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은 “아이 없는 삶, 똑같이 존중받아야 해요”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최지은 저자 인터뷰
많은 여성이 점점 기존의 틀에 균열을 내고 있는 것 같아요. 한 인간으로, 나 자신으로 존중받기를 원하며 다양한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그에 대해 말하는 방식으로요. (2020.09.04)
결혼과 출산이 동의어로 여겨지는 때는 지났다고 하지만, 결혼한 자녀를 둔 부모와 주변인들은 출산을 약속된 일처럼 기대하고, 결혼한 당사자까지도 마음에 얼룩처럼 달라붙은 ‘아이’라는 단어를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합의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배우자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내심 불안하고, 결혼은 사방의 공격이라더니, 시부모의 압력과 내 부모의 기대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스럽기만 하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는 이런 혼자만의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같은 무자녀 여성들 17명을 만나 (무자녀 여성들에게 가장 쟁점적이고 중요한) 32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책이다. 여성으로서 대중문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해주고, 여성의 다양한 이야기를 써온 최지은 작가는 무자녀 기혼자이다. 앞으로도 아이가 없을 예정이지만, ‘앞으로도’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할 때는 늘 조금 망설이게 된다. 작가는 “100%의 확신보다 흔들림에 관한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 책을 집필했다. 최지은 작가로부터 한국 사회에서 무자녀 여성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각기 다른 상황과 입장을 가진 딩크 여성 17명을 만나, 사적인 이야기를 아주 깊게 나누셨다는 게 정말 대단합니다. 작업 시작부터 과정, 마무리까지 결코 간단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 17명을 어떻게 만나시게 되었는지, 또 섭외하시기까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지도 듣고 싶어요.
가능하면 제가 원래 알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서울에 사는 프리랜서인 저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혹시 주위에, 결혼했지만 아이 안 낳기로 한 여자분 있나요?”라고 물어봤죠. 그렇게 해서 소개받은 분도 있고, 우연히 알게 된 분도 있어요. 제가 한 여성단체에서 진행한 성폭력 피해자 전문 상담원 과정 수업을 들었는데, 어느 날 지하철을 함께 탄 수강생 한 분이 아이 없이 살기로 한 기혼자시라는 거예요. 연락처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1년 뒤에 인터뷰하고 싶다고 전화드렸더니 기꺼이 받아주시며 딩크인 친구도 소개해주셨어요. 의외였던 경우는, 제가 이런 책을 준비한다는 얘기를 들은 형부가 지인의 배우자를 소개해주신 일이었어요. 언니네는 아이가 둘이고 형부는 저희에게 종종 ‘아이가 있으면 참 좋을 거다’라고 하셨던 분인데 선뜻 도움을 주셔서 놀랍고 감사했죠.
작가님께선 “내가 느끼는 흔들림이 나만의 흔들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집필하시게 됐다고 말씀하셨는데요. 17명 인터뷰를 하시면서 새삼 깨닫게 된 부분이 있다거나, 새롭게 다짐하게 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여성들이 모두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게 가장 의미 있었어요. 제가 책에서 인용한 엘리자베스 길버트(『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저자)의 글 중에 “세상에는 세 부류의 여자가 있다. 어머니의 운명을 타고난 여자, 이모의 운명을 타고난 여자, 그리고 아이로부터 반경 3미터 이내에 있어서는 안 되는 여자”라는 표현이 있거든요. 저는 아무래도 3번에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인터뷰 참여자 중에는 ‘좋은 이모’에 가까운 분들도 많았어요.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울 계획은 없지만, 친구나 이웃의 아이를 잘 돌봐주거나 세상의 아이들 전반에 애정과 책임감이 있는 분들이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이 “딩크 여성뿐 아니라 20~40대 여성 모두를 위한 책이다. 출산과 비출산, 육아에 대한 모든 문제를 생각해보게 한다”라고 했는데요. 여성의 권리에 대한 논의는 많이 되고 있지만, 세부적인 주제를 떠나 여전히 ‘여성들이 목말라 하는 것’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오랫동안 여성에게 기대되고 요구되었던 삶의 방식과 형태가 있다고 생각해요. 외형부터 내면까지, 여성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덕목’이 정해져 있고 딸·부인·며느리·엄마로서 행해야 할 의무도 많았죠. 여성이 어떤 삶을 원하고 무엇을 성취하든 우선은 그 의무를 다해야만 인정해주었고, 그러지 않으면 결핍이 있거나 불완전한 존재처럼 취급했어요. 하지만 많은 여성이 점점 그런 틀에 균열을 내고 있는 것 같아요. 한 인간으로, 나 자신으로 존중받기를 원하며 다양한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그에 대해 말하는 방식으로요.
