수록된 시들은 거의 외워서 읊었어요.”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만났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영어로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토마스 만의 『마의 산』도 청년 시절에 접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는 책들이에요.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을 대표작으로 꼽고 싶어요. 엘리엇의 『황무지』도 빼놓을 수 없지요. 후에 접하고 학생들 가르치면서 깊이 공부한 예이츠와는 달리 엘리엇은 차갑지요. 그에 비해 예이츠는 더 아우르고 감싼달까 하는 면이 있어요. 헨리크 입센의 극작품들도 대단합니다. 『인형의 집』 『유령』 등의 대표작이 있습니다만, 『헤다 고블러』를 최고작으로 꼽습니다. 얼마나 유명했는지1970년대 미국 드라마 〈매그넘 PI〉 여주인공 이름을 이 희곡에서 가져다 쓰기도 했지요. 역사에서 연극의 시대, 그러니까 연극이 가장 흥했던 시기를 네 번 정도로 잡는데, 르네상스, 셰익스피어, 17세기 프랑스, 입센으로 볼 만큼 걸출한 작가입니다.”
삶의 조그맣고 구체적인 실체 찾기 훈련
“브레히트의 극작품도 좋아합니다. 특히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좋아합니다. 대승불교 최고의 불경인 『유마경』은 시집 『꽃의 고요』에 실린 시의 원초가 됐다고 할까? 『꽃의 고요』에 쓴 시들은 『유마경』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습니다. 원리불교(소승)에서 대승이 갈려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던 불경이지요. 우리 민족이 믿은 불교의 깊이를 이 책에서 보았어요. 유럽이 논리라면 (인도) 불교는 반복이지요. 반복 끝에 정신에 들어오는 것이 있어요. 그리고 한국 최고의 시집을 세 권 꼽으라면 정지용의 『백록담』, 1956년에 나온 『서정주 시선』,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를 들겠어요.”
“현재와 앞으로 글을 쓰면서 목표로 잡는 것은 삶의 조그맣고 구체적인 것을 소재로 실체를 찾는 것, 실체를 찾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 목표에 기대어 새로 읽으려는 책이 체호프의 『세 자매』와 『벚꽃동산』입니다. 체호프는 입센 이후 최고의 극작가라고 할 만하지요.”
“요즘 영화는 잘 알지 못하고 옛날 영화 중에 프랑스 마르셀 까르네 감독의 작품이 있어요. ‘인생유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는 소개되었습니다. 원제도 직역하면 ‘천국의 아이들’인데, 영화에서 천국은 극장의 가장 꼭대기 자리, 티켓 값이 가장 싼 자리를 가리키기도 하는 말이었지요. 잉마르 베르히만의 영화도 좋아합니다. 〈화니와 알렉산더〉를 특히 좋아하지요. 〈서편제〉도 참 재미있게 본 영화인데, 한국에 이렇게 훌륭한 노래가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돼서 좋았어요. 다만 다 굶어 죽게 생긴 사람이 캐슈미어 스웨터를 입고 나오는 건 좀 이상했어. 그리고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딸의 눈을 멀게 한다는 설정도 억지스러워요. 한국 사람들은 남이 고통 겪는 걸 보기 좋아해요. 그걸 ‘한’이라는 정서로 이름 붙이는 건데.”
“책방에 가면 이상하다 싶게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어요. 그런 책을 고르지요. 흥미를 자극하는데 쉽게 읽혀지지는 않는 책을 고릅니다. 돈과 시간이 아까운 책은 손에 들이고 싶지 않아요. 장수에 대한 소망은 이제 완전히 버렸어요. 세상에서 사는 날까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마음뿐이지요. 40대 초반에 담배를 끊었는데, 이가 빠지도록 힘겨운 일이었지요. 그전에는 하루에 두세 갑을 태웠으니까요. 의사가 담배 끊기 전에는 몸 좋아지겠다고 자기한테 올 생각도 하지 말래. 한데 이제 보니 세상에 나서 가장 잘한 일이 첫 번째로 담배 끊은 거예요. 두 번째로 잘한 일이 있어요. 바로 술 안 끊은 거지(웃음). 술은 여전히 즐깁니다. 아무래도 예술가는 자기 파괴적인 구석이 없이는 생존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데, 25도 소주를 매일 저녁 마셨지요. 약속이 없으면 집에서 저녁에 꼭 한 병씩을 따서 한두 잔을 남겼어요. 그렇게 하면 그 정도 아쉬움, 그 정도는 내가 절제했다 하는 뿌듯함이 있잖아요(웃음).”
나는 그림 속을 나와 이곳에서 사는 기쁨을 노래하겠네
“서재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민망한데, 그냥 ‘작업실’ ‘일 방’ 정도로 해두지요. 이 작업실에는 오디오가 필요해요. 음악 들으면서 작업을 많이 하거든요. 6.25 정전 후 폐허에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맞이했는데, 그 폐허에서 시각적으로 볼 게 뭐가 있었겠어요. 청각적인 것, 음악에 맛을 들였지요. 작곡과를 가고 싶었는데 청각 음치? 그런 거라고 해서 마음을 접었어요. 나중에 작곡은 그것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걸 알게 됐지만. 여하튼 오디오 시스템에 큰돈을 들이지는 않지만, 작업하는 방에 음악이 늘 흐르도록 해요.”
시인은 원나라 말의 화가 예찬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했다고 했다. 세상을 사는 기쁨과 고통과 즐거움과 슬픔을, 거기에서 비롯되는 상상력을 다 내다버리고 들어가야 하는 일이었다.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가령 아이들과 어울리며 사는 기쁨을 노래하며 살겠으니, 예찬, 그대는 그곳에서 머무시고 그대의 그림 속에 들어가 살지 못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시게. 그렇게 시인은 이번에 시집 『사는 기쁨』을 내놓았다.
시인은 작가의 이름이나 책 제목에 오타가 날까봐 염려가 된다며 한 글자 한 글자 타이프 한 프린트를 건네주었다. 친필로 교정한 부분까지 눈에 띈다. 모든 상상을 버리고 그림 속에 들어가 절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사는 기쁨을 누리기까지는 이런 조그맣고 사소하고 손 가는 정성이 하나하나 모여야 했던 것일까.
“느낌과 상상력을 비우고 마감하라는 삶의 끄트머리가 어찌 사납지 않으랴! 예찬이여, 아픔과 그리움을 부려놓는 게 신선의 길이라면 그 길에 한참 못 미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간간이 들리는 곳에서 말을 더듬는다. 벗어나려다 벗어나려다 못 벗어난 벌레 문 자국같이 조그맣고 가려운 이 사는 기쁨 용서하시게.” - ‘사는 기쁨’의 마지막 구절, 『사는 기쁨』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일명 '국민 연애시'라고 할수 있는 '즐거운 편지'의 작가.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