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아이의 마음을 수용해 주세요”
아이가 표현한 마음이 부모의 마음과 같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이해가 안 될 때도 있고, 마음에 안 들기도 해요. 그래도 가장 중요한 대원칙은 아이의 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마음’을 가르쳐야 한다고 오은영 박사는 말했다. 국어 수학 영어와 마찬가지로 ‘마음’ 과목을 만들어야 한다고. 마음을 배우는 수업 시간은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까, 상상하다가 『오은영의 마음 수호대』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살다 보면 너를 뭔가와 비교하게 되는 일이 많을 거야. 어떨 때는 부럽기도 하고 속도 상하겠지. 그런데 샘이 말해 주고 싶은 건, 너는 이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로, 언제나 너는 너로서 굉장히 소중하다는 사실이야. 그건 네가 어떤 조건이든 어떤 상태이든 상관없어. 너는 지금으로도 충분해. 만약 네 마음 안에 부럽거나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그냥 조금 더 노력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그 노력은 네가 소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네가 그 아이보다 약하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란다. (『오은영의 마음 수호대 1』 125쪽)
이런 이야기가 아이 곁에 있다면 어떨까. 내 마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 그 마음을 어떻게 어루만져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을까. 이렇듯 ‘마음 성장’을 돕는 이야기들이 『오은영의 마음 수호대』 안에는 가득하다. 아이들이 집과 학교에서, 부모님과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많은 일들을 살펴보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그리고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준다. 아직 자신의 마음을 분명히 파악하고 전달하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오은영의 마음 수호대』는 든든한 통역사가 되어준다. 양육자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이유다.
만화책을 내신 건 처음이에요.
아이들이 직접 읽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부모님한테 배우는 것도 있지만, 아이들이 직접 보고 배우는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든 책이에요. 처음 기획할 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줄글로 쓰는 방법도 있었지만, 가장 큰 목표가 ‘아이들이 많이 읽게 해야겠다’였기 때문에, 나도 어릴 때 만화를 좋아했으니까 만화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중학생 때 『캔디 캔디』와 『베르사유의 장미』를 정말 열렬히 봤어요. (웃음) 만화도 좋은 내용을 담으면 다른 어떤 책보다 좋은 영향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은영의 마음 수호대』 안에도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들이 나와요. 그 속에서 등장인물이 어떤 마음인지 글과 그림으로 보여주고, 그걸 본 아이들이 ‘맞아, 이럴 때는 그런 마음이 들지’ 하고 배워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다양한 상황 속에는 도전, 탐험, 호기심도 있고 서로 힘을 합쳐서 해결해 나가는 과정과 권선징악의 메시지도 있어요. 재미있게 만들어보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마음’을 주제로 삼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최근 들어서 아이들의 마음을 잘 발달시키는 적극적인 무언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어요. 심지어 저는 마음이라는 교과목이 생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시간표에 국어 사회 체육이 있듯이 ‘마음’ 수업 시간이 있어야 된다고요. 주 1회라도 마음에 대한 공부를 한다면 내 마음도 잘 알고, 내 마음을 잘 알듯이 타인의 마음도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한 개인이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감을 갖고 살아갈 뿐만 아니라 타인과도 잘 지낼 수 있거든요. 마음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으면 알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은 나이 들면 다 알게 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생각해요. 마음도 가르쳐야 합니다. 이번 책에서 마음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나의 마음이 정말 중요하고 그와 똑같이 타인의 마음도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이 편안하게 배우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마음’이라는 과목이 생기면 수업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지네요.
형태는 다양하겠지만, 뭐든 기초부터 배우잖아요.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은 마음과 생각을 헷갈려 하는데, 마음하고 생각은 다른 거거든요. 물론 어떤 일이 벌어지면 그에 따른 생각이 생기기도 하고, 뒤따라 어떤 마음이 느껴지죠. 때로는 어떤 마음을 느끼면 그에 따른 생각이 떠오르고 뒤이어 어떤 행동을 하기도 해요. 행동의 영역과 생각의 영역과 마음의 영역은 다른 거예요. 그런데 우리 문화에서는 대체로 마음을 생각으로 표현해요. 그래서 마음을 잘 못 배우는 것 같아요. 마음을 배우지 못하면 지금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잘 몰라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아이가 두 발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대부분의 어른들은 두 발 자전거를 배울 때는 몇 번은 넘어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넘어지지 않고 배우기는 좀 어렵겠죠. 아이가 잔디밭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어요. 막 울고 아프다고 해요. 그런데 아빠가 다가가서 보니까 별로 안 다쳤어요. 이때 아이가 울고 ‘아파’라고 말하는 게 다 마음인데, 대부분의 부모는 ‘아니야, 안 다쳤어’라고 말해요.