출산과 양육은 대단히 개인적인 영역의 문제인데, ‘왜’ ‘유독’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민감하게 반응하고 간섭하는 것일까요? 또 무례한 소리들에 대처하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다면요?
많은 사람이 경험한 일일수록 누구나 말하기 쉬운 주제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함정이죠. 그리고 다수가 출산과 양육을 선택하기 때문에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은 뭔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낮춰 보는 경향이 생기지 않나 싶어요. 비단 비출산 문제가 아니더라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느끼거든요. 사실 저는 무례한 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이 별로 없고, 무례한 댓글은 가능한 한 읽지 않고 넘깁니다. 그것이 의미 없는 말이라도 상처가 되고 괜한 에너지를 쓰게 만드니까요. 그리고 이건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북토크 때 김이나 작사가님이 하신 말씀인데요, 무례한 말을 하는 사람을 2초 정도만 빤히 바라봐도 상대는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걸 깨닫고 머쓱해 한다고 해요. 물론 처음엔 그 2초를 견디기 어렵지만, 하다 보면 괜찮아진다고 합니다.
아이를 안 낳을 거라고 했을 때, “그럴 거면 왜 결혼했어?”라는 질문은 정말 흔한 질문인 것 같아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결혼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두 사람이 함께 지낼 작은 공동체를 만드는 게 결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이 공동체는 애정을 기반으로 하지만 경제 공동체이기도 하고 법과 제도 안에서 안정성을 꾀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아주 중요하죠. 다만 그 당사자들이 꼭 여성과 남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누구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시대가 변했고 삶의 형태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으니 이제 결혼을 넘어 생활동반자법 제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결혼하기 전에는 ‘온전히 나’에 집중하고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잘 알던 여성도, 결혼하는 순간 나보다는 아내, (예비)엄마, 누군가의 며느리나 가족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누르고, 자신의 일부를 지워놓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 문제에 있어서도 많은 걸 고려하면서 고민하고 타협하는 것 같고요. 결혼한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꼭 자주 되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요?
모든 여성이 같은 삶의 조건하에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한데요. 저는 여성들이 불필요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엇을 ‘하지 않는’ 것에 과도하게 자기검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특히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부당한 경우가 너무 많으니 의식적으로라도 쳐내야 해요. 타인의 요구는 그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지 내가 다 들어줘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나의 존엄성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게 중요해요. 항상 자신을 중심에 놓고 ‘나는 지금 어떤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에 관해 살피며 행동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딩크 여성들을 공격(?)하는 온갖 무례한 사람들과 오지라퍼들을 향해 하시고픈 말씀이 있다면요? 또 이런 무례함이 난무하는 사회 속에서도 우리가 이것만은 꼭 기억하고 살자, 그럼 ‘나답게 나아갈 수 있어!’ 하는 게 있다면요?
책에 쓴 말인데, “무자녀 부부에게 간섭하고 훈수 두는 사람들은 이쯤에서 좀 눈치채주길 바란다. 상대에게 당신은 속내를 나눌 만큼 가까운 사람이 아니고, 당신의 의견에는 별다른 가치가 없으며, 상대 역시 당신을 보며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참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게 전부고, 이제는 정말 알아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른 무자녀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각자의 자리에서 너무 외로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거예요. 아이 없이 산다는 것은 중요한 선택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규정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우리에게 지금 존재하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채워나갈지는 각자에게 또 다른 선택이 되겠죠. 다만 저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저는 큰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다른 분들에게도 그러길 바랍니다.
*최지은 재미있는 이야기와 멋진 사람들의 세계에 다가가고 싶어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매거진 t〉, 〈아이즈〉 등에서 10여 년간 대중문화 기자로 일했다. 언제나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늘 뜻대로 되지는 않았고, 2015년 이후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여성으로서 한국 대중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 고민하다가 『괜찮지 않습니다』를 썼다. 함께 쓴 책으로는 『을들의 당나귀 귀』와 『페미니즘 교실』이 있다.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하면 ‘느림과 미룸’이지만, 여성의 이야기를 읽고 듣고 쓰고 전하는 일만큼은 계속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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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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