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엄마 편을 들어보아요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저자 인터뷰
언제나 제 곁에 함께일 것 같았던 엄마가 돌아가신 뒤 제 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흐르는 듯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의 시간을 사는 듯 보였겠지만 사실 제 안의 시간들은 꿈과 현실이 뒤섞이듯 늘 몽롱하고 혼곤하게 흐르고 있었어요. (2019. 05. 29)
한 여인이 있었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이였고 아내였고 엄마였던 그녀는 여성이었고 장애인이었고 아픈 몸으로 살았다. 사회적 최약자였던 여인의 이름은 최정숙. 딸들은 여인을 ‘최 여사’라 불렀다.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는 엄마 살아생전 한 번도 엄마 편을 들지 못했던 아이가 커서 기어코 엄마 편을 드는 에세이다. 엄마를 잃고 난 뒤에 쓰는 절절한 사모곡이며, 오랜 우울증으로 침잠하던 엄마의 생을 두레박 긷듯 끌어올리는 노래며, 자살 유가족으로서 죽음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섣부른 희망 대신 저자가 내미는 것은 함께 우리네 엄마를 기억하고 기록하자는 악수다.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는 정숙 씨의 음력 1주기에 맞춰 출간됐다. 출간 일주일 째, 독자들의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엄마의 부재를 위로받고 추억하게 되네요. 엄마의 기억을 선물 받은 느낌이에요.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엄마는 항상 저같은 사람한테서 어떻게 이렇게 착하고 훌륭한 두 딸이 났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를 읽으면서 ‘전 엄마를 이렇게까지 깊이 알고 이해하고 있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기억들을 되새기지 않고 그냥 날려버리는 건 아닌지… 이 책을 읽고 반성했습니다. 진짜 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이 책을 통해 배웠어요. 작가님 덕분에 지혜를 배웁니다.”
책의 구성이 신선했어요. 1부는 믿기 힘들 정도로 현실 같지만 휘발되는 꿈속에서 엄마와 딸이 조우하며 나누는 그리움이 담겨 있죠? 2부는 현실로 돌아온 딸이 그동안의 엄마를 기억하며 기록한 단편들이 묶여 있고요. 마지막 3부는 엄마 최정숙 씨의 인생 전반을 다루고 있는데 마치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구성은 이 책을 편집해주신 편집자님의 아이디어였어요. 제가 그동안 써 둔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시고 지금의 구성처럼 엮어보면 어떨까, 제안해주셨지요. 결과적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책이 된 것 같아 저 역시 만족합니다. 기존 에세이들에 피로감을 느끼시는 독자들께 신선함을 줄 수 있다면 좋겠고요.
저는 꿈을 자주 꿉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는 매일 밤, 엄마를 꿈속에서 뵙길 희망했어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가장 힘들었던 게 더 이상 엄마를 만질 수 없단 거였어요. 평소에 엄마와 스킨십이 잦았던 저는 늘 엄마를 끌어안거나 볼을 부비거나 했었거든요. 그런데 돌아가신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엄마가 제 꿈에 나오시기 시작했어요. 꿈에서는 엄마를 만질 수 있었습니다. 엄마를 감각하는 것, 제가 가장 그리워했던 일이 꿈에서 이루어지니 참 좋았어요. 평일에는 출근길 마을버스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꿈을 기록했어요. 꿈이란 게 붙잡아두지 않으면 금방 휘발되더라고요. 주말에는 아침기도처럼 온 마음을 다해 꿈을 기록하는 게 일과였습니다. 그런 시간에는 엄마가 꼭 제 곁에 함께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기록을 멈출 수 없었어요.
언제나 제 곁에 함께일 것 같았던 엄마가 돌아가신 뒤 제 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흐르는 듯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의 시간을 사는 듯 보였겠지만 사실 제 안의 시간들은 꿈과 현실이 뒤섞이듯 늘 몽롱하고 혼곤하게 흐르고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엄마가 등장한 꿈을 기록하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적고, 어릴 때 써둔 엄마의 생(生)에 대한 글을 매만졌어요. 엄마의 빈자리를 쓰다듬는 일,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1년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게 다였고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경계를 넘나드는 책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요?
엄마가 돌아가신 뒤 저는 부쩍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됐습니다. 내 곁에 있던 가장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자 죽음이라는 게 그리 멀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한국사회에선 죽음에 대해 말하는 걸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죽음은 늘 삶과 함께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삶까지 생각하는 거나 다름없죠. 제가 이 책의 프롤로그에도 썼듯 삶과 죽음은 늘 그렇게 겹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고 애도하고 엄마에 대한 기억을 낱낱이 훑을 때, 저는 비로소 진정한 죽음에 대해서도 또 진정한 삶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어요. 이 책이 꿈과 현실,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에서 겹쳐지듯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를 읽으시는 독자들, 독자들의 어머니, 여성들, 저, 그리고 정숙 씨, 정숙 씨가 살다 간 생(生)이 한데 겹쳐지길 바랍니다.
에필로그 마지막 문장이 울림을 줍니다. “이제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이 당신들의 엄마에 대해 기록할 차례다”라고 쓰셨어요. 엄마에 대해 기록하기를 독려하고 계신데요?
50여 년을 살다 가신 최 여사의 이야기가 그저 '나의 엄마의 이야기'로 그칠 것 같았다면 애초에 책을 펴낼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정숙 씨의 상처 그리고 삶의 맥락 속에서 읽는 분들 각자가 무언가 느끼거나 사유하거나 포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저 자신의 회환과 자책과 그리움과 추억을 한데 뭉쳐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를 읽는 분들 또한 각자의 엄마를 후회 없이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은 저와 같은 실수를, 후회를, 자책을 되풀이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책은 우리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잖아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엄마에 대해 기록하기를 바랍니다. 독자님들과 힘을 합쳐 우리 사회의 ‘엄마 박물관’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만큼 이 책은 저 혼자만의 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엄마에 대해 기록하실 때 이 책은 저뿐만 아니라 독자분들의 책이 된다고 여겨요. 그렇게 함으로써 잊힌 엄마의 이름을 다시 기억해 부를 수 있다고 믿어요.