‘괜찮아, 별 일 아니야’라고 하죠.
맞아요. ‘아니야, 별 거 아냐, 그렇게 울 일 아니야’라고 하거나, 아이가 많이 울면 ‘저기 봐, 너보다 어린 동생들도 안 울잖아. 이렇게 울면 형아답지 못해, 용감하지 않은 거야’ 이렇게 표현해요. 그 당시에 아이의 마음은 넘어져서 좀 놀란 거예요. 다치지는 않았지만 놀란 거거든요. 그래서 울어버린 거예요. 마음을 잘 가르치는 부모는 아이가 표현한 마음을 수용해줘요. ‘아이코, 놀랐구나. 다친 것 같아서 놀랐어? 어디 보자. 많이 아프니? 많이 다친 것 같지는 않은데 좀 지켜볼까? 네가 지금 놀란 거야. 넘어지면 놀라지’ 이렇게 해줘야 돼요. 그러면 아이가 ‘지금 내가 느낀 불편한 마음이 놀란 거구나’ 하고 배워요. 그런데 가르쳐주지 않고 ‘아니야’라고 하면 아이의 감정을 부정하는 거예요. 아이의 감정을 수용한다는 건 우쭈쭈 해주라는 게 아니고, 아이가 지금 느끼는 마음/감정 자체를 부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걸 생각으로 바꾸면 안 돼요. ‘생각해 봐, 이게 지금 네가 울 일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표현하면 안 된다는 거죠.
어떻게 하면 마음을 잘 다룰 수 있을까요?
마음을 다룬다는 건 그 마음을 없애는 게 아니에요. 화가 날 때도 화를 잘 다루어야 상대한테 도에 지나치지 않게 잘 표현할 수 있고 화가 해소돼요. 그런 것들을 다루어내지 못하면 불편한 마음은 없어지지 않아요. 마음 안에 남아서 신체 증상으로 바뀌기도 하고, 쌓여 있다가 한 번에 폭발되거나 깊은 우울에 빠지기도 해요. 마음을 잘 다루어내려면 지금 내가 느끼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아야 돼요. 속상함인지, 서운함인지, 섭섭함인지, 불안인지, 알아야 된단 말이에요. 어떤 사람은 불안해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기도 해요. 화와 짜증과 불안은 다른 마음인데, 본인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는 거예요. 불안할 때 ‘나 조금 걱정이 돼’라거나 ‘나 조금 불안해’라고 하면 되는데, 현재 내 마음 상태를 잘 모르니까 그렇게 말을 못하고 화를 내는 거죠. 뿐만 아니라 마음을 적절하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거예요. 적당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과하게 또는 너무 적게 표현하거나 다른 형태로 표현하는 거죠. 불안을 화로 표현한다든가 하는 형태로. 그래서 마음을 배워야 돼요. 그러려면 부모가 일상에서 잘 가르쳐줘야 돼요. 예를 들어서 아이가 졸린데 막 울어요. 그건 잠이 오니까 뭔가 불편해서 짜증을 내는 거잖아요. 그러면 ‘네가 지금 잠이 오는 거야. 잠이 오는 데 바로 잠이 안 드니까 불편해서 그러는 거야. 그래서 짜증을 내는 거야’ 이렇게 설명을 해줘야 돼요. 그러면 아이가 ‘내가 잠이 올 때 짜증을 좀 내는구나’ 하고 아는데, 그런 것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거나 부모가 알려주지 않으면 잘 몰라요.
처음부터 ‘아이와 부모가 함께 보는 책’으로 기획하셨어요. 주 독자층은 아이들이고, 부모는 곁에서 함께 읽는다고 할까요. 아이가 주도적으로 읽기를 이끈다는 점도 좋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부모님이 정말 잘 키우고 똘똘하고 발달이 잘 되는 아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어른만큼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이 책에는 아이들이 빈번하게 겪는 갈등 상황들과 그때 아이들의 마음은 어떤지, 부모님이 어떻게 해주시면 도움이 되는지를 다 담았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자기가 당황스러울 때나 부모님한테 원하는 게 있을 때 이 책을 보여주면서 ‘봐, (오은영) 샘도 이렇다고 말하잖아’라고 한대요. 편안하게 본인의 의견이나 마음을 전달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서 되게 뿌듯합니다. (웃음)
에피소드마다 서로 다른 사건이 등장하는데, 많은 아이들이 고민하는 상황들이에요. 박사님이 상담실에서 많이 접하시는 이야기인가요?
초등학생 정도 연령의 아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상황들인 거죠. 가정이든 학교생활이든, 또래 관계든 선생님과의 관계든, 아주 많은 아이들이 겪는 공통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런 만큼 이런 상황들을 잘 인지하고 이해하고, 이때 아이들이 어떤 마음을 느끼는지를 아이들 자신과 부모님이 아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동생과 다투거나 친구를 놀리는 상황부터 따돌림, 게임 중독 같은 문제도 등장합니다. 특히 따돌림에 대한 에피소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는데요. 자녀의 따돌림 피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부모가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은가요?
아이가 따돌림,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면 그 부모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복잡하고. 안정적으로 차분하기가 되게 어렵거든요. 그런 일을 겪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거의 비슷할 거고, 저 또한 예외가 아니겠지만, 그 다음에 어떻게 하느냐는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내가 어떻게 해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언제나 아이들은 가르칠 대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몰라서 가르치고, 실수해서 가르치고, 잘못해도 가르치고, 심지어 나쁜 짓을 해도 가르쳐줘야 돼요.
유사한 사례를 상담하실 때 어떤 조언을 해주세요?
그런 상황에서 부모가 너무 마음이 아프고 힘들잖아요. 너무 속상하고, 아이가 너무 안 됐고, 정말 찢어지는 마음일 거예요. 그런 내 마음의 정체가 뭔지 알아야 해요. 부모가 그게 잘 파악이 안 되면 내 마음이 불편해서 아이한테 화를 내요. 예를 들어 ‘너 바보야? 왜 그런 일을 당해? 그러고도 왜 가만히 있었어?’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아이는 부모를 절대 신뢰하지 않고, 내가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우리 부모와 의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제일 힘든 건 당사자인 아이 본인이에요. 그런데 이 아이한테 부모가 화를 내면, 아이는 자기가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겠죠. 또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너무 난리를 치는 거예요. 학교에 가서 소리를 지르거나 난장을 치거나, 그러면 아이가 굉장히 난처해져요. 그 일이 끝나고 나서 학교를 다녀야 되는 건 아이 본인이니까요. 정말 조심하셔야 되는 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니까 그 마음을 표출하다가 자칫하면 굉장히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기도 해요. 그러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따돌림 피해를 입은 아이에게 부모가 뭐라고 말해주면 좋을까요?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겪는 건 어른에게도 힘든 일이지만, 아이들은 아직 발달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이후의 아이의 인생에도 영향을 많이 줍니다. 그래서 이 일이 절대로 가볍지 않다는 걸 알고 계셔야 되고요. 아이에게 ‘네가 굉장히 힘들었겠다. 이건 큰일이야. 어른들이 너를 잘 보호하면서 너에게 상처가 있었다면 그걸 잘 회복시켜줘야 돼’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돼요. 이유가 무엇이든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해야죠. ‘어떤 누구에게도 괴롭힐 권리가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괴롭히면 안 된다’라고 말해줘야 돼요. 일단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괴롭힌 아이가 잘못한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아이한테 분명히 해야 되고 ‘이 상황은 어른들이 잘 상의를 해가면서 너희들한테 도움이 되도록, 그리고 네가 상처받은 부분이 잘 회복되도록 애써야 되는 거야’라는 걸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주셔야 돼요. 물론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해야 돼요. 아이 앞에서 너무 흥분하거나 화를 내거나 너무 많이 울면 아이는 ‘내가 이런 말을 해서, 나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은 어른들하고 다르게 지나치게 불필요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아이들이 불필요하게 당황하고 마음이 힘들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입을 닫아버려요.
그럴 때 부모가 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행동이 있다면요?
