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이후, 나를 다독이는 법
『당신 없는 세상은 여전히 낯설지만』 한수정 저자 인터뷰
사랑하는 남편과 이별한 후, 가장 아프고 힘든 사람은 나임을 스스로 인정하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한 느낌입니다. (2021.11.11)
같은 하늘 아래에서의 이별조차도 언제나 아프고 슬펐다. 하물며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사별은 오죽할까. 남편과의 사별은,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면 영원히 경험하고 싶지 않은 아픔이었다.
사별로 인한 아픔이 큰 건 당연한 일이다. 아파하는 것이 당연하다. 커다란 아픔일지라도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그렇게 매일 겪어내다 보면 그 아픔은 더 이상 낯설거나 특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적응이 되면 무뎌질 것이고 무뎌진 후에는 아픔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괜찮아질 것이다. 나 역시 숱한 시련을 경험하고 아파하며 아픔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40년 인생을 살면서 겪은 고난 중 가장 컸던 남편과의 사별이라는 사건, 그로 인한 아픔을 받아들이고 또 이렇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이 책 속의 한 구절이라도 이별로 힘들어하는 당신, 끝이 없어 보이는 시련에 지친 당신, 죽음을 생각할 만큼 고통 속에 있는 당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당신, 스스로 옥죄는 욕심으로 괴로운 당신의 마음에 닿기를. 마음에 닿은 그 작은 위로가 잔잔하게 퍼져 차갑게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내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한수정 작가님 안녕하세요. 먼저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당신 없는 세상은 여전히 낯설지만』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이 책은 사별의 상처로 인한 내 마음을 제대로 마주 보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스스로 위로하고자 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이 원고는 사별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되는 건 아니었고, 힘들 때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내가 찾은 나만의 위로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어요.
그런데 탈고한 후 고민에 빠졌어요. 짤막하게 언급했던 사별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풀어내고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 제대로 이별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제대로 내 마음을 위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고민 끝에 반년 넘게 써온 원고의 방향을 재정비하기로 했어요.
결국 원고를 재정비하면서 덮어두느라 급급했던 사별 후의 상처를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외면하던 아픔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니 제대로 된 이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픔은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마주 보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나의 아픔을 위로하고자 쓴 이 책이 누군가의 아픈 마음에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써 내려갔던 생각이 납니다.
사별의 아픔을 극복하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노력이 있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갑작스러운 이별 이후 무엇이 작가님을 가장 힘들게 했고, 또 어떤 마음 혹은 태도가 고통을 이겨내는 데 가장 도움이 되셨나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픔을 덮어두지 않고 제대로 마주 보고 인정했을 때 비로소 아픈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했어요. 이 세상에서 갑작스러운 남편과의 이별 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는 힘들어도 힘들지 않다는 최면을 걸며 살았어요. 그리고 그 최면이 통했는지, 스스로 제가 생각보다는 덜 힘들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스스로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두 아이의 엄마이다 보니, 두 아이가 아빠의 부재를 느껴 마음 아파하는 순간에 남편이 미울 만큼 힘들었어요. 무엇이든 다 해줘도 아깝지 않은 두 아이가 졸지에 아빠 없는 아이들이 되어, 채울 수 없는 결핍을 가진 아이들이 된 것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 순간에는 남편을 원망했고 원망하다 보면 어느새 남편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져 괴로웠어요. 남편의 죽음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그의 운명이었다고 결론 내리니 자책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아픔이 몰려오는 순간마다 아픈 마음을 외면했고, 내 잘못은 없다며 합리화했고, 시간에 그저 맡겨보기도 했고, 일상 속 설렘이나 행복을 찾으며 나름 그 아픔을 이겨냈지만, 결국 제대로 아픔을 치유하기 시작했던 건 아픈 제 마음을 제대로 마주 본 이후였어요. 사랑하는 남편과 이별한 후, 가장 아프고 힘든 사람은 나임을 스스로 인정하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한 느낌입니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분들 중 다수가 자신의 아픔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픔, 상처를 외면한 채 살아갈 때의 부작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아픔이나 고통이 없는 삶이기만을 바랐던 적이 있어요. 사는 건 어쩌면 고통의 연속이라는 말이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크고 작은 고난이 끝없이 일어나는데, 불가능한 바람이었죠.
그 이후에 저는 아픔을 덮어두기만 했어요.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면 너무 아프니까요. 아픔과 상처를 가려버리면 당장은 아프지 않은 것 같았지만, 제대로 치유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제나 마음에는 불안이 있었습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미리 걱정할 정도로 불안은 제 마음속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사별 후 아파하던 어느 날, 저를 괴롭혔던 불안의 원인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채 마음속에 쌓여있는 아픔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픔을 제대로 보고 인정하고서야 비로소 마음속에 쌓였던 상처가 회복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조금은 덜 불안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본문 중 ‘그를 부정하고 미워하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사랑하기로 함으로써 제대로 이별할 수 있게 됐다’는 구절이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님에게 사랑과 이별이란 무엇인가요?