최근에 책을 읽은 독자님께 메일을 받았는데요. 정숙 씨처럼 우울증으로 힘들어하시는 독자님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찬찬히 써 보내주셨더라고요.
“아직도 나는, 엄마에게 못해주는 것이 많아서, 엄마가 나에게 늘 미안해하기만 해서, 나와 동생이 있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라는 엄마의 삶이 안타깝기만 해서,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이제, 내가 엄마에 대해 기록할 차례이다.“
독자님의 글을 읽으며 많이 울었습니다. ‘엄마’ 하고 부르면 왜 눈물부터 나는 걸까요. 이제 우리가 엄마에게 엄마의 이름을 돌려줘야 할 때가 아닐까요? 엄마에 대해 기록하시고 인스타그램에 #엄마는행복하지않다고했다 해시태그를 달아주시거나 @edit_or_h를 태그해주세요. 제가 독자님들을 응원합니다!
이 외에도 기억에 남는 독자 반응이 있나요?
중학생 친구가 저의 책을 읽었대요. 열네 살 남학생이었는데,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를 읽고 가슴이 먹먹해 울다가 저녁 먹은 걸 다 토했다고 하더라고요. 최근에 독서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함께 읽는 책’으로 이 책을 추천하겠다고 했습니다. 친구들한테 유익할 거라고요. 제 책을 청소년들도 공감하며 읽어준다는 게 신기했고 온 마음으로 읽어주는 게 고마웠습니다.
40대 여성 독자님께서는 모든 것은 당신의 행복에서 비롯된다는 걸 이 책을 통해 깨달으셨다며 더 행복한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셨대요. 다양한 성별, 연령대의 독자들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를 읽어주시고 각자 이 책을 통해 무언가 얻어 가시는 게 있어 참 다행이고 감사했습니다.
돌아가신 최 여사께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원고를 쓸 때는 몰랐는데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고 나니 엄마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린 것 같아 약간은 후련한 마음이 들어요. 책이 출간되고 3일쯤 지났을 때 엄마가 꿈에 나와 저를 끌어안고 “잘했다. 잘했다” 하셨거든요. 그전까지는 그런 마음이 없었는데 꿈에서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조금은 안정되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나 애초에 엄마에 대해 기록했던 게 책을 출간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음으로 엄마에 대한 저의 기록은 계속될 거예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세헤라자데의 이야기처럼 아직도 끝이 없으므로…
첫 단독 저서인데 인세를 받으면 뭘 하실 건가요?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의 인세를 받으면 해당 금액의 10%는 정숙 씨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려 해요. 증쇄를 할 때마다 지속적으로요. 아직 어디에 기부할지는 정확히 정하지 못했어요. 최 여사처럼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 원인 모를 통증에 아프신 분들, 청각장애인들, 자살 유가족들,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 엄마들 등 최 여사의 온기가 필요할 곳들을 생각해보았어요. 정숙 씨는 저에게 바로 서는 법, 씩씩하게 걷는 법을 알려주었고 피를 돌게 하고 살을 찌워 주었어요. 정숙 씨는 그런 사람이었기에, 돌아가신 후에도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좋은 엄마가 될 거예요. 저에게 늘 그랬듯이요. 그리고 그 모든 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를 통해 이뤄지므로 이 책을 사 주시고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가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거예요. 그럼 이 책의 제목과는 달리 우리는 비로소 엄마로서 행복해질 수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작업을 계획 중이신지 궁금합니다.
아빠에 대한 책을 써 보고 싶어요.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에서 아빠가 못되게 그려져 있는데 그 점에 있어 죄송하기도 해요. 이 책을 아빠가 오열하면서 읽으셨어요. 본인에 대해 나쁘게 그려진 부분을 읽다간 성질이 나기도 하셨대요.(웃음)
아빠가 “상처를 많이 줘서 미안하다”고, “평생에 걸쳐 반성할 테니 그 상처가 네게 있어 독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하셨어요. 아빠를 미워하진 않지만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면 원망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 아빠와 화해하고 이해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어요. 아빠를 통해 이 시대의 중년 남성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기록을 멈추진 않을 거예요.
*김미향
1962년 3월 11일(음)에 태어나 2018년 4월 11일(음) 세상을 떠난 최정숙 씨의 딸, 김미향 저자. 저자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잠을 청하고 꿈을 꾼다. 그렇게 꿈을 기록하며 정숙 씨를 기억하는 한 엄마는 늘 함께하는 거라 믿고 있다. 현재 저자는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편집팀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매일매일 실수 연발, 사고뭉치지만 내밀한 취향의 정경들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풀어내고 있는, 일상을 기록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김미향 저 | 넥서스BOOKS
그동안 짊어지고 있었던 상실에 대한 두려움, 죄책감, 그리움 등의 온갖 감정들을 꿈속에 토해내면서 엄마와의 단편, 단편을 만들어간다. 물어볼 것도, 할 얘기도 많았던 그 엄마를 꿈속으로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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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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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내 곁에 있을 것 같고, 내 편이 되어줄 것만 같았던 엄마.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저릿저릿한 단어로 피어나는 엄마. 그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부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단어가 됐다.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이 만든 ‘엄마’라는 단어는 좋은 기억이든 아픈 기억이든 이젠 “이 세상에 있어만 주세요!”라는 간..