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이름 뒤 짠내 나는 현실, 저만 이러고 사는 거 아니죠?
『누구나 한 번쯤 계단에서 울지』 김나랑 저자 인터뷰
저 어제도 울었어요. 울지 않는 인생이란 불가능 하잖아요. 우리 모두 아픈데 웃으며 출근해요. 그 생각을 하면 덜 외롭더라고요. (2020.12.08)
《보그》 코리아 피처 에디터 김나랑이 거침없이 써 내려간 일과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에세이 『누구나 한 번쯤 계단에서 울지』로 출간됐다. 책 속에는 삼십 대 끝자락에 서 있는 평범한 어른의 일상과 ‘할머니 화보’를 기획한 베테랑 에디터로서의 이야기까지 솔직담백하게 담겨 있다. 화려한 조명과 명품이 주는 환상 속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 속 직장인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먼저 책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랜만에 두 번째 책을 내셨어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그리고 첫 번째 책 『불완전하게 완전하게』와 이번 에세이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주말마다 집 근처 카페에서 원고를 썼습니다. 글을 쓰다 울기도 했어요. 나, 꽤 여러 일이 있었구나. 주변에서 솔직하다고, 나도 그랬다고 공감을 해주셔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첫번째 책 『불완전하게 완전하게』는 5개월간의 남미 여행을 담고 있어요. 직장에서 번아웃 되어 수술을 받았어요. 퇴원 후 한국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죠. 그곳이 남미였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계단에서 울지』는 이국을 꿈꾸기 보다는, 한국에서 자리 잡기 위해 애써온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싶었어요. 부침과 아픔도 많았지만 2020년까지 한국에서 이렇게 살아내는 우리가 자랑스러워요.
‘누구나 한 번쯤 계단에서 울지’라는 책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제목을 짓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누구나 한 번쯤 회사의 비상계단 혹은 화장실에서 울지 않나요?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한때 저만 그런 줄 알고 외로웠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에디터’는 화려함 속에서 일하는 직업이라는 환상이 있는데, 작가님께서도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에디터에 대한 환상이 있었나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박지윤의 ‘환상’이란 노래가 나왔어요. 그 즈음 잡지를 참 많이 봤어요. 이전까지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글 쓰는 직업 중에 밥벌이가 가능하고, 이런저런 경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디터’란 직업을 골랐죠. 일하면서 몰랐던 세계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었죠. 하지만 잦은 야근으로 상반신 마비가 올만큼 쉽지 않았답니다.
책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기획하고, 열심히 글을 쓰는 모습이 담긴 내용들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욕망의 냉장고’ 내용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도 냉장고 없이 살기를 실천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유행 팔로워’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제가 여러 유행은 따라하는데 또 오래 못 갑니다. 하하. 이사한 집에 150리터 냉장고가 ‘옵션’으로 있었어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오케스트라 수준인 낡은 냉장고죠. 시끄러워서 없애고 싶지만 ‘옵션’이어서 불가능하네요.
제가 ‘핫하지 않은 사람’이라 ‘핫한 아이템’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세상의 흐름을 알려주는 미디어들도 꾸준히 살피지만 결국 모든 것은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에서 다루는 순간, 그것의 신선도는 한 차례 떨어지거든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만나면서 매력적인 아이템을 발견하려고 해요.
《보그》 9월호, 일명 ‘할머니 화보’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화보 작업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일이 있었나요?
‘할머니 화보’는 섭외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근 100세의 할머님 8분을 찾고 소통하고 만나 뵙는 자체가 조심스러워서 몇 번이나 자기 검열을 했는지 몰라요. 할머님들께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끼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근 두 달을 준비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다행히 많은 독자분들께서 좋아해주셨죠. 에피소드라면, 사무실에서 청력이 좋지 않으신 할머님들과 통화하느라 큰 소리를 내야 했어요. 주변 동료들이 시끄러웠을 겁니다. 할머님과 헤어질 때는 늘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아쉬워하시며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대문 밖까지 나오시던 모습이 생각나 때때로 마음이 아립니다.
앞으로 작가님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두 번째 인생의 고민을 여전히 하고 계신가요?
이 직업을 사랑하지만, 하나에 매몰되고 싶지 않아요. ‘나’를 발전시켜서 여러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요. 웹소설도 쓰고, 1인 출판사도 운영하고, 취향과 관련한 사업도 하고 싶어요. 여가에 있어서는 하고 싶은 놀이를 미루지 않으려고 해요. 부끄럽지만 이제야 운전면허를 따서 서핑 로드 트립을 다니려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여러분도 비슷한 생각을 하실 것 같아요. 앞날이 불확실하니 바람을 미루지 말자. 욜로와는 다른 개념인 것 같아요. 내일이 없는 것처럼 흥청망청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일상에 최선을 다하되, 내가 좋아하는 것들 또한 놓치지 않는 거죠.
계단에서 울었던, 지금도 울고 있을 독자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신다면?
저 어제도 울었어요. 울지 않는 인생이란 불가능 하잖아요. 우리 모두 아픈데 웃으며 출근해요. 그 생각을 하면 덜 외롭더라고요.
*김나랑 스물다섯에 첫 직장에 들어가 이직, 퇴사, 입사를 15년간 반복했다. 현재 <보그> 코리아의 피처 에디터다. 심신이 망가졌을 때 배낭을 메고 남미로 떠났었다. 땀과 물, 모험, 고양이, 여행을 사랑한다. 직장 생활은 힘들지만 일에는 진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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