정말 하지 말아야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너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요. ‘내가 괴롭힘 당했다고 얘기했는데 그때 엄마는 아무 말 안 했어, 아빠도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넘어갔어’ 하고 마음에 남아있는 거죠. 나중에 물어보면 ‘나는 그런 기억 없는데?’라고 말하는 부모가 되게 많아요. 그런 부모라고 자식을 안 사랑할까요? 아니죠, 사랑해요. 그런데 아이들이 표현하는 것에 그리 귀를 기울이지 않는 부모들이 꽤 있어요. 행동은 보이니까 바로 반응하는데, 마음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강력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괴롭힘이나 따돌림 같은 학교 폭력이 있었다고 아이가 이야기 할 때, 거기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가 있어요. 그 다음부터 아이들은 절망해요. ‘내가 손을 내밀어봐야 소용이 없구나’ 하고. 아이들에게 그건 정말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로운 문제인데 그걸 건성으로 듣고 넘어갔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또 나쁜 건요. ‘네가 잘해 봐, 왜 그런 일이 있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 정말 최악이죠.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렇게 말하는 부모도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부모는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본인이 사랑했던 마음만 기억해요. 내가 어떻게 표현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해요.
자신이 했던 말은 기억 못하고, 자녀를 사랑했던 마음만 기억한다고요?
그러니까 ‘네가 잘해 봐, 애들이 그러겠어?’라고 표현한 말은 기억 못하고요. ‘아이가 좀 더 깨달아서 더 열심히 노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라는 것만 기억해요. 본인은 선의로 한 말이었기 때문에 그 사랑의 의도만 기억나요. 그러니까 나중에 아이가 ‘그때 왜 나한테 그런 말 하셨어요?’라고 물으면 ‘내가 언제?’라고 하는 거죠. ‘나는 너 사랑한 것밖에 없다. 평생 허리띠 졸라매면서 나는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으면서 너만 사랑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런 갈등이 지금 대한민국 가정 안에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왜 그런 걸까요?
부모도 자신의 표현 속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 잘 모르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아이가 ‘친구들이 내가 공부 못한다고 놀리고 따돌려요’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듣고 ‘너무 속상하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내 자식을 누가 그렇게 한다니’ 이런 마음이 든 거잖아요. 그런 나의 마음을 잘 모르고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 마음이 한겨울 눈덩이처럼 딱딱하게 뭉쳐져서 아이를 향해 나가는 거예요. ‘네가 잘해 봐, 애들이 너하고 놀자 그러지’ 이렇게. 나중에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내 마음이 어떻게 표현이 돼서 나갔는지 기억을 못하고 ‘난 그때 너 잘 되라고 그랬다’ 하는 거죠. 나의 의도만 기억나는 거예요. 이런 일이 너무 많아요. 부모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몰라서 그래요. 그리고 내가 하는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나의 정서가, 감정가를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을 전혀 안 해봐요. 마음이라는 건 정서 발달이라는 과정이잖아요. 이게 발달이 되도록 아주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계단 올리듯이 올려줘야 해요.
박시연, 오은영 글/파키나미 그림/오은영 기획 | 주니어김영사
『오은영의 마음 수호대』 4권이 곧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새로운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등장인물들이 회장 선거를 거치게 돼요. 새 학기가 되면 모든 아이들의 초미의 관심사잖아요. 회장 선거를 치르면서 아이들 내면 안에 있는 여러 마음이 드러나는데요. 경쟁심이나 이기고자 하는 마음, 욕심, 질투, 공정한 과정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깨달음도 있고요. 선거 결과를 잘 못 받아들이는 일도 생겨요. 거기에서 생겨나는 많은 갈등들도 있죠. 누군가 미워지는 마음도 생기고, 섭섭한 일들도 생기고, 배신감도 느끼고. 어떻게 보면 인간 내면에 있는 날 것 같은 마음들인데, 아이들이라고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거든요. 그런 다양한 마음들을 다루게 돼요.
시리즈가 긴 호흡으로 이어질 것 같아요.