사랑, 그 의미는 저에게 시기마다 다르게 다가왔어요. 어릴 적 나에게 사랑은 엄마 자체였어요. 엄마가 나에게, 내가 엄마에게 주는 따뜻한 그 마음, 감정이 바로 사랑이었죠. 편안하고 포근한 안식처였기에 다른 무엇보다 소중했고 소중함이 깨질까 봐 늘 걱정되는 엄마, 어린 나에게 사랑은 곧 엄마였어요.
자라면서 사랑은 나에게 설렘이었다가 아픔이었다가 안정감이었어요. 간질거리는 두근거림이었고, 이뤄지지 않거나 지켜내지 못하는 아픔이었어요. 불안정한 반쪽이 온전하게 채워지는 안정감이었어요.
지금 나에게 있어 사랑은 건강하게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에요. 따뜻함, 포근함, 설렘, 안정감은 이제 없어도 괜찮아요. 그저 내 옆에 이렇게 있는 것만 봐도 뭉클하고 귀한 이 마음이 지금 나에게는 사랑이에요.
이별은 언제나 아픔이 따라오는 것이기에 이 세상에 없기를 바라지만, 그저 바람일 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별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별은 삶 속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제는 완벽한 이별을 준비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는 과정에 서 계시는데요. 요즘 작가님에게 가장 행복을 주는 일, 존재는 무엇인가요?
요즘 저에게 가장 큰 힘, 행복을 주는 건 독자들과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제가 글로 마음을 풀어내고, 그 글을 읽고 저에게 글(후기)로 다시 마음을 전해주시는 소통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큰 힘이 되더라고요. 제가 쓴 글로 위로받고 용기가 생겼다는 말에 저는 그 이상의 위로를 받고 행복을 느끼고 있답니다. 저는 독자님들께 ‘우리는 마음이 통하는 사이’라고 해요. 마음이 통한다고 느낄 때, 설명할 순 없는 따뜻한 에너지가 생겨요. 그래서 이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같은 사별의 아픔을 겪은 분들을 비롯하여 『당신 없는 세상은 여전히 낯설지만』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같은 사별의 아픔을 겪은 분들께는 섣불리 어떤 말을 전하기가 쉽지 않아요. 섣부른 저의 위로가 아픔을 건드리게 될 수도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에요. 그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렇게 아픔을 이겨내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독자분들에게는 우선 이 책을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드리고 싶어요. 죽음이라는 것이, 그리고 그로 인한 사별이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고 그만큼 가까이 있는 것이지만 굳이 그걸 미리 알고 느끼고 싶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저 또한 그랬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해주시고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책 읽기를 망설이고 계신 분들께는 이 책이 사별 후에 저의 생각이나 마음을 담은 글이지만 꼭 슬프고 어둡기만 한 건 아니라고, 슬픔을 품고는 있지만 희망과 행복도 함께 품은 글이니 망설이지 말고 읽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책을 읽으며 슬픔을 느끼시겠지만 다 읽고 책을 덮을 때는 따뜻한 무언가 마음에 남을 거라 믿어요.
작가님의 새로운 첫걸음을 응원합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설렘’이라는 단어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설렘’ 출판사와 인연이 닿아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언제나처럼 매일 글을 쓸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밤에 잠이 드는 당연한 일과처럼 매일 글을 쓸 것입니다.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생각을 정리합니다. 아픔을 흘려보냅니다.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렇게 쓴 글이 다른 사람에게도 위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매일 글을 쓰며, 생각하고, 스스로를 위로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쓴 글을 모아 또 한 권의 책을 쓰겠죠. 꾸준히 책을 쓸 계획이고, 그 책이 독자들의 마음에 닿아 따뜻한 위로를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한수정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 바로 위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사별 후, 글을 쓰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를 위해 쓴 글을 읽고 사람들이 위로받았다고 했습니다. 위로받았다는 그 말이 도리어 내게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사별의 아픔을 달래고 이제는 행복을 그리며 살고 있다. 글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을 주고받는 것이 좋아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쓴다. 슬픔을 품은 이 글이 이별로 차가워졌던 마음에 잔잔하게 퍼져 따뜻한 위로를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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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는 세상은 여전히 낯설지만, 나는 어제를 딛고 나아가 보려 합니다. 당신이 불어오는 계절에 웃는 나로 설 수 있도록 같은 하늘 아래에서의 이별조차도 언제나 아프고 슬펐다. 하물며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사별은 오죽할까. 남편과의 사별은,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면 영원히 경험하고 싶지 않은 아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