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삶을 파괴하는 감정일까요, 아니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열쇠일까요? 황미구 저자는 30년간의 심리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분노를 건강하게 다루고 그것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인간의 감정 중 가장 강력한 분노가 어떻게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실천 전략을 알아볼까요?
30년간의 심리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분노를 통해 진짜 나를 만나는 법'을 제시하셨는데, 이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심리 상담을 오래 하다 보니, 분노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겪는다든지 걸핏하면 분노하는 자신에 대해 자괴감을 호소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각자 개인의 삶 속에서 분노가 너무 파괴적인 영향력을 끼쳤기에 분노라는 감정 자체가 본질적으로 나쁘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다수였고요.
아마도 분노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집착하는 유일한 감정일 텐데요. 분노는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슬픔이나 두려움 또는 우울증에서 유발된 경우가 많습니다. 분노 표출이 심각한 이들을 비난만 할 게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공감과 위로, 상담 치료를 고려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알게 되면 자기 자신도 지키면서 인간관계도 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분노는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다"라고 하셨는데, 이를 일상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지 잘 알아차리면 그곳에 내가 진정 바라던 욕구가 보입니다. 예를 들어, 승진에 누락되어 너무 화가 난다면 ‘나’는 성취에 대한 욕구가 매우 높은 사람이라는 뜻일 수 있지요. 단체 메신저 방에서 친한 친구가 나에게만 하트 표시의 이모티콘을 날려주지 않아 화가 났다면 사랑과 소속에 대한 욕구가 높은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승진을 탈락시킨 상사나 이모티콘을 보내주지 않은 상대에게 화가 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감정이긴 합니다. 그러나 내 욕구가 무엇을 좀 더 바라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 대응은 달라질 수 있지요. 승진에선 누락됐지만 다른 방법으로 성취 욕구를 충족시키고, 이모티콘을 주지 않은 친구가 아니라 다른 인간관계를 개선해서 사랑과 소속의 욕구를 충족하면 됩니다.
분노를 억제하는 것과 표현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어렵습니다. 책에서는 어떤 방법을 제시하셨나요?
분노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멈추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분노에 대해서 건강하게 대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 중에는 널리 알려진 ‘심호흡하기, 명상하기, 잠시 멈춰 생각해보기, 쉬는 시간 갖기, 소설 읽기, 감정일기 쓰기, 분노 감정을 적은 종이를 찢어 버리기, 의사소통하기, 신체활동하기, 용서하기’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들은 연구자들이 여러 연구를 거쳐 분노 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다만 어떤 방법도 화가 난 상태에서 갑자기 적용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분노에 대처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어떤 방법이 자신에게 잘 맞는지 알아두어야 합니다.
한편 ‘감정 정화’를 위해 분노를 한꺼번에 쏟아내면 시원해진다는 생각도 사실과 다릅니다. 분노를 과하게 표출하면 오히려 분노 감정이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축구를 재밌게 관람한 뒤 되려 흥분하는 영국의 훌리건들이 그런 사례입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극단적인 분노 표출 사건들(신림역 사건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런 사건들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력 문제 때문에 ‘사이코패스’ 성향의 사람과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습니다. 우선 ‘사이코 패스’의 특성을 보이는 사람들은 타인이 겪을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을 못하고 죄의식이 없으며, 매우 폭력적이고 분노조절이 잘 되지 않습니다.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능력에 대해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이와 반면에 ‘은둔형 외톨이’는 자기표현이나 자기주장이 적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 보니 사고방식이나 관점이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이고, 과거 마음의 상처 때문에 인간관계를 회피하기도 합니다.
다만, 분노는 단지 감정일 뿐이고,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분노 행동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인, 여성, 약자를 향한 분노 표출은 사회적인 양극화와 권력 불균형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회피와 침묵 속에 문제가 지속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미 드러난 문제보다 감추어져 있는 문제들이 더 많고 더 심각합니다. 따라서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대상자들을 미리 선별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심리 상담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도 절실합니다.
책에서 언급하신 14가지 유형별 분노 중 한국 사람들이 특히 주의 깊게 봐야 할 유형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 사람들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두려움이 선행하는 분노, 침묵하는 분노,슬픔 대신 분노하기, 고통에 기반한 분노, 분노 반추하기, 그리고 수동공격적인 분노 유형에 대해서 특히 관심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한국인의 특성상 체면을 중시하고 명분을 중시하는 경향 때문에, 개인적으로 열등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은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분노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남성과 여성에 대해 기대치가 상당히 다릅니다. 남성이 ‘두렵다, 슬프다, 우울하다’고 표현하면, 그를 매우 나약하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여성들에 대한 성역할 고정관념이 많이 변화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 중에는 분노를 억압하거나 회피하고 침묵하는 경우가 많고, 추후 분노 반추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인 관습에 따라 남성들은 두려움이나 슬픔, 또는 우울한 감정으로 인한 고통을 감추고 분노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여성들은 분노를 느낄 때, 침묵하거나, 시간이 흐른 뒤 분노를 반추하거나 수동 공격적으로 분노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숨겼다고 그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각자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이나 슬픔, 우울한 감정들을 구분하고, 분노가 어디로부터 오는지 잘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이 다른 분노 관련 서적이나 콘텐츠와 차별된 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최근에 상담을 받는 분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심리학 서적이나 자기계발서를 읽고 오십니다. 심리 관련 온라인 콘텐츠도 이런 지식에 도움을 주고요. 이렇게 상담에 참여하는 분들의 의식 수준이 너무 높아져 있기 때문에, “분노일기를 써보세요.”라고 단순한 조언이 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분노일기’가 왜 감정조절에 도움이 되는지 과학적 근거를 설명해드리면 실행에 옮기는 빈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저는 제 책에서 분노를 사전에 예방하거나 조절하기 위한 실천 전략들을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제시하려 했습니다.
*저자 | 황미구
국내 최대 규모의 심리상담센터 헬로스마일의 분당점 원장이며 광운대학교 교육학과 겸임교수다. 서강대학교에서 상담심리 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홍익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에서 정신치료연구 석사,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상담 및 심리치료 철학박사를 수료했다. 한림대학교 심리학과, 한국심리상담연구소, 서울 YMCA, 서울시 문래청소년회관 등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개인 상담과 가족치료 중심의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저서로 『분노는 어떻게 삶의 에너지가 되는가』 『나를 쉬게 하는 연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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