10권까지는 좀 속도를 내려고 해요. 그래야 줄거리도 어느 정도 진행되고, 아이들도 쭉 따라가면서 재미있게 읽잖아요. 지금도 아이들이 후루룩 한 권 읽고 나면 두 달을 기다려야 되니까 미안하기도 하고요. 열 권 정도는 돼야 아이들한테 가르쳐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많이 실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생각은 그렇게 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으면 계속 가는 거죠. (웃음) 인간의 삶이 얼마나 매일매일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얼마나 스펙타클한데, 그런 걸 다 담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마음을 열어 보일 때 부모가 그 문을 닫기도 하죠. 아이의 마음을 듣고 읽어줄 때, 대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이가 표현한 마음이 부모의 마음과 같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이해가 안 될 때도 있고, 마음에 안 들기도 해요. 예를 들어, 별 거 아닌데 아이가 무섭다고 하면 마음에 안 들죠. 조금 더 용감했으면 좋겠고 씩씩했으면 좋겠는데 마음에 안 들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가장 중요한 대원칙은 아이의 마음을 부정하면 안 돼요. ‘뭐가 무서워!’ 이렇게 하지 말라는 거죠. 두 번째는 무시하지 않는 거예요. 별 거 아닌 것처럼 대충 넘어가는 것도 하지 말아야 돼요. 또 주의해야 되는 건, 너무 아이 마음만 떠받들어도 안 돼요. 그러면 자기 마음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 돼요. 아이 마음을 수용하고 존중하고 잘 받아주라는 건 오냐 오냐 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가족들이 외식을 갔는데 아이는 얼른 먹고 집에 가자고 하는 상황이에요. ‘나 다 먹었어, 집에 가, 나 지루해’라고 해요. ‘지루해’도 감정인데, 아이 마음만 떠받드는 사람은 ‘그래, 알았어. 여보. 우리 그만 먹고 가자’라고 해요. 어떤 사람들은 ‘애 자꾸 울리지 마라’ 하면서 집에 가자고 하고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가 지루하다고 하면 ‘그렇지, 네가 지금 다 먹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까 지루할 수 있어’라고 하는 게 수용해주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가르쳐 주셔야 돼요. ‘그럴 수 있는데, 그런데 우리도 밥은 먹어야지. 엄마 아빠도 배고프단다. 지루한 건 알겠어. 그런데 기다려. 어쩔 수 없어. 기다려야 해’라고 말해줘야죠. 너무 아이의 마음만 떠받들면 아이가 타인의 마음을 이해를 못해요. 자기 마음밖에 몰라요. 그러니까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요. 그런 상황에서 아이한테 ‘야, 시끄러워!’ 이렇게 하는 건 아이 마음을 부정하는 거예요. 아이가 표현한 것 자체가 나와 의견이 달라도, 또는 내 마음 상태하고 달라도, 알겠다고 하는 게 수용하는 거예요. ‘네 마음이 그렇다는 건 내가 들어서 알겠어’라고, 동의가 되든 안 되든 ‘알겠어’라고 하는 게 부정하지 않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가르쳐주셔야 돼요. ‘그런데 이건 이런 거야’라든가 ‘이건 어쩔 수 없어, 기다려야 해’라든가 ‘참아야 해’라든가. 아니면 ‘그래, 이건 슬픈 일이 맞아. 눈물이 나? 슬플 때는 우는 거지’라든가. 이렇게 다음 단계에서 적절하게 알려주셔야 돼요. 그러면서 타인의 마음도 같이 알려줘야 해요. 아이의 마음만 너무 떠받들면 안 됩니다.
부모의 마음을 아이에게 전달하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부모 또한 ‘나도 마음이 이래’라는 걸 표현할 수 있는데요. 다만 정도가 너무 넘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도 화나거든요. 그럼 화난다고 말할 수 있어요. ‘네가 이러면 우리도 난처하고 화나’라고 할 수 있지만, 노여워한다든가 분노한다든가 그 정도 수준까지 가면 안 되겠죠. 희로애락을 적당한 선에서 표현하는 건 필요하다고 봐요. 화가 나는데 아이 앞에서 그냥 웃는 건 적절하지 않거든요. 되게 슬픈 일이 있고 뭔가 가정 내에 큰일이 있어서 엄마가 울고 있는데 아이가 와서 ‘엄마 울어요?’ 그러면 ‘아니야’ 하고 웃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아요. ‘사실 엄마, 아빠랑 좀 다퉜어. 네가 이렇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라고 말해주면 돼요. ‘아빠 때문에 울어요?’라고 물으면 ‘아니, 그건 아니고 상황이 좀 속상해. 그래서 우는데, 네가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니야’ 이렇게 말을 해줘야 아이도 우리 집에 어떤 상황이 생겼다는 걸 느껴요. ‘아니야, 아니야’ 라고 웃어버리면 적절하지 않아요.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현해야 아이도 배우죠. 다만 그 정도가 너무 수위를 넘지 않도록 해야 되고요.
부모 세대가 자신이 아이일 때 받았던 교육과, 지금 부모로서 내 아이에게 해줘야 할 교육 사이에 괴리가 큰 것 같아요.
맞아요. 많이 그렇죠.
그래서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이 받은 그대로 답습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쉬울 것 같습니다.
굉장히 오랜 동안 우리 삶에 면면이 스며들어 있는 것들을 생활 문화라고 하잖아요. 그걸 변화시키기가 쉽지 않아요. 그리고 익숙한 건 대부분의 사람에게 편해요. 그게 좋고 나쁘고 옳고 틀리고와는 무관하게, 익숙하기 때문에 편해요. 그래서 뭔가를 바꾸자고 하는 것에는 저항이 커요. 오랜 동안 우리한테 익숙해져 있는 생활 문화, 자녀 양육 문화라고 볼 수 있죠, 저는 그런 걸 변화시키고자 했던 것 같아요. 방송도 그렇고 책을 쓰는 것도 그렇고, 신문의 칼럼이라든가 유튜브도 그렇고요. 이런 활동을 계속 하는 이유인 것 같고요. 앞으로도 해야죠.
이번 달에 MBC에서 새로 방영되는 프로그램 <심장을 울려라 강연자들>의 MC를 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강연도 하신다고요.
네, MBC와 같이 오랫동안 공들여 기획했는데요.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생각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심히 일하셨던 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건 되게 중요할 일 같아요. 이 강연에는 청중이 있기 때문에 방송에 나가는 시간보다 한 3배 정도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녹화가 진행되는데, MC가 관객들과 강연자 분들, 시청자 분들한테 도움이 되도록 전체를 잘 끌고 가줘야 돼요. 단순히 사회를 보는 게 아니라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끌고 가줘야 되는 게 저의 역할인 거죠. 어깨도 무겁지만, 아주 보람 있고 재미있어요. 그 무겁지 않게 진지하면서 아주 뜨겁거든요. 강연하시는 분이나 관객 분이나 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에요. 어떻게든 나라는 한 사람, 나의 주변, 나의 이웃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잘 살아가려는 열정이 그대로 느껴져요. 그러니까 되게 좋아요.
그렇게 바쁘신 중에도 글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세요?
글 쓰는 게 저한테는 부담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줄이는 과정이죠.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요즘 화두로 붙들고 계신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감정에 대해 자주 생각하세요?
요즘 너무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세상의 '억울이'들을 위한 글을 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억울함이라는 감정 또한 당연히 있어야 하는 감정인데요. 예전보다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일상의 어떤 사건들에서 유발되는 감정 중에 억울함이 되게 많은 거죠. 그래서 요즘 억울함에 대해 책을 한 권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더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최근에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향년 94세이셔서 많은 사람들이 호상이다 오래 사셨다 말했지만, 자식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 일을 겪으면서 인간의 마음에 대한 탐색을 더 많이 하게 됐어요.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그러면서 한편으로 ‘참, 그래서 인간이 귀하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부모 자녀 관계의 소중함을 더 더 뼈저리게 느꼈고요. 요즘 아이 키우는 거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들 많이 하시잖아요. 사랑하는 대상이니까 원래 쉽지 않아요. 이 ‘어렵다’라는 게, 골치가 아픈 게 아니라, 잘 키우려고 마음을 쓰는 거죠. 부모 자녀의 소중한 인연은 뭐라고 말로 표현을 못 해요.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너무 그립고 너무 좋았던 시간들이 생각이 나고 감사하고, 그런 생각이 들어요. 누가 한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해줄까. 자식이니까 그런 거죠. 사랑은요, 돈이 안 들어요. 사랑해주는 건 돈 안 들어요. 그리고 자식을 사랑해 주는 일에 그렇게 시간이 많이 안 들어요. 예뻐해 준다는 게 지나갈 때 격려해주고 쓰다듬어주고 또 사랑하고 예뻐하면서, 잘못된 길로 갈 때는 딱 앉혀놓고 ‘너를 사랑해서 이건 절대 안 된다’라는 걸 말해주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들이 잘 배워요. 그렇게 자식을 사랑하고 키우면 부모를 그리워하고 존경하면서, 힘들 때 그 마음을 붙잡고 다시 힘을 얻어서 살아가거든요. 그러면서 내가 부모가 됐을 때 또 자녀한테 그렇게 해요.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너무 사랑해서 마음을 쓰는 과정이니까 힘이 들 때도 있지만, 마음을 쓰고 애를 쓰는 게 어떨 때는 행복이기도 해요. 그런 말씀도